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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 : 오늘의 유럽을 낳은 최초의 영토 전쟁 1618-1648

Wedgwood, C.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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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30년 전쟁: 오늘의 유럽을 낳은 최초의 영토 전쟁 1618-1648/ C. V. 웨지우드 지음 ; 남경태 옮김
개인저자Wedgwood, C. V. (Cicely Veronica), 1910-1997
남경태, 1960-2014, 역
발행사항서울: 휴머니스트, 2011
형태사항727 p.: 삽화; 24 cm
원서명(The) Thirty years war
ISBN9788958624028
일반주기 본서는 "The thirty years war. c2005."의 번역서임
서지주기참고문헌(p. 706-707)과 색인수록
주제명(개인명)Habsburg, House of
일반주제명Thirty Years' War, 1618-1648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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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1. 400년 전 전쟁을 통해 21세기 유럽의 뿌리를 발견하다
- 이 책의 개요


《30년 전쟁》은 영국의 역사학자 C. V. 웨지우드의《The Thirty Years War》를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유럽 근대사를 전공한 저자는 치밀한 연구와 조사를 바탕에 두고 역사적 · 작가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이 책을 탄생시켰다. 《30년 전쟁》은 1938년에 초판이 출간됐는데,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증쇄를 거듭할 만큼 ‘30년 전쟁’을 다룬 최고의 책이자 전쟁을 주제로 한 수많은 역사서 중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 받는 책이다.
‘30년 전쟁’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신성로마제국(지금의 독일)을 무대로 신교와 구교가 치열하게 부딪힌 종교 전쟁이다. 전쟁은 종교 간 갈등으로 시작됐지만, 자국의 이득을 노린 열강들이 개입하면서 종교 문제는 희석되고 국제전으로 변질했다. 거의 전 유럽이 얽혀들었던 전쟁이 끝났을 때, 유럽의 지형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전후 조약을 통해 현재와 같은 국경선이 확립됐기 때문인데, 그런 만큼 이 전쟁을 오늘날 유럽을 형성한 뿌리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1. 400년 전 전쟁을 통해 21세기 유럽의 뿌리를 발견하다
- 이 책의 개요


《30년 전쟁》은 영국의 역사학자 C. V. 웨지우드의《The Thirty Years War》를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유럽 근대사를 전공한 저자는 치밀한 연구와 조사를 바탕에 두고 역사적 · 작가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이 책을 탄생시켰다. 《30년 전쟁》은 1938년에 초판이 출간됐는데,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증쇄를 거듭할 만큼 ‘30년 전쟁’을 다룬 최고의 책이자 전쟁을 주제로 한 수많은 역사서 중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 받는 책이다.
‘30년 전쟁’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신성로마제국(지금의 독일)을 무대로 신교와 구교가 치열하게 부딪힌 종교 전쟁이다. 전쟁은 종교 간 갈등으로 시작됐지만, 자국의 이득을 노린 열강들이 개입하면서 종교 문제는 희석되고 국제전으로 변질했다. 거의 전 유럽이 얽혀들었던 전쟁이 끝났을 때, 유럽의 지형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전후 조약을 통해 현재와 같은 국경선이 확립됐기 때문인데, 그런 만큼 이 전쟁을 오늘날 유럽을 형성한 뿌리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세계에 관한 한 전쟁이라는 징검다리에서 가장 중요한 다릿돌을 꼽으라면 17세기의 ‘30년 전쟁’을 들 수 있다. 이 전쟁은 수천 년의 유럽 역사 전체를 결론짓는 마지막 단계의 출발점이었고, 오늘날의 유럽 세계를 직접적으로 형성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17세기 초는 종교개혁의 후유증이 남아 있던 시절이었으므로 30년 전쟁은 종교 전쟁으로 시작해서 영토 전쟁으로 끝난다. 그런 점에서 이 전쟁은 중세 전쟁에서 근대 전쟁으로의 연결고리가 된다.
- ‘옮긴이의 글’ 中


2. 종교 전쟁에서 영토 전쟁으로, 30년에 걸친 처절한 싸움
- 30년 전쟁은 어떤 전쟁인가?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신교와 구교로 나뉜 유럽의 기독교는 100년 흐른 뒤에도 분열과 대립을 계속하고 있었다. 종교개혁의 결말 단계인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도 신앙의 자유를 제한적으로 허용했을 뿐이다. 불안을 느낀 신교의 칼뱅파는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를 중심으로 신교연합을 결성했고, 이에 맞서 구교 집단은 가톨릭동맹을 결성한다. 이렇게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며 대립하던 차에 1617년, 보헤미아 왕 페르디난트 2세가 구교로의 통일을 위해 신교도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보헤미아 귀족들이 여기에 집단적으로 저항하면서 전쟁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30년 전쟁(1618~1648)의 시작이었다.
전쟁은 신 · 구교의 갈등으로 시작됐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종교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영토나 통상 같은 이익에 눈이 먼 열강들이 개입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커져 나갔다.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신교 국가는 신교도를 지원하며 전쟁에 뛰어들었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신성로마제국은 구교도 편을 들었다. 여기에 구교 국가이면서도 에스파냐와 신성로마제국을 경계한 프랑스가 신교를 뒷받침하면서 전쟁은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가 얽혀드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참전국들의 명분은 동일 종교 세력을 보호한다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혼란을 틈타 영토를 확장하려는 야심이었다.
전쟁은 1648년에 역사상 첫 다국간 조약인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하면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3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친 다툼이 남긴 영향과 파장은 시간만큼이나 만만치 않았다. 전후 최대 수혜국 프랑스는 알자스 로렌 지역까지 국경선을 넓혔고, 스웨덴은 발트 해를 차지했으며, 네덜란드는 에스파냐에서 독립했다. 이에 반해 신성로마제국은 인구의 1/3을 잃은 데다가 제후국들이 실질적으로 독립해나가면서 껍데기만 남게 됐으며, 유럽을 틀어쥔 채 호령하고 있던 에스파냐는 점차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해간다.
30년 전쟁을 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다. ‘유럽의 국경선을 확정한 전쟁’, ‘유럽의 지형도를 바꾼 전쟁’이라고 평가하기도 하고 ‘최후의 종교 전쟁, 최초의 영토 전쟁’이라고 전쟁의 성격에 집중하기도 한다. 의심의 여지 없이 분명한 것은 ‘종교’라는 중세적 갈등에서 비롯되어 ‘국가 간 이익 다툼’이라는 근대적 갈등으로 진화해나간 이 전쟁이 유럽의 근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점이다.


