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탑메뉴

전체메뉴

전체메뉴닫기


검색

상세정보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Maravall, Jose> Mari>a

상세정보
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아담 쉐보르스키; 호세 마리아 마라발 외 지음; 안규남; 송호창 외 옮김
개인저자Maravall, Jose> Mari>a
Przeworski, Adam
안규남, 역
송호창, 역
발행사항서울: 후마니타스, 2008
형태사항516 p.; 21 cm
원서명Democracy and the rule of law
ISBN 9788990106711
일반주기 본서는 "Democracy and the rule of law. c2003."의 번역서임
서지주기참고문헌과 색인수록
일반주제명 Rule of law --Congresses
Democracy --Congresses
분류기호 340.11
언어한국어

이 책의 다른 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다른 판 보기

소장정보

서비스 이용안내
  • 서가에 없는 자료서가에 없는 자료
  • SMS발송SMS발송
메세지가 없습니다
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1 1065923 LA 340.11 D383 K 법학전문도서관 단행본서가 대출가능
서가에 없는 자료 SMS발송
2 1065922 LA 340.11 D383 K 법학전문도서관 단행본서가 대출가능
서가에 없는 자료 SMS발송


서평 (0 건)

서평추가

서평추가
별점
별0점
  • 별5점
  • 별4.5점
  • 별4점
  • 별3.5점
  • 별3점
  • 별2.5점
  • 별2점
  • 별1.5점
  • 별1점
  • 별0.5점
  • 별0점
제목입력
본문입력

*주제와 무관한 내용의 서평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판사들이 독립적이라 해서 항상 자의적이지 않고 공정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할 근거는 없다. 만약 법을 해석하는 일이 독단적인 관료들의 배타적 영역이 되면, 민주주의는 반드시 위협받게 되어 있다”
(9장, 수평적 책임성의 도구로서 법원).
특권 계급인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환상에서 벗어나려면 가끔씩 자진해서 엉덩이를 맞아야 한다. 장기간에 걸쳐 권력을 유지하려면 그래야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체제는 계획을 통해 세워질 수는 없지만 우연히 출현할 수는 있다. 그런 행운을 만난 도시는 그 헌법의 유익한 효과 덕분에 번성할 것이다. 로마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1장. 법의 지배의 계보)


# 풍경 하나.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
2008년 한 일간지에는 경찰청 교통 담당 총경의 칼럼이 실렸다. 미8군부대를 방문했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미8군부대 내에서는 교통경찰이 없음에도 한국인들 역시 미국인처럼 교통법규를 잘 지키지만, 영내만 벗어나면 한국인들은 교통법규를 위반하기가 일쑤라고 지적한다. 한국인들의 낮은 준법의식...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판사들이 독립적이라 해서 항상 자의적이지 않고 공정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할 근거는 없다. 만약 법을 해석하는 일이 독단적인 관료들의 배타적 영역이 되면, 민주주의는 반드시 위협받게 되어 있다”
(9장, 수평적 책임성의 도구로서 법원).
특권 계급인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환상에서 벗어나려면 가끔씩 자진해서 엉덩이를 맞아야 한다. 장기간에 걸쳐 권력을 유지하려면 그래야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체제는 계획을 통해 세워질 수는 없지만 우연히 출현할 수는 있다. 그런 행운을 만난 도시는 그 헌법의 유익한 효과 덕분에 번성할 것이다. 로마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1장. 법의 지배의 계보)


