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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힘: 조선, 500년 문명의 역동성을 찾다

오항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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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조선의 힘: 조선, 500년 문명의 역동성을 찾다/ 오항녕 지음
개인저자 오항녕= 吳恒寧, 1961-
발행사항서울: 역사비평사, 2010
형태사항327 p.: 삽도; 23 cm
ISBN 9788976965356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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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조선의 두 얼굴, 찬란하거나 혹은 일그러졌거나

조선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조선이란 시대는 때로 찬란한 조명을 받으며 기념되지만, 때로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우리의 과거에서 추방당하곤 한다. 조선은 우리의 과거를 밝혀주는 위대한 유산이자, 동시에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때로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한갓 머나먼 과거의 흔적이기도 하다.
오늘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출판물이 앞 다투어 조선을 다루며, 조선시대의 정신과 인물들을 미화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선은 여전히 ‘전근대’, ‘망국’, ‘낡은 것’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쓴 부끄러운 과거의 초상일 뿐이다.
이 기묘한 양면적 얼굴에 드리운 찬란함과 일그러짐, 그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조선’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과 마음도 흔들리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조선이란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 조선 500년의 힘과 한계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자는 것이 바로 이 책 <조선의 힘>에서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조선시대가 지닌 힘과 오해에 관해 올바른 의미를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반성의 지...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조선의 두 얼굴, 찬란하거나 혹은 일그러졌거나

조선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조선이란 시대는 때로 찬란한 조명을 받으며 기념되지만, 때로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우리의 과거에서 추방당하곤 한다. 조선은 우리의 과거를 밝혀주는 위대한 유산이자, 동시에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때로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한갓 머나먼 과거의 흔적이기도 하다.
오늘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출판물이 앞 다투어 조선을 다루며, 조선시대의 정신과 인물들을 미화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선은 여전히 ‘전근대’, ‘망국’, ‘낡은 것’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쓴 부끄러운 과거의 초상일 뿐이다.
이 기묘한 양면적 얼굴에 드리운 찬란함과 일그러짐, 그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조선’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과 마음도 흔들리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조선이란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 조선 500년의 힘과 한계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자는 것이 바로 이 책 <조선의 힘>에서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조선시대가 지닌 힘과 오해에 관해 올바른 의미를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반성의 지점을 제공하는 역사교양서가 될 것이다.


조선의 힘 VS 조선에 대한 오해 : 있는 그대로 성찰하기

이 책 <조선의 힘>이 가장 강조하는 점은 ‘있는 그대로’의 조선을 다시 읽기, 혹은 기존의 조선시대 인식에서 벗어나 조선을 다르게 보기이다. 한마디로 조선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요소를 정확하게 나눠서 살펴봄으로써, 조선에 대한 무지와 왜곡에서 벗어나자는 뜻이다.
무엇보다 조선 500년 왕조를 이끈 역동성은 그것대로 온전히 인정해주고, 편견과 억측으로 인해 왜곡된 조선에 관한 오해들은 그것대로 제자리를 잡아주는 일이 필요하다. 조선은 무력적 통치보다는 언제나 문화적 다스림을 중시하고, 역사적 정당성을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실록을 기록했다. 또한 국가의 법과 개인의 도덕률을 조화시키려고 했고, 백성들에게 가정 절박한 민생문제를 제도적으로 풀기 위해 시스템을 혁신하려고 했다.
따라서 이런 조선의 저력을 이제 다시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근대는 모두 잘못된 과거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과거를 과대평가해서도 안 되지만, 단지 옛날이라는 이유만으로 터무니없이 폄하해서도 안 된다. 동시에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조선에 관해 왜곡된 역사적 해석과 평가도 반드시 경계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래야만 조선의 역동성을 읽는 일도, 조선에 대한 오해를 푸는 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힘 : 문치주의, 실록, 강상, 대동법이 지닌 저력

