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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 세습 : 불평등에 공모한 나를 고발한다

Stewart, Matth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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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부당 세습 : 불평등에 공모한 나를 고발한다 / 매튜 스튜어트 지음 ; 이승연 옮김
개인저자Stewart, Matthew
이승연, 역
발행사항서울 : 이음, 2019
형태사항147 p. : 표 ; 19 cm
원서명9.9 percent is the new American Aristocracy
ISBN9788993166965
일반주기 감수·해제: 이상헌
본서는 "The 9.9 percent is the new American Aristocracy."의 번역서임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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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자신을 겨냥한 저자의 통렬한 직설이 한국사회 기득권층의 서민 코스프레 전략과 유체이탈 화법에 일침을 놓는다. 분노를 넘어, 행동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불꽃 같은 입문서!” -심상정(정의당 대표)

“매튜 스튜어트는 “왜 우리가 불평등 문제에 대해 광범위하게 동의하는데도, 우리의 행동과 정책은 더디고 무책임한가” 라고 묻는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9.9퍼센트 그룹의 책임을 정면으로 거론한다. 신흥 엘리트 계급인 9.9퍼센트야말로 변하지 않는 세상의 ‘주요 공범자’이며 개혁을 향한 하위 90퍼센트의 움직임을 사실상 봉쇄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에둘러 가지 않고 핵심 이슈를 정면 돌파한다. 자기비판의 성격도 강하다. 이 책은 고백론이자 고발장이다.”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 ‘해제’ 중


엘리트 계층은 단순한 수혜자, 방관자가 아니라 바로 공모자다!

우리는 이를테면, 90퍼센트로부터 자원을 뽑아내어 0.1퍼센트로 옮기는 깔때기 형태의 기계를 작동시키는 직원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공정에서 우리 몫의 전리품을 만족할 만큼 챙겼다. 사회에 분노가 차오르는 데 우리가 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자신을 겨냥한 저자의 통렬한 직설이 한국사회 기득권층의 서민 코스프레 전략과 유체이탈 화법에 일침을 놓는다. 분노를 넘어, 행동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불꽃 같은 입문서!” -심상정(정의당 대표)

“매튜 스튜어트는 “왜 우리가 불평등 문제에 대해 광범위하게 동의하는데도, 우리의 행동과 정책은 더디고 무책임한가” 라고 묻는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9.9퍼센트 그룹의 책임을 정면으로 거론한다. 신흥 엘리트 계급인 9.9퍼센트야말로 변하지 않는 세상의 ‘주요 공범자’이며 개혁을 향한 하위 90퍼센트의 움직임을 사실상 봉쇄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에둘러 가지 않고 핵심 이슈를 정면 돌파한다. 자기비판의 성격도 강하다. 이 책은 고백론이자 고발장이다.”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 ‘해제’ 중


엘리트 계층은 단순한 수혜자, 방관자가 아니라 바로 공모자다!

우리는 이를테면, 90퍼센트로부터 자원을 뽑아내어 0.1퍼센트로 옮기는 깔때기 형태의 기계를 작동시키는 직원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공정에서 우리 몫의 전리품을 만족할 만큼 챙겼다. 사회에 분노가 차오르는 데 우리가 기여했는데도, 우쭐대고 멸시하는 태도로 방관했다. 이제 우리는 그 결과를 받아들일 채비를 해야 한다.

이 책 『부당 세습: 불평등에 공모한 나를 고발한다』의 저자인 미국의 정치철학자 매튜 스튜어트는 자신이 속한 상위 9.9퍼센트 그룹을 겨냥해 “특권 사회의 공모자”라고 가차 없이 비판한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간, 숱한 분석과 우려의 말들이 무색하게 점점 심각해지기만 한 불평등 구조는 피도 눈물도 없는 최상위 0.1퍼센트 혼자 만들어낸 게 아니다. 중상위 엘리트 계층인 9.9퍼센트는 불평등 구조 속에서 “90퍼센트로부터 자원을 뽑아내어 0.1퍼센트로 옮기는 깔때기 형태 기계를 작동시키는 직원 노릇”으로 상당량의 전리품을 챙겼고, 그 결과 사회가 대중적 분노에 휩싸였는데도 9.9퍼센트는 “중산층인 척 하는 전략”을 구사하며, 99퍼센트의 편에 은근슬쩍 서서는 입바른 소리만 해댔다.
2016년 기준으로, 약 120만 달러(약 13억 원)에서 1천만 달러(약 110억 원)의 재산을 보유한, “변호사, 의사, 치과의사, 투자은행가, 애매모호한 직함을 가진 MBA 출신, 여러 전문직 종사자”인 9.9퍼센트를 일컬어 저자는 “새로운 귀족aristocracy”이라고 명백히 선언한다. 통상 능력자 계층meritocracy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자신은 능력merit이 있어 성공했다고 당당하게 말하곤 하지만 그 능력인 시험 성적, 학력, 경쟁력 있는 스펙과 커리어, 시스템에 대한 영향력 등은 사실상 특권에 기반한 것이다. 더구나 이 계층은 그 능력을 대물림하는 정교한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사실상의 신분 혹은 계급을 굳히고 있다.
저자는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미국사회의 능력주의meritocracy 신화는 이 계층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편리한 구실에 불과하게 되었다면서, “우리야말로 미국 경제의 목을 죄고,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고,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과정의 주요 공범”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불평등의 심각성과 해악을 지적하는 이야기는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합법화된 특권을 누리고 있는 바로 그 당사자가, 유체이탈 화법을 쓰지 않고, 자신을 비판하며 책임을 통감하는 목소리는 낯설다. 그 날카롭고도 정직한 1인칭의 고발 혹은 고백이 한국사회에도 묻는다. 도대체 누가 이 불평등의 폭주를 멈출 것이냐고.


