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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크루즈: 대한제국 침탈 비밀외교 100일의 기록

Bradley, 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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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임페리얼 크루즈: 대한제국 침탈 비밀외교 100일의 기록/ 제임스 브래들리 지음; 송정애 옮김
개인저자Bradley, James, 1954-
송정애, 역
발행사항서울: 프리뷰, 2010
형태사항381 p.: 삽화, 지도, 초상; 23 cm
원서명 (The) Imperial cruise
ISBN 9788996276364
일반주기 본서는 "The imperial cruise : a secret history of empire and war.c2009."의 번역서임
서지주기 참고문헌: p. 351-381
주제명(개인명) Roosevelt, Theodore, Pres. United States, 1858-1919 Political and social views --
Taft, William H. 1857-1930 (William Howard),
주제명(단체명)United States. -- Navy -- Cruise, 1905
주제명(지명) United States -- History, Naval -- 20th century
United States -- Foreign relations -- Japan
Japan -- Foreign relations -- United States
United States -- Foreign relations -- East Asia
East Asia -- Foreign relations -- United States
일반주제명 Imperialism -- History -- 20th century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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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2010 미국의 양심을 뒤흔든 책/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역사 정치 논픽션)


“큰형님 미국이 우리를 반드시 도와줄 것이다.”-高宗 황제
“나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차지하는 걸 반드시 보고 싶다.”-루스벨트 대통령

“일본이 미국의 아시아 진출을 돕는다면,미국은 대한제국 강점을 묵인하겠다.”


가쓰라 태프트 밀약까지 비밀외교 100일의 기록


1905년 여름, 도쿄와 워싱턴 사이에는 일본의 대한제국 강점과 미국의 필리핀 식민지화를 서로 묵인하는 내용의 비밀협상이 분주히 진행되고 있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일본과 비밀협상을 벌이는 동시에 당시 사상최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정직한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다. 두 교전국은 그해 여름 포츠머스평화조약을 맺게 되고, 그 공로로 일 년 뒤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는 미일美日 밀약에 대해 전혀 몰랐고, 밀약의 존재는 루스벨트가 사망한 후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루스벨트는 20세기초 아시아정책을 통해 미국을 제국주의...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2010 미국의 양심을 뒤흔든 책/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역사 정치 논픽션)


“큰형님 미국이 우리를 반드시 도와줄 것이다.”-高宗 황제
“나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차지하는 걸 반드시 보고 싶다.”-루스벨트 대통령

“일본이 미국의 아시아 진출을 돕는다면,미국은 대한제국 강점을 묵인하겠다.”


가쓰라 태프트 밀약까지 비밀외교 100일의 기록


1905년 여름, 도쿄와 워싱턴 사이에는 일본의 대한제국 강점과 미국의 필리핀 식민지화를 서로 묵인하는 내용의 비밀협상이 분주히 진행되고 있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일본과 비밀협상을 벌이는 동시에 당시 사상최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정직한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다. 두 교전국은 그해 여름 포츠머스평화조약을 맺게 되고, 그 공로로 일 년 뒤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는 미일美日 밀약에 대해 전혀 몰랐고, 밀약의 존재는 루스벨트가 사망한 후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루스벨트는 20세기초 아시아정책을 통해 미국을 제국주의의 거센 여울로 몰아갔다. 저자는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를 단장으로 한 1905년 아시아 순방단의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당시 루스벨트가 추구한 아시아정책의 실체를 파헤쳐 나간다. 순방단의 비밀임무는 미국과 일본이 대한제국과 필리핀 강점을 서로 묵인한다는 밀약을 타결짓는 것이었다. 루스벨트는 맞딸 앨리스를 동승시켜 비밀임무를 은폐하고,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호도하는 바람잡이 역할을 맡겼다.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한 순방단은 100일 동안 하와이,일본,필리핀,중국,대한제국을 돌며 제국주의의 추악한 비밀임무를 수행했다. 미국은 필리핀을 강점하는 과정에서 수십만 명의 민간인을 살상했고, 탐욕스런 선교사들을 앞세워 하와이 왕국을 통째로 강탈했다. 그리고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에서 한 약속을 배신하고, 일본의 대한제국 침탈을 묵인하고 지원했다.


