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탑메뉴

전체메뉴

전체메뉴닫기


검색

상세정보

금융과 회사의 본질 :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

김종철

상세정보
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금융과 회사의 본질 :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 / 김종철 지음
개인저자김종철
발행사항고양 : 개마고원, 2019
형태사항272 p. ; 23 cm
ISBN9788957694558
서지주기참고문헌(p. 245-252)과 색인수록
수상주기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도서, 2019
언어한국어

소장정보

서비스 이용안내
  • 찾지못한자료찾지못한자료
  • SMS발송SMS발송
메세지가 없습니다
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1 1359016 332 김751ㄱ 2관3층 일반도서 대출중 2020-06-24 예약
SMS발송
2 1339971 332 김751ㄱ 2관3층 일반도서 대출중 2020-06-26
SMS발송


서평 (0 건)

서평추가

서평추가
별점
별0점
  • 별5점
  • 별4.5점
  • 별4점
  • 별3.5점
  • 별3점
  • 별2.5점
  • 별2점
  • 별1.5점
  • 별1점
  • 별0.5점
  • 별0점
제목입력
본문입력

*주제와 무관한 내용의 서평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현대 경제체제의 근본에 대한 낯선 질문

우리 일상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주식회사 제도, 화폐 제도, 은행업이 사실은 모순과 불합리 위에서 굴러가고 있는 거라면? 그런 본질적 모순이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근본적 결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 책은 현대 경제 시스템의 기원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하여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보게끔 한다.
반복되는 국제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와 그 대안에 대한 요구가 생긴 지도 오래지만, 현실은 그저 몇 가지 부분적 수정과 땜질식 처방에 그칠 뿐 근본문제를 붙들고 새로운 시스템을 고민하는 큰 그림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학이든 경제학이든 사회학이든 미시적 현상 분석이나 기술적이고 부분적인 연구에만 치우쳐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철학·역사·정치학을 아우르는 학제적 접근법을 통해 ‘큰 체제적 질문’에 도전하고 있다. 근시안적인 계량주의와 실증주의에서 벗어나 우리가 사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 핵심은 주식회사, 금융제도, 대의제라는 세 범주를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라는 개념으로 관통해...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현대 경제체제의 근본에 대한 낯선 질문

우리 일상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주식회사 제도, 화폐 제도, 은행업이 사실은 모순과 불합리 위에서 굴러가고 있는 거라면? 그런 본질적 모순이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근본적 결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 책은 현대 경제 시스템의 기원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하여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보게끔 한다.
반복되는 국제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와 그 대안에 대한 요구가 생긴 지도 오래지만, 현실은 그저 몇 가지 부분적 수정과 땜질식 처방에 그칠 뿐 근본문제를 붙들고 새로운 시스템을 고민하는 큰 그림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학이든 경제학이든 사회학이든 미시적 현상 분석이나 기술적이고 부분적인 연구에만 치우쳐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철학·역사·정치학을 아우르는 학제적 접근법을 통해 ‘큰 체제적 질문’에 도전하고 있다. 근시안적인 계량주의와 실증주의에서 벗어나 우리가 사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 핵심은 주식회사, 금융제도, 대의제라는 세 범주를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라는 개념으로 관통해내는 데 있다.

현대 경제체제의 핵심인 주식회사와 현대 금융에 감춰져 있는 ‘사기’

① 주주는 회사의 주인인가, 채권자인가
먼저 주식회사다. 저자는 주식의 본질부터 되묻는다. 주식은 주주가 회사에 자금을 빌려주었다는 증서(즉 채권)일까, 아니면 회사의 소유자임을 나타내는 문서(즉 재산권)일까? 간단해 보이지만 답하기 쉽지 않다. 실제로 법학자들이 주식의 본질을 정의할 때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논쟁만 되어온 사항이 바로 주식(혹은 주주의 책임과 권리)의 성격을 ‘재산’ 혹은 ‘계약’이라는 두 법적 범주 중 어떤 것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주주는 주식회사의 주인으로, 회사의 중요한 결정에 대한 의결권과 인사권이 주어져 있다. 회사법은 생긴 이래로 일관되게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라는 원칙을 고수해온다. 즉 주주는 회사의 재산권자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모순적이게도 주주들에겐 회사의 자산에 대한 재산권이 없다. 왜? 투자금에 대한 주주들의 재산권은 법적으로 회사에 양도된 상태고, 그 대가로 배당금을 받을 뿐이다. 그래서 회사가 어떤 범법 행위를 하더라도 주주에게는 책임이 없고, 회사가 파산했을 때도 주주는 투자금을 잃을 뿐 회사의 부채에 대해 책임을 지진 않는다. 이렇게 보면 주주는 또 회사의 채권자에 해당한다.
저자에 따르면, 주주의 권리는 채권(혹은 계약권)과 재산권 중 하나로 규정될 수 없다. 둘 다 아니면서, 둘 모두에 해당한다. 주주는 법적 재산권을 회사에 양도했으면서도(즉 채권자이면서도), 동시에 계속 보유하고 있기도(즉 재산권자이기도) 하다. 주식은 이런 모순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라고 부른다.

