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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온 이후: 토착민이 쓴 인디언 절멸사

Churchill, 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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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그들이 온 이후: 토착민이 쓴 인디언 절멸사/ 워드 처칠 지음 ; 황건 옮김
개인저자Churchill, Ward, 1947-
황건= 黃建, 역
발행사항서울: 당대, 2010
형태사항417 p.: 삽화; 23 cm
원서명 From a native son
ISBN 9788981631512
일반주기 본서는 "From a native son : selected essays in indigenism, 1985-1995. c2002."의 번역서임
서지주기 참고문헌: p. 334-336
일반주제명 Indians of North America -- Social conditions
Indians of North America -- Politics and government
Indians of North America -- Land tenure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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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그들이 왔다
책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콜럼버스=나치, 그것도 원조!’라는 주장이 저자가 시작하는 첫 단원이다. 누가 농담이라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던가?
1492년 신대륙의 발견 후 이듬해인 1493년 그는 17척의 침략군을 이끌고 그가 발견한 곳으로 ‘카리브제도와 아메리카 본토의 부왕겸 총독’이라는 직함으로 되돌아왔다. 1500년에 지금의 아이티와 도미니크공화국 지역을 떠나기까지 그는 지역의 토착민을 노예화하고 일련의 절멸정책을 시행한다. 그 결과 그가 도착했을 때 800만이었던 토착 타이노족은 그가 떠날 때 10만 명가량 밖에 남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에도 절멸정책은 계속되어 카리브 지역의 토착민 1500만명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나치가 학살한 유대인의 수와 거의 일치한다. 그러니 원조가 아닌가.
한편, 북미에서도 1513년 플로리다를 통한 유럽인의 유입이후 1890년까지 41치례의 전염병이 돌았는데, 혹자는 이것이 서로 다른 지역의 사람이 접촉하면서 생긴 우연하면서도 비극적인 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닌 사례가 여러 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그들이 왔다
책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콜럼버스=나치, 그것도 원조!’라는 주장이 저자가 시작하는 첫 단원이다. 누가 농담이라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던가?
1492년 신대륙의 발견 후 이듬해인 1493년 그는 17척의 침략군을 이끌고 그가 발견한 곳으로 ‘카리브제도와 아메리카 본토의 부왕겸 총독’이라는 직함으로 되돌아왔다. 1500년에 지금의 아이티와 도미니크공화국 지역을 떠나기까지 그는 지역의 토착민을 노예화하고 일련의 절멸정책을 시행한다. 그 결과 그가 도착했을 때 800만이었던 토착 타이노족은 그가 떠날 때 10만 명가량 밖에 남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에도 절멸정책은 계속되어 카리브 지역의 토착민 1500만명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나치가 학살한 유대인의 수와 거의 일치한다. 그러니 원조가 아닌가.
한편, 북미에서도 1513년 플로리다를 통한 유럽인의 유입이후 1890년까지 41치례의 전염병이 돌았는데, 혹자는 이것이 서로 다른 지역의 사람이 접촉하면서 생긴 우연하면서도 비극적인 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닌 사례가 여러 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미국의 등장
독립전쟁 이후 영토확장에 ‘전투적’으로 몰두했던 미국은 1830년대까지 동부지방을 ‘청소’하여 정착민들의 공간을 만드는데 혈안이었다. 나치가 그랬듯이. 그 과정에서 체로키족은 절반이 죽었다. 토착민들의 ‘물리적’ 저항은 1903년 완전히 분쇄되는데, 그때까지 미국은 토착민과 371건의 국가 대 국가의 협정을 체결한다. 이는 주로 토착민의 권리와 토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제대로 지켜진 것은 거의 없었다.
1950년대 중반 연방정부는 ‘종결(determination)' 법령을 제정했는데, 이는 토지에 기반하여 살던 토착민들의 결집을 분산시키고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이 법령은 토착민들의 이산(diaspora)을 촉발시켜 1990년대에는 미국 내 토착민의 절반인 88만 명이 도시빈민 지역으로 흩어져 살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연방정부가 자행한 토착민 절멸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토착민 여성에 대한 비자발적 불임시술, 토착민 아동에 비토착민 가정으로의 입양 등 인종말살에 준하는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이러한 정책의 시행으로 토착민들은 절망과 분노, 좌절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1500년대 1500만의 북미 토착민의 인구는 500년 ‘정착’의 세월이 흐른 지금 150만의 인구가 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다.

인디언청구권위원회
무장투쟁이 분쇄되고 보호구역에 ‘감금’되고 도시빈민으로 이산하여 자기 땅에서 소외되었던 토착민들에게 희망의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히틀러는 공공연히 생활공간과 인종청소에 대한 아이디어를 토착민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서 얻었다고 언급하였는데, 토착민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전범재판을 진행하는데 부담을 느낀 미국 정부는 처음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 ‘불행하고도 때로는 비극적인 시행착오’가 있었음을 시인한다. 그리고 그 해결을 목적으로 ‘인디언청구권위원회(Indian Claims Commission)'라는 준사법기구를 설립한다. 그 기능을 다하는 1978년까지 수백건의 부당함에 대한 청구가 쏟아졌다. 물론 그 결과는 기대할 게 없지만.

아메리카인디언운동
그 미진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인디언청구권위원회를 통해 자신의 권리와 소유권을 주장하던 토착민들은 자신의 권리와 부당한 상황에 대해 투쟁할 의지를 마련한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1970년대 초에 결성된 아메리카인디언운동(AIM)이다. 그들은 국제연합(UN)에 거점을 마련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무장투쟁이 분쇄된 후 처음으로 맞이한 조직적 토착민 행동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은 ‘테러’였다. 연방경찰의 비호하에 경찰의 대리인 단체들이 공공연히 테러를 자행하였는데, 무분별한 테러의 배경에는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묶인 지역에서 엄청난 양의 지하자원이 발견된 사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인디언운동은 지금까지 토착민 저항의 중심에 서있다.

토착민의 눈으로
저자는 스스로의 견해를 ‘토착민주의(indigenism)'라고 밝힌다. 토착민주의로 봤을 때 미국은 법적 정당성이 없이 남의 집을 깔고 앉아있는 깡패다. 미국의 교육과 사고는 토착민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따라서 그들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만 년의 세월동안 전승되고 있는 토착민주의는 태생적으로 자연에 순응하며 타인을 존중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은 세상의 모든 진보적 생각과 연대할 수 있으며, 미국 내에서 토착민의 공간을 확보하고 토착민 스스로의 결정으로 삶을 꾸려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한마디로 1968년 프랑스 학생혁명 당시 꽁방디의 말을 인용하면 이렇다. “현실적이되 불가능을 요구하라!”

* 부록은 이 책이 나온 직후에 일어난 9·11 사태에 대한 저자의 칼럼을 옮겨 실은 것이다. 이 글로 저자는 교수직을 잃게 된다. 노엄 촘스키, 故 하워드 진, 이마뉴엘 월러스틴 등 여러 진보적인 학자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그는 아직 복직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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