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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 아르헤리치 : 삶과 사랑, 그리고 피아노

Bellamy, Oliv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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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마르타 아르헤리치 : 삶과 사랑, 그리고 피아노 / 올리비에 벨라미 지음 ; 이세진 옮김
개인저자Bellamy, Olivier, 1961-
이세진, 1973-, 역
발행사항서울 : 현암사, 2018
형태사항335 p. : 삽화 ; 20 cm
원서명Martha Argerich :l'enfant et les sortilèges
ISBN9788932319056
일반주기 연보: p. 331-334
본서는 "Martha Argerich : l'enfant et les sortilèges. c2010."의 번역서임
주제명(개인명)Argerich, Martha,1941-
일반주제명Pianists --Biography
분류기호786.2092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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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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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여류(女流) 피아니스트’라는 불필요한 수식어는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등장과 함께 드디어 폐기되었다!”

《BBC 뮤직 매거진》 선정 ‘역대 최고 피아니스트’ 9위! (현존 1위)
7세에 오케스트라와 협주곡 협연, 11세에 테아트로 콜론에서 공연,
16세에 부소니 콩쿠르·제네바 콩쿠르 동시 우승, 24세에 쇼팽 콩쿠르 우승……

가는 길마다 역사가 되고, 닿는 손끝마다 명연주, 명음반으로 남은
살아 있는 피아노의 전설 마르타 아르헤리치!
클래식 음악의 변방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신동 시절부터
유럽으로 이주해 콩쿠르를 평정하고 국제적 명성을 얻는 과정,
세 남자와의 만남에서 세 아이를 낳기까지 여성으로서의 삶까지
음악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아르헤리치를 조명한 최초의 평전!


뛰어난 테크닉과 열정적 연주, 깊이 있는 해석으로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2010년 《BBC 뮤직 매거진》이 뽑은 ‘역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순위에서 9위를 차지한 바 있는데, 10위까지의 순위 중에 생존해 활동하고 있는 것은 아르헤리치뿐이므로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여류(女流) 피아니스트’라는 불필요한 수식어는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등장과 함께 드디어 폐기되었다!”

《BBC 뮤직 매거진》 선정 ‘역대 최고 피아니스트’ 9위! (현존 1위)
7세에 오케스트라와 협주곡 협연, 11세에 테아트로 콜론에서 공연,
16세에 부소니 콩쿠르·제네바 콩쿠르 동시 우승, 24세에 쇼팽 콩쿠르 우승……

가는 길마다 역사가 되고, 닿는 손끝마다 명연주, 명음반으로 남은
살아 있는 피아노의 전설 마르타 아르헤리치!
클래식 음악의 변방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신동 시절부터
유럽으로 이주해 콩쿠르를 평정하고 국제적 명성을 얻는 과정,
세 남자와의 만남에서 세 아이를 낳기까지 여성으로서의 삶까지
음악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아르헤리치를 조명한 최초의 평전!


