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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Conrad,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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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 피터 콘래드 지음 ; 정준호 옮김
개인저자Conrad, Peter, 1945-
정준호, 역
발행사항서울 : 후마니타스, 2018
형태사항383 p. : 삽화 ; 23 cm
총서명크로마뇽 시리즈 ;4
원서명Medicalization of society :on the transformation of human conditions into treatable disorders
기타표제탈모, ADHD, 갱년기의 사회학
ISBN9788964373125
9788964372203 (세트)
일반주기 본서는 "The medicalization of society : on the transformation of human conditions into treatable disorders. 2007."의 번역서임
서지주기참고문헌(p. 344-376)과 색인수록
일반주제명Medicalization --History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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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모든 것의 병리화
모든 삶의 의료화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다. 한국인의 보편적인 생사를 한 마디로 기술한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한국의 병원 분만율은 1990년대에 접어들며 이미 99%에 달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2107년 기준으로 제왕절개 수술 비율은 45%로 출생아 2명 가운데 거의 1명은 제왕절개로 태어나고 있다. OECD 국가 가운데 2위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죽음은 또 어떠할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의료 기관에서 사망한 사람의 비율은 74.9%로, 가정에서 사망한 15.3%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국인들은 병원에서 태어나, 평생 동안 병원을 전전하다, 병원에서 사망한다. 우리의 삶은 의사들의 손에서 시작되어, 의사들의 임종 선언과 더불어 끝이 난다.
비단 출생과 사망의 과정만이 의학의 관할 영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국민 1인당 1년에 2.8일을 입원하고, 17.4일간 외래진료를 받는다. 2015년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실손의료보험(실비보험) 가입자가 국민건강보험 실가입자보다 오히려 260만...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모든 것의 병리화
모든 삶의 의료화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다. 한국인의 보편적인 생사를 한 마디로 기술한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한국의 병원 분만율은 1990년대에 접어들며 이미 99%에 달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2107년 기준으로 제왕절개 수술 비율은 45%로 출생아 2명 가운데 거의 1명은 제왕절개로 태어나고 있다. OECD 국가 가운데 2위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죽음은 또 어떠할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의료 기관에서 사망한 사람의 비율은 74.9%로, 가정에서 사망한 15.3%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국인들은 병원에서 태어나, 평생 동안 병원을 전전하다, 병원에서 사망한다. 우리의 삶은 의사들의 손에서 시작되어, 의사들의 임종 선언과 더불어 끝이 난다.
비단 출생과 사망의 과정만이 의학의 관할 영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국민 1인당 1년에 2.8일을 입원하고, 17.4일간 외래진료를 받는다. 2015년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실손의료보험(실비보험) 가입자가 국민건강보험 실가입자보다 오히려 260만 명가량 많다. 한국인은 실비보험 하나 가입하지 않은 성인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출생에서 죽음까지 증상-진단-치료를 반복하며, 내일이라도 새로 추가될 ‘질병’이나 자신이 포함될지 모를 ‘장애’에 대비하여 살아간다. 각종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건강 관련 프로그램이고,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한 의사들은 삶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제시하며 예방과 치료를 권하고 있다.
물론, 개인의 정체 모를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비로소 ‘이름’을 얻고,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며, 적극적인 치료와 개선, 나아가 사회적 승인을 꾀하게 된다는 것은 분명 중요한 성과이다. 그러나 이런 성과 외에도 삶의 의료화와 사회의 의료화에 대해서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구석이 많다.


사회학자 피터 콘래드의 30년의 “의료화” 추적기
“중요한 것은 진단의 타당성이 아니라 명명의 타당성이다.”


