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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전등신화

김시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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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금오신화; 전등신화/ 김시습; 구우 지음; 김수연; 탁원정; 전진아 엮음
개인저자 김시습= 金時習, 1435-1493
구우= 瞿佑, 1341-1427
김수연= 金秀燕, 편
탁원정= 卓元姃, 편
전진아= 全眞娥, 편
발행사항서울: 미다스북스, 2010
형태사항304 p.: 채색삽도; 23 cm
총서명동아시아 고전 엮어읽기
ISBN 9788989548911
일반주기 색인수록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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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1 1110823 811.34 김59ㄱ 2010/ K 2관 5층 일반도서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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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110822 811.34 김59ㄱ 2010/ K 2관 5층 일반도서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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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서양에만 멋스럽고 고풍스럽고 환상적이고 우아하면서도 은유와 상징이 가득한 고전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 고전에도 이런 작품이 있으니, 바로 매월당 김시습의 ≪금오신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자 한문소설인 ≪금오신화≫. ≪금오신화≫가 세상에 나오자 유학자 김인후와 송시열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은 열광하였고, 퇴계 이황은 ‘괴이함’을 비판했으나 이 또한 열독의 증거이다. 이는 불과 한 세기 전 중국에서 ≪전등신화≫가 들어왔을 때 일으킨 붐과 같은 것이었다. 이들이 일본과 베트남으로 전파되면서 그 영향력은 한층 증폭되었으니 가히 동아시아 전기소설의 흥성기를 가져온 장본인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집으로 평가되고 있는 ≪금오신화≫와 원말명초의 전기소설집 ≪전등신화≫의 관계는 긴밀하다. 편제가 유사할 뿐 아니라, 김시습 스스로 <전등신화를 읽고題?燈新話後>라는 독서후기를 남기고 있으니 ≪금오신화≫에 미친 ≪전등신화≫의 영향을 온전히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금오신화≫가 ≪전등신화≫의 단순한 모방이라는 비판과 주체적 수용을 통한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걸작이며 수작이라는 칭찬 사이에서 그 관계는 여전히 모호하기만 하다. ‘동아시아 고전 엮어 읽기’가 ≪금...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서양에만 멋스럽고 고풍스럽고 환상적이고 우아하면서도 은유와 상징이 가득한 고전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 고전에도 이런 작품이 있으니, 바로 매월당 김시습의 ≪금오신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자 한문소설인 ≪금오신화≫. ≪금오신화≫가 세상에 나오자 유학자 김인후와 송시열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은 열광하였고, 퇴계 이황은 ‘괴이함’을 비판했으나 이 또한 열독의 증거이다. 이는 불과 한 세기 전 중국에서 ≪전등신화≫가 들어왔을 때 일으킨 붐과 같은 것이었다. 이들이 일본과 베트남으로 전파되면서 그 영향력은 한층 증폭되었으니 가히 동아시아 전기소설의 흥성기를 가져온 장본인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집으로 평가되고 있는 ≪금오신화≫와 원말명초의 전기소설집 ≪전등신화≫의 관계는 긴밀하다. 편제가 유사할 뿐 아니라, 김시습 스스로 <전등신화를 읽고題?燈新話後>라는 독서후기를 남기고 있으니 ≪금오신화≫에 미친 ≪전등신화≫의 영향을 온전히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금오신화≫가 ≪전등신화≫의 단순한 모방이라는 비판과 주체적 수용을 통한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걸작이며 수작이라는 칭찬 사이에서 그 관계는 여전히 모호하기만 하다. ‘동아시아 고전 엮어 읽기’가 ≪금오신화≫와 ≪전등신화≫를 시작점으로 삼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인뿐 아니라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작품이며 이미 일반 대중에게까지 둘의 긴밀한 관계를 인정받고 있지만 실체를 손쉽게 확인하기 어려웠던 답답함을 속 시원하게 풀어보려는 것이다. 문학은 독자가 읽고 느끼며 판단하며 구축해가는 세계이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은 이를 위해 준비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본격적인 고소설을 꽃피운 원류, '금오신화'
동아시아 전기소설의 붐을 일으킨 바로 그 작품, 전등신화!