② 현대 은행의 탄생
‘이종교배’는 주식의 경우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근대 은행업도 이종교배를 바탕으로 성립했다. 오늘날 은행은 우리가 예금한 돈을 가지고서 다른 곳에 대부하고 투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거기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당연한 것이 사실 당연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현대의 은행들은 예금주들에게 돈을 빌린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돈을 보관하고 있는 것일까? 돈을 빌린 것이라면(채권-채무 관계라면), 예금주가 언제든 돈을 찾을 수 있는 게 말이 안 된다. 대출에는 상환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돈을 보관하는 것이라면, 은행이 그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은 횡령에 해당한다. 재산권이 예금주에게 남아 있는 데도 은행이 임의로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은행업에서는 예금주가 언제든 예금을 찾을 수 있고 은행도 예금을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 둘은 개념적으로는 명백히 모순되는 행위이다. 이런 모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재산권과 계약권(채권)의 이종교배’다. 예금주는 은행에 돈을 맡긴 것이기도 하고, 빌려준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구불 지급’이라는 재산권자로서의 권리와 ‘이자 수익’이라는 계약권자(채권자)로서의 권리를 동시에 가진다.

채권과 재산권의 이종교배는 법원칙상 불가능하다. 한 거래에서 한 사람이 동시에 재산권자이기도 하고 채권자이기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채권자는 자산의 재산권을 일정 기간 채무자에게 넘겼기 때문에, 그동안은 더는 재산권자가 아니다. 반면 재산권자란 자산에 대해 재산권을 지닌 사람이다. 만약 한 거래에서 한 사람이 재산권도 누리고 채권도 누린다면, 그 자산의 재산권을 양도한 상태면서 양도하지 않은 상태이기도 한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법적 모순이 제도화된 것이 현대 은행업이다. ―78쪽

③ 화폐창조의 연금술
우리는 여기서 통화량 증가(혹은 유동성 증가)와 신용창조에 대한 기존의 경제학적 설명이 근본부터 뒤집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존 경제학은 은행이 예금을 다시 대출해줌으로써 사회 전체의 통화량을 늘리는 것을 ‘신용창조’라고 부르며 자연스러운 경제활동으로 간주해왔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는 엄밀히 말하면 ‘화폐창조’라 해야 하며, 하나의 예금을 이용해 두 개의 예금증서(은행권)을 만드는 일종의 사기이다.

이 화폐창조 기능이란 하나의 예금에 대해 두 개의 재산권 증서를 만들어 그중 하나를 제삼자에게 빌려준 것을 말한다. 이것은 법적 원칙상 성립할 수 없는 행위인데,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 예금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꾸며서 제삼자에게 빌려준 것이기 때문이다. ―87쪽

그럼 이는 어떤 문제를 일으킬까? 저자에 따르면, 은행의 화폐창조는 경기 확장과 후퇴 및 반복되는 경제위기의 원인이다.

은행들의 자의적인 화폐창조로 많은 화폐가 싼 이자로 산업자본가들에게 제공되면서, 산업자본가들은 장기적 자본재 투자에 활용할 수 있는 저축이 많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늘어난 것은 자원에 대한 재산권뿐인데, 마치 자원 자체가 많아졌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이 경기변동의 원인이다. 이렇게 이중으로 창조된 재산권이 싼 이자로 산업자본가들에게 대부되면서, 이들이 경쟁적으로 장기적인 자본재 생산에 뛰어든다. (…) 그러다가 어떠한 시점에서 자본재 장기 투자가 더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되면서, 산업자본가들이 하나씩 파산하게 된다. 시장경제에서는 해고된 노동자와 다른 생산요소들이 다른 산업에 흡수되어 다시 생산적인 일에 고용되거나 사용되는 데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된다. 몇몇 자본재 산업체가 파산하면서, 이 업체들에 빌려준 은행의 돈이 회수되지 못하자, 예금주들은 은행으로 몰려들어 예금을 대량인출한다. 이것이 금융위기의 시작이다. ―89~90쪽

저자는 제4장에서 현대적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와 레포가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의 한 형태임을 보여주며, 그것이 어떻게 2008년 국제금융위기를 유발했는지 설명한다. 부실한 파생금융상품 판매 등등을 원인으로 말하는 기존 경제학의 통념을 거부하는 저자의 새로운 관점이라 하겠다.