‘의료화’(medicalization)는 기존에는 의학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증상들이 질병이나 질환 같은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고 치료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알코올의존증, ADHD, 출산, 완경, 우울증, PMS, 수면장애, 노화, 비만, 불임, 학습장애, 발기부전, 성형수술 등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저자 피터 콘래드는 의료화에 관한 사회학 연구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의료사회학 분야의 권위자로, 의료화 과정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그에 따라 어떤 ‘사회적’ 결과들이 나타나는지 수백 편에 이르는 학술 논문을 발표할 만큼 왕성히 추적해왔다.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는 그가 1975년 이후 30여 년간 천착해 온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것으로, 저자 스스로 “의료화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과 개념적 진술을 담은 주요 저작”(9쪽)으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의료화에 관해 30년 넘게 공부해 왔지만, 지금처럼 의료화가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주제라는 확신을 가져 본 적이 없다”라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의료화는 전 지구적으로 매우 보편적이고 파급력이 있는 중대한 사회현상이자 삶의 문제가 되어 가고 있다. 그만큼 한편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의료화에 대한 분석 없이 그 가치를 성급히 재단하고, 신자유주의의 응당한 현상쯤으로 일축해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의료화로 지목된 특정 문제들이 “정말로 의학적 문제인지 판결하는 것”은 자신의 관심 영역이 아님을 분명히 하며, “사회학적 분석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은 진단의 타당성이 아니라 그와 같은 명명의 타당성”(22쪽)이라고 말한다.
이런 원칙 아래에서 저자는 사회학자의 본분에 충실한 자료 제시와 연구, 분석에 힘쓴다. 1부 ‘개념’에서는 의료화의 배경과 변화 맥락들을 동시대 여러 연구자들의 논의를 신중히 검토하며 폭넓게 살펴본다. 2부 ‘사례들’에서는 남성 발기부전과 탈모, 아동 및 성인 ADHD, 항노화와 성형수술, 경기력 향상과 같은 인간 증강, 동성애 등 오늘날 의료화/탈의료화의 주요 사례들을 자세히 분석한다. 3부 ‘한계와 결과’에서는 의료화를 이끄는 주체들과 동력의 변화, 그리고 의료화가 문화, 사회뿐 아니라 의료 및 제약 산업 전반, 환자나 소비자에게 초래할 결과들을 제시한다.

“내가 관심 있는 부분은 의학이 관할하는 영역이 이처럼 늘어나게 된 사회적 기반과 그 과정이 가지는 사회적 함의이다. 우리는 인간이 겪는 어떤 문제가 “정말로” 의학적 문제인지 논의하지 않고도, 의료화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 갈 수 있다. 실제로 의학적 문제가 무엇인지는 제 눈에 안경 식일 수도 있고, 의학적인 정의를 내리는 권한을 가지는 사람들의 영역에 속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학적 분석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은 진단의 타당성이 아니라 그와 같은 명명의 타당성이다.”(21, 22쪽)


대머리는 어떻게 남자의 병이 되었나
“탈모 걱정 끝. 이제 뭘 살지만 결정하십시오.”


책에서 제시하는 ‘의료화’의 사례들은 하나같이 흥미롭다.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적용할 수 있는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는 의료화가 여성에 대한 영역에서 주로 다루어져 온 것을 지적하면서, 그런 “논의들에 반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남성에 대한 의료화가 증가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의료화와 젠더가 가지는 관계에 대한 이해를 더욱 넓히고 싶다”(59쪽)는 목표를 내세운다. 그렇게 해서 가장 먼저 다루는 사례가 바로 남성 갱년기, 발기부전, 탈모 등의 남성 문제들이다.
남성성을 되찾아 주고 증진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진 기적의 물질로 그려진 테스토스테론. 그 뒤에는 셰링, 오레톤, 시바 같은 제약 회사들의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이자 마치 정력 증진의 대명사처럼 사용되는 ‘비아그라’는 미국 출시 후 3개월 만에 290만 번이라는 놀라운 처방 수를 기록했고, 첫해에만 3백만 명 이상이 복용했다고 알려졌다. 머리카락 수가 적어지는 것과 ‘심리적 영향’ 외에 별다른 신체적 고통이나 불편을 수반하지 않는 탈모의 경우에도 다양한 약물 및 수술적·의료적 치료법이 개발되었다. 특히 탈모의 의료화는 임상 시험에서 얻은 우연한 결과에 열광한 소비자들, 의사들의 광범위한 ‘허가외사용’(FDA의 허가를 받지 않은 증상에 대한 사용) 처방, FDA의 승인과 허가 사항 변경, 제약 회사의 소비자 대상 직접 광고 등 여러 주체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졌다. 1960년대 고혈압 치료제로 승인받은 로니텐(로게인)이 그 대표적 예다(84~87쪽). 로니텐은 임상 시험 과정에서 한 환자의 정수리에 머리가 새로 자라나는 효능을 보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임상 시험 자원자들이 몰려들었고, 의사들은 1980년대 중반 탈모 치료제 승인이 나기도 전에, 허가외사용을 이용해 수많은 탈모 환자들에게 로니텐을 처방했다. 1988년 정식으로 FDA의 승인을 받자 제약 회사는 로니텐의 이름을 로게인으로 바꿔 판매를 시작했고, 1996년에는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허가 사항을 변경받으면서 다양한 소비자 대상 직접 광고를 제작해 내보냈다. 한 광고에는 대머리 아버지 옆에 앉은 아들 옆에 “핏줄보다 강력한”이라는 문구와 함께 “아빠 사랑해요. 그렇다고 하루빨리 아빠처럼 되고 싶은 건 아니예요”라고 쓰여 있었다. 탈모로 고민하는 자의식 강한 남성을 주요 타깃으로 생각한 프로페시아의 초기 광고에는 약간의 탈모로 걱정하던 남성이 화장실 거울을 쳐다보자, 완전히 대머리가 된 모습이 비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탈모를 막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제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88쪽)라고 쓰여 있었다.
저자는 남성 문제 의료화의 본질로 남성성과 젊음의 상징들(육체적 힘과 에너지, 수북한 털, 정력 등)을 잃지 않으려 하는 남성의 욕망에 주목한다. 신체 기능이 떨어질수록 자신의 남성성 또한 위태로워진다고 느끼는 남성들은 스스로 신체 능력을 보존하고 회복하기 위한 의학적 해법을 찾는다. 결국 남성 문제의 의료화는 의료 및 제약 산업이 추동하고, 소비자 대상 광고가 이를 가속화하기는 했지만, 남성적 정체성이나 능력, 전형성,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대한 남성 자신의 우려 때문에 촉진되었다.