한국인의 고전, 조선인의 감수성과 영혼이 숨 쉬는 근대소설의 효시!


1. ≪금오신화≫의 학술적 가치에 대하여
≪금오신화≫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책이다. 철이 들고 한국문학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 순간부터 그것은 자랑스러운 한국 최초의 소설로 우리 안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익숙한 ≪금오신화≫를 펼쳐보면 매우 낯설고 신비한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과의 조율에 능숙하지 못하여 평생을 방랑하다 생을 마친 작가 김시습의 운명을 닮듯 때론 괴이하고 우울하지만 그 안에는 반천 년 뒤에 자신을 알아줄 누군가를 꿈꾸는 욕망이 꿈틀댄다. 그 욕망이 ≪금오신화≫가 태어나고 5백 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매료시키는지도 모른다. ≪금오신화≫보다 일 세기 앞서 지어진 중국의 ≪전등신화≫ 또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그것은 ≪금오신화≫를 언급하는 자리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거론되며, 한국은 물론 일본과 베트남 등 동아시아 각국의 소설사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 고전소설이기 때문이다.

2. 조선 선비들이 열독한 바로 그 소설, 금오신화!
≪금오신화≫는 한국인의 고전이다.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금오신화≫는 한국 최초의 소설일 뿐 아니라 가장 잘 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작가 김시습은 학식과 인품으로 한국 지성사에 우뚝한 분이다. ≪금오신화≫는 문학작품이다. 작가가 작품을 쓰는 목적은 독자에게 널리 읽히는 데 있다. 이는 현대문학뿐 아니라 고전문학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 고전작품은 독자에게 읽히기보다는 연구자의 연구 대상에 머물러 온 감이 없지 않았다. ≪금오신화≫가 그 대표적 예이다. 원문이 난해한 한문으로 되어 있고, 내용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환상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을 언제까지나 연구실에만 가두어 둘 수는 없다. 그것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 작품을 만들어 우리에게 남겨 준 작가 김시습의 뜻에 거스르는 일이다.
'금오신화'의 소재는 귀신, 염라왕, 용궁 등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을 넘나든다. 신라 말, 고려 초에 창작된 전기傳奇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전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총 다섯 편의 단편소설은 귀신과의 사랑, 염라왕과의 토론, 용궁에서의 생활 등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세속을 등진 이의, 삶을 초월한 듯한 이 소설에는 극락왕생의 해피엔딩이 없다. 그 속엔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이들이 바라보는 삶의 우울함이 깔려있다.
다섯 작품 모두 새로운 만남이나 세상의 인정을 갈망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원하던 만남을 이루거나 인정을 받게 되지만 이는 모두 비현실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현실에 돌아온 후에는 결국은 다시 혼자 남거나 세상을 등지게 된다. 그러나 이 비극적 결말은 오히려 현실적인 문제들을 환기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소통이라는 장치는 환상을 통해 새로운 미감을 낳는다. 특히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시들은 주인공들의 내면을 표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작품 전체에 우아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3. 등불의 심지를 잘라 불 밝히고 밤새 읽을 정도로 재미나는 새로운 이야기!
≪전등신화≫는 명대 초기에 나온 단편문언소설집이다. 중국문언소설의 발달은 위진남북조의 지괴소설에서 당대와 송대의 전기소설로 이어지는데 ≪전등신화≫는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새로운 문언소설의 붐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것은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베트남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전체분량은 4권으로서 각권마다 5편의 고사가 실려 있고 부록 1편을 합하면 21편에 이른다. 구우의 자서에서는 “일찍이 고금의 괴기지사를 편집하여 40권의 전등록을 지은 바 있다”고 했으니 오늘날 그 일부만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 오래전에 없어진 족본足本이 일본에서 발견되어 새로 번각飜刻함으로써 오늘날 활용되고 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용궁을 찾아가 글을 써주고 막대한 재산을 얻거나 죽은 혼백과 사랑을 나눈 얘기, 염라대왕에게 잡혀갔다 온 얘기, 직녀신을 만나 비단을 받아오는 얘기 등으로 전통적인 지괴, 전기의 명맥을 이어 훗날 청대 ≪요재지이聊齋志異≫로 전승시키게 된다.