계급의 세습, 평등의 박탈, 민주주의의 몰락

진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침묵을 지키며 집단적으로 불평등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불평등이 재생산되는 과정이다. 결혼은 사치가 되었고, 안정된 가정생활은 부유한 엘리트층이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특권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1928년에 증조할아버지 세대가 이루어낸 불평등의 정점에 거의 다다랐다. 틀림없이, 그때 그들도 불평등이 영원히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계층 부동성과 불평등 정도 간 밀접한 상관관계를 나타낸 ‘위대한 개츠비 곡선’은 불평등이 심화·재생산되는 사회적 양상의 상징처럼 쓰여왔다.
『부당 세습』은 이 거시적 지표의 물밑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불평등 재생산의 과정을 낱낱이 까발린다. 저자는 마치 인류학자가 참여 관찰을 하듯, 자신이 속한 그룹이 어떻게 대입 제도와 부동산 정책, 동네 집값과 공교육의 수준, 특정 직업의 ‘카르텔’과 정부의 조세 지출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변형시키는지, 어떻게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일을 ‘공공적’인 일로 포장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게임으로 만드는 데 그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는지를 속속들이 서술한다.
개츠비 곡선의 거대한 흐름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으며, 가진 자들이 여기에 책임이 있다고, 저자는 통탄한다. 그 때문에 미국사회는 “분노의 정치”에 휩싸였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불행”이라고도 일갈한다.
이는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기회의 땅”이었던 미국사회의 처참한 몰락이다. 이전 세대의 엘리트 계층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탐욕스러운 최상위층으로부터 등을 돌리기도 했으나, 지금 세대의 엘리트 계층은 공공성을 파괴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지위와 이득을 챙기고, 다른 계층을 배제하며, 특권을 세습하는 고난도의 전략을 구사한다. 이들은 ‘계급 전쟁’에서 빠져나가려 들며 이 시대의 보편적 인권의 문제에 눈을 감아버린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건강을 잘 유지하는 수단, 문화에 누적된 지혜를 배울 기회 그리고 좋은 이웃들이 있는 동네의 괜찮은 집에 살면서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있으리란 기대”는, 어쩌다 소수의 특권이 되었는가? “이는 앞선 세대가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이라고 불렸던 것들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기본권”이 아니냐고, 저자는 강하게 묻고 있다.


누가 이 불평등의 폭주를 멈출 것인가

이 책의 감수와 해설은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이 맡았다. 그는 세계 주요 국가의 상위 10퍼센트의 소득 몫 통계 등 공시적 맥락과, 2007년 세계 경기 대후퇴 이후 10여 년간의 불평등 논의 등 통시적 맥락에서 이 책의 의의를 살핀다. 해제문은 “9.9퍼센트라는 숫자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미국 외 어떤 국가에서는 5퍼센트거나 10퍼센트일 수도 있는 ‘신흥 특권 계급’의 존재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특권의 정당화 및 세습 매커니즘과,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대중적 분노, “전문직 엘리트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이 긴밀히 연결되어 현 사회 체제의 극심한 불안정을 낳고 있음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런 대중의 반응은 때때로 반지성주의나 비합리주의로 묘사되는데, 이런 관점 또한 엘리트 그룹의 나르시시즘적 산물인 경우가 많다”는, 저자보다 한발 더 나아간 분석은 한국사회의 불평등 담론의 프레임을 이해하는 데 더욱 유효하다.
도대체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라는 비판의 화살 역시 엘리트 계층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정부의 핵심적 기능을 전담하고 있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와중에도 정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펴도록” 만들어왔다. 대중의 분노가 자신이 아닌 정부로 향하도록, “특권 계급의 문제를 ‘일반 정책’의 문제로 편리하게 바꿔버리”는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불평등의 구조가 재생산될 수 있게, 완벽하게 합법적인 장벽을 쌓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은 엘리트 계층 자신을 향한 강력한 경고와 책임론을 동시에 담고 있다. 사회 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챙겼던 ‘부당 이익’을 환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내 아이만을 위한 ‘좋은 부모’ 되기 이전에 모든 아이들을 위한 ‘좋은 시민’ 되기를 선택하는 것, 위만 올려다보던 눈을 아래로 향해 벼랑 끝에 선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 결국 모두가 패배할 역사의 치킨 게임을 멈추는 것. 그것이 혁명이지, 입으로만 떠드는 바른 소리는 혁명이 아니다.

모든 사회경제 세력은 도전 받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사의 뼈아픈 교훈이다. 9.9퍼센트를 견제하고 압박하고 현명한 사회적 선택을 하게 하는 힘은 90퍼센트에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모두를 위한 책이다. 널리 읽히고, 폭넓고도 실천적으로 논의되길 바란다. 9.9퍼센트에게 주어진 선택의 시간이 많지 않다.
-‘해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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