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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Wiesenthal, S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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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 시몬 비젠탈 지음 ; 박중서 옮김
개인저자Wiesenthal, Simon
박중서, 역
발행사항파주 : 뜨인돌, 2019
형태사항471 p. ; 22 cm
원서명Sonnenblume
기타표제번역표제: Sunflower : on the possibilities and limits of forgiveness
ISBN9788958077367
일반주기 본서는 "Sonnenblume."의 영역본 "Sunflower : on the possibilities and limits of forgiveness. 2nd ed. 1997."의 번역서임
주제명(개인명)Wiesenthal, Simon
일반주제명World War, 1939-1945 --Personal narratives, Jewish
World War, 1939-1945 --Concentration camps
Genocide
Forgiveness
언어영어로 번역된 독일어 원작을 한국어로 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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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전설적 ‘나치 헌터’ 시몬 비젠탈이 인류에게 건네는 화두!
용서받을 자격을 가진 이는 누구이며, 용서할 권리를 가진 이는 누구인가?
저자의 비극적 체험에 대한 전 세계 50여 지식인들의 치열한 응답.
세계 각국에서 수십 년째 토론과 논술 교재로 사용 중인 책!

몇 개의 역사적 장면들


1960년 5월. 나치 패망 이후 남미로 도주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전격 체포된다. 이른바 ‘최종 해결(유대인 말살정책)’의 총 책임자였던 특급 전범! 한나 아렌트로 하여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필생의 역작을 집필하게 만든 바로 그 아이히만이다. 신분을 위장한 채 15년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은신하던 그를 집요한 추적 끝에 찾아낸 사람은 종전 이후 1,100여 명의 나치 전범을 색출하여 심판대에 세운 전설적 ‘나치 헌터’ 시몬 비젠탈이었다.

1969년. 한 유대인이 강제수용소에서 겪었던 비극적 체험을 담은 <해바라기>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세계를 뒤흔든다. 나치의 죄악이 절정으로 치닫던 1940년대 초반.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죽어가던 나치 장교가 어느 유대인...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전설적 ‘나치 헌터’ 시몬 비젠탈이 인류에게 건네는 화두!
용서받을 자격을 가진 이는 누구이며, 용서할 권리를 가진 이는 누구인가?
저자의 비극적 체험에 대한 전 세계 50여 지식인들의 치열한 응답.
세계 각국에서 수십 년째 토론과 논술 교재로 사용 중인 책!

몇 개의 역사적 장면들


1960년 5월. 나치 패망 이후 남미로 도주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전격 체포된다. 이른바 ‘최종 해결(유대인 말살정책)’의 총 책임자였던 특급 전범! 한나 아렌트로 하여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필생의 역작을 집필하게 만든 바로 그 아이히만이다. 신분을 위장한 채 15년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은신하던 그를 집요한 추적 끝에 찾아낸 사람은 종전 이후 1,100여 명의 나치 전범을 색출하여 심판대에 세운 전설적 ‘나치 헌터’ 시몬 비젠탈이었다.

1969년. 한 유대인이 강제수용소에서 겪었던 비극적 체험을 담은 <해바라기>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세계를 뒤흔든다. 나치의 죄악이 절정으로 치닫던 1940년대 초반.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죽어가던 나치 장교가 어느 유대인을 병실로 불러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간절하게 용서를 청했고, 유대인은―비록 상대의 손을 잡아주긴 했지만―그의 부탁을 거절한 채 병실을 나서버린다. 증오와 연민, 정의와 관용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끝내 침묵을 선택했던 그 유대인은 다름 아닌 시몬 비젠탈이었다. 글의 말미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 것인가?”