4. 두 작품의 학술적 가치 - 동아시아 전기소설의 효시이자 붐을 일으킨 작품!
≪금오신화≫와 ≪전등신화≫를 한 데 묶은 이 책의 출간이 더욱 뜻 깊은 것은 한·중 학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진 점이다. 이 책을 구상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저자 가운데 한 분이 중국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칠 기회를 가졌고, 중국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서로 협력하는 계기를 마련해 놓았다. 작품을 번역하는 데는 물론이고 책의 체제와 장정을 꾸미는 일에 있어서 두 나라 학자들이 보여준 협력은 이 책을 맛깔스럽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앞으로 우리 문학연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모범적 사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금오신화≫는 5백 년의 시간과 한국이라는 지역의 벽을 넘어 세계의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의 구성

≪금오신화≫와 ≪전등신화≫는 원래 당시 동아시아 공용어였던 한문으로 쓰였다. 역자들은 그것을 최대한 지금의 독자들에게 편안한 말로 바꾸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21편의 ≪전등신화≫ 수록 작품 가운데 ≪금오신화≫의 5편과 짝으로 자주 거론되는 작품을 뽑아 나란히 두어 비교하여 보기 쉽게 하고, 나아가 원래 문장의 맛을 음미하려는 독자를 위해 원문을 부록으로 두어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예스런 맛을 살리면서도 지루함을 덜기 위해 삽도도 첨가하였다. 이 책에서 역자들은 현대의 독자들이 ≪금오신화≫를 ‘살아있는 고전’으로 만날 수 있도록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우선 현대역의 과정에서, 고전 번역에서 관례처럼 되어 있는 각주를 없애고 본문만으로 작품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고전 번역의 가장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실현한 사례가 될 것이다. ≪금오신화≫와 ≪전등신화≫를 한 자리에 실어놓음으로써, 말로만 듣던 두 작품의 내용을 독자들 스스로 확인해 볼 수 있게 한 것도 의미 있는 시도이다. ≪금오신화≫의 다섯 작품과 그에 상응하는 ≪전등신화≫의 작품을 대비해 보면서 우리 문학의 고유성과 세계성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했다. 작품의 들머리에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작품 중간 중간에 삽화를 넣어 고전 읽기의 딱딱함을 녹여 주고, 작품 뒤에 붙인 간략한 해설, 작품의 공간, 시대 배경 및 관련 고사에 대한 소개는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도와준다.

각 작품의 특성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등목취유취경원기?穆醉遊聚景園記
두 작품은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결말의 기본 서사에서 유사한 양상을 보이면서도 그 세부에서는 여러 차이점을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죽은 여인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먼저, <등목취유취경원기>에서는 첫 만남의 순간에서부터 여인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에 비해 <만복사저포기>에서는 결정적으로 보련사에서 대상을 치르는 순간까지는 사실 확인이 보류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체가 의심스럽고 모호한 여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3일에 지나지 않으며 함께 보낸 공간도 여인이 임시로 묻힌 개령동이다. 이에 비해 처음부터 혼백이라는 것이 명시된 <등목취유취경원기>에서는 여인이 이승의 존재로 있을 수 있는 시한인 3년을 함께 살고, 그 공간도 여인의 무덤이 아닌 등목의 고향집이다. 이런 차이로 인해, 혼백과의 만남과 이별이 현실인 듯 아닌 듯, 꿈인 듯 아닌 듯,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 듯 아닌 듯한 전기적 미감은 <만복사저포기>에서 좀 더 짙게 묻어나온다.