일본 영토 확장에 파란불 켜준 루스벨트

이야기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파견한 아시아 순방 외교사절단 80여명이 1905년 7월 5일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발하던 날에서 시작된다. 사절단은 그때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고 하와이, 일본, 필리핀, 중국, 대한제국을 거치는 긴 여정이었다. 미국이 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세계의 절대 강자로 부상하도록 만들기 위한 원정대遠征隊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루스벨트의 후임으로 제27대 대통령이 되는 육군장관 태프트를 비롯하여 상원의원 7명, 하원의원 23명과 다수의 군인 및 민간 관료들이 배에 타고 있었으며 기자들도 동승했다. 일행 가운데는 루스벨트의 매력적인 딸인 21세의 앨리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앨리스 공주’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사절단의 꽃이었다.

이 ‘제국주의 순방’imperial cruise을 통해 루스벨트는 앞으로 수세대에 걸쳐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중대한 정책들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루스벨트는 약소국을 향해 미국의 힘을 휘두른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몽둥이 철학에 투철한 사람”이었다. 대규모 사절단을 보내면서 루스벨트가 추구했던 정책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루스벨트)가 휘두른 몽둥이가 남긴 상처들은 태평양에서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 중국 공산혁명, 한국전쟁,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긴장사태들을 일으킨 불씨가 되었다. 20세기 미국의 아시아 외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남긴 궤적을 따라갔다.

100년만에 드러난 미일제국주의의 추악한 밀거래

결과적으로 韓日倂合은 백인우월주의자 루스벨트와 가쓰라 日총리, 태프트 美육군장관의 극비 합작품이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여러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이 자료를 통해 밝혀졌다. 예를 들어 한국민의 은인으로 불리는 濟衆院 의사 알렌 공사는 루스벨트가 조선을 일본에 넘기기 위해 보낸 척후병이라는 사실도 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루스벨트는 대한제국을 배신함으로써 아시아 대륙에 대한 일본의 영토 확장 계획에 파란불을 켜 주었으며 수십 년 뒤에 또 다른 루스벨트 대통령(프랭클린 루스벨트)은 전임 루스벨트가 행한 비밀협약의 결과로 빚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고 저자는 단정한다.

사절단은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지 두 달 뒤 상하이에서 두 그룹으로 헤어졌다. 태프트 일행은 미국으로 돌아가고 앨리스 일행은 베이징을 거쳐 한국을 방문한다. 앨리스 일행은 9월 19일 서울에 도착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한다는 요지의 포츠머스조약이 9월 5일에 체결된 날로부터 2주일 뒤였다. 일본은 한국 지배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상태였고 한반도 침략에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 두 달 후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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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해제: 제국의 배신과 대한제국의 종말
정 진 석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

루스벨트가 뿌린 재앙의 씨

‘대한제국 침탈 비밀외교 100일의 기록―임페리얼 크루즈’는 대한제국의 운명에 관련된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본군의 진주만 침공으로 시작된 끔찍한 태평양전쟁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그 기원을 찾는 작업이 책을 쓴 직접적인 동기였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태평양을 무대로 펼친 외교정책에서 신흥 제국 일본에게 한국을 식민지화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역사 전개 논리다. 책의 중요한 핵심 내용이 100년 전 한국의 운명에 관한 부분이라고 보는 이유다.

도서출판 ‘프리뷰’사가 미국에서 2009년 11월에 나온 책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획한 것은 이 책이 한 세기 전 미국 외교정책의 이면을 파헤친 문제작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했겠지만, 금년이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이란 시점에 부합된다는 판단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현대사에 커다란 의미를 내포하는 1세기 전의 역사를 오늘의 관점에서 되새겨보고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시점이 적절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원서 출간 1년이 지나지 않은 때에 한국의 독자들이 번역판을 접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국에는 두 사람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있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제26대, 1901∼1909년 재임)와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제32대, 1933∼1945년 재임)다. 두 루스벨트는 대통령으로서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지니는 인물이다. 제32대 루스벨트는 제2차 세계대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1943년에 영국, 중국과 공동으로 발표한 카이로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는 이로써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제26대 루스벨트는 한국과 좋은 인연을 만들지 못했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가운데 하나로 평가를 받고 있는 루스벨트는 포츠머스조약을 주선한 공로로 첫 번째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루스벨트가 한 세기 전의 역사에 어떤 비극의 씨앗을 심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파헤치면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적절히 배합하는 서술방식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루스벨트의 백인 우월주의 세계관과 포츠머스조약이 상징하는 잘못된 외교 정책이 1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후대에 큰 재앙을 몰고 왔다는 사실을 가차 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화한 후로도 제국주의적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에 이어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1941)한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의 근원도 거슬러 올라가면 루스벨트의 잘못된 정책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는 것이다.

