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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은 옳다

Badiou, A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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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반역은 옳다 / 알랭 바디우 지음 ; 서용순 옮김
개인저자Badiou, Alain, 1937-
서용순= 徐鏞淳, 1968-, 역
발행사항서울 : 문예출판사, 2019
형태사항119 p. ; 21 cm
원서명On a raison de se révolter :l'actualité de mai 68
ISBN9788931020823
일반주기 본서는 "On a raison de se révolter : l'actualité de mai 68. 2018."의 번역서임
일반주제명General Strike France, 1968
Social movements --France --History --20th century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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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결국 문제는 정치다”
알랭 바디우, 혁명이 박제화된 지금
68년 5월 혁명을 새롭게 소환해
삶을 가로지르는 정치혁명을 말하다


2016년 10월, 한국은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그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박근혜’로 상징되는 ‘적폐’의 시대가 끝나고 정의롭고 공정한 새로운 사회가 시작되기를 열망했다. 2016년의 촛불혁명은 한국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졌던 ‘박정희 개발독재’의 우상이 허물어지기도 했지만, 정치의 영역이 아닌 일상의 영역에서도 많은 변화가 뒤따랐다. 대표적으로 2017년 시작된 ‘미투 운동’과 함께 페미니즘 운동이 한국 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다. 촛불혁명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과연 얼마나 공평하고 정의로워졌는가?

1968년 5월, 프랑스의 거리도 수많은 사람으로 뒤덮였다. 학생들의 시위에서 시작되어 프랑스 전역으로 퍼진 68혁명은 반전운동과 혁명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촉발되어, 프랑스의 낡은 관습과 체제, 문화까지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 평생 사회 변혁을 위해 노력해온 철학자 바디우가 19...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결국 문제는 정치다”
알랭 바디우, 혁명이 박제화된 지금
68년 5월 혁명을 새롭게 소환해
삶을 가로지르는 정치혁명을 말하다


2016년 10월, 한국은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그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박근혜’로 상징되는 ‘적폐’의 시대가 끝나고 정의롭고 공정한 새로운 사회가 시작되기를 열망했다. 2016년의 촛불혁명은 한국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졌던 ‘박정희 개발독재’의 우상이 허물어지기도 했지만, 정치의 영역이 아닌 일상의 영역에서도 많은 변화가 뒤따랐다. 대표적으로 2017년 시작된 ‘미투 운동’과 함께 페미니즘 운동이 한국 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다. 촛불혁명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과연 얼마나 공평하고 정의로워졌는가?

1968년 5월, 프랑스의 거리도 수많은 사람으로 뒤덮였다. 학생들의 시위에서 시작되어 프랑스 전역으로 퍼진 68혁명은 반전운동과 혁명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촉발되어, 프랑스의 낡은 관습과 체제, 문화까지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 평생 사회 변혁을 위해 노력해온 철학자 바디우가 1968년 5월 혁명 50주년을 맞이해 출간한 《반역은 옳다(On a raison de se r?volter)》는 이러한 68혁명의 유산을 분석하고 오늘날의 의미를 살펴보는 책이다. 바디우는 이 얇은 책에서 이제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더 이상 혁명이 살아있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기념 축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68혁명을 분석하고, 여전히 자본주의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현실 속에서 68혁명의 ‘혁명성’을 되살리려 한다. 바디우의 이러한 시도는 촛불혁명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를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해줄 것이다.

노(老)철학자 바디우는 지금 왜 68년 5월 혁명을 말하는가
이 책은 1968년 5월 혁명 50주년을 기념해 2018년 5월 프랑스에서 출간되었고, 다시 1년이 지나 한국에 번역되었다. 50년 전에 벌어진 68년 5월 혁명을 통해 바디우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책은 혁명을 기념하는 수많은 책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혁명에 참가한 자신(혹은 자신들의 세대)의 기억을 추켜세우거나, 노철학자의 향수에 빠진 책은 결코 아니다. 바디우는 68년 5월 혁명에 대한 “상투적인 전망들… 매도와 향수로서의 기념을 틀림없이 강화하게 될 전망들과 단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1968년 당시 시대의 영웅이었다가 지금은 평범한 정치인이 된 콘-벤디트(Daniel Cohn-Bendit)와 같은 저명한 과거의 68세대가 이제는 ‘68혁명’이라는 단어에서 혁명성을 애써 제거해 기념품으로만 간직하려는 것을 비판한다. 바디우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상기시키고, 그 사건이 어떤 효과를 만들어냈는지 보여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유하게 한다.