더불어 고향과 가족 친지가 있는 등목의 풍류적 삶과 사고무친 양생의 고독한 삶, 궁녀로서못다 한 남녀의 정을 이루기 위해 나타난 혼백과 전쟁터에서 정절을 지키다 왜구에게 죽임을 당한 원혼 등을 대비해 읽어보면 그 만남의 절절함과 이별의 비감 또한 <만복사저포기>에서 좀 더 진하게 배어나온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주인공들의 초월적 사랑과, 여인을 떠나보낸 이후 그 슬픔과 허무함을 다스리지 못하고 산으로 들어가 ‘부지소종不知所終:어디에서 일생을 마쳤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한 남성 주인공들은 두 작품 모두 한결같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취취전翠翠傳
두 작품은 모두 남녀가 자유의지로 사랑하고 혼인을 성취했다는 점, 혼인 후 전란으로 인해 이별하고 재회한다는 점, 그리고 남녀 주인공의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공통된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여주인공의 성격과 작품이 환기하는 미감에서 차이점이 드러난다. 혼인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이생규장전>에서는 최씨가 주도적인 데 비해 <취취전>에서 취취는 소극적으로 그려진다. 먼저 유혹한 것도 최씨요, 문제가 될 경우 모든 것은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한 것도 최씨이다. 심지어 이생을 방으로 이끌며 사랑을 이루자고 제안한 것도 바로 최씨이다. 그러나 취취는 부모가 혼삿말을 꺼냈을 때 김생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주장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김생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있다. 두 여인의 대비적인 모습은 전란 후 이별과 재회에서도 드러난다. 최씨는 정절을 지키기 위해 도적에게 저항하다 목숨을 잃지만 취취는 이 장군의 사람이 되어 목숨을 부지한다.
또한 결말부에서 최씨가 죽고 뒤를 이어 이생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김생이 죽자 취취도 따라 죽는다. 이 부분까지는 두 작품이 매우 닮아 있다. 그러나 <취취전>은 단 한 번의 재회 이후 김생과 취취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으나 죽어 나란히 묻히고 영혼이 함께 하는 모습을 취취의 부친 앞에 드러내 보임으로써 살아서 못 이룬 사랑을 저승에서 이어갈 것이라는 위안을 준다. 이와는 달리, <이생규장전>은 행복한 재회 후 다시 저승으로 돌아간 최씨, 그리고 그녀를 잃은 슬픔에 목숨마저 놓았던 이생을 통해 가슴 저린 여운을 남기고 있다.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감호야범기鑑湖夜泛記
홍생과 성영언이 모두 가을밤 천상의 여인을 만나, 그녀들의 회포를 듣고 함께 담론을 편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유사한 구조를 취한다. 그러나 홍생과 기씨녀의 만남은 평양의 부벽정이라는 현실적 지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반면, 성생과 직녀는 인간세계와 8만 리나 떨어진 은하수라는 비현실적 천상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홍생의 경우, 먼저 부벽루에서 고구려의 흥망에 대해 맥수지탄을 노래한 시를 읊자 그것에 감응한 천녀가 현실계로 내려오는 데 비해, 성생은 인간세계에서의 오명을 씻고자 하는 직녀에 의해 은하수로 인도되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된다.