1976년. 그의 질문에 대한 전 세계 지식인, 종교인, 예술가들의 답변이 담긴 책이 출간된다. 용서해야 할 수많은 이유들과 용서하지 말아야 할 수많은 이유들 사이에서 고뇌하던 그에게, 인류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다양한 답변을 건넨 것이다. 당대의 철학자 허버트 마르쿠제,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며 『이것이 인간인가』의 저자인 프리모 레비, 역시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작가 장 아메리,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남아공 인권투쟁의 상징이자 넬슨 만델라의 영원한 동지인 투투 주교, 영화 <킬링 필드>의 실제 주인공인 디트 프란, 중국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해리 우……. 용서란 무엇이고 화해란 무엇인지, 용서받을 자격은 어떻게 주어지며 용서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지를 저마다의 근거로 제시한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1997년에는 전후세대(戰後世代) 필자들의 글이 추가된 개정판이 미국 쇼켄북스에서 출간된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바로 그 개정판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제1부 ‘해바라기’에는 시몬 비젠탈의 글이, 제2부 ‘심포지엄’에는 그의 질문에 대한 53명의 답변이 실려 있다. 어떤 이는 비젠탈의 침묵을 옹호하고, 어떤 이는 그가 용서를 거절한 것을 비판한다. 정치, 역사, 문화, 종교, 윤리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진 진지하고 치열한 답변들은 그 자체로 인류 정신의 축약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출간 이후 수십 년간 세계 각국에서 최고의 토론 및 논술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단순히 2차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을 다룬 책에 그치지 않고, 지구 곳곳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집단범죄의 실상과 그에 대한 올바른 대응 방안을 다루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용서’와 ‘화해’라는 고차원적 행위의 필수전제가 무엇인지를 깊게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나치 전범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인물이 한때 가해자에 대한 용서를 놓고 고뇌했었다는 사실은 얼핏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책을 읽은 독자들은 쉬이 눈치 챌 수 있다. 평생을 따라다닌 ‘그날’의 기억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끝없는 반추와 치열한 사유가 훗날 그의 삶의 뿌리가 되었음을, 그의 집요한 추적과 단호한 응징은 결코 개인적 복수심의 발로가 아니었음을 말이다.
한국 독자들에게도 이 책의 의미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가해자들의 사과 없는 용서가 가능한가? 그 어떤 범죄도 뉘우치기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가? 한 개인이 수많은 희생자들을 대신하여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가? 용서와 화해, 정의의 근본에 대한 비젠탈의 질문은 강제 징용, 일본군 위안부, 5.18의 아픔을 겪었던 우리 사회의 시대적 화두이기도 하다. 이 책은 2006년에 『해바라기』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는데, 당시에는 제2부의 절반가량이 제외되어 있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모든 내용을 완역했고, 원문을 꼼꼼하게 대조해가며 번역상의 실수를 바로잡았다. <해바라기>가 발표된 지 50년, 한국어 초판이 발행된 지 13년 만에 드디어 이 세기의 명저를 본래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용서와 침묵 사이

“2층 창문에 어린아이를 안은 어떤 남자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그의 옷에는 이미 불이 붙어 있었습니다. 옆에는 아이의 어머니인 듯한 여자가 서 있었고요. 그 남자는 한 손으로 아이의 눈을 덮어서 가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그는 창밖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잠시 후에 아이의 어머니도 뛰어내렸지요. 그때부터 다른 창문에서도 몸에 불이 붙은 사람들이 잇달아 뛰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총을 발사했죠…. 오, 하느님!”

죽어가는 나치 장교 카를의 고백이다. 수백 명의 유대인들을 좁은 집에 몰아넣은 뒤에 불을 질렀고, 온몸에 불이 붙은 채 탈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총을 난사했다는 것이다. 그가 이 끔찍한 범죄를 털어놓는 동안 비젠탈은 나치에게 희생된 89명의 일가친척을, 게토에 마지막 남은 어린아이였던 꼬마 엘리를, 그리고 아들과 이별한 뒤 끝내 독일군에게 목숨을 잃은 어머니를 떠올린다. 저런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런 자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상대는 진심으로 참회하고 있다. 그 어떤 죄인이라도 뉘우치면 용서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 아닐까? 게다가 그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나는 그에게 최후의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다……. 하지만 무슨 자격으로? 이미 죽어버린 수백만의 유대인들은 내게 용서의 권한을 준 적이 없지 않은가? 감당하기 어려운 인간적 고뇌 끝에 그가 선택한 것은 침묵한 채 병실을 나서는 것이었다.
카를은 결국 용서받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고, 비젠탈은 그날의 기억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수용소 동료들에게 그날의 일을 털어놓지만 돌아오는 건 “그놈의 용서 타령 좀 그만하라”는 핀잔뿐이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30분 뒤면 자유가 찾아오겠지만 그보다 15분 전에 죽음이 먼저 찾아올 것”이라 자조하는, 전능하신 하느님조차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는 신학적 냉소에 빠진 유대인들에게 용서나 화해, 인간적 연민(심지어 나치를 상대로 한!) 따위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싸구려 감상주의에 불과했던 것이다.
“내가 그 죽어가는 나치의 침대 곁에 앉아 끝까지 침묵을 지킨 것은 옳은 일이었을까, 아니면 틀린 일이었을까? 이것이야말로 한때 내 양심과 정신에 가해진 것과 똑같이,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양심에 던져지는 심각한 윤리적 질문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 뒤, 그는 이렇게 묻는다. “독자들도 나와 입장을 바꾸어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그가 제목으로 삼은 ‘해바라기’는 어느 날 강제노역을 하러 가는 길에 보았던, 나치 군인들의 무덤가에 줄지어 피어 있던 꽃이다. 땅속으로 지상의 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처럼 늘어선 해바라기를 보며 비젠탈은 부러움과 비애를 동시에 느낀다. 나도 죽은 뒤에 저들처럼 해바라기 한 그루를 가질 수 있을까…. 그날 이후 그는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해바라기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죽은 자의 무덤가에 핀 꽃이 역설적으로 삶과 희망의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 집단학살의 참상을 다루면서도 탁월한 상징과 심리묘사로 매순간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그의 글은―프리모 레비의 체험기가 그랬고 빅터 프랭클의 수기가 그랬듯―묵직한 화두를 담은 역사적 리포트인 동시에 한 편의 탁월한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