68년 5월 혁명을 바라보는 어떤 관점
68년 5월 혁명의 독특성은 모호함에 있다. 엄청난 규모의 시위와 파업, 거리의 민주주의라는 신화와 더불어 혼란과 무정부 상태, 무분별한 성적 일탈과 소모적인 논쟁이라는 폄하는 이 혁명의 모호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68혁명은 일반적인 시대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거스를 수 없는 객관적인 흐름 안에 자리 잡고 있지만, 과거의 여느 혁명에서 볼 수 없었던 뚜렷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이 혁명을 아주 독특한 동시에 파악하기 힘든 것으로 만든다. 68혁명의 강렬한 이미지 뒤에 있는 것, 이 모호한 혁명의 와중에 그리고 그 이후에 새롭게 도래하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명백하게 68년 5월 혁명은 객관적인 시대적 상황이 요구한 새로운 방향의 혁명이었다. 문제는 이 혁명이 보여준 새로운 방향이 어떤 운명을 맞이하느냐에 있다. 그 가시적인 결과를 넘어, 이 혁명이 제시한 새로운 방향은 어쩌면 아주 미미한 흐름으로만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68혁명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말하자면 시대의 맥락에 이 혁명을 위치 짓고, 그 시대를 벗어나는 독특성, 혁명의 새로운 방향을 통해 제시되는 그 독특성에 주목할 때, 68년 5월 혁명의 위치를 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고 그것이 21세기의 오늘에 비추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확언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로 수렴될 수 없는 혁명,
68년 5월 혁명의 모호성과 새로움

68년 5월 혁명에서 드러나는 시위 양상과 파업 방식은 유럽의 오랜 정치투쟁과 노조 파업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공장과 대학의 점거 그리고 점거된 해방 공간에서 일어나는 축제와 토론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투쟁 방식이었다. 혁명에 참가한 주체 역시 이전과는 달랐다. 68혁명은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조직도, 지도부도 없었다. 혁명을 만들어낸 주체는 사실상 강력한 익명의 대중 집단이었고, 이 특정하기 힘든 집단은 기존의 제도화된 모든 조직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기존의 전통적인 혁명운동의 전위들, 공산당과 노조는 68년 5월 당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68년 5월 혁명은 ‘전위 없는 혁명’이었다. 이 혁명은 각각의 영역에서 자발적이고 즉각적인 방식으로 발생하고 진행됐다. 68년 5월 혁명은 몇 가지 서로 다른 혁명들의 동시적 전개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로 수렴될 수 없는 혁명, 그것이 68년 5월 혁명이다.

삶을 가로지르는 정치혁명이 필요하다
68혁명의 유산은 이미 오래전 퇴조의 길에 접어들었다. 오늘날 우리는 전면화된 자본주의의 명령, 그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억압적 정치의 명령의 시대에 살고 있다. 새로운 억압적 정치의 명령은 삶 자체에 적대적이다. 자본주의의 억압적 정치는 삶을 통제하고, 안전 담론을 확산시키며, 모든 인구를 단지 ‘자원’으로 관리하고 통제한다. 이러한 체제 아래 존재하는 자유란 단지 1차원적인 자유일 뿐이다. 오늘날의 의회 민주주의 정치는 모든 인구를 이러한 단순하고 한심한 삶에 머무르게 한다. 고령의 철학자 바디우가 여전히 혁명적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바디우가 68년 5월 혁명을 다시 평가하며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정치이다. 온전한 삶의 변화를 실질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은 혁명적 정치의 영역에 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의 실패가 삶의 혁명이 없는 정치혁명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1958년 혁명의 최종적 실패는 정치혁명이 없는 삶의 혁명에서 연유한 것일지도 모른다. 혁명적 정치의 난점은 그것이 삶을 가로지는 정치혁명이어야 한다는 데 있다. 안타깝게 우리는 아직 그러한 혁명을 알지 못하지만, 바디우가 말하는 68년 5월 혁명의 정치적 새로움은 바로 그러한 차원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68년 5월 혁명과 2016년 한국의 촛불혁명
68년 5월 이후, 이미 알려져 있듯이 대다수의 정치조직은 해체됐고, 그 주체들은 하나둘 의회주의 정치에 투항했다. 새로운 혁명적 정치는 포기되었고, 많은 혁명적 정치의 옛 투사들이 자본-의회주의적인 인권의 옹호자로 전향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거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앞장섰던 지도자들과 운동 세력은 고스란히 제도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겨 여전히 활발히 정치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작 그 당시의 이념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프랑스의 경우 바디우와 랑시에르를 비롯한 소수의 지식인들이 68혁명의 유산을 지켜내고 발전시키려 노력했을 뿐, 대다수의 지식인들은 의회-민주주의에 투항하여 제도권 좌파의 사상가가 되거나 국가 의존적 개혁주의로 나아갔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상당수의 한국 지식인들은 의회 민주주의 안에서의 개량을 유일하게 가능한 것으로 승인했고, 그것이 떠받들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 철저히 복종했다. 2016년 촛불혁명의 성과도 제도권 정당이 독점하려는 상황 속에서, 바디우의 외침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강한 울림을 이끌어낸다. 진정한 정치―바디우가 참된 삶이라고 이름 붙였던―를 실현하기 위해, 즉 지구 곳곳에서 방황하고 고통 받는 엄청난 수의 노동자와 빈민 대중과 결합할 때 다시 한 번 강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역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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