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탑메뉴

전체메뉴

전체메뉴닫기


검색

상세정보

인간 볼테르 : 계몽의 시인, 관용의 투사

Cronk, Nicholas

상세정보
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인간 볼테르 : 계몽의 시인, 관용의 투사 / 니컬러스 크롱크 지음 ; 김민철 옮김
개인저자Cronk, Nicholas
김민철, 역
발행사항서울 : 후마니타스, 2020
형태사항188 p. : 삽화 ; 21 cm
원서명Voltaire :a very short introduction
ISBN9788964373583
일반주기 작가연보: p. 162-164
본서는 "Voltaire : a very short introduction. 2017."의 번역서임
서지주기참고문헌(p. 165-170)과 색인수록
주제명(개인명)Voltaire,1694-1778 Criticism and interpretation
분류기호848.509
언어한국어

소장정보

서비스 이용안내
  • 서가에 없는 자료서가에 없는 자료
  • SMS발송SMS발송
메세지가 없습니다
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1 1376968 중앙도서관// 정리중 예약


서평 (0 건)

서평추가

서평추가
별점
별0점
  • 별5점
  • 별4.5점
  • 별4점
  • 별3.5점
  • 별3점
  • 별2.5점
  • 별2점
  • 별1.5점
  • 별1점
  • 별0.5점
  • 별0점
제목입력
본문입력

*주제와 무관한 내용의 서평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나는 믿지만 너는 믿지 않는 그것을 믿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죽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종교적 광신주의에 대한 ‘이성’의 승리

1761년. 프랑스에서는 장 칼라스라는 60대 개신교 신자의 장남이 죽은 채 발견되었다. 이것은 누가 봐도 자살이었으며, 가족들은 이 사건이 가문의 수치가 될까 걱정해 덮으려 했다. 그러나 당국은 소문에 근거해 그 젊은이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살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1762년 3월 장 칼라스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매우 잔인한 방식으로 처형을 당했다.
이 소식을 같은 해 3월 말에 전해들은 볼테르(본명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는 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되고, 가톨릭 신자인 판사들의 판결이 종교적 편견에 의해 추동되었다는 점을 깨닫고 분노하게 된다. 이후 볼테르는 장 칼라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며, 파리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도 줄기차게 편지를 쓰며, 재판에 대한 항소를 요청했고, 그리하여 마침내 1763년 3월 툴루즈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한 항소가 허용되게 된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나는 믿지만 너는 믿지 않는 그것을 믿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죽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종교적 광신주의에 대한 ‘이성’의 승리

1761년. 프랑스에서는 장 칼라스라는 60대 개신교 신자의 장남이 죽은 채 발견되었다. 이것은 누가 봐도 자살이었으며, 가족들은 이 사건이 가문의 수치가 될까 걱정해 덮으려 했다. 그러나 당국은 소문에 근거해 그 젊은이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살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1762년 3월 장 칼라스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매우 잔인한 방식으로 처형을 당했다.
이 소식을 같은 해 3월 말에 전해들은 볼테르(본명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는 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되고, 가톨릭 신자인 판사들의 판결이 종교적 편견에 의해 추동되었다는 점을 깨닫고 분노하게 된다. 이후 볼테르는 장 칼라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며, 파리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도 줄기차게 편지를 쓰며, 재판에 대한 항소를 요청했고, 그리하여 마침내 1763년 3월 툴루즈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한 항소가 허용되게 된다.

그리고 이 와중에 볼테르는 바로 저 유명한 《관용론》을 저술, 출간하게 되는데, 그는 이 책의 첫 장에서 칼라스 판결의 전후사정을 설명하면서 툴루즈라는 지방도시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의 “광신”을 강조하고, 25개가 넘는 후속 장들에서 종교적 관용을 옹호하는 더 넓은 의미의 선언문을 제시한다. 《관용론》의 출간과 대단한 성공은 정치적 사건의 전개에 영향을 미칠 만큼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고, 마침내 1764년 6월 툴루즈 법원의 판결이 뒤집히며, 칼라스가 처형된 지 3년이 지난 1765년 칼라스의 유족들은 모든 혐의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이 사건은 반계몽주의 세력에 대해 ‘이성’이 거둔 승리로, 볼테르는 펜의 힘으로 칼라스 가족을 구한 사람으로 칭송받게 된다.