‘인격-재산’의 존재론과 신탁, 그리고 현대 사회의 탄생

이러한 근대적 형태의 경제 시스템이 탄생한 곳이 왜 하필 영국이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역사와 정치철학적 배경에서 찾는다.
첫째, 역사적으로 영국은 왕권이 약하고 지주계급인 귀족 영주들의 권력이 강했다. 이것이 영국에서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의 원형인 신탁제도가 탄생하는 배경이 됐다. 유럽의 중세사회는 본래 왕이 영주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군사력과 세금을 제공받는 봉건제였다. 이 계약은 왕과 영주와의 일대일 계약이었고, 원칙상 모든 땅은 왕의 소유였다. 이때 토지를 불법적으로 상속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신탁이었다. 방법은 이렇다. 토지에 대한 법적 재산권을 제삼자에게 양도해버리고 그 대신 양도받은 사람에게서 일종의 배당금 형태로 매달 얼마씩을 받기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주인의 허락 없이는 그 땅을 함부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합의하고, 그리고 그 후손들이 계속 그런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한다. 왕은 당연히 신탁을 불법화하여 막으려고 했으나 지주계급이 승리한 결과 17세기 후반에 신탁법이 확립되기에 이른다.
보다시피 신탁은 재산권과 계약권이 섞인 형태다. 먼저 원 소유자는 법적 재산권을 영원히 양도했으므로 더는 법적 재산권자가 아니고, 배당금 형태의 이자를 받는 채권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땅의 처분에 대해 통제력을 발휘하는 등 어느 정도의 재산권은 보유한다. 이러한 권리를 신탁법은 ‘형평법적 재산권’으로 규정하고 보호해준다. 이 신탁제도가 주식회사, 금융, 그리고 대의제로도 발전되어 나갔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둘째, 당시 영국 사회의 엘리트층이 공유하고 있던 ‘인격-재산’의 존재론이 신탁제도의 철학적 바탕이 됐다. 재산이나 토지뿐 아니라 몸·노동·생명·자유 등 사람이 소유한 모든 특질을 재산으로 보고, 이 재산을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추상적 주체를 인격으로 개념화하는 사고방식이 17세기 후반 존 로크에 의해 체계화된다. 토지에 대한 권리를 왕이 침범할 수 없는 ‘타고난’ 특질로 보는 이런 사고방식을 통해 지주계급은 배타적 재산권을 정당화해나갔다. 또한 추상적 인격체가 소유하는 재산권은 한 사람의 수명을 넘어서 영구히 지속됨은 물론 그 재산의 사용에 대한 책임도 사람이 아닌 추상적 인격체가 지게 된다. 오늘날 주식회사가 저지른 기업 범죄에 대해서 주주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것과 같다.

‘근본적’인 것이 ‘급진적’인 것이다

오늘날의 경제체제가 서구 근대의 존재론에 철학적 기반을 두고 있다면, 새로운 경제체제는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존재론에 기반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인격과 주체가 중심인 근대적 존재론을 비판한 니체와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소개하면서 ‘관계’ 혹은 ‘행위’ 중심의 존재론에 부합하는 새로운 체제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가 사회적 자원배분을 왜곡하고 자산 소유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부여하게 하는 원인이므로, 이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큰 체제적 전환을 감수해야 하는 저자의 이런 제안은 비현실적이라 비판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제의 뿌리를 알아야 언젠가 개선도 가능한 법,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어떻게 바꿀지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근본적이라는 단어가 급진적이라는 뜻이기도 한, 현재의 불가능성과 미래의 가능성 사이에 부단히 다리를 놓는 것이 바로 학문이 세상에 기여하는 방식이기도 한 까닭이다. 고대 로마에서 현대에 이르는 긴 시야와 철학·역사·정치·경제를 망라하는 관점에서 던지는 저자의 ‘근본 질문’이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지점이다.
이전 다음
이전 다음

함께 비치된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