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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치철학의 모험

홍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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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현대 정치철학의 모험/ 홍태영 외 지음
개인저자홍태영, 1968-
발행사항서울: 난장, 2010
형태사항351 p.: 삽도; 21 cm
ISBN 9788996126874
일반주기 색인수록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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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탈정치.반(反)정치 시대에 정치와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기

권력의 정당성과 배분이라는 문제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정치 또는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인지를 묻기. 기존의 정치 개념(권리, 정의, 자유, 평등, 인민주권 등)을 다시 생각하기. 바로 이것이 여덟 명의 철학자를 통해 우리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현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1992년을 전후로 ‘역사의 종말’을 주장하며 자유민주주의, 더 정확하게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승리가 선언된 지 어언 20여 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 뒤 세계화.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오늘날 그 승리의 선언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일까? “대안은 없다”고 떠들어대던 세계화.신자유주의 창자들에 맞서 지난 2001년 제1회 세계사회포럼(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이 열린 이래로 21세기의 첫 10년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역사의 새로운 순환’을 요구하는 정치(철학)의 귀환으로 특징지어졌다.
도서출판 난장의 신간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이 소개하고 있는 여덟 명의 사상가, 즉 클로드 르포르,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가라타니 고진,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탈정치.반(反)정치 시대에 정치와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기

권력의 정당성과 배분이라는 문제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정치 또는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인지를 묻기. 기존의 정치 개념(권리, 정의, 자유, 평등, 인민주권 등)을 다시 생각하기. 바로 이것이 여덟 명의 철학자를 통해 우리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현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1992년을 전후로 ‘역사의 종말’을 주장하며 자유민주주의, 더 정확하게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승리가 선언된 지 어언 20여 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 뒤 세계화.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오늘날 그 승리의 선언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일까? “대안은 없다”고 떠들어대던 세계화.신자유주의 창자들에 맞서 지난 2001년 제1회 세계사회포럼(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이 열린 이래로 21세기의 첫 10년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역사의 새로운 순환’을 요구하는 정치(철학)의 귀환으로 특징지어졌다.
도서출판 난장의 신간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이 소개하고 있는 여덟 명의 사상가, 즉 클로드 르포르,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가라타니 고진, 에티엔 발리바르, 조르조 아감벤, 샹탈 무페, 악셀 호네트는 세계화?신자유주의가 불러온 탈정치, 더 나아가 반(反)정치의 흐름에 맞서 이와 같은 정치(철학)의 귀환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국적, 연령, 전공이 상이한 이 사상가들을 묶어주는 공통점은 정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다. 즉, 정치란 (국가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인 동시에, 제대로 된 ‘국가’ 자체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이중의 의미에서) 국가에 대한 요구를 초과한다는 것, 민주주의는 일종의 합의나 체제가 아니라 갈등·경합·투쟁·계쟁·봉기의 과정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런 공통점 아래 이들은 모두 정치라는 개념 자체, 근대의 지배적 국가형태로서의 국민국가, 모든 정체의 운영원리로 여겨지는 민주주의, 법에 근거한 권리와 인권의 보장 등 서구 정치전통의 모든 범주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함으로써 정치에 관한 기존의 이해를 확장시키고 있다.
국내에서도 학계와 시민사회를 막론하고 우리와 동시대인인 이 사상가들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져 가고 있다. 특히 2008년 전국의 길거리를 수놓았던 촛불이 사그라진 뒤 봇물처럼 터져 나온 헌법 개정?완성 논의, ‘공화국’에 대한 논의, 87년-97년-08년 ‘체제 논쟁,’ 급진민주주의에 대한 토론 등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모두 이 사상가들의 사유에 젖줄을 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2008년 9월 연세대학교에서 “현대 유럽 정치와 철학”이라는 연속강좌를 통해 대중들에게 처음 소개되기 시작한 이래로 최근 (사)문화사회연구소가 “우리 시대의 지식인 읽기: 문화와 정치 사이에서”라는 교양강좌를 통해 이 사상가들을 다루는 등 이들의 사유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덩달아 출판계도 이들의 작업을 소개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통해 본 정치