최대 규모의 순방 사절단

이야기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파견한 아시아 순방 외교사절단 80여명이 1905년 7월 5일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발하던 날에서 시작된다. 사절단은 그때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고 하와이, 일본, 필리핀, 중국, 대한제국을 거치는 긴 여정이었다. 미국이 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세계의 절대 강자로 부상하도록 만들기 위한 원정대(遠征隊)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루스벨트의 후임으로 제27대 대통령이 되는 육군장관 태프트(William Howard Taft)를 비롯하여 상원의원 7명, 하원의원 23명과 다수의 군인 및 민간 관료들이 배에 타고 있었으며 기자들도 동승했다. 일행 가운데는 루스벨트의 매력적인 딸인 21세의 앨리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앨리스 공주’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사절단의 꽃이었다.

이 ‘제국주의 순방’imperial cruise을 통해 루스벨트는 앞으로 수세대에 걸쳐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중대한 정책들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루스벨트는 약소국을 향해 미국의 힘을 휘두른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몽둥이 철학에 투철한 사람”이었다. 대규모 사절단을 보내면서 루스벨트가 추구했던 정책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그(루스벨트)가 휘두른 몽둥이가 남긴 상처들은 태평양에서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 중국 공산혁명, 한국전쟁,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긴장사태들을 일으킨 불씨가 되었다. 20세기 미국의 아시아 외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남긴 궤적을 따라갔다.

이때 루스벨트가 대한제국을 배신함으로써 아시아 대륙에 대한 일본의 영토 확장 계획에 파란불을 켜 주었으며 수십 년 뒤에 또 다른 루스벨트 대통령(프랭클린 루스벨트)은 전임 루스벨트가 행한 비밀협약의 결과로 빚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고 저자는 단정한다.

100년 전의 대한제국은 이미 국운이 쇠진한 상태였다. 열강의 침략에 대항할 군사력도 부족했고, 외교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재도 거의 없었다. 국가재정은 거의 파탄 상태였다. 누적된 비정(秕政)과 국제 정세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였다.

서양 열강의 눈에 비친 한국은 침략자를 유혹할 정도로 풍부한 자원이 없었다. 하지만 일본제국에게는 절대 불가결의 중요한 존재였다. 일본은 영국이 이집트에서 해낸 역할을 한국에서 해보겠다며 열강들을 설득했다. 영국이 이집트에서 성공적으로 재정과 행정을 개혁했듯이 일본은 한국을 통치함으로써 한국의 시정(施政)을 개혁해 주겠다고 주장했다.(주한 영국공사 조던(Jordan)이 영국 외상 랜스다운(Lansdowne)에게 보낸 보고, 1904.6.10) 열강은 일본의 한국 병합을 점진적으로 승인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주한 영국 총영사였던 헨리 코번(Henry Cockburn)은 한반도의 처지를 인접한 강국 일본, 러시아, 중국 세력의 틈바구니에 끼어 고통 받는 장기판의 졸(卒)에 비유했다.(영국 외상 에드워드 그레이에게 보낸 보고, 1907.3.7) 서양 열국은 한반도가 오래 전부터 중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아온 나라라는 잘못된 선입관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에 장기간 근무했던 영국공사 사토(Ernest Satow)는 ‘일본에 대해서 한국은 생사가 달린 문제’로 보았다.(Bernard M. Allen, The Rt. Hon. sir Ernest Satow. A Memoir, London, 1933)

태프트 일행도 비슷한 인식을 지니고 태평양을 건너는 순방길에 올랐다. 출발지 샌프란시스코는 2년 8개월 뒤인 1908년 3월에 대한제국의 미국인 외교고문 스티븐스가 암살당하는 곳이다. 스티븐스는 일본이 한국을 문명과 진보의 길로 인도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한국 국민을 대하는 일본의 태도는 미국이 필리핀을 다스리는 방법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실린 이 기사를 보고 현지 교민들은 격분했다. 그는 항의 차 방문한 교민 대표들에게도 한국은 독립할 자격이 없기 때문에 일본이 빼앗지 아니하면 벌써 러시아가 점령했을 것이라는 망언을 하다가 장인환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책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