조선이 지닌 역동성을 발견하는 일은 조선이라는 두터운 지층을 탐사하는 일이다. 이는 우리의 과거가 쌓아온 역사적 사실들을 복기하는 일이자, 동시에 오늘의 우리를 긍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닌 문화적 유산의 힘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서는, 우리의 과거도 현재도 결코 제 얼굴을 찾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우선 500년 이상 지속했던 조선 문명에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 있었고, 그것에는 몇 가지 중심축이 있다고 강조한다.
1장 <문치주의의 꽃>은 조선의 제도와 사상을 이끈 핵심에 문치주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문치주의는 특히 왕의 교육을 담당한 경연經筵, 역사적·정치적 사건에 대한 비평과 탄핵을 맡은 언관言官, 그리고 정확한 역사기록을 맡은 사관史官이 중심이 되었다. 조선은 무력과 폭압의 유혹을 떨치고 왕조를 문명적인 방법으로 대대로 전수하고 유지하기 위해, 글과 교육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나의 제도가 얼마나 책임성이 있는가는, 그 권한과 권력의 ‘관리 방법’에 달려 있다. 문치 즉 문화적인 다스림이 그 어떠한 무력적 통치보다 강하다는 것을 조선은 잘 알았다. 제도와 사상의 만남, 권력과 문화의 긴장, 바로 그 균형 속에서 조선은 유지되었다.
2장 <실록, 그 돌덩이 같은 저력>은 위의 문치주의 3대 ‘트로이카’ 중 사관들이 남긴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거대한 역사 인프라에 대한 이야기다. 실상 <실록>이라는 기록은 조선시대의 유산 가운데 가장 사람들에게 익숙한 대상이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제작 과정이나 의미에 관해서는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실록은 하나의 시스템에 어떻게 역사적 긴장과 사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문화적 인프라이다. 조선이 왜 그토록 실록이라는 기록과 그것을 편찬하는 데 막대한 힘을 들였는지에 대해 상세하고 재미있게 소개했다. 역사라는 거울의 힘을 통해 자기시대를 반성하고자 했던 조선의 실록 정신은 오늘날의 한국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점이기도 하다. 실록 없이 조선 문명은 결코 생각할 수 없다.
3장 <헌법과 강상>과 4장 <대동법, 혁신하는 시스템>은 조선이라는 커다란 문명이 법률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를 어떤 구조와 체제 속에서 해결하고자 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조선은 오늘날 헌법에 해당하는 <경국대전>을 중심으로 정부를 조직했다. 그것이 바로 법치法治이다. 그리고 비공식적인 일상적 삶에 관해서는 <사서四書>라는 유교경전을 중심으로 공동체 생활의 규범을 잡아나갔다. 이것이 바로 예치禮治이다. 여기에서 공식적인 법과 사적인 도덕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던 조선사회 시스템의 힘을 엿볼 수 있다. 이 글은 법과 규범에 관한 과거와 현재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데도 매우 유용하게 읽힐 것이다.
‘대동법’은 오늘날의 말로 바꾸면 “골치 아픈 민생문제, 특히 세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한 정책이었다. 현실과 괴리된 세금 부과에 신음하는 백성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풀어주기 위한 노력, 이는 오늘날 정부가 풀어나가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200년에 걸친 조선의 대동법 추진 과정은 과연 국정 시스템의 혁신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대동법 추진 주체에 대한 기존의 오해를 바로잡고, 이른바 ‘국가정책’이란 무엇인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조선에 대한 오해 : 조선 성리학, 광해군, 당쟁, 단종(과 사육신)

5장 <오래된 미래, 조선 성리학>은 조선의 정신을 관통하고 있는 성리학에 대한 글이다. 성리학 혹은 주자학은 종종 조선을 망국에 이르게 만든 원흉으로 지탄받곤 한다. 주로 공리공론만 일삼으며 현실 문제를 도외시한 학문으로 오해받고 있지만, 저자가 발견한 성리학은 ‘중용中庸과 민民’을 키워드로 하는 매우 일상적인 학문이었다. 거기에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이 가득하고, 퇴계나 율곡을 위시한 우리의 위대한 사상가들을 낳은 모태 정신이 있다. 비록 후대에 이르러 당리당략에 의해 왜곡된 적도 있지만, 그 기본 정신의 소중함은 지금의 철학이나 사상에 비해서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특히 이 책은 성리학의 일상성에 주목하면서, 조선 사상사의 정통과 이단, 조선 성리학과 양명학, 성리학과 실학 등 기존 조선사상사의 논의 중에서 다시 성찰해야 할 과제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6장 <부활하는 광해군>은 광해군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를 다루었다. 특히 6장과 7장은 조선에 대한 전도된 표상의 사례들을 다루는 데 중점을 두었다. 흔히 실용주의 외교의 대표적 사례로 등장하는 광해군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면서 저자는 경악했다. 물론 그 동안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광해군을 띄우기 위해 동원된 사실과 논리의 왜곡이 너무나 심각했다는 것이다. 사료의 잘못된 해석, 그에 따른 아전인수 격인 주장 등을 통해 광해군 원래의 실체는 사라지고 훌륭한 임금으로 ‘부활했다’는 것이다. 비록 관심이나 가치관에 따라서 생긴 관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관점의 차이가 사실과 논리의 왜곡에 의해 빚어졌다는 점은 통렬히 비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근거와 상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광해군 시대에 대한 이해는 조선시대를 보는 관점을 규정하는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7장 <당쟁과 기에 대한 오해>는 6장의 연장에서 사실과 논리에 왜곡과 오류가 있는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여러 매체를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선악을 단순하게 나누는 ‘콩쥐/팥쥐’ 구도와 무척 닮아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이 빚어내는 무수한 편견과 왜곡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식민주의에 기반한 당쟁 비판, 주자학을 통섭하지 못한 주리?주기론 등도 단순한 이분법이 낳은 폐해들이라 할 수 있다. 부록으론 한겨례 신문에 실렸던 ‘이덕일과의 논쟁’ 두 편을 함께 덧붙였다.
8장 <역사 바로세우기 _ 단종과 사육신>에서는 단종과 사육신의 복권을 다뤘는데, 이 시기는 다름 아닌 장희빈과, 서인(노론)과 남인이 엎치락뒤치락했다던 환국換局이 등장하는 숙종 때였다. 점차 ‘망해가는’ 것으로 치부되는 시기에 이르기까지 조선 식의 ‘역사바로세우기’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200년이 훨씬 더 걸린 이 쾌거는 ‘옳은 것’을 공인하기 위한 조선 지식인들의 긴 여정으로서, 사실에 기초한 역사의 복원을 이뤄낸 기념비적 사건이기도 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흔히 ‘냄비근성’이라 하여 쉽게 과거를 잊는 성향이, 결코 우리들의 유전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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