정치(철학)의 귀환은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대중운동이 지성계에게 사유할 것을 요청, 심지어 명령하는 상황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보다 건설적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라는 (컨)텍스트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건강하다.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에 등장하는 사상가들의 작업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정치적인 것’(das Politische, le politique, the political)이라는 개념일 것이다. 이 사상가들에 따르면 ‘정치’란 정치적 현상의 사실적(존재적) 수준에서 움직이는 반면, ‘정치적인 것’은 이런 정치현상의 형이상학적(존재론적) 조건과 관련된 문제이다. 간단히 말해서 ‘정치적인 것’은 정치를 정치일 수 있게 해주는 본질 혹은 토대이다. 그러므로 이 본질/토대가 무엇이라고 보느냐에 따라 이 사상가들의 사유는 겹치기도 하고 갈라서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클로드 르포르의 경우, ‘정치적인 것’이란 한 사회를 특정한 방식으로 통일시킴으로써 다른 사회와 구분해주는 ‘상징적 차원’이다. 이 상징적 차원에 의해 한 사회의 계급.집단.조건.상호관계가 분화되고 규정된다. 따라서 우리는 복수(複數)의 상징적 차원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근대 사회를 특징짓는 상징적 차원의 핵심은 ‘빈 공간으로서의 권력’이다. 즉, 권력의 자리를 텅 빈 공간으로 남겨두는 것이 근대 사회의 원리이다. 르포르가 말하는 민주주의혁명이란 바로 이 원리의 제도화로서 이제는 그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영원히 권력의 자리를 독점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 이 빈 공간을 억지로 채우려고 하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일 뿐이다.
이와 달리 작년의 ‘체제 논쟁’을 통해 새롭게 주목받게 된 샹탈 무페의 경우 ‘정치적인 것’이란 적대, 특히 적-친구의 구분과 그 대립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인 전쟁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행위이다. 무페에 따르면 이런 적대는 인간의 조건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 적대를 그 자체로 긍정하거나(그럴 경우 늘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처럼 합의를 통해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결국 적대는 되돌아온다). 그보다는 이 적대를 다른 장소와 쟁점으로 옮겨 ‘경합’으로 길들이고, 이런 경합의 장이 과열되어 스스로 붕괴되는 것을 막는 제도적 기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실마리 삼아 알랭 바디우가 정치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평등의 제스처이자 실행 중인 사유라고 부르고, 자크 랑시에르가 공적인 공간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사유되지 않았던 아무개들이 스스로를 보이고 들리고 사유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근본 문제라고 말하며, 가라타니 고진이 인간들에게 존재하는 비사회적 사회성 속에서 세계공화국으로 향해 갈 가능성을 보고, 에티엔 발리바르가 하나의 단일한 원리가 아니라 이질적인 입헌적/헌정적 원리가 변증법적으로 결합하는 ‘갈등적 민주주의’에 주목하고, 조르조 아감벤이 살아 있는 생명을 호모 사케르로 만들어버리는 주권권력의 작동방식을 분석하기 위해 언어 모델에 기대고, 악셀 호네트가 포용과 개인화의 정도를 한 사회가 얼마나 진보적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 제시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상이한 성찰과 설명은 현대 정치철학자들의 입장을 변별할 수 있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이다.
작년의 ‘체제 논쟁’부터 최근의 진보진영 ‘대통합 논의’까지 국내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쩍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일각의 우려처럼 지금까지의 논의는 반MB 정서에 기댄 선거전략 논의에 그칠 뿐, 우리 사회의 ‘정치적인 것’을 성찰하는 데까지는 못 가고 있는 듯하다.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은 이렇듯 우리의 삶과 직결된 정치를 단순한 ‘득표행위’나 ‘행정’(‘국가경영’)으로 보는 관점을 되돌아보게 해줄 것이다.