천녀와 헤어진 후의 남자주인공이 모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신선이 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의 결말구조 또한 유사하나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상이하다. 홍생이 죽음이라는 인간세계와의 결별과정을 통해 천상의 종사관이 되고 그 결과 기씨녀에 대한 홍생의 상사병이 치유될 것이 암시되는데, 이것은 지상에서는 그가 원하는 이상적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반면 성생은 사라진 후 지상의 회계산에서 신선처럼 사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다. 성생은 분명한 이유 없이 배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리는데 이것은 직녀를 통해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진실이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즉 현실에서 진리로 여겨지는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게 된 순간 그는 더 이상 현실에 머물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천상세계로 편입되지 않은 것은 아무런 정욕도 존재하지 않는 천상도 그가 꿈꾸는 이상세계는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영호생명몽록令狐生冥夢錄
두 작품은 꿈을 매개로 주인공들이 저승에 가게 되고, 그곳에 가서 평소에 품었던 의혹이나 불만을 해소하게 되었으며, 꿈속에서 있었던 일이 꿈을 깬 이후의 현실과 연계되는 등 서사의 기본 골격이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저승 체험의 구체적 양상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먼저, 저승 형상에서 <남염부주지>의 경우 박생이 염부주에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염부주가 형상화되고 있는데, 나라 자체가 쇠와 불로 주조된 거대한 지옥세계로 그려지고 그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묘사되고 있다. 이에 비해 <영호생명몽록>에서는 영호생이 갇힐 뻔했던 여설옥을 비롯해, 판결을 받고 풀려난 후에 관람하게 된 세척, 오국지문 등 이승에서 지은 죄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지옥의 유형들이 명시되거나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두 작품 모두 지옥을 중심으로 저승이 형상화되고 있지만, <영호생명몽록>의 지옥이 불교에 기반한 전통적인 지옥 관념과 흡사한 공간인 데 비해, <남염부주지>의 지옥은 염부주라는 하나의 새로운 공간으로 창출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염왕과의 문답이나 진술서를 통해 쟁점이 된 내용들 또한 차이를 보인다. <남염부주지>의 경우는 박생이 평소 지니고 있던 귀와 신에 대한 해석, 천당과 지옥 그리고 윤회의 존재 등에 대한 문답뿐만 아니라 역대 정치와 관련하여 통치자의 덕목에 대한 문답까지 이루어지고 있으며, 분량 또한 전체 서사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영호생명몽록>의 경우는 영호생이 저승에 잡혀 오게 된 바로 그 문제, 즉 저승의 화와 복에 대한 응보와 처벌이 공명정대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만 다루어지고 자연히 그 비중도 작다.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
닮은 듯 다른 공간에서 펼쳐지는 두 이야기는 상량문을 지어주고 잔치를 구경한 뒤 보답을 받고 돌아온다는 서사전개의 틀은 비슷하지만 <용궁부연록>의 경우에는 잔치의 장면이 매우 자세하게 펼쳐진다. 특히 <수궁경회록>에서 글을 짓는 사람은 여선문으로 국한되지만 <용궁부연록>에서는 용왕이 직접 노래를 부를 뿐 아니라 초대된 다른 신들과 곽개사나 현선생과 같이 의인화된 수중 생물들까지 글을 지어 화답한다.
잔치가 끝나고 돌아온 뒤의 이야기가 또 닮은 듯 다르게 되어 있다. 여선문은 전별선물을 상인들에게 팔아 부자가 되고 한생은 꼭꼭 감추어 간직한다. 이들의 경험은 매우 특수한 것이며 현실적 체험이라기보다는 자신들만의 사유체계 안에서 경험한 일이라 할 것인데 그렇기에 이들이 받아온 전별선물은 그들의 상상적 체험에 대한 현실적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선문이 그것을 시장에서 팔았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현실적 가치체계로 치환하려 했음을 의미하고, 한생이 보배들을 감추어 둔 것은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으로 세상과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사람이 모두 궁극적으로는 세상의 이익과 명예에 마음을 두지 않게 되지만 여선문이 세상과 소통하려다 결국 세상을 부정한 존재라면 한생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존재로 보이는 것은 이러한 차이 때문이다.
사실 한생은 용궁을 경험했기 때문에 세상의 이익과 명예에서 마음을 거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이미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존재였기 때문에 용궁을 경험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용궁부연록>에서는 다른 세상의 존재들과 마음을 주고받는 장으로서의 잔치가 그토록 공들여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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