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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간첩 :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그리고 최종길 교수 죽음의 진실

김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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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만들어진 간첩 :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그리고 최종길 교수 죽음의 진실 / 김학민 지음
개인저자김학민
발행사항파주 : 서해문집, 2017
형태사항512 p. : 삽화 ; 23 cm
ISBN9788974838508
서지주기참고문헌(p. 496-503)과 색인수록
분류기호320.9519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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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1973년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의 실체,
그리고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최종길 교수는 1973년 10월 16일 오후, 당시 중앙정보부 직원이었던 동생 최종선의 안내로 정보부에 출두했으나, 사흘 후인 10월 19일 새벽 ‘간첩 혐의 자백 후 투신자살’이라는 중앙정보부의 일방적 ‘발표’와 함께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다. 그의 죽음에는 간첩의 증거는커녕 자필 진술서나 심문조서, 구속영장 한 장 없이 중앙정보부의 밑도 끝도 없는 ‘발표’만이 들씌워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닷새 후인 10월 25일, 중앙정보부는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이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최 교수를 거기에 끼워 넣었다.
이 책은 최종길 교수의 동생 최종선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중앙정보부의 이 거짓 ‘발표’를 뒤집기 위해 싸워 온 30여 년의 여정, 그리고 최 교수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배경이었던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의 실체와 그 전개 과정을 파헤쳐 정리한 결과물이다.

유신독재, 중앙정보부, 조작 간첩, 의문사…
1961년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1973년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의 실체,
그리고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최종길 교수는 1973년 10월 16일 오후, 당시 중앙정보부 직원이었던 동생 최종선의 안내로 정보부에 출두했으나, 사흘 후인 10월 19일 새벽 ‘간첩 혐의 자백 후 투신자살’이라는 중앙정보부의 일방적 ‘발표’와 함께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다. 그의 죽음에는 간첩의 증거는커녕 자필 진술서나 심문조서, 구속영장 한 장 없이 중앙정보부의 밑도 끝도 없는 ‘발표’만이 들씌워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닷새 후인 10월 25일, 중앙정보부는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이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최 교수를 거기에 끼워 넣었다.
이 책은 최종길 교수의 동생 최종선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중앙정보부의 이 거짓 ‘발표’를 뒤집기 위해 싸워 온 30여 년의 여정, 그리고 최 교수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배경이었던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의 실체와 그 전개 과정을 파헤쳐 정리한 결과물이다.

유신독재, 중앙정보부, 조작 간첩, 의문사…
1961년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1963년 5대, 1967년 6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1971년 7대 대통령선거에서 ‘3선 개헌’을 통해 세 번째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영구 집권’을 꿈꾼다. 이에 1972년 ‘유신헌법’을 통해 8대 대통령이 되면서 박정희는 영구 집권을 현실화시키기에 이른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탄생한 중앙정보부는 이런 박정희 독재정권의 전위대 노릇을 하면서 국민과 야당을 감시하고 탄압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조작 간첩 사건이 등장했고, 의문사도 발생했다.
특히 당시 중앙정보부는 여러 조작 간첩 사건을 통해서 정권을 비호했다. 그중 대표적 사건이 1967년 윤이상을 포함해 194명이 관련된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과 1973년 최종길 교수를 포함해 54명이 관련된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이다. 두 사건은 다른 조작 간첩 사건에 비해, 그 규모가 큰 간첩단 사건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유럽’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에게 간첩 누명을 씌웠을 뿐 아니라, 많은 관련자 중에 실제로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은 드물다는 점 등이 닮은 사건이었다.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관련자 중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던 김장현·김촌명의 재판 기록은 이 사건이 1967년의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서 파생되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동시에 이 사건이 박정희 집권 시기 중앙정보부가 정권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빼들었던 ‘조작’ 간첩 사건의 전형임도 그 재판 기록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김장현의 재심 때 재판부에 제출된, 그리고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 및 보상 심의 위원회’가 확보한 이 사건 기소유예 관련자들의 진술서 등도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 <책을 내면서> 중에서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 된 형과 동생
1931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최종길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스위스 취리히 대학과 독일 쾰른 대학으로 유학을 가는 등 학자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특히 1961년 최종길은 쾰른 대학에서 한국인 최초로 독일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귀국해 모교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교수가 되어 제자들을 가르치고, 또한 학생과장으로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이런 그에게 중앙정보부는 독일에서의 유학 생활을 빌미로 간첩이라는 누명을 씌우게 된다.
한편, 최종길의 동생 최종선은 1973년 중앙정보부 감찰실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중앙정보부는 이런 사정을 이용, 최종길에게 수사 협조를 받을 필요가 있다며, 동생 최종선을 통해 최종길을 데려오게 한다. 이에 1973년 10월 16일 최종선은 요청을 받아들여 형과 함께 중앙정보부로 갔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중앙정보부의 말과는 달리, 자신이 데리고 간 형 최종길이 사흘 후인 1973년 10월 19일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최종선은 자신이 몸담고 있던 조직에서 조사받던 형이 갑자기 죽은 데 대해, 큰 분노와 절망을 느꼈다. 하지만 막강한 조직에 제대로 분노를 표출하기란 어려웠다. 이에 최종선은 형의 억울한 죽음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심하고, 이를 ‘양심수기’로 기록했다.