3. ‘전쟁의 역사’를 넘어 ‘이야기’가 된 전쟁사의 고전
- 이 책의 특징


그녀는 섬세한 안목으로 과거의 인물과 장면을 살아 숨 쉬게 만들며, 인간의 악행과 어리석음, 파괴 본능이 빚어낸 황폐하고 비참한 이야기를 역동적으로 전한다. 젊은 저자는 바로크풍의 화려함과 비참함이 공존하는 17세기 독일 세계를 깊이 통찰하면서 당대의 두드러진 사건들을 인상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녀가 무엇보다도 강조하는 것은 인물이다. (중략) 그녀의 저작이 보여주는 엄정한 완결성과 명징성은 그녀가 영웅으로 삼았던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의 저작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그녀는 로마제국의 역사를 저술한 그 냉철한 역사가조차 평정심을 잃었음 직한 과거와 현재의 끔찍한 공포를 놀랄 만큼 선명하게 통찰하고 그려냈다. 《30년 전쟁》은 그녀가 남긴 서사의 최고봉이다.
- ‘추천의 글’ 中

C. V. 웨지우드(1910~1997)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서머빌 칼리지에서 강의를 맡을 정도로 촉망받는 역사학도였지만 학자가 아닌, 대중에게 역사를 알리고 나누기 위한 저술의 길을 선택했다. 《30년 전쟁》은 그런 웨지우드가 29세 때 저술하여 1938년에 첫 선을 보인 책이다. 올해로 초판이 나온 지 73년이 됐지만, 아직도 증쇄를 거듭하며 읽히고 있다. ‘30년 전쟁’을 다룬 책이 다수인데도 웨지우드의 《30년 전쟁》이 짧지 않은 시간을 넘어 여전히 그 힘을 잃지 않는 이유는 뚜렷하다. 웨지우드는 ‘연대기’가 아니라 ‘이야기’에 주목한 역사학자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유려한 문장과 드라마 같은 구조다. ‘클래식하고도 빼어난 문장’을 쓴다고 정평이 난 역사학자답게 웨지우드의 글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400년 전 유럽, 그 전쟁의 현장에 가 있는 것같이 생생하게 되살아난 역사를 만나게 해준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히 저자의 상상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웨지우드는 대여섯 개 국어의 원본 문헌을 꼼꼼하게 뒤져가며 광산에서 석탄을 캐듯 사실을 직접 수집했다. 그렇게 발견한 사실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치밀하게 탐구하고 연구했다. 즉, 《30년 전쟁》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는 웨지우드의 빼어난 문장력은 철저한 사료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역사 재구성 능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료 분석에서 웨지우드는 학계가 강조하는 ‘왜’의 역사보다는 ‘어떻게’의 역사에 주력했다. ‘30년 전쟁’을 두고 그녀가 펼치는 서사 또한 이 사건이 지니는 구조적 · 사회적 · 경제적 설명에 치우쳐 있지 않다. 철저히 등장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상세하고 선명한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어떻게 펼쳐갔는지를 풀어낸다.

웨지우드는 서문을 통해 역사가가 편파적인 건 불가피한 일이라고 자인했다. 자신의 관점과 시대의 특성에 따라 불가피하게 특정한 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웨지우드가 이 책을 집필하던 1930년대에는 대공황, 히틀러 정부, 에스파냐 내전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이 고통들과 한 시대를 살아간 웨지우드의 《30년 전쟁》이 ‘인간의 고통’에 집중하고 있음은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지은이가 보는 30년 전쟁은 한마디로 불필요한 비극이다. 이 책은 이런 말로 끝난다. “전쟁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쟁의 결과는 부정적이고 처참했다. 도덕이 무너지고, 경제가 붕괴하고, 사회가 타락하고, 대의가 흔들리고, 결과가 훼손된 그 전쟁은 유럽 역사의 무의미한 분쟁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부를 뿐이라는 사실을 당시 그들은 깨닫지 못했고, 그 뒤로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은이가 이 책은 쓴 시기(1930년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였고, 아직 그 ‘무의미한 분쟁’의 최고봉이 한 차례 더 남아 있던 때였다.
- ‘옮긴이의 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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