저자 제임스 브래들리는 한 세기 전에 미국 사절단이 동양을 향해 떠났던 여정을 따라오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대통령 루스벨트, 딸 앨리스와 여러 등장인물의 경력과 그들의 이념을 서술하는 이야기 전개는 역사를 소설처럼 흥미 있게 쫓아가도록 만든다. 복잡하고도 무거운 주제에 작은 에피소드들을 삽입하여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수법도 읽는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하와이, 일본, 필리핀, 홍콩, 상하이를 거쳐 서울에 오는 여정의 역사에 담겨 있는 미국의 만행을 들추어낸다.

이 책에 상세히 기술되지 않은 사실도 있다. 사절단 일행이 첫 기착지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던 7월 14일, 현지 거주 한인들은 일행을 뜨겁게 환영했다. 사절단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교민들은 미국이 한국의 독립을 지원할 것으로 믿었다. 8천명의 하와이 거주 한국인은 루스벨트에게 한국의 독립유지를 도와 달라는 청원서를 보내기로 하고 후에 초대 대통령이 되는 이승만과 윤병구 목사를 대표로 선출했다.

태프트는 7월 15일 호놀룰루를 떠나 25일에 요코하마에 도착하여 이틀 뒤에 태프트-가Tm라 비밀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은 필리핀 문제, 극동의 평화유지, 한국 문제를 포함했는데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삼도록 허용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태프트-가쓰라의 이 비밀협약은 19년 뒤인 1924년에야 내용이 알려졌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이승만과 윤병구는 8월 4일 루스벨트의 사가모어 힐 별장을 찾아가서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구해 달라고 청원했다. 1882년에 맺은 한미수호통상조약에 따라 미국이 한국을 구해 줄 것으로 믿었지만 루스벨트는 한국의 믿음을 배신했다. 루스벨트는 ‘무력한’ 나라들은 문명국의 합법적인 먹잇감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지닌 루스벨트와 태프트는 2인 1조로 한 팀이 되어서 후대에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게 될 전쟁이 태평양에서 일어나도록 파란불을 켜 주었던 것이다.

국빈 대접 받은 루스벨트의 딸

사절단은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지 두 달 뒤 상하이에서 두 그룹으로 헤어졌다. 태프트 일행은 미국으로 돌아가고 앨리스 일행은 베이징을 거쳐 한국을 방문한다. 앨리스 일행은 9월 19일 서울에 도착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한다는 요지의 포츠머스조약이 9월 5일에 체결된 날로부터 2주일 뒤였다. 일본은 한국 지배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상태였고 한반도 침략에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 두 달 후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한다.

포츠머스조약 체결로 루스벨트의 정치적 위상은 크게 높아졌고, 조약을 중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는 영광을 차지한다. 한국인에게 민족적인 고통을 안겨준 데 대한 대가였다. 책의 저자는 이렇게 썼다. “인종이론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지, 국제외교와 아시아에 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던 루스벨트는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어두운 길을 따라 달리게 해 마침내 1941년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고종은 미국과 일본 사이에 있었던 밀거래의 내막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앨리스는 인천을 거쳐 서울에 왔다. 루스벨트의 딸이 한국에 왔던 사실은 당시 한국의 신문도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다. 고종은 앨리스를 국빈으로 대접했다. 자신의 나라를 일본에 넘겨주는 외교정책을 펴고 있는 미국 대통령의 딸이 지나가는 길을 보수하고 앨리스가 방문하는 곳에 한-미 두 나라 국기를 교차 게양하여 환영과 경의를 표하도록 정부 각 부처에 지시했다고 황성신문이 보도했다.

