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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

박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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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인종주의/ 박경태 지음
개인저자박경태
발행사항서울: 책세상, 2009
형태사항150 p.: 삽도; 21 cm
총서명 Vita activa.개념사; 9
ISBN 9788970137179
9788970137001(세트)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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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1. 인종주의에 대한 이해 ― 다문화 사회를 향한 첫걸음
한국 사회와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기본적인 열쇠가 되는 개념들을 뽑아 그 의미와 역사, 실천적 함의를 해설하는 ‘비타 악티바Vita Activa|개념사’ 시리즈의 아홉 번째 권《인종주의》는 근대와 함께 생겨난 인종주의의 개념과 역사를 살펴보고 21세기 새로이 등장한 신인종주의를 경계하면서 다문화 사회에 대한 가능성을 고찰한다. 다문화주의가 찬양받고 다문화 열풍이 불고 있는 현재 인종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논의 없이 진행된 한국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비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종은 ‘신체적 특성에 기초해서 사회적으로 규정된 집단’을 말한다. 또 인종주의는 인종에 따른 생물학적 차이가 인간의 능력을 결정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종주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고 열등하다고 여기는 인간이나 집단에 대한 멸시와 지배를 합리화한다. 이런 합리화 때문에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짐승처럼 부리는 일이 벌어졌고, 문명화를 빙자한 식민화라는 비인간적인 지배가 초래되었으며, 수많은 학살과 살육이 자행되었다. 미국의 노예제,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1. 인종주의에 대한 이해 ― 다문화 사회를 향한 첫걸음
한국 사회와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기본적인 열쇠가 되는 개념들을 뽑아 그 의미와 역사, 실천적 함의를 해설하는 ‘비타 악티바Vita Activa|개념사’ 시리즈의 아홉 번째 권《인종주의》는 근대와 함께 생겨난 인종주의의 개념과 역사를 살펴보고 21세기 새로이 등장한 신인종주의를 경계하면서 다문화 사회에 대한 가능성을 고찰한다. 다문화주의가 찬양받고 다문화 열풍이 불고 있는 현재 인종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논의 없이 진행된 한국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비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종은 ‘신체적 특성에 기초해서 사회적으로 규정된 집단’을 말한다. 또 인종주의는 인종에 따른 생물학적 차이가 인간의 능력을 결정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종주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고 열등하다고 여기는 인간이나 집단에 대한 멸시와 지배를 합리화한다. 이런 합리화 때문에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짐승처럼 부리는 일이 벌어졌고, 문명화를 빙자한 식민화라는 비인간적인 지배가 초래되었으며, 수많은 학살과 살육이 자행되었다. 미국의 노예제, 나치의 유대인 학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가 그러한 예이다. 역사에 등장하는 인종주의의 다양한 모습과 함께 한국 인종주의와 다문화주의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주의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이 책은 편견과 차별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는 우리의 시각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면서 다문화 사회를 향한 첫걸음을 옮기게 한다.

2. 인종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인종주의는 서구 근대와 함께 시작된 현상이다. 1942년 콜럼버스의 출항을 통해 유럽의 식민지 개척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곧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자 동시에 인종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유럽의 근대는 내세가 아닌 현세의 삶을 추구하는 세속주의, 개인의 자율성이 증대하는 자유주의, 생산 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자본주의를 그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이행은 상업 분야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유대인을 종교가 아닌 다른 구실로 차별할 근거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식민지 개척으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던 유럽의 각 국가들은 노예 제도라는 손쉬운 해결책을 쓰기 위해서 인종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즉 인종주의는 서구 근대 국가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개척 그리고 그것을 통한 경제적 이윤을 위한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기독교와 근대 과학은 인종주의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맡는다.《성경》의 〈창세기〉에 근거해 특정 피부 색깔과 생김새의 인종은 ‘만인의 평등’의 영역에서 제외되고 차별과 멸시를 받아도 상관없는, 인간이 아닌 부류로 규정된다. 또 근대 과학의 발달은 인종주의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요청에 부응해 인종 차별을 정당화한다. 식민지를 개척하고 그곳에서 다른 인종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서는 그들이 백인 자신과는 태생적으로 다르다는 이론적 근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생물 분류법의 기초를 확립한 린네, 인간의 두개골 용량을 측정해 인종 간 서열을 매기려 했던 모턴과 브로카 등의 근대 과학자들의 주장은 결론이 이미 나와 있는 상태에서 그에 맞는 증거를 꿰맞추는 것이었다. 즉 “측정을 해보니 차이가 있더라”가 아니라 “차이를 보여주는 것만 골라서 측정”하는 것이었다. 백인이 우월하고 흑인이 열등하다는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과학은 그 사실을 입증해주는 도구였다.
그리고 찰스 다윈이《종의 기원》에서 주장한 진화론은 생물학뿐만 아니라 서구 사상 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의 이론은 인간 세계를 설명하는 데도 적용되어 개인이나 집단 또는 인종의 진화를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를 낳게 된다. 19세기 중반 이후 사회적 다원주의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인종주의의 기초 이론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적자생존, 자연 도태와 같은 개념이 비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착취와 약탈을 정당화하는 데 더없이 좋은 이론의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3. 미국의 노예제에서 아파르트헤이트까지 ― 인종주의의 다양한 모습들
메이플라워호가 미국 대륙에 도착하기 1년 전인 1619년 배 한 척이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에 도착했다.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들이 처음 미국 땅을 밟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원래 노예로 미국에 간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노동하러 간 ‘계약 하인’이었다. 식민지 개척 초기부터 흑인들이 노예로 부려진 것은 아니었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새로이 노동자를 들여오는 일이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에 좀 더 쉽게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사오는 것이었다. 마침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대서양을 횡단하는 비용이 줄어들어 이것이 가능했다. 이들이 아프리카에서 미국 대륙으로 이동하는 동안의 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참혹해 팔려간 노예 가운데 60퍼센트 정도의 흑인은 죽음을 맞게 된다. 노예는 당연히 주인의 소유물로 취급되었고, 매매의 대상이었으며, 심지어 법으로 이들에 대한 차별을 제도화했다. 1863년 남북 전쟁 중 링컨이〈노예해방선언〉을 발표하기 전까지 미국에서는 노예 제도가 공식적으로 유지되었고 이후에도 그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인종주의가 극단적으로 발현된 대표적인 경우다. 기존에 유럽에 존재하던 반유대주의 정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나치 정권의 홀로코스트 진행 과정은 차별과 이주 정책, 배제와 축출, 마지막으로 최종 해결인 절멸로 이어졌다. 이런 학살 정책은 유대인에게만 적용된 것이 아니었다. 순수한 게르만 혈통을 더럽히는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그리고 공산주의자 등 반사회적 인물이라고 지목된 사람들 역시 절멸 수용소에서 희생되었다. 이런 대량 학살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인종주의적 시각과 그에 따른 차별과 배제가 자연스럽게 행해질 수 있었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넬슨 만델라)이 탄생했다. 극단적인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네덜란드어의 방언에 해당하는 아프리칸스어로 ‘분리’를 뜻하는데, 1652년에 남아프리카로 이주한 네덜란드계 백인인 보어인이 행하던 차별 관습이 20세기까지 남아 있다가 정식 명칭으로 사용된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용어는 1930년대에 처음 만들어졌고, 1940년대 초부터 네덜란드계 백인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당의 정치 슬로건으로 사용되었으며, 1948년에 국민당이 집권하자 정부에 의해서 공식적인 정책으로 채택이 되고 법으로 제도화되었다.
가 20세기 내내 유지되어온 남아공에서 이것은 상징적 의미가 큰 사건이었다. 남아공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 정책은 법으로 제정되어 다수의 흑인에 대한 소수 백인의 통치와 지배를 공고히 했다. ‘원주민 토지법’은 흑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없게 했고, ‘통행법’은 16세 이상의 흑인들에게만 신분증을 지니고 다닐 것을 강제했으며, ‘토착인 대표법’은 흑인의 피선거권을 빼앗아 흑인들이 백인을 그들의 대표로 선출하게 했다. 또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을 금지했고, 백인이 아닌 경우는 대학을 갈 수 없도록 하는 법이 제정되었다. 이러한 극심한 인종 차별 정책도 국제 사회의 제재와 남아공 내의 인권 의식의 성장, 흑인 정치력의 증대와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으로 점점 약화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무엇보다 시대착오적인 인종주의가 더 이상 바람직하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점이 있다.