뛰어난 테크닉과 열정적 연주, 깊이 있는 해석으로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2010년 《BBC 뮤직 매거진》이 뽑은 ‘역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순위에서 9위를 차지한 바 있는데, 10위까지의 순위 중에 생존해 활동하고 있는 것은 아르헤리치뿐이므로 그녀를 현존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불을 뿜는 활화산 같다”라는 평을 듣는 강렬한 연주만큼이나 그녀의 인생도 드라마틱했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7세에 이미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11세에 남미 최대의 극장인 테아트로 콜론 무대에 섰으며, 유럽으로 옮겨간 뒤에는 부소니, 제네바, 쇼팽 콩쿠르 등 세계 최고 콩쿠르의 우승을 휩쓸었다.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지 흔히 말해졌던 ‘여성스러움’과는 반대되는 파워풀하면서도 개성 있는 해석이 넘치는 그녀의 연주에 세계는 곧바로 열광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무대 공포증에 시달렸으며, 홀로 무대에 서는 독주는 너무 외롭다며 1982년 이래 독주회는 열지 않은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다.
이 책은 20세기와 21세기까지 클래식 음악사를 관통하며 수많은 명연주를 남겨온, 그리고 여전히 남기고 있는 마르타 아르헤리치에 관한 최초의 전기다. 프랑스 ‘라디오 클래식’ 방송에서 2004년부터 '클래식 열정'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해오고 있는 클래식 전문가 올리비에 벨라미는 해박한 배경지식과 방대한 자료 조사, 아르헤리치 본인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직접 나눈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거대하고도 야성적인 거장의 초상을 그려냈다. 그녀가 태어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시작으로 프리드리히 굴다에게 배우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도착한 빈, 모든 연주 활동을 그만두고 칩거했던 뉴욕, 압도적 연주로 모두를 놀라게 한 쇼팽 콩쿠르의 도시 바르샤바, 드디어 정착한 브뤼셀 등 그녀가 일생 동안 발 디딘 도시를 따라가는 여정을 통해 독자는 아르헤리치의 화려한 모습 속에 숨어 있는 예술가로서의 진짜 영혼을 엿볼 수 있다. 70년이 넘는 연주 인생 동안 그녀와 인연을 맺은 프리드리히 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다니엘 바렌보임, 샤를 뒤투아, 기돈 크레머, 미샤 마이스키, 마우리치오 폴리니, 예브게니 키신 등 수많은 명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전설의 탄생과 성장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1941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승부욕 강했던 그녀는 세 살 때 다니던 유치원에서 “넌 피아노 못 치지!”라며 약 올리는 친구 앞에서 평소 낮잠 시간에 듣던 자장가를 쳐 보였다. 피아노를 한 번도 배운 적 없지만 음정과 리듬이 완벽했다. 우연히 이 광경을 본 원장이 놀라 부모에게 이 일을 얘기하면서 마르타의 화려하면서도 외로운 피아노 인생은 시작되었다. 그녀의 어머니 후아니타는 교육열이 매우 강한 사람이어서 딸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누구든 찾아갔고, 그녀를 완벽하게 통제하려 했으며, 그녀에게 쉼 없이 연습할 것을 종용했다. 이러한 압박 때문에 그녀는 피아노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면서도 평생 무대공포증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섯 살에 빈센초 스카라무차에게서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두 해 만에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했고, 열한 살에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남미 최고의 극장인 테아트로 콜론에 섰다. 그리고 열두 살에 프리드리히 굴다와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다. 그 첫 만남에서 마르타는 굴다 앞에서 연주를 들려줄 기회를 갖지만 수줍어하면서 연주를 거부했다. 자기 실력을 뽐내길 좋아하는 여느 ‘신동’들과 달리 수줍어하는 이 소녀에게 굴다는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결국 이듬해에 다시 만났을 때 그녀의 연주를 이끌어낸다. 두 사람은 서로가 ‘같은 족속’임을 알아보았고, 굴다는 마르타에게 빈으로 온다면 직접 그녀를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했다. 스카라무차의 엄격한 교수 방식에 지쳐 있던 마르타에게 자신을 동료 아티스트처럼 대하며 의견을 묻는 굴다의 방식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국 후안 페론 대통령의 배려로 아르헤리치 가족은 대사관에 일자리를 얻어 빈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클래식 음악의 본령 유럽으로 온 마르타는 굴다뿐 아니라 마들렌 리파티, 니키타 마갈로프, 애비 사이먼 등의 피아니스트들에게도 종종 레슨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음악의 지평을 넓히게 된다.

세계 최고의 콩쿠르들을 휩쓸다

아르헤리치는 1965년 쇼팽 콩쿠르 우승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몇 년 전 열여섯 나이로 이미 두 개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었다. 바로 1957년 불과 며칠 사이로 열린 부소니 콩쿠르와 제네바 콩쿠르가 그 무대였다. 마르타는 굴다가 우승했던 제네바 콩쿠르에 나가 스승의 길을 따르고 싶었다. 그런데 마르타의 또 다른 멘토였던 니키타 마갈로프는 자신이 심사위원으로 있는 부소니 콩쿠르에 그녀가 나가기를 갈망했기에 그녀는 두 콩쿠르에 모두 나가기로 결심한다. 결과는 두 콩쿠르 모두에서 가뿐하게 1등이었다. 이 성공 이후 아르헤리치는 국제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연주회와 음반 제안이 쏟아졌다. 가는 곳마다 찬사를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노예와 같은 순회 연주자의 삶을 혐오했고 밀려드는 일정에 지쳐갔다.
1960년 그녀는 모든 연주 활동을 그만두고 다시 배우는 입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리고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에게 1년 반 동안 레슨을 받았지만 그로부터 배운 것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1963년 충동적 기분으로 호로비츠가 살던 도시인 뉴욕에 1년여간 머물렀던 마르타는 그곳에서 중국계 미국인 작곡가인 로버트 첸을 만나 아이를 갖게 된다. 또다시 공백기가 생긴 것이다. 이 기나긴 공백을 깨기에 가장 좋은 무대가 바로 콩쿠르의 신화, 오직 한 사람의 작곡가를 기리는 대회, 쇼팽 콩쿠르였다. 수많은 콩쿠르가 난립하는 지금에도 그 영향력이나 명성에서 쇼팽 콩쿠르를 능가하는 대회는 없다. 1965년, 4년 만에 피아노 앞에 선 그녀는 대회 초반부터 이미 청중의 열광을 이끌어냈으며 제7회 대회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당시 폴란드 신문 《트리부나 마조비에카》는 그녀의 우승 소식을 이렇게 전한다. “아르헤리치와 우승을 다툰 참가자는 아무도 없었다. 황홀한 연주, 완벽한 테크닉, 낭만적인 기교와 눈부신 섬광이 있는 해석은 첫 순간부터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로 피아노계에 슈퍼스타가 탄생한 순간이다.

