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탑메뉴

전체메뉴

전체메뉴닫기


검색

상세정보

미학적 인간 : 호모 에스테티쿠스

Dissanayake, Ellen

상세정보
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미학적 인간 : 호모 에스테티쿠스 / 엘렌 디사나야케 지음; 김한영 옮김
개인저자Dissanayake, Ellen
김한영, 역
발행사항고양 : 예담, 2009
형태사항493 p. : 삽도 ; 23 cm
원서명Homo aestheticus :where art comes from and why
ISBN9788959133932
일반주기 본서는 "Homo aestheticus : where art comes from and why. c1992,1995."의 번역서임
서지주기참고문헌(p. 445-471)과 색인수록
일반주제명Aesthetics
언어한국어

이 책의 다른 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다른 판 보기

소장정보

서비스 이용안내
  • 찾지못한자료찾지못한자료
  • SMS발송SMS발송
메세지가 없습니다
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1 1088934 701.17 D613h K 2관 5층 일반도서 대출가능
찾지못한자료 SMS발송
2 1088933 701.17 D613h K 2관 5층 일반도서 대출가능
찾지못한자료 SMS발송


서평 (0 건)

서평추가

서평추가
별점
별0점
  • 별5점
  • 별4.5점
  • 별4점
  • 별3.5점
  • 별3점
  • 별2.5점
  • 별2점
  • 별1.5점
  • 별1점
  • 별0.5점
  • 별0점
제목입력
본문입력

*주제와 무관한 내용의 서평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예술이 진화해 온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이라는 ‘진화미학’을 원시부터 문명사회에 걸친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통해 입증한 책이다.
오늘날 우리는 예술을 당연히 문화의 산물이라 여긴다. 하지만 예술이 교육과 학습을 통해 전달되는 문화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문화적 차이를 넘어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발견되는 인간의 보편적 예술성,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 하는 욕구를 설명할 길이 없다. 저자 엘렌 디사나야케는 다양한 이론적·실험적 증거를 가지고 예술이 문화의 산물이라기보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과 인간이 왜 선천적으로 미적이고 예술적인가를 밝혀냈다. 그리고 이렇게 미를 추구하는 인간을 ‘미학적 인간, 호모 에스테티쿠스’라고 명명했다.
인간의 타고난 욕구를 억제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그런데 오늘날 예술을 바라보는 편견들, 예술이 선택받은 소수의 전유물이라는 견해, 혹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장식물이라는 생각은 예술에 대한 오해를 낳고, 인간에게 의식주와도 같은 예술을 박탈하고, 예술성 발휘를 막고 있다. 이 책은 예술이 말하기, 일하기, 운동, 유희, 사회화, 사랑 같은 인간의 보편적인 행동처럼 우리가 장려하고, 개발해...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예술이 진화해 온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이라는 ‘진화미학’을 원시부터 문명사회에 걸친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통해 입증한 책이다.
오늘날 우리는 예술을 당연히 문화의 산물이라 여긴다. 하지만 예술이 교육과 학습을 통해 전달되는 문화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문화적 차이를 넘어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발견되는 인간의 보편적 예술성,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 하는 욕구를 설명할 길이 없다. 저자 엘렌 디사나야케는 다양한 이론적·실험적 증거를 가지고 예술이 문화의 산물이라기보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과 인간이 왜 선천적으로 미적이고 예술적인가를 밝혀냈다. 그리고 이렇게 미를 추구하는 인간을 ‘미학적 인간, 호모 에스테티쿠스’라고 명명했다.
인간의 타고난 욕구를 억제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그런데 오늘날 예술을 바라보는 편견들, 예술이 선택받은 소수의 전유물이라는 견해, 혹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장식물이라는 생각은 예술에 대한 오해를 낳고, 인간에게 의식주와도 같은 예술을 박탈하고, 예술성 발휘를 막고 있다. 이 책은 예술이 말하기, 일하기, 운동, 유희, 사회화, 사랑 같은 인간의 보편적인 행동처럼 우리가 장려하고, 개발해야 할 필연적인 행동이며, 이를 개발하는 인간만이 도태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예술의 회복, 인간의 예술 본성을 잃지 않는 미학적 인간의 귀환을 바라고 있다.