# 풍경 하나.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
2008년 한 일간지에는 경찰청 교통 담당 총경의 칼럼이 실렸다. 미8군부대를 방문했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미8군부대 내에서는 교통경찰이 없음에도 한국인들 역시 미국인처럼 교통법규를 잘 지키지만, 영내만 벗어나면 한국인들은 교통법규를 위반하기가 일쑤라고 지적한다. 한국인들의 낮은 준법의식과 법 위반에 대한 관대한 처벌이 그 이유로 제시된다. 나아가 칼럼은 경찰서 지구대에서 벌어지는 취객들의 소동과 폭언, 촛불정국에서 벌어지는 시위 등을 대표적인 불법 사례로 제시하며, 이런 불법 사례들을 온정주의적으로 대하는 사법부의 태도를 질타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배를 마셨던 소크라테스의 마음으로 준법을 생활화할 때 선진 한국도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올 것이다.” 악법도 법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선진’ 사회라는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직 한국에서만 통하는 구절이다. 오죽했으면 2004년 헌법재판소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 구절의 삭제를 권고했을까. 하지만 2004년 이전에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고, 준법을 실천하기 위해 죽은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적어도 한국에서 소크라테스가 성인인 이유는 준법정신이 투철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준법은 사람들의 필요와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게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절대 명령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법은 반드시 지켜야 할 도덕적 원리이자 절대적인 규범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악법도 법이기만 하면,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풍경 둘. 친절한 사법부
2008년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되었던, 삼성의 비자금 조성, 조세 포탈 및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 항소심 판결이 내려졌던 날,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고 한다. 무표정하거나 병약해 보였던 이건희 회장마저 미소 짓게 했던 법원의 양형 판결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피고인들의 행위는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실정법상 처벌의 대상은 아니라며 법리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다 보니, 공소 사실에 대한 현행법상 처벌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국가 경제에 기여한 바가 크고, 신규 고용을 창출한 공로가 있으며, 한국 체육 발전에 기여했으며, 성품, 가족 관계 등에서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건희 회장 못지않게 아들을 몹시도 사랑했던 한화 김승연 회장 역시 비슷한 이유로 양형을 선고 받았다.
반면, 산업 역군이자 한국 경제 발전의 중추인 노동자들의 경우, 민주화 이후에도 정권별로 1천여 명 이상이 구속되었으며, 수백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소송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그 누구도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이름으로 양형을 선고받은 바 없다.
흔히 판사들은 스스로를 ‘법의 입’이라고 일컬으며,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권력도 없다고 주장한다. 오직 법리에 따라서만 해석을 하며, 재판의 결과는 선행(先行)하는 법조문의 내용을 적용한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법치주의는 인간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가 실현되었을 때 완성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창조물인 법은 반드시 인간 의지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사실, ‘법의 지배’라는 용어 그 자체는 수사적인 표현일 뿐이다. 법은 지배할 수 없다. 지배는 행위이며, 법이 직접 행위를 행할 수는 없다. 법 역시 판사들이라는 현실의 사람들을 통해 해석되고, 운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판사들이 모두 천사들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할까? 왜 우리는 판사들이 ‘법’을 실행하는 것 외에 어떤 이익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들의 결정 권한이 자의적이지 않고, 또 그들의 독립성이 결정의 공정성을 보장한다고 생각하는가?
법이 혜택 받은 소수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악용될 경우, 법의 지배는 법에 ‘의한’ 지배로 전락하며, 법과 정의는 부유한 사람들만 살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 풍경 셋.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의 종합부동산세 판결이 있던 날, 행정부나 의회 모두 헌법재판소의 판결 내용을 해석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종부세에 대한 대대적인 완화 혹은 사실상의 폐지를 주장하던 여당은 헌재의 판결을 활용해 여론의 반발을 잠재우며, 여야 협상의 카드로 활용할 기세다. 종부세를 만들었던 과거 여당인 민주당은 헌재의 판결에 아쉬움을 표하기는 했지만,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존중한다고 했다. 이제 여야협상은 국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헌법재판소가 틀 지운 한계 내에서 진행될 것이다.
민주화 이후 사법부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권력의 부서로 등장했다. 파당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정부와 입법부의 법안들은 번번이 헌법재판소에 제소되었으며, 헌재의 판결에 따라 입법이 무효가 되는 것은 물론, 대통령의 탄핵 여부마저도 재판관 아홉 명의 손에 남겨지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를 특징지은 현상은 바로 ‘정치의 무력화’와 ‘정치의 사법화’ 현상일 것이다.
이런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입법부?행정부?사법부의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한 결과인가?
기본적으로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사실상 정당정치, 민주정치의 실패에 따른 현상이다. 나아가, 정치의 사법화 역시 그 자체로 순수한 삼권분립의 작동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행위자들 사이에서 나타난 전략적 행동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인민의 의지를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정치적 책임을 무기력하게 하기 위해 나타난다. 독립된 사법부가 그런 가공할 만한 무기가 될 때, 대표와 책임 그리고 민주적 경쟁 원칙은 무기력해지고 민주주의는 위협을 받는다.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그간,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간의 이런 대립은 흔히 인민주권이냐 정의냐 하는 추상적 원리 간의 갈등과 같이 개념적 혹은 논리적 용어로 표현되었다.
후마니타스의 신간<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는 문제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무슨 근거로 입법자들을 과도한 권리를 행사하는 존재로 보면서, 이를 ‘법’, ‘전통’ 혹은 ‘정의’와 같은 신성한 언어와 대비시킬 수 있는가? 판사들이 ‘법’을 실행하는 것 외에 어떤 이익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들의 결정 권한이 자의적이지 않고, 또 그들의 독립성이 결정의 공정성을 보장한다는 말을 믿으라는 것인가? 선출되지 않은 기관의 정당성은 공정성에 달려 있기 때문에, 법원은 불편부당하게 보이거나 최소한 당파적이지 않게 보이고자 한다. 그러나 판사들이 독립적이라 해서 항상 자의적이지 않고 공정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할 근거는 전혀 없다. 판사들의 지배가 곧 법의 지배인 것은 아니다.

“만약 법을 해석하는 일이 독단적인 관료들의 배타적 영역이 되면, 민주주의는 반드시 위협받게 되어 있다.”

후마니타스의 신간<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는 한국 사회에서 줄곧 규범적으로 이해되는 ‘법의 지배’ 의미, 견제 받지 않는 견제자로서의 사법부 독립, 정치의 사법화,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이전 다음
이전 다음

함께 비치된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