성격에서 질병으로
“나는 늘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했어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눈여겨볼 만한 한국의 의료화 사례로 ADHD를 들면서, 한국에서 ADHD 관련 정신의학과 진료 건수가 2002년 1만 6,266건에서 2011년 5만 6,951건으로, 불과 10년 사이 350% 증가한 점을 언급하고 있다. 애초에 아동의 ‘성격’일 수도 있었던 것이 ‘질병’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 또한 주로 아동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장애로 여겨졌던 과잉행동이 성인 ADHD로 확대된 과정을 다양한 사례와 인용을 통해 밝히며, 어떻게 기존의 의학적 범주가 확대되고 더 많은 사람을 포괄하게 되는지 추적한다.
특히 ‘진단을 구하는 행위’는 성인 ADHD의 등장에서 필수 불가결한 특성이다. 대중매체나 대중서를 통해 ‘자신이 ADHD임을 알게 된’ 성인들은 ‘자가 진단’을 통해(증상 체크리스트를 살펴본 후) 의사를 찾아가 진단을 구했다. 한 정신의학자는 동료에게 “이제 내 진료 업무에서 ADHD는 가장 흔한 자가 진단 증상이 되었다. 직장 내 실패, 이혼, 낮은 동기 부여, 성공의 부재, 만성적인 우울증에 대해 별로 합리적이지도 않은 생물학적 원인을 찾게 될까 두렵다”(131쪽)라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과잉행동 진단이 성인까지 확대된 것은 질병의 생의학적 원인에 대한 과학적 발견 때문이 아니었으며, 많은 성인들이 의사들을 찾아가 자신을 치료하도록 요구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사회적 배경(향정신성의약품의 출현과 정신약물학, ADHD와 관련 있는 것으로 가정된 유전자, 관리 의료에 따른 비용 편익 중심의 약물치료)이 작용했다. 그러나 아동과 다르게 성인 ADHD의 쟁점은 행동이 아닌 성과에 있으며, “자신이 더 잘할 수 있거나 더 잘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성과를 개선하기 위해 도움을 구하는”(141쪽) 것과 연관되어 있다. “ADHD 진단은 이들의 저성과에 의학적 설명을 제공하고 지난 행동들을 재평가할 수 있게 해주며, 문제의 책임을 ADHD에 전가함으로써, 자책할 일을 줄여 준다.”(141, 142쪽)

“오늘날 의학적 진단이 내려지는 실체들은 대체로 그것들의 역사[말하자면, 어떤 특정 증상에 대해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이름으로 불렀고, 과거에는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에 대한 인식 없이, 그리고 문화적 맥락[예를 들어, 동양과 서양은 이를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 등]과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그리고 범주적으로 중요하다는 가정을 통해 받아들여진다. 의학적 인식이 높아진 대중들 가운데는 확인된 “증상들”이 기저 질병을 드러내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성인 ADHD의 경우처럼 자신이 원하는 진단을 얻어 내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148쪽)


더 크게, 더 젊게, 더 빠르게
“나은 게 항상 좋은 걸까요?”