예술은 인간의 본성이다
미학적 인간의 예술 본성을 잃지 않는 사람만이 진화하고 살아남는다


인간의 행동과 인지 기능을 다윈주의적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는 그동안 많이 있었다. 기억, 학습, 배우자 선택은 물론이고 심지어 감정 같은 주제를 진화 또는 뇌 구조와 관련하여 새롭게 조명하는 흥미로운 연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당연히 문화의 산물이라고 여긴 ‘예술’을 다윈의 진화론적 견해에서 바라본 시도는 이 책, 《미학적 인간》이 최초이다. 인간의 고귀한 정신적 활동 영역이라 여기고 있는 예술을 감히 생물학적 욕구라고 규정하고 시작하는 이 책은 21세기 미학에 던지는 다윈주의의 화두 또는 도전이다.
저자는 예술을 인간의 보편 행동으로 보고 진화론의 차원에서 그 기원을 찾는 자신의 관점을 ‘종중심주의(다윈주의)’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인 예술 경험의 핵심을 좋은 기분, 즉 ‘쾌감’으로 규정한다. 다윈주의의 관점에서 인간의 쾌감은 뇌 발생 및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길잡이다. 그리고 생물학적 차원의 이 쾌감은 인간의 감정 및 사회성과 연관되고, ‘특별화하기’와 향상의 충동과 직결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이 인류에게 생존 가치 및 선택 가치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제의와의 결합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자칫 생물학적 환원주의라 비판받을 수 있지만, 저자는 다윈주의 원리의 충분한 고찰과 다양한 이론적·실험적 증거를 통해 자연선택이 예술 행동을 빚어낸 이유와 과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여기까지의 논의는 인간이 예술 작품과 하나가 되는 ‘감정이입 이론’의 재고찰로 귀결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는 마지막 장에는 저자의 가장 힘 있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고급 예술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이 ‘욕조물이 더럽다고 욕조 안에 든 아기를 물과 함께 버리듯이’ 모든 예술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고, 우리 생활 도처에 자리할 수 있다는 말은, 모든 기준이 창밖으로 날아가고 모든 것이 다 예술이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의 예술 작품에서 이해하기 쉽고, 인상적이고, 심금을 울리고, 만족을 준다는 느낌을 받는 데에는 문화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분명 생물학적으로 부여받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단지 변덕스러운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예술과 삶을 보다 광범위한 의미로 이해하는 다윈주의, 즉 진화미학의 견해를 채택할 때 진정한 인간을 위한 인간이 즐기는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1장 그 많던 호모에스테티쿠스는 어디로 갔나 - 다윈주의 미학의 출발

오늘날 예술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은 어마어마한 돈으로 거래가 되고 있다. 그리고 유명 전시회나 음악회가 열리면 수십만 명의 인파가 구름처럼 모여 장사진을 이룬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에게 예술은 삶에 필요한 요소라기보다 당혹스러운 행사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렇게 일부 사람들만이 즐기고 영유하는 예술에 왜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가? 미술관과 공연장을 지을 돈으로 병원과 학교를 짓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예술을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과연 예술이 이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예술이란 행동은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모든 인간에게 생물학적으로 부여된 성향이다. 이것이 전제될 때 인간이 예술을 추구하는 이유가 타당해진다.


2장 예술이 주는 흥분과 쾌감은 무엇인가 - 생물학적 욕구 충족으로서의 예술

예술은 영혼뿐만 아니라 분명 육체도 즐겁게 한다. 하지만 예술 이론가들은 흥분과 쾌감을 존중하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로 치부한다. 그렇다면 무용수의 도약이나 하늘로 치솟은 성당의 둥근 천장을 보거나 점점 커지는 크레셴도를 들을 때 느끼는 아찔한 감동, 복잡한 화성 진행을 따라갈 때 목이 울컥하고 몸이 떨리고 심지어 눈물이 흐르는 현상, 석상이나 목상의 곡선을 마음속으로 애무할 때 손바닥에 느껴지는 흥분, 말이 형체를 이루고, 색이 만져지거나 들리고, 소리가 윤곽을 이루고 무게를 갖는 것 같은, 이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은 과연 무엇인가? 예술을 우리가 충족하기를 원하는 타고난 생물학적 욕구이기 때문에 욕구의 충족은 만족과 쾌감을 주고, 그에 대한 부정은 치명적인 박탈감을 낳는다.


