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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교양 강의: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은 지혜와 성찰

진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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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논어 교양 강의: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은 지혜와 성찰/ 진순신 지음; 서은숙 옮김
개인저자진순신= 陳舜臣, 1924-
서은숙= 徐銀淑, 역
발행사항파주: 돌베개, 2010
형태사항264 p.: 삽도; 23 cm
원서명論語抄
ISBN 9788971993736
9788971993477(세트)
일반주기 본서는 "論語抄. c2007."의 번역서임
주제명(개인명) 공자= 孔子, 551 B.C.-479 B.C. 논어.SLSH
분류기호 181.112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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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논어』와 진순신이라는 사람
진순신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타이완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한 작가이다. 그래선지 이 책은 『논어』에 대한 중국학자들과 일본학자들의 해석들을 맛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다. 주희의 주석을 위주로 한 우리의 전통적 『논어』 독법과 다른 『논어』 독법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색다르다.
진순신 선생은 일본에서 중국역사소설의 선구자로 꼽히는데, ‘진순신 산맥’이란 조어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그의 뒤를 이어 소설을 쓰는 작가군이 따로 있다. 일본의 저명한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진순신에 대해 이렇게 평한 바 있다.
“진순신이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우선 그는 일본을 이해하고 사랑한다. 게다가 그 결점이나 과실에 대해서도 자비로운 눈으로 대한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그의 애정은 초목을 키우는 햇볕처럼 따뜻하다. 아울러 그는 중국 근현대사의 현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고베에서의 일상생활도 다중적으로 관찰하고 사고할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중국에 대한 애정과 고베에 대한 애정은 괴리되지 않고 하나가 된 것이다. 기이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렇...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논어』와 진순신이라는 사람
진순신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타이완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한 작가이다. 그래선지 이 책은 『논어』에 대한 중국학자들과 일본학자들의 해석들을 맛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다. 주희의 주석을 위주로 한 우리의 전통적 『논어』 독법과 다른 『논어』 독법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색다르다.
진순신 선생은 일본에서 중국역사소설의 선구자로 꼽히는데, ‘진순신 산맥’이란 조어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그의 뒤를 이어 소설을 쓰는 작가군이 따로 있다. 일본의 저명한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진순신에 대해 이렇게 평한 바 있다.
“진순신이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우선 그는 일본을 이해하고 사랑한다. 게다가 그 결점이나 과실에 대해서도 자비로운 눈으로 대한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그의 애정은 초목을 키우는 햇볕처럼 따뜻하다. 아울러 그는 중국 근현대사의 현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고베에서의 일상생활도 다중적으로 관찰하고 사고할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중국에 대한 애정과 고베에 대한 애정은 괴리되지 않고 하나가 된 것이다. 기이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중국과 일본의 융화된 문화적 토양 위에 선 진순신에게 『논어』는 어떤 의미일까?
머리말에 보면 『논어』에 얽힌 그의 인생경로가 잘 드러난다. 그는 말 그대로 ‘평생에 걸쳐’ 『논어』를 읽어왔다. 그는 독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논어』를 전부 다 읽는 것은 무리이고,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설교조가 되는 것을 염려했기에 『논어』를 해석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에세이 쓰는 자세를 견지했습니다. 『논어』와 같은 고전은 평생에 걸쳐 읽는 것입니다. 이후로도 『논어』에서 인간을 보고, 자신을 보며, 세계와 역사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논어』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고전들 중 『논어』만큼 잘 알려져 있지만 알려진 만큼 제대로 읽히지 않은 책이 또 있을까? 고전을 두고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잘 읽지 않는 책”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논어』야말로 바로 그런 책이다. 잘못된 관습, 누추한 전통, 진보를 가로막는 수구반동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을 뿐, 누구도 그 속 내용을 알려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다면 『논어』가 읽히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공자를 오류가 없는 성인聖人으로 정해놓고 독자들에게 본받기를 강요하는 독단적인 글쓰기 탓이 아닐까. 특히 『논어』를 읽으면서 주희朱熹의 해석에만 의존했던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논어』는 ‘공자가 어떤 일에 대해 논論하거나 사람들과 대화(語)를 나눈 기록’이다. 대략 500장으로 구성된 「논어」는 한대 이후 여러 학자들의 주석과 해석을 거치면서 동아시아 정신의 중심축을 긋는 유가의 대표 저서로 오랫동안 읽혀왔다. 사마천司馬遷은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공자의 저술을 읽어보고 그 사람됨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상상할 수 있었다고 했고, 송나라의 유학자 정이程?는 17~18세 때 「논어」를 읽은 이래로 읽을수록 그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된다고 했으며, 일본의 유학자 이토 진사이伊藤仁齋는 『논어』를 ‘우주 제일의 책’이라고 했다.