인간성장호르몬의 개발과 함께 인간이 ‘더 크게, 더 젊게, 더 빠르게’ 되려는 생의학적 증강에의 유혹이 촉발되었다. 신체의 외형을 바꾸는 성형수술이나 운동선수들이 스테로이드, 호르몬, 흥분제 등의 약물복용을 통해 꾀하는 경기력 향상, 호르몬 투여를 통한 신장 증강이나 항노화가 그 대표적 예다. 그러나 생의학적 증강은 “근면하고 성실한 노력을 통해 신체 능력을 향상한 사람들을 모범적으로” 여기고, “쾌락, 성적 만족, 정신적 안정, 신체적 건강 같은 목표들을 약물보다는 자연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 약학적 칼뱅주의의 관점을 가진 사회에서 “가짜라는 오명”을 덧씌우는 결과를 낳는다(195쪽). 실례로 장대높이뛰기 같은 운동경기에서 탄성이 좋은 유리섬유 장대를 쓰는 것은 금지되지 않지만 약물을 복용하는 것은 부정으로 보는 일이나, 의료보험제도가 미치지 않는 사람들이나 불평등한 자원을 가진 이들에게는 끝내 해소될 수 없는 공정성 문제, 그리고 고혈압, 당뇨, 심장병, 암 발병 등의 부작용 위험과 사회적 폭로라는 발각의 위험, 복원하는 데 따르는 위험, 마지막으로 증강의 사용이 남기는 끝없는 상대적 부족감이 조장할 차별이나 다양성 결여 문제 등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 저자는 뷰캐넌과 파렌스의 표현을 빌어 “최고가 낫지 않아요?” “나은 게 항상 좋은 걸까요”라는 생의학적 증강이 제기하는 근본적 질문들을 상기한다. “증강에 대한,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기술에 대한 요구[수요]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로 인한 결과가 언제나, 특히 사회에, 유익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204쪽)

“키를 15센티미터 더 크게 해주는 생의학적 증강 기술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이 기술이 소수에게만 제공된다면, 이는 이들의 키를 성장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기회도 증진시킬 것이다(사회적 문턱이 낮아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특히 농구[처럼 큰 신장이 유리한 운동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만약 이 같은 증강 기술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거의 모든 사람이 이를 활용한다면, 증강을 통한 경쟁력 제고 효과는 사라진다. (…) 경쟁력 제고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부만이 증강 기술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대부분의 사람이 증강 효과를 얻는다면, 해당 개입은 증강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191쪽)


질병에서 지향으로
“게이로 태어난다.”


한편 의료화의 반대 현상인 ‘탈의료화’ 사례도 적지만 존재한다. 저자는 질병으로 분류되었다가 질병이 아니게 된 것들, 의료인의 개입이 필요하지/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된 사례로 자위행위, 동성애를 꼽는다. 그중에서도 동성애는 가장 성공적인 탈의료화의 사례이다. 책은 남성 동성애에 대한 의학적 개념이 등장하고, 이것이 프로이트와 프로이트의 제자들에 의해 치료 불가능한 ‘변형’에서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재정의된 과정, 미국정신의학회가 발간하는 정신 질환 범주 편람(DSM)이나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질병분류에 의해 의료화되는 과정, 그리고 동성애 운동 진영이 게이 해방 운동을 중심으로 DSM에 수록된 정신의학적 정의와 치료법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벌이면서 이루어진 탈의료화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설명한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 이사회는 자신의 성적 지향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람만 질병이 있는 것으로 보고, “성지향성방해”라는 새로운 진단명을 만들었고, 비로소 동성애는 탈의료화되었다.
동성애에 있어, 네 가지 쟁점, 즉 정신의학의 변화, HIV/AIDS의 등장, 유전학적 발견, 게이 공동체 내 “성적 지향”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탈의료화에 영향을 미친 요인이면서, 탈의료화를 위태롭게 하거나 재의료화를 가능케 할 수도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저자는 동성애는 탈의료화되었지만, 오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동성 결혼과 군 복무 문제를 둘러싼 논쟁과 차별은 계속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지금으로선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정치적 지형이 변하면 재의료화의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한다.

“동성애가 유전학의 영향 아래 놓이는 것에 대한 활동가들의 반응은 뒤섞여 있었다. 일부는 동성애 유전자 가설을 동성애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증거로 보았으며, 따라서 동성애 치료가 가능하다는 주장의 반론으로 보았다. 또 다른 이들은 유전적 치료, 재의료화, 심지어는 잠재적 동성애자인 태아에 대한 대량 학살로 이어지는 첫걸음이 아닐까 우려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의료화에서 중요한 것은 유전학적 발견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느냐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게이 유전자”의 발견에 대한 양측의 주장은 모두 탈의료화를 유지하거나 재의료화를 초래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는 지점들이다. 즉 과학적 증거 자체가 해답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237쪽)