집시처럼 자유로운 그녀가 나눈 사랑과 우정들

마르타는 자유로운 연주 스타일만큼이나 인간관계도 분방했고, 한 사람에게 얽매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러 사람과 교류하며 교감 나누기를 좋아했으며, 툭하면 곤란한 처지에 있는 근사한 사람들에게 반하곤 했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재능을 세상에 드러내주기를 좋아했다. 연탄곡이나 두 대의 피아노곡 연주를 자주 하는 것은 이러한 성향의 발로였다. 우리나라의 임동혁이 아르헤리치의 후원으로 EMI에서 데뷔 음반을 발매할 수 있었던 것도 유명한 이야기다. 아르헤리치는 더 나아가 일본 벳푸에 자신의 이름을 딴 페스티벌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동료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연주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아르헤리치에게는 성이 각각 다른 세 딸이 있다. 첫 딸 리다는 중국계 미국인인 로버트 첸과의 짧은 만남에서 가졌고, 둘째 딸 아니는 프랑스 지휘자 샤를 뒤투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막내 스테파니는 그녀 일생의 사랑이라 할 수 있는 스티븐 코바세비치와 낳은 아이다. 첫딸은 마르타의 장래가 아직은 불안정하던 시절, 겨우 스물셋이라는 나이에 낳았고 남편과의 이혼 과정에서 양육권을 뺏겼기에 거의 성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다. 둘째 아니를 낳았을 때는 남편 뒤투아가 마르타를 무대에 세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므로 그녀는 딸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막내딸을 낳았을 때에야 마르타는 엄마로서 사랑을 마음껏 줄 수 있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세계적 연주자로서의 슬픈 숙명이라 할 수 있다.

불안하면서도 단호한 예술가로서의 자아

아르헤리치의 공연을 성사시킨 기획자들은 대형 프로젝트를 따냈다는 기쁨에 뒤이어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까지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녀는 준비가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공연 직전에도 연주를 취소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녀의 양면적 성향을 보여준다. 세계 최고의 명연주자로 꼽히면서도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여린 영혼의 소유자,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현실적 압박이 있더라도, 자신이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억지로 하지 않는 강단의 소유자.
이러한 그녀의 성격이 극적으로 드러난 예가 이른바 ‘포고렐리치 스캔들’이다. 1980년 아르헤리치는 자신의 대관식이 치러졌던 쇼팽 콩쿠르에 15년 만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돌아간다. 예심에서 이보 포고렐리치라는 참가자를 본 아르헤리치는 그의 연주에 감전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그의 연주는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모험적인 스타일이어서, 다른 심사위원들은 그녀와 생각이 달랐다. 그 결과 포고렐리치는 결심에 진출하지 못하는데, 이를 본 아르헤리치는 “이 심사위원단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부끄럽다”라며 심사위원석을 박차고 나온다.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이보 포고렐리치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켰고, 그는 수상자보다 오히려 더 조명받게 된다. 이 일화는 그녀가 예술에 있어서는 규칙을 지키는 것보다 공정성을 지키는 것을 더 중시함을 보여준다.
그녀는 커리어 초창기 뉴욕 ‘데뷔’ 무대를 취소했다. 그것도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이 일로 미국에서의 커리어가 심각한 위기를 맞았고 금전적 손실도 컸지만, 그때 그녀가 공연을 취소한 것은 순전히 예술적 이유에서였다. 프로그램에 예정된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에 자신이 아직 충분히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보 없는 예술가로서의 정직성이 그녀를 ‘마르타 아르헤리치’로 만들고 오늘날까지 그 자리를 유지해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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