최종선이 세브란스병원 정신병동에 은신하여 기록한 ‘양심수기’는, 최 교수의 연행과 불법 조사, 죽음, 그리고 그 은폐에 이르기까지의 미스터리를 풀어 나가는 중심축이었다. 이 ‘수기’가 온존함으로써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가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고, 그래서 보다 진전된 판단이 내려질 수 있었다. 최종선은 2001년, 이 ‘수기’와 함께 최종길 사건에 대한 본인의 여타 글들을 묶어 《산 자여 말하라 : 고 최종길 교수는 이렇게 죽었다》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실명을 공개했다. 사건 관련 수사관들의 실명 확인은 그 책에 힘입었다.
- <책을 내면서> 중에서

진실은 죽지 않는다
최종길이 죽은 원인이 된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은 대표적인 조작 간첩 사건으로, 1973년 10월 25일 중앙정보부는 수사 끝에 유럽에서 유학 또는 연수를 한 교수와 공무원 등 총 54명이 간첩이라고 언론에 발표했다. 이와 함께 실제로는 동생과 함께 ‘자진 출두’한 최종길이 ‘검거’되어 간첩임을 자백하고 화장실을 통해 투신자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앙정보부의 이런 일방적 주장과 발표는 끝내 진실이 아니었다.
1974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최종길이 전기고문을 받던 중 심장파열로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이후 동생 최종선의 양심수기 공개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최종길은 ‘간첩 혐의’가 씌워지는 과정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으며, 사후 중앙정보부의 사실 은폐와 조작이 있었다. 결국 최종길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고문에 의해’ 죽은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진실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 피해자들의 피나는 노력과 ‘가해자들의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정의란 무엇인지’를 되묻는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1973년의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관련자들의 판결문?진술서 등 재판 문서와 세브란스병원 정신병동에서 기록된 최종선의 ‘양심수기,’ 중앙정보부 수사관 차철권의 2002년 《신동아》 인터뷰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는 이 책을 지지支持하는 네 얼개다. 그리고 사건 이후 신문·잡지 등의 보도 내용과 여러 인사들의 기고문, 사건 관련자와 그 친지 및 최종길 교수 지인들의 증언으로 그 얼개의 빈틈을 메웠다. 특히 이 책을 위해 처음으로 증언을 해 준 분들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고, 그동안 잘못 알려져 왔던 부분들도 바로잡을 수 있었다.
(…)
차철권은 ‘최종길 사건’에서 핵심 역할을 한 주무수사관이다. 《신동아》는 2002년 3월호에 〈천지신명에 맹세코 나는 최 교수를 죽이지 않았다〉는 제하로 차철권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이 인터뷰는 ‘최종길 사건’의 시말에 대한 차철권의 ‘주장’을 가감 없이 소개하고 있어 차철권에게 책임 회피와 변명의 장으로 이용되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이 증언으로 최종길 교수 조사팀의 작동 기제 등 정보부 내부의 세세한 움직임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인터뷰는 최종선의 ‘양심수기’와 대척점에 있는 자료로서 의의를 갖고 있다.
2002년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의 최종길 사건 ‘조사 보고서’는 이 책을 마무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위원회는 1973년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및 최종길 교수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었던 중앙정보부 5국 수사관들, 사건 직후 뒷수습에 간여한 중앙정보부 감찰실 직원들, 최 교수의 시신을 부검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 등을 대거 소환 조사했다. 이들의 일치하는, 또는 어긋나는 진술들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위원회는 진실에 근접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책의 결結은 이 보고서의 결론을 정리한 것이다.
- <책을 내면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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