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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뇌는 스스로 배운다 : 교실과 가정에서의 육아 혁명

Alvarez, Cé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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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아이의 뇌는 스스로 배운다 : 교실과 가정에서의 육아 혁명 / 셀린 알바레즈 지음 ; 이세진 옮김
개인저자Alvarez, Céline, 1983-
이세진, 1973-, 역
발행사항파주 : 열린책들, 2020
형태사항392 p. : 삽화 ; 23 cm
원서명Lois naturelles de l'enfant
ISBN9788932920375
일반주기 본서는 "Les lois naturelles de l'enfant. c2016."의 번역서임
일반주제명Education --Experimental methods
Early childhood education --Activity programs
Montessori method of education
분류기호372.21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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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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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자율 VS. 규율

폭넓은 자율 속에서 성장한 아이가 더 잘 자랄까? 엄격한 규율로 가르친 아이가 더 잘 자랄까? 아이들의 성공적인 미래를 결정할 양육 방식은 어느 쪽일까?
『아이의 뇌는 스스로 배운다』는 프랑스 육아 교육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젊은 교육자 셀린 알바레즈의 첫 번째 저술로, 뇌 과학을 기초로 프랑스 빈민 지대의 한 공립 유치원에서 시행했던 <자율 교육>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프랑스 기초 교육 실패(초등학생의 40퍼센트가 학습 부진 상태로 중학교에 올라간다)와 학력 불평등이 사회 문제로 불거지던 시점에 출간되며 <자율 대 규율>이라는 양육 방식을 둘러싸고 큰 논쟁을 불러왔다. 특히 양육자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아이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라는 그녀의 제안은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2016년 출간 즉시 프랑스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알바레즈는 미취학 시기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아이의 타고난 <배움 본능>과 <선한 본성>에 맞춤한 교육을 시행하면 탁월한 교육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확신했고, <단순히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육...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자율 VS. 규율

폭넓은 자율 속에서 성장한 아이가 더 잘 자랄까? 엄격한 규율로 가르친 아이가 더 잘 자랄까? 아이들의 성공적인 미래를 결정할 양육 방식은 어느 쪽일까?
『아이의 뇌는 스스로 배운다』는 프랑스 육아 교육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젊은 교육자 셀린 알바레즈의 첫 번째 저술로, 뇌 과학을 기초로 프랑스 빈민 지대의 한 공립 유치원에서 시행했던 <자율 교육>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프랑스 기초 교육 실패(초등학생의 40퍼센트가 학습 부진 상태로 중학교에 올라간다)와 학력 불평등이 사회 문제로 불거지던 시점에 출간되며 <자율 대 규율>이라는 양육 방식을 둘러싸고 큰 논쟁을 불러왔다. 특히 양육자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아이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라는 그녀의 제안은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2016년 출간 즉시 프랑스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알바레즈는 미취학 시기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아이의 타고난 <배움 본능>과 <선한 본성>에 맞춤한 교육을 시행하면 탁월한 교육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확신했고, <단순히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육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직접 교육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교육 당국에게 교육 방식에 관한 전권을 달라고 요청했고, 젠빌리에 유치원에서 만 3~5세 아동 25명을 대상으로 3년간(2011~2014년) 교육학적 실험에 착수했다. 최신 뇌 과학과 자율 교육 전통(프랑스 교육학의 거장인 장 이타르, 에두아르 세갱, 마리아 몬테소리)을 접목한 그녀의 교육 방식은 곧바로 <폭탄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 육아 교육이 아이 뇌의 잠재력을 얼마나 과소평가해 왔으며, 어른의 역할을 얼마나 과장해 왔는지 증명한다.