3장 예술의 핵심은 무엇인가 - 특별화하기의 욕망

예술은 엄밀히 말해 비실용적인 것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비실용적인’ 것은 선택될 수 없다. 그런데 예술은 현대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특별해지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설명 가능하다. 우리의 먼 조상 네안데르탈인도 골동품 수집, 돌에 표식 새기기, 의복에 이국적인 조개껍데기 붙이기, 깎은 면이 있는 황토 크레용의 사용 등을 통해 특별화하려는 욕구를 충족했다. 특별화하려는 선천적 경향을 갖고 있던 인간에게 예술은 선택 가치가 있었으며 이 ‘특별화하기’는 예술의 핵심이다. 우리는 사는 곳을 공들여 꾸미고, 중요한 일을 기념하고, 또 특별한 날에 좋은 옷을 골라 입고 일상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바로 특별화이다. 우리 삶의 중요하고 심각한 사건들을 특별하게 기릴 사치스럽고 비일상적인 방법들이 없다면, 우리는 최소한의 인간성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4장 예술은 자연의 정복인가 -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을 넘어서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을 자연과 구분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것을 가지고 와서 문화를 만들었으며 우리의 먼 조상은 문화를 만들면서도 자연을 정복하기보다는 제어하며 예술로 발전시켰다. 문화가 자연을 변형하거나 통제하는 문화/자연의 이분법을 모든 사회가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문화/자연을 구분하는 많은 사회에서도 자연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조금 나눠가지는 힘의 원천이자 고귀한 영역이다. 이 장에서는 우리 인간이 어떻게 보기 흉한 미완성 상태의 자연 재료를 훼손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로 만들어 왔는지를 설명했다


5장 예술은 향상의 수단인가 - 인간적인 예술

인간은 예로부터 문신을 하고 장신구를 달기 위해 귀나 입술을 뚫고, 할례, 치아 줄질, 머리 조이기, 전족 등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이것이 야만스럽고 끔찍해 보이는가? 그러나 이것은 평범하고 미완성과도 같은 인간의 신체를 모양내고 공들여 ‘향상’시키려고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머리와 신체 장식뿐만 아니라 인간은 주위 환경과 생활 등 인류 역사의 전 기간에 걸쳐 관심을 기울이는 것들의 모양을 꾸미고 공들여 향상시켜 왔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예술 활동이다.


6장 예술은 어떻게 미적 반응을 일으키나 - 감정이입의 재고찰

세계 어디서나 인간은 아름다운 것에서 쾌감을 얻는다. 그런데 현대 예술에서 만큼은 인간의 쾌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관념적이고 객관주의적인 서양의 세계관이 ‘마음’을 강조하고, ‘육체’를 열등한 것, 즉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생각을 중재하는 핵심 재료라기보다는 관리하고 억제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예술에서 느껴지는 쾌감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 ‘감정이입론’을 재고찰하며 예술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얘기한다.


7장 춤추고 노래하고 일하는 당신이 호모 에스테티쿠스 - 미학적 인간의 귀환

인간과 예술이 분리되기 시작한 것은 현대 예술에서 예술을 개념화하고 이론화하면서부터인지 모른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추상적인 ‘예술’ 개념이 없지만, 그래도 모든 구성원들에게 몸과 소유물을 장식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짓고, 연기를 함으로써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물론 전통 사회에서도 일부 사람이 남들보다 더 재능이나 기술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 소수의 특별한 재능이 다수의 예술 제작과 활동을 가로막지는 않았다. 즉,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삶을 위한 예술’을 행했다. 우리가 인간 본성으로서의 예술을 회복하고 더 나은 인간으로 진화해 나가려면 우리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삶을 위한 예술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전 다음

함께 비치된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