‘용서’에 관한 모든 생각들

“자네, 제발 이젠 그 이야기 좀 그만하게. 그렇게 끙끙 앓는 소리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일단 우리가 이 수용소에서 살아남고―솔직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이 세상이 모두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사람들이 서로를 동등한 인간으로 보게 된 다음이라면, 그 용서니 뭐니 하는 문제를 놓고 토론할 시간은 충분히 있을 거야. 옳다는 사람도 있고, 그르다는 사람도 있고, 자네가 그를 용서하지 않은 것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사람도 나올 거야.”

고뇌하는 비젠탈에게 수용소 동료 아르투르가 했던 이 말은 훗날 이 책에 실릴 다양한 답변들을 예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렇게 했다. 비젠탈의 침묵에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반대인 사람도 있다. 설령 결론이 동일하더라도 근거는 제각기 다르다. 정치적 이유, 역사적 이유, 종교적 이유 혹은 윤리적 이유……. ‘용서’라는 주제에 대해 인간이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사유를 보여주는, 가히 ‘용서에 관한 모든 생각들’이라고 할 만하다.
보스니아 인종학살의 피해자들이 보기에 비젠탈의 선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카를에겐 용서받을 자격이 없으며 섣부른 용서는 희생자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 프리모 레비는 “만약 그를 용서했다면 더 큰 고통에 직면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마르쿠제는 “섣부른 용서는 악을 희석시킬 뿐”이라 말하고, 앨런 버거는 “값싼 은혜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가 용서받지 못하고 죽도록 내버려두라”고 일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약 그 나치를 용서한다면 대체 누가 지옥에 간단 말인가?”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라면 하느님조차도 피고인일 뿐”이라는 극단적 견해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한다. “기억하되 용서하라!” 투투 주교 또한 “용서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고 말한다. 비젠탈에게는 용서할 권리가 충분했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고, 집단적 화해는 불가능했을지언정 개인적 용서는 가능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침묵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정교하듯, 용서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논리 또한 치밀하다. 독자들에게 중요한 건 단일한 결론이 아니라 글쓴이들이 결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며, 거기에 담긴 폭넓은 사유와 다양한 가치일 것이다.
제2부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나치 고위 간부로서 히틀러의 제3제국 건설 입안자 중 하나였던 알베르트 슈페르의 고백이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2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그는 출소 후 시몬 비젠탈과 오랫동안 서신을 교환했고, 직접 만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그때 저는 당신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든 살해당한 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눈을, 그리고 동족의 모든 비참과 전락과 운명과 고통을 목격한 눈을 말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눈에는 증오가 깃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온화하고, 너그럽고, 타인의 불행에 대한 연민이 가득한 눈이었습니다. …당신은 저를 크게 도와주셨습니다. 마치 붙잡은 손을 뿌리치거나 비난하지 않음으로써 그 죽어가는 나치 장교를 도와주셨듯이 말입니다.”

만약 그 나치 장교가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다시 세상에 나왔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용서를 거절한 유대인을 저주하며 더 악랄한 살인자가 되었을까? 아니면 침묵 속에서나마 인간에 대한 마지막 배려를 잃지 않았던 상대에게 감사하며 슈페르처럼 참회하는 삶을 살았을까? 결과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참회가 어려운 만큼 용서도 어렵다는 것, 때로는 한마디의 용서가 당사자(가해자와 피해자)의 삶 전체를 좌우한다는 것, 세상에는 마땅히 해야 할 용서도 있지만 결코 해서는 안 될 용서도 있다는 것,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모든 용서가 아름답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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