공자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춘추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 시대는 권력을 차지하려고 자식이 아비를 몰아내고, 한 뼘의 땅을 다퉈 신하가 임금을 살해하는 대 혼란기였다. 공자의 후예 맹자는 이를 두고 “공자는 시대를 두려워했다”(孔子懼)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공자 사상의 출발점이 사람이 짐승보다 못한 동물로 타락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자는 당대의 비극적 현실을 냉정하게 관찰한 바탕 위에서 그의 꿈을 제시했던 것이지, 결코 나약한 책상물림은 아니었다. 나아가 『논어』에서 어떤 현자가 공자를 두고, “안 될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뚜벅뚜벅 행하는 사람”이라고 지적했던 비평도 그의 정체를 잘 드러내주는 말이다.
안 될 줄 알면서도 세상사에 개입하는 ‘비관적인 사회참여’야말로 공자의 특이한 점이다. 문제를 사회구조 탓으로 돌리면서 뒤로 물러나는 은둔의 길도 아니고, 제 한 몸의 안락을 위해 이념과 지식을 파는 참여일변도의 길도 아닌 샛길, “안 될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뚜벅뚜벅 정의를 행하는” 이것이 공자의 길이다. 요컨대 공자는 폭력과 광기의 시대를 뚫고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문명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논어』에는 공자의 꿈, 곧 ‘사람다움’의 원형과 문명사회의 모델이 있다.
우리는 그동안 『논어』를 지나치게 엄숙한 책으로 읽어왔고, 공자를 너무나 엄격한 성인으로 치부하고 말았다. 이젠 『논어』를 보다 다양하고 또 가벼운 눈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경전으로서의 『논어』가 아니라 여러 고전들 가운데 한 권의 책으로 보는 식이다. 그럴 때라야 공자도 딱딱한 청동갑옷에 밀폐된 채 멀리 떨어져 있는 성인이 아니라, 지혜로운 한 노인으로 우리 곁에 가깝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영산대 교수 배병삼 선생은 진순신 선생의 『논어 교양강의』처럼 분명한 자기 관점을 바탕으로 자기 방식대로 『논어』를 읽고 해설하는 글쓰기가 점점 더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것이야말로 고전을 오늘날로 제대로 되살리는 길이면서, 엄숙주의의 덫에 갇혔던 동양고전을 해방시켜 실제 삶에 요구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논어 교양강의』만의 특징
진순신이 들려주는 『논어』를 즐겁게 읽는 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를 포착하라.
「논어」는 각각의 문장이 짧기 때문에 의미가 금방 이해될 듯하지만, 행간에 숨어 있는 공자의 의도와 상황을 유추해보기가 그리 녹록치 않다. 가령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익히 알려진 구이지만 공자는 과연 어떤 상황 혹은 어떤 심정에서 이 말을 했을까. 낙관적인 상황에서 했을까, 아니면 그때 혹시 비관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에 따라 이 문장의 해석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원문의 한자 쓰임에도 주의하라.
「학이」를 보면 “말을 꾸미고 낯빛을 곱게 하는 사람치고 인한 이가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라는 문장이 보인다. 여기서 ‘인한 이가 드물다’라는 의미의 문장을 ‘仁鮮矣’라고 하지 않고 왜 ‘鮮矣仁’으로 한자를 도치했을까. 가령 ‘저 녀석은 안 돼!’와 ‘안 돼, 저 녀석은!’이라는 두 문장의 의미 차이를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연히 후자에 더 강조점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과거와 현재의 역사적 사건을 반추해보라.
「위정」의 “의를 보고도 행하지 아니함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는 구절에서는 중국 근대의 여성 혁명가 추근秋瑾을 떠올린다. 반청혁명운동에 참여하다가 모반죄로 참수형에 처해진 추근의 시신을 그녀의 의자매인 서자화徐自華와 오지영吳芝瑛이 체포 위험에도 불구하고 시신을 거두어 매장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말한다.
넷째, 「논어」의 각 장면을 삽화처럼 그려보라.