예식관 고희경(高羲敬)과 궁내부 참서관 남정규(南廷奎)를 인천까지 보내어 영접토록 하고 앨리스에게는 황제의 전용 열차를 제공하였다. 서울에 도착하자 궁내부대신 이재극(李載克)이 정거장에 마중 나와 황실의 가마에 태워 숙소로 안내했는데 연도에는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한국인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이튿날인 20일 12시 앨리스는 고종을 알현한 뒤 식사를 함께 했고 미국 공사관의 만찬, 청량리의 홍릉과 남한산성을 관광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앨리스가 지나가는 길의 보수비용으로 국고 2천9백원을 지출했고, 29일에 열차편으로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떠날 때에는 특별열차를 제공했다. 떠나는 날은 각부 대신이 남대문 정거장에 나와 전송했다고 황성신문이 보도했다. 루스벨트의 무례한 딸 앨리스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스물한 살의 젊은 공주 앨리스가 약소국의 이 같은 극진한 환대에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는 사실이 미국의 언론에 보도된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그가 서울에 머물던 때인 9월 27일자 황성신문은 루스벨트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외신을 실었다. 프랑스의 ‘르 프티 파리지앵’은 1905년 10월 8일자에 가마를 타고 구한국 군대의 경호를 받으며 궁성으로 들어가는 앨리스의 모습을 보도하면서 한국은 이 미국적인 말괄량이 아가씨를 상대로 한미공수동맹을 맺으려 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1910년 7월에는 대통령 자리를 떠난 루스벨트가 동양을 방문하여 한국 북방에서 호랑이 사냥을 할 계획이라는 외신 보도가 실리기도 했으나(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 1910.7.20) 그는 한국을 방문하지는 않았다. 전국 각지에 호랑이가 출몰하여 사람과 가축에 피해를 입히는 일이 자주 일어나던 시절의 일이다.

대한제국의 허망한 최후

고종은 순진하게도 루스벨트를 한국을 구원할 구세주로 착각하였으나 루스벨트는 철저하게 일본 편을 들었다. 일본이 한국을 차지하는 걸 보고 싶다는 것이 루스벨트의 진심이었다. 국제정세에 무지했으며 강력한 군대와 유능한 외교관을 양성하지 못했던 대한제국은 결국 멸망의 길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에 언급된 사항 두 가지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하나는 가네코(金子堅太郞)로 불리는 사람이다. 가네코는 하버드대학 출신으로 미국 사정에 밝은 인물이었다. 하버드 동문인 루스벨트와의 연락과 미국의 일본에 대한 우호적 여론 형성 활동이 그의 임무였다. 주미 일본공사 다카히라 고고로(高平小五郞)를 자문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이 책은 서술하고 있다.

둘째로는 ‘고쿠민신문(國民新聞)’에 대해서다. 이 신문의 사주 도쿠도미 소호(德富蘇峰, 1863∼1957)는 1887년에 민우사(民友社)를 설립하여 신문, 잡지 및 출판 사업을 전개하는 한편으로 많은 글을 써서 신문 경영인 겸 논객으로 일본에서 명성이 높은 거물 언론인이었다. 그는 민우사를 모체로 ‘고쿠민노 도모(國民之友)’(1887.2)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이어서 ‘고쿠민신문’(1890.2.1), ‘가정잡지’(1892.9.15), 영문잡지 ‘The Far East(極東)’(1895.2.15)를 발행하고 출판사업도 병행하고 있었다.

도쿠도미는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하여 정계와 언론계에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의 침략을 미화하고 이를 정당하다고 주장한 국수주의 사상을 지니고 있었으며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이후에는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와 ‘매일신보’의 감독을 맡았던 인물이다. 고쿠민신문이 1905년 11월 4일자에 보도했던 “영일동맹은 실상은 일본-영국-미국의 동맹”이라고 보았던 것은 숨겨진 역사의 진실이었다고 이 책은 밝힌다. 고쿠민신문은 러일전쟁을 마무리하는 포츠머스조약의 협상이 진행되던 1905년에 정부를 옹호하고 강화조약의 체결을 축하하는 지면을 제작했다가 격분한 군중들이 몰려와서 사옥을 습격하는 수난을 겪은 일도 있었다.

대한제국의 멸망에 관해서는 한국인, 서양인, 일본인들이 쓴 여러 종류의 책이 있지만 이 책은 서술 방법과 시각이 기존의 책들과는 다르다.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 미국 자신에게도 이롭지 않았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는 마지막 모습을 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심정은 안타깝고도 허무하다.

열강 세력의 농단에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한 채 고종은 미국을 비롯한 열강 여러 나라를 향해 구원을 호소하는 밀서를 보내거나 밀사를 파견해 보았으나 냉엄한 국제무대에서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외교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는 교훈을 남긴 채 강제 합병에 이르게 되고 말았다. 대한제국은 침략에 맞서 싸우다가 장엄한 최후를 맞은 것도 아니고, 처절한 비장미(悲壯美)를 보여주지도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얻는 뼈아픈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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