사유의 거장들과 대결한 젊은 연구자들의 모험

글쓴이들의 약력에는 대부분 ‘과정’이라는 꼬리말이 붙어 있다. 그러나 학계와 사회의 끝자락 또는 가장자리에 있는, 이 ‘과정 중’의 사람들이야말로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들이 아닌가. 이제는 당신의 차례이다.

외국의 경우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에 소개된 여덟 명의 사상가들을 개별적으로 다룬 연구서는 적게는 서너 권, 많게는 대여섯 권씩 존재한다. 그 중에는 이 사상가들의 정치철학뿐만 아니라 그 사유의 전반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훌륭한 책들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야 비교적 최근부터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이들의 핵심 주장은 적게는 몇 년에서 많게는 수십 년 동안 무르익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와 이들의 사유를 본격적인 연구서도 아니고 입문서의 형태로 소개한다는 것은 유행하고 있거나 유행할, 하지만 결국 사라질 운명에 처한 일군의 또 다른 ‘신상품’을 풀어놓는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허나 누군가의 말처럼 ‘근대’를 하나의 태도, 그것도 ‘비판적 태도’로 규정할 수 있다면(미셸 푸코, 계몽이란 무엇인가?), 우리 역시 ‘현대’ 또는 ‘동시대’를 하나의 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이 다루고 있는 모든 사상가는 오늘을 사유하기 위해 과거의 텍스트를 읽었다. 이것은 오늘과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시차적(時差的)이며, 과거의 텍스트를 다른 시각으로 읽는다는 점에서 시차적(視差的)이다. 요컨대 현대/동시대는 이 이중의 시차를 경유함으로써만 우리에게 온전히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에 참여한 글쓴이들이 외국의 검증된 연구서를 번역해 소개하는 손쉽고도 안전한 방식 대신, 저마다의 비판적 관점에서 이 사유의 거장들과 대화하는 모험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때 ‘(대중)문화의 시대’라고 불린 약 10여 년 전에도 장 보드리야르에서 자크 라캉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외국 사상가들이 국내에 유행처럼 대거 소개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들 중 국내 연구자들에 의해, 지금 여기에서의 문제의식에 근거해 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지금까지 활발히 논의되는 사상가들은 채 한 줌도 안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외국 사상가들과의 시차(時差)를 좁히는 데 급급해 이들의 사유를 패스트푸드 마냥 빠르게 ‘소비’하는 데 만족한 것은 아닐까? 도리어 중요한 것은 이들의 시차(視差)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을 이해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을지 아닐지를 차분히 따져보는 게 아니었을까?
물론 이런 이중의 시차를 성공적으로 건너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다. 또 어느 한 사람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도 아닐 터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의 글쓴이들은 각 사상가들의 사유를 꿰뚫고 있어 이런 이중의 시차를 완벽히 확보하는 데 성공한 이들이라기보다는 그 필요성에 공감해 기꺼이 그 물꼬를 트고자 과감히 한 발을 먼저 내디딘 이들이다. 무엇보다 글쓴이들은 각자의 글이 사유의 거장에 대한 단순한 주석에 그치지 않도록 애를 썼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글이 ‘지금 여기’를 이해하기 위한 (곁)텍스트, 다시 말해서 독자들이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만큼 그 맥락에서 떼어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유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공을 들였다. 무릇 그럴 때에만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이 소개하는 사상가들의 정치철학은 또 다른 팬시상품이 아니라 비로소 현대성/동시대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의 집필 작업에 참여한 글쓴이들의 약력에는 대부분 ‘과정’이라는 꼬리말이 붙어 있다. 그러나 학계와 사회의 끝자락 또는 가장자리에 있는, 이 ‘과정 중의’ 사람들이야말로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들이 아닌가. 이제는 당신의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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