공자와 제자들의 언행록이라는 『논어』의 특성에 맞추어 각 장면들을 마치 삽화처럼 생생하게 그려보면 『논어』읽기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 「공야장」에는 도가 행해지지 않아 뗏목을 타고 바다로 가고 싶은데 이때 자신을 따라올 자는 아마도 제자 자로일 것이라고 공자가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공자의 말을 들은 자로에 대해 원문에는 ‘자로가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라고 되어 있다. 이 대목을 풀이하면서 진순신은 공자의 말을 들은 자로의 모습을, “뛸 듯이 기뻐합니다. 벌써 일어서려고 엉덩이를 들어 올립니다. 내일이라도 낭야(琅邪)의 바다로 갈 듯한 기세입니다”라고 묘사한다. 특히 ‘벌써 일어서려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모습은 뗏목도 생각하지 않고 앞장서서 뛰쳐나갈 것 같은 덜렁이 같은 자로에게 제격이다.
다섯째, 「논어」 주석서들의 해석 차이에 주목하라.
전통적으로 「논어」에 대한 주석서로 손꼽히는 것은 위魏나라 하안何晏의 『논어집해』論語集解, 양梁나라 황간皇侃의『논어의소』論語義疏, 북송北宋 형병邢昺의 『논어주소』論語注疏, 남송南宋 주희朱憙의 「논어집주』論語集注이다. 이 중에 한대의 옛 주석을 모아 정리한 하안의 「논어집해』를 고주古注로, 주희의 「논어집주』를 신주新注로 흔히 부르는데, 훈고학이 바탕이 된 고주와 성리학이 바탕이 된 신주 사이에는 종종 해석의 차이가 발생한다. 가령 「팔일」의 “이적에는 군주가 있나니 중국에 없는 것과 같지 않다”는 문장에 대해 고주는 “이민족에게 군주가 있지만 중국에 군주가 없는 상태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라고 풀이한다. 반면에 신주는 “이민족은 군주가 있어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지금의 중국처럼 군주가 없어 질서가 흐트러진 난세는 아니다”라고 해석한다. 두 해석은 의미에 많은 차이가 있다. 고주의 풀이를 따르면 굉장한 중화사상이 되고, 신주의 풀이를 따르면 군주가 있어 질서가 유지되는 이민족을 예찬하고 난세의 중국을 한탄한 것이 된다.
여섯째, 일본의 「논어」 연구와 관심에도 주목하라.
이 책에는 일본 석학들의 「논어」 연구과 관점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가령 자字나 사詞의 고의古義를 분석하는 훈고학적 방법론으로 공자와 그 제자들이 대화를 나누던 원시적 언어 환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신주의 논어 해석을 비판한 이토 진사이나, 주자학과 이토 진사이의 해석을 모두 비판하며 공자 사상을 정치적 관점에서 해독하는 새로운 해석을 제기한 오규 소라이의 주장을 엿볼 수 있다. 그밖에도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齋·다니 지추谷時中와 같은 일본 에도시기의 연구자는 말할 것도 없고, 다케우치 요시오武內義雄·나이토 고난內藤湖南·가이즈카 시게키貝塚茂樹·요시카와 고지로吉川幸次郞 등의 근현대 연구자의 다양한 학설을 볼 수 있다.
일곱째, 『논어』의 구절을 우리 일상에서 찾아보라.
『논어』가 학계의 전공자들만이 보는 고전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일상에서 익숙하게 쓰이고 있는 『논어』의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예를 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유훈인 ‘짐이 무겁고 길은 멀다’나 쇼도쿠聖德 태자의 17조 헌법에 나오는 ‘조화를 귀하게 여기다’도 논어의 「태백」이 그 출전이다. 그밖에도 가쿠슈인學習院이라는 학교 이름, 산세이도三省堂라는 서점 이름,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라는 일본 근대 육군 창설자의 이름도 모두 「논어」에서 딴 것이라니 흥미롭지 않습니까.
진순신이라는 이 후학은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 본서를 출간했다. 공자는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다”고 했는데, 여든에 본서를 출간한 진순신을 두고 일본의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든에는 법도를 넘는구나, 돌아다닐 수 없어도 정신은 자유롭다.” 『논어』를 읽을 때마다 『논어』를 읽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독법을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해보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그다. 그의 자유로운 정신을 상상해보는 것은 독자에게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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