3무(無) 유치원

이 책은 우리 양육의 몇 가지 신화에 도전한다.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만이 효과적인 학습을 가능하게 할까? 경쟁적인 교실 환경이 아이들의 학습 능률을 높일까? 실수하는 아이에겐 벌을, 잘하는 아이에겐 상을 줘야 할까? 즉,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면 양육자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어야 할까?
알바레즈는 아이들의 자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젠빌리에 유치원에 특별한 제도를 적용했다. 곧, 교실 현장에서 당연시해 온 3가지를 없앴다.
첫째, 젠빌리에 유치원에는 정해진 프로그램이 없다. 아이들의 발달 수준에 따른 교구들이 꽂혀 있을 뿐, 교사가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날 하고 싶은 활동을 등교 후 스스로 정한다. 혼자서 교구를 가지고 놀 수도 있고, 마음이 맞는 아이들끼리 종일 얘기를 나누다가 갈 수도 있다. 심지어 활동을 하고 싶지 않으면 그냥 다른 아이들이 노는 광경을 지켜만 봐도 된다.
둘째, 학년 구분이 없다. 만 3~5세 아이들 25명 내외가 한 반에 함께 어울려 지낸다. 같은 나이의 아이들만 한 반에 몰아 놓는 일반적인 교실이 불필요한 비교와 경쟁을 불러온다면, 젠빌리에 유치원에서는 큰 아이들과 동생들이 상호작용하며 <가르침-배움>의 관계를 형성한다. 어른 교사 말고도 수많은 꼬마 교사들이 생긴 셈이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가르치는 아이도 배우는 아이도 모두 학습 능력과 사회성 면에서 크게 향상되는 모습을 보였다.
셋째, 교사의 평가가 없다. 젠빌리에 유치원에서는 실수를 해도 나무라지 않는다. 실수는 그저 아이가 예측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알려 주는 <중립적인> 정보일 뿐이다. 심지어 어떤 활동에 대해서도 아이에게 물질적으로나(카드, 사탕, 점수 등), 언어적으로(긍정적 평가의 말) 보상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활동은 어른들로부터의 인정 때문이 아니라 <내적 쾌감>에서 비롯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이들의 수행 능력이 탁월하든 그렇지 않든 그 활동을 좋아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야, 너는 이걸 되게 좋아하는구나! 네가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 네가 재미있는 활동들을 더 많이 찾으면 좋겠어.」

행복한 벌집

젠빌리에 실험의 결과는 놀라웠다. 실험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5세 아이 전원과 4세 아이의 90퍼센트가 책을 막힘없이 읽었고, 수(數)를 다루는 데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인성과 사회성 같은 행동 지능 발달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 책은 자율적인 환경 안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놀라운 집중력과 인내심을 발휘하는지 인상적인 일화로 소개한다.
네 살 아이 하나가 작은 구슬을 <하나하나 세면서> 사슬로 꿴다. 아이는 구슬 1,000개를 목표로 삼았다(어느 누구도 아이에게 이 활동과 목표를 권하지 않았다!). 어쨌든 첫날, 아이는 200개쯤 꿰었다. 이쯤해서 그만할 줄 알았지만, 다음 날에도 아이는 그 활동을 계속하려는 태세다. 교사는 급히 매트를 더 준비했다. 며칠 동안 좁은 매트 여러 장 위에 숫자 세기 교구가 교실 바닥을 차지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교실을 오가면서 그 긴 사슬을 넘어가야 할 때가 많았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유치원의 유일한 규칙은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절대로 방해하지 말 것>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응원을 보내거나 잠시 아이의 활동을 구경하다 갔다. <과연 성공할 것인가>. 아이는 결국 해냈다! 구슬 1,000개, 길이는 무려 7미터였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막 네 살이 된 케빈이라는 아이는 책을 보고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그중 몇 가지는 난이도가 만만치 않아서 교사가 접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아이는 며칠 동안 다른 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종이접기만 팠다. 아이는 스스로 요령을 터득했고, 결국 해냈다. 책에 나와 있던 종이접기 10가지를 모두 끝낸 것이다. 이젠 가꾸로 아이가 교사에게 직접 종이접기 요령을 알려준다.
알바레즈는 자신의 유치원이 <자기 의욕, 자기 리듬, 자기 방식대로 목표를 추구>하는 <행복한 벌집>과 비슷했다고 말한다. 자율성이 확보된 공간에서 동기 부여된 아이는 어른도 힘들어 하는 활동을 척척 해낸다. 그리고 <구슬을 1부터 1,000까지 꿰어 본 아이, 동화책 한 권을 다 베껴 쓴 아이, 며칠 내내 종이접기를 연구해서 완성을 본 아이라면 또 다른 목표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일이 어렵지 않다.> 아이들은 이미 한 뼘 성장한 것이다.

<떼 부리기>는 아이의 생명력의 표현

젠빌리에의 실험은 아이의 뇌에 폭넓은 자율을 제공할 때 탁월한 배움 본능이 발휘된다는 과학적 사실에 기초한다. 동물의 지능이 <완료>된 채로 세상에 나온다면, 인간의 지능은 미성숙한 채로 나온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었다. 양육자의 문화를 미성숙한 신경 섬유로써 힘들이지 않고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아이의 뇌는 배운다는 자각 없이도(1초당 700~1,000개의 새로운 시냅스를 만든다), 양육자를 통해 인류의 유산(언어, 행동 양식, 문화의 변화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하면서 신경 회로를 형성한다. 그러니까 아이의 뇌는 세상과 더불어 형성된다. 유전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는 양육 환경이다.
배움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아이의 뇌는 늘 배고프다. 만약 굶주린 아이의 뇌가 외부의 저항에 부딪히면 그 반발은 거세다. 이 책에는 할머니와 하교하는 손자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자기 신발을 부둥켜안고 교실을 가로질러 도망간다. 「말썽쟁이 녀석! 신발부터 내놔, 할미 시간 없어!」 아이는 제 손으로 신발을 신고 싶었고, 할머니는 얼른 신발을 신겨서 손자를 데려가고 싶었다. 교사의 중재 끝에, <아이는 눈물 콧물을 찔찔거리면서도 마음을 추스르고 세상 둘도 없이 진지한 자세로 신발을 신었다. 그동안 할머니는 복장이 터진다는 눈빛으로 손자를 보고 있었다.>
<만지지 마>, <가만히 있어>, <앉아 있어>, <기다려>, <조용히 해> 어른들이 아무리 다그쳐도, 아이의 뇌는 필요하다 싶으면 그 뜻도 거스른다. 위반해서 받는 처벌보다 배움을 통해 얻는 보상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장난감은 놔두고 주방용품을 죄다 펼쳐 놓는 아이,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펄쩍 뛰어내리는 아이, 단추를 혼자 꿰겠다고 엄마 손을 뿌리치는 아이. 저자는 그런 아이들의 태도를 <떼 부리기>로 치부할 게 아니라, <아이의 생명력의 표현과 저항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르치지 말고 배우게 하라