의료화의 사회적 결과들,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것인가? 의료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어떤 사회적 쟁점들이 의료화를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으며, 이 같은 추세를 왜 우려해야만 할까? 여기서 내가 논의하려는 것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의 의료화가 내포하고 있는 쟁점들로, 이는 의료화의 잠재적 “이익”과는 별개의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의료화에 따른 의학적 또는 사회적 혜택과는 무관한, 의료화의 일정한 사회적 결과들이 있다는 말이다.”(296쪽)

외모, 행동, 생활 방식, 한계, 삶의 모든 과정, 더 많은 부분이 “의료화”되는 추세에 있다. 의사들의 역할은 변화했으며, 의사나 의료 기관뿐 아니라 제약 및 생명공학 산업, 소비자와 소비자단체, 관리 의료 등의 상호작용이 다양한 역학을 생산해 낸다. 그러나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일어나야 하는 일을 설명해야 하는 의학의 권위는 의학적 관리를 정당화하며, 우리는 필연적으로 의료 “전문가”의 공식적 지배와 보이지 않는 영향력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 “의료화는 사회통제의 핵심이다. 어떤 문제가 의료화되지 않았다면 의사들은 해당 수술들을 시행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305쪽)
의료화는 많은 사회적 결과들을 야기할 수 있다. 만약 유전학적 증강이 등장하고 발전된다면, 산전 유전자 개입이 선택권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키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발견되고 이에 대한 유전자조작이 가능해진다면, 신장미달장애라는 새로운 질병이 생겨나고 부모의 취향에 따라 키를 조절하려는 유전학적 치료나 개입을 부추기게 될지도 모른다. 또, 만약 앞으로 FDA의 규정에 변화가 없다면, 소비자 대상 직접 광고는 점차 더 확대되면서, 많은 소비자들을 부추겨 약물적 치료와 개입을 촉진할 것이다. 특히 유전적 위험 요인이 의학적 위험 요인이 될 가능성은 커 보인다. 잠재적 질병의 위험 요인을 초기에 발견하는 기술적 역량이 생기면서 “모두가 잠재적으로 의학적 감시의 대상이 되어, 최후의 건강한 사람마저 사라질지 모른다.”(327쪽)

“의학적 감시는 점점 더 많은 수의 개인을, 심지어 현재 아프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의학적 관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은 것으로 간주돼, 위험 요인의 변화를 감시받는다. (…) 이제 의학적 시선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 병에 걸릴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로까지 확대됐다. 특정 질병에 대한 취약 유전자가 발견되면, 이 같은 유전자 정보는 잠재적으로 병에 걸릴 사람들의 규모를 확대하는 데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개인들은 이제 잠재적 질병이나 장애의 발현에 대해 감시받게 된다.(304, 305쪽)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회의 의료화가 증가했으며, 의학 안팎의 강력한 사회적 힘이 이를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의학의 확장이 사회 진보의 신호이며 인류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주장에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상태’에 대한 의료화의 만연 또는 과잉 의료화라 부를 수 있는 현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에서는 의료화의 한계 및 사회적 결과를 논의하고, 이를 둘러싼 논란과 저항의 움직임을 다룬다.
저자가 크게 우려하는 것 중 하나는 과잉 의료화가 “인간의 다양성을 병리로 바꾸어 놓는다”는 점이다. 학습 능력의 차이는 ADHD나 학습장애가 되고, 성욕이나 성기능의 차이는 성기능장애가 되는 일. 극단적으로 무언가에 집중하는 행동에는 무조건 ‘중독’ 딱지가 붙고, 개개인의 성격이나 외모 차이에는 사회공포증이나 특발성 저신장증 같은 진단이 내려지는 일. 가슴 크기, 작은 키, 대머리를 의학적 증강이 필요한 문제로 바꾸어놓는 일. 이렇듯 모든 인간적 차이를 병리적으로 접근하며 진단할 수 있는 질병으로 간주하고, 의학적 개입 및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문제에 대해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흐름에 ‘저항’하는 움직임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를테면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을 의학에서 사회문제로 옮겨 온 장애인 권리 운동이 있다. 장애 운동 진영은 장애인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초점을 맞춰, 장애 개념의 의료화와 장애 통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해 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저항들이 대체로 성공하고 있거나 의료화 국면을 뒤집을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의료화라는 바다 위에는 작은 저항의 섬들이 떠 있다”는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그는 의료화가 축소되는 세상을 상상하기는 어렵고,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의료화는 인간의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더욱 주도적인 접근법이 될 것임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질문은 더욱 큰 무게감을 갖는다. “의료화는 사회조직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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