“‘나는 믿지만 너는 믿지 않는 그것을 믿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죽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포르투갈, 에스파냐, 고아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 볼테르, 리스본 종교재판을 비판하며 쓴 문구 중에서

“파렴치를 박살내라!”

계몽의 시인, 관용의 투사

볼테르는 칼라스 사건 때 ‘파렴치를 박살내라!”라는 문구를 만들어, 그것을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반복해서 사용했는데, 문자 그대로 수백 장의 편지를 이 격문으로 서명해서 보냈다. 종교적 관용을 평생 추구하는 볼테르는 이 “파렴치”(l’Infâme)를 자신의 최대 적수로 삼았는데, 이것은 계몽주의의 시대에 자신이 더는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종교적 징후들, 곧 다른 이들의 생각과 사상,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며, 내가 믿는 것만을 진실한 것으로 생각하는 교조주의, 리스본 대지진을 사람들의 죄악에 대한 신의 징벌로 여기는 종교적 광신과 미신을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 낸 단어였다.

“계몽의 시인, 관용의 투사”로서 볼테르의 명성은 당대에 그치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5년, 당시 프랑스 사회는 샤를리 에브도 총격 사건으로 커다란 공포와 혼란을 겪었다. 이 무렵 프랑스에서는 출간된 지 250여 년이 지난 책 한권이 다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그 책은 바로 볼테르의 《관용론》이었다. 일견 샤를리 에브도 총격 사건은 종교적 광신주의자들이 저지른 언론에 대한 테러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스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타민족/인종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 다른 종교에 대한 무지와 혐오가 빚어낸 참사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 파리 시가에는 볼테르가 “나는 샤를리다”라고 말하는 포스터가 붙었고, 2015년 1월 11일에는 볼테르 대로와 바스티유 광장을 잇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다음 날인 12일 자 《르몽드》 1면에는 연필을 들고 볼테르 대로를 행진하하는 시위자들을 내려다보며 “볼테르라니, 누구지?”라고 묻는 지옥불에 타고 있는 세 명의 무슬림을 그린 플랑튀의 만화가 실렸다. 다시 볼테르의 이름이 언론에 회자되었던 것은 비단 프랑스에서만이 아니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권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겠다.”

편견과 미신에 맞선 자유의 이름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권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겠다.” 볼테르가 한 말로 전해지며, 오늘날에도 언론의 자유가 쟁점이 될 때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소환되는 문구다. 이처럼 오늘날 볼테르의 이름은 그의 저술을 초월하는 일단의 가치들, 즉 편견과 미신에 대한 혐오, 이성과 관용에 대한 믿음, 그리고 언론의 자유와 동의어다. 사실, 볼테르는 위에서 첫 번째로 인용된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위 표현은 1906년에 영국 여류작가로서 볼테르의 전기를 쓴 에벌린 홀(Evelyn Beatrice Hall)이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저 문구는 볼테르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기에 볼테르의 말로 회자되고 있다.

“볼테르가 진짜 조롱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바로 명백하게 해롭고 합리적으로 반증 가능한 신념들에 집착함으로써 기본적인 인간성조차 부정하는 사람들이었다.”