4. 21세기의 신인종주의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졌다. 이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기독교 대 이슬람, 백인 대 비백인의 대결 구도를 상정하면서 이분법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2002년 프랑스에서는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인종차별주의자 르펜이 사회당의 조스팽을 물리치고 대통령 결선 투표에 올랐다. 2005년 7월 런던 지하철과 버스에서 동시다발로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이 사건을 일으킨 이들은 영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무슬림 청년들이었다. 종교나 문화의 차이로 일어나는 이들의 갈등의 원인은 바로 신인종주의이다. 신인종주의자들은 생물학적 차이 대신 가치나 문화 등의 차이를 내세우며 고유한 문화마다 서로 다를 권리가 있고 그 문화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각자의 문화에 맞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형은 달라 보일 수 있으나 본질에서는 인종주의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들의 극단적인 주장은 신앙이나 비이성적 신념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기존의 인종주의보다 오히려 더 극복하기 어렵다.
신인종주의의 배경에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는 이들의 울분과 그것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이민자들이 늘어나고 다양한 문화와 인종 간의 교류는 점점 확대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기 하향 곡선의 세계 경제 속에서 실업자가 늘어나고 빈부 격차가 벌어지면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그들의 분노를 표출할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정치인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장하려 하고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을 이민자들에게로 돌려버린다. 신인종주의가 초래하는 갈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소외 계층을 품어 안으려는 공감대의 형성이 필요하다.


5. 한국의 다문화주의
한국 사회에서도 인종주의는 현재 진행형의 문제이다. 한국은 이미 2007년 8월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국제결혼을 통한 외국인 배우자, 이주 노동자, 유학생 등 다양한 외국인들이 한국 사회 안에 들어와 있다. 공식적으로 한국 정부도 다문화주의를 지향하고 시민들 또한 다문화 사회에 대해 긍정적 목소리를 내며 인종주의에 비판적 시각을 보낸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다문화주의에는 사회 안의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과 그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의 문화를 더 풍부하게 하려는 다문화주의의 본질은 없고 그저 다문화주의에 대한 찬양만 공허하게 울리고 있다. 관 주도의 정책들, 대상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다문화주의 논리, 타문화를 수용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한국의 문화만을 강요하는 다문화주의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다문화주의의 지향점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것은 기존의 인종주의적 시각에 대한 비판적 논의와 고민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인들은 단일 민족임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다른 문화에 대해 경계심과 배타성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다 개방 물결에 갑자기 몰려온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에 한국인들은 당황했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종주의적 시각에 대한 비판과 고민 없이 다문화의 가치를 찬양하는 방향으로 돌변했다. 이런 기반이 한국인의 의식에 그대로 남아 있고 정부의 정책에도 드러나는 것이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인종주의적 시각을 비판적으로 읽고 다문화의 가치를 진정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인종주의적 시각을 극복하고 진정한 다문화 사회로 향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지배해온 의식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분석 그리고 다름에 대한 포용과 공감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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