그럼 아이의 자율성을 위해 어른이 취할 자세는 무엇일까? 자율 육아라고 해서 양육자의 역할이 미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양육자는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아이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을 때(민감기)를 알아봐 주고, <아이가 관심, 호기심, 충동, 열광을 보인다 싶을 때 그 지적 탐색을 끝까지 밀고 나가도록 돕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방향을 잡아 주는 틀이라면> 때론 엄격히 적용할 필요도 있다. <집단생활의 수칙은 아주 분명히 알려 주고, 건설적이지 못한 행동은 바로 그만두게끔 가르친다.>
하지만 어설픈 가르침이나 개입은 주의해야 한다. 아이들은 <어떤 행위의 전개를 외부에서 맡아 주는 구조와 통제가 없어야만 스스로 개인적인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모색한다.> 아이를 재촉하거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꼬치꼬치 가르치려 들지 말아야 한다. 도움을 요청할 때만 일대일로 시범을 보이거나 원하는 의문에 성실히 답변해 주면 그뿐이다. 쉬고 싶어 할 때는 무조건 쉬게 하고,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아이의 시간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언어 사용도 매우 중요하다, 정확하고 <생생하고 역동적인 언어>에 계속 노출되기만 해도 미성숙한 두뇌 회로를 완성할 수 있다. 아이에게 <초록색 식물>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기보다 스파티필럼(식물명), 크라슐라(식물명), 고무나무, 치자 같이 어렵지만 정확한 이름을 알려주라. 훨씬 잘 배우고 재밌어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는 놀라울 것이다. 질주하는 아이의 지능에 <핸드 브레이크>를 걸지만 않아도 아이는 바뀐다. 젠빌리에 실험이 보여 주듯, 창의성, 기쁨, 사랑, 너그러움이 넘치는 <빛나는 아이들>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아이의 순리를 존중하라

우리의 전통적인 교육은 이제껏 아이들을 가르침과 규율의 대상으로 여겨 왔다. 똑같은 나이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경쟁적인 교실 환경을 조성한 뒤,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대로 수행하면 효과적인 학습이 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아이는 도덕성이 함양되지 못한 존재, 그래서 상벌을 통해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젠빌리에 실험은 정확히 그 반대를 방향을 가리킨다. <배움이 아이를 지치게 하는 게 아니다. 아이는 배우려고 태어났다.>
아이의 지능 형성 과정은 개개 아이의 <개인적 의지>라기보다는 <보편적 자연의 충동>에 가깝다(이 책의 원제는 <아동의 자연 법칙Les lois naturelles de l’enfant>이다). 인간이 물리학을 거스를 수 없듯, 자연이 아이에게 새겨 놓은 규칙을 어른이 바꿀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의 육아 방식(쉬운 배움을 어렵게 만드는 방식)을 고수하면 백전백패다. 어른도 아이도 기진맥진한다. 거꾸로 아이가 배우고 성장하는 순리를 존중할 때, 아이의 잠재력은 완전히 꽃피운다. 누구도 아이를 <정말로> 가르칠 수는 없다. <아이의 뇌는 스스로 배운다.> 어른은 이 지능 형성을 옆에서 보조할 뿐이다. 이 책의 「나가는 말」에서 알바레즈는 말한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의 법칙이 네 등을 떠밀 거야. 걷고 싶어지고, 말하고 싶어지고, 세상을 탐색하고 싶어지고,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지고, 친구를 사귀고 싶고, 그러다 때로는 싸우고 싶고, 너만의 계획을 세워서 밀고 나가고 싶어질 거야. 너는 그 모든 일을 혼자 해내고 싶을 거야. 너라는 한 인간이 인간다움을 획득하는 이 장대한 모험 속에 나는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내가 너의 지능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 지능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봐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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