조소와 반어, 대중적인 문체와 풍자 정신

“이 모든 전투에서 볼테르를 특징짓는 무기는 조소였다. 그의 목소리는 즉각 알아 볼 수 있는 것이었고, 그는 반어법과 빈정거림을 어느 누구보다도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우리가 볼테르의 사상과 당대의 지성사적 위상을 이해하기 위해 또한 가장 주목해야 할 만한 것은 그의 독특하면서도 대중적인 문체와 풍자 정신이다. 다방면으로 전개된 볼테르의 전투에서 볼테르를 특징짓는 무기는 조소였다. 그의 목소리와 문체는 즉각 누구나 알아 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의 반어법과 빈정거림을 누구보다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이 같은 볼테르 특유의 문체는 《관용론》을 비롯해 그의 저술들에서 빛을 발한다. 이와 관련해, 니컬러스 크롱크는 바로 이 같은 특징이 볼테르를 당대 문단의 최고 유명 인사이자, 18세기를 대표하는 계몽 사상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18세기에 철학자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철학자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상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작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예컨대, 볼테르가 관용을 최초로 옹호한 사람은 아니었으며, 그는 존 로크의 《관용에 관한 편지》(A Letter Concerning Toleration, 1689)를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로크가 철학자이자 정치 이론가의 관점에서 글을 쓴 반면, 볼테르는 당대의 구체적인 사건들로 논의를 시작하고 역사적 사례들로 뒷받침된 상식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는, 언론인으로서의 자세를 취했다. 이 같은 글쓰기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는데, 《관용론》은 출간과 더불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또 다른 예로, 우리는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설명하면서, 저 유명한 사과 일화를 떠올리는데, 이 같은 일화를 차용해 만유인력을 처음 설명한 사람이 바로 볼테르였다). 늘 여론을 중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사상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어떤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를 늘 고민하고,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던 볼테르의 자세는 오늘날에도 커다란 시사점을 보여 준다.

“볼테르에 감탄한다는 것은 곧 공연과도 같은 그의 삶에 감탄한다는 것이다.”

‘인간 볼테르’에 대한 권위 있으면서도 간단명료한 책

우리에게는 《관용론》의 저자로 알려진 볼테르는 유럽 계몽주의 시대의 주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볼테르에 관한 당대 최고의 전문가인 니컬러스 크롱크는 《인간 볼테르: 계몽의 시인, 관용의 투사》를 통해, 연극인, 시인, 영국인, 과학자, 궁정인, 제네바인, 운동가, 인기인 등으로서 볼테르의 주목할 만한 다양한 이력을 추적하며, 그의 사고가 계몽주의와 그의 시대에 대한 우리의 통념과 이해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살핀다. 볼테르의 저작과 활동에 대한, 명료하면서도 생생한 검토를 통해, 이 책은 당대 문학계 최고 명사로서 볼테르의 위상과 독특한 위치를 살피고, 그가 어떻게 그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는지, 또한 그가 자신의 작품을 두고 벌였던 논쟁의 맥락 속에서 다양한 작품의 의미와 특징을 추려낸다. 책은 볼테르가 문학과 철학에 미친 영향뿐만 아니라, 프랑스인들의 정치적 가치와 현대 프랑스 정치에 미친 영향까지 추적한다.

이 책은 계몽시대의 한 인기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최상의 입문서로서, 볼테르가 평생에 걸쳐 스스로 다양한 역할을 시도한 과정에서 보여 준 작가로서의 자세, 청중과의 소통 방식, 그들을 사로잡기 위한 온갖 방법들의 재창조 과정 등을 살펴본다. 이 책의 저자가 지적하듯, 한편의 “공연”과도 같았던 그의 삶을 통해, 볼테르가 어떻게 계몽사상의 중심인물로 추앙되었는지, 그가 어떻게 관용과 반교권주의와 종교적 광신주의에 맞섰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회의 통념을 뒤흔들었는지 보여 준다.

“지금 우리에게는 프랑수아-마리 아루에(François-Marie Arouet)라는 이름(본명)으로 세례를 받은 인물보다도 그 인물이 창조해 낸 작가 ‘볼테르’(필명)가 더 중요하다. 가면 뒤를 들여다보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가면과 그 가면을 쓴 인물을 혼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계몽시대의 한 인기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입문서의 소임을 맡아, 볼테르가 평생에 걸쳐 스스로 다양한 역할을 시도한 과정에 보여 준 작가로서의 여러 자세, 청중과의 소통 방식, 그들을 사로잡기 위한 온갖 방법들의 재창조 과정 따위를 살펴 볼 것이다. ‘극장’은 그가 작가로서의 삶을 창조하고 지탱한 방식을 조명하는 효과적인 은유를 제공한다. 그는 항상 자신이 무대 위에 있다는 자각 속에서 살았다. 그의 삶 전체는 무대 위의 자신과 관객 사이의 관계를 더 완벽하게 만들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볼테르에 감탄한다는 것은 곧 공연과도 같은 그의 삶에 감탄한다는 것이다.”

함께 비치된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