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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 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

Berger, Peter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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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 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 / 피터 L. 버거 지음 ; 노상미 옮김
개인저자Berger, Peter L., 1929-2017
노상미, 역
발행사항서울 : 책세상, 2012
형태사항367 p. : 삽화 ; 22 cm
원서명Adventures of an accidental sociologist
ISBN9788970138107
일반주기 색인수록
본서는 "Adventures of an accidental sociologist : how to explain the world without becoming a bore. c2011."의 번역서임
주제명(개인명)Berger, Peter L.,1929-2017
일반주제명Sociologists --United States --Biography
Sociology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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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지루하지 않게 세상을 설명하는 법
사회학은 우리가 사회의 꼭두각시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꼭두각시와는 달리 고개를 들어 우리가 매달린 줄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발견이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다.

사회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은 들어봤음 직한 명저《사회학에의 초대》, 그리고 이 어지러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믿음이 아니라 의심이라고 주장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의심에 대한 옹호》의 저자 피터 버거의 자서전이다. 하지만 여느 자서전과는 다르다.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이제는 현존하는 사회사상가 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손꼽히는 80대 노학자의 인간 세상 탐험기임과 동시에 그의 사상과 저작들의 연대기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지적 여정을 적당히 지적이면서 굉장히 유머러스하게, 적당히 편파적이면서 굉장히 솔직하게 펼쳐 보인다.
역자 노상미는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이 사회학도든 아니든, 사회학에 관심이 있든 없든 이 책을 읽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안 될 것”이라 말한다. 심지어 사회학이 뭐하는 학문인지 모른다 해도 말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들이...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지루하지 않게 세상을 설명하는 법
사회학은 우리가 사회의 꼭두각시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꼭두각시와는 달리 고개를 들어 우리가 매달린 줄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발견이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다.

사회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은 들어봤음 직한 명저《사회학에의 초대》, 그리고 이 어지러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믿음이 아니라 의심이라고 주장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의심에 대한 옹호》의 저자 피터 버거의 자서전이다. 하지만 여느 자서전과는 다르다.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이제는 현존하는 사회사상가 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손꼽히는 80대 노학자의 인간 세상 탐험기임과 동시에 그의 사상과 저작들의 연대기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지적 여정을 적당히 지적이면서 굉장히 유머러스하게, 적당히 편파적이면서 굉장히 솔직하게 펼쳐 보인다.
역자 노상미는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이 사회학도든 아니든, 사회학에 관심이 있든 없든 이 책을 읽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안 될 것”이라 말한다. 심지어 사회학이 뭐하는 학문인지 모른다 해도 말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들이 모여 살며 벌이고 벌어지는 일들”이며, “자서전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피터 버거의 지적 회고록을 통해 온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온갖 일을 벌이며 세계를 탐험하는 매력적인 사회학자를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인간과 세상을 설명하는 사회학자의 시도가 ‘지루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본보기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실수로 사회학자가 되다?
나의 지적 이력은 착각에서 시작됐다.


세계적 석학인 피터 버거가 ‘어쩌다 실수로 사회학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루터파 사제가 되려다 막 이주한 미국 사회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사회학이 뭔지도 모르고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시작된 사회학과의 만남은 평생의 업으로 이어졌고, 그의 인생을 다채로운 인간 세상의 파노라마를 여행하는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만들어놓았다.
피터 버거는 미국 사회를 알기 위해, 미국 사회과학계의 변방이던 사회 조사 뉴스쿨〔1919년에 미국 학계의 분위기를 답답하게 여긴 망명 지식인들이 세운 학교. 뉴스쿨 설립 멤버로 존 듀이, 소스타인 베블런, 앨빈 존슨, 레비스트로스 등이 있다〕에서 ‘사회학자 발자크’라는 강의를 수강한다. 하지만 그가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은 발자크 소설 열 권 정도와 19세기 프랑스 사회였다.

나는 내가 미국 사회학을 배우는 줄 알았다.


그는 그 강의를 통해 미국 사회에 관해 배우는 대신 세상을 사회학적으로 바라보는 데서 오는 흥분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인간이 하는 온갖 짓들에 대한, 특히 상류 사회에서 감추고 부정하는 행위들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본질적으로 불경스럽고 폭로적이고 전복적인 시각을 말이다.

발자크가 진정 도시의 비밀을 캐려고 되도록 밤에 파리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살롱과 관청과 상점과 선술집과 매음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해하고자 했던 사람이었는지 아니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내 마음속에 새겨진 사회학자의 상이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거기에 실렸던 내 젊음의 혈기는 누그러졌어도 그 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발자크의 캐리커처를 보고 있으면 사회학을 공부하던 초기에 얻은 또 다른 통찰이 떠오른다. 좋은 사회학은 좋은 소설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좋은 소설을 읽으면 사회에 관해 많이 알 수 있으니까.

그때 이후로 사회학자로서 피터 버거가 다뤄온 문제들, 만나온 사람들, 겪어온 일들을 펼쳐 보인 이 지적 이력의 궤적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발자크적 모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자서전은 마치 한 편의 좋은 소설과 같다.

― 글로벌 트레킹 사회학자

정말 미친 듯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어떤 해에는 몇 개월 만에 지구를 두 바퀴나 돌기도 했다. 연대기적으로 나열해보려고도 했는데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뻔한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이다. (“엄마, 여름 방학 동안 내가 뭘 했는지 알아요? 도쿄에 갔어요!” 같은 장은 필요 없으니까.)

앞서 소설이라고 했는가? 한 편의 여행기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이 넘치는 그는 ‘사회학적 관광’을 자신의 사회학 방법론 중 하나로 삼고, 온 세계를 탐험한다. 일리히의 초청을 받아 멕시코의 쿠에르나바카로, 오스트리아의 빈 발전 연구소의 국제 실무 팀을 이끌게 되면서는 아프리카의 세네갈과 탄자니아로, 라틴 아메리카의 페루와 브라질로, 그리고 이란의 테헤란, 인도, 홍콩, 부다페스트로,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일본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모두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곳들을 다니면서, 그는 단지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학적 탐구를 수행한다. 현장에 기초한 연구 방법론을 충실히 구현하며 살아온 그의 역동적인 지적 여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걸어 다니기만 해서 얻은 건 아니다……직접 그곳으로 가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는 것이 중요하다……어떤 곳에 관해 자료를 읽고 나면 그곳으로 가서 가능한 한 현지 사정에 정통한 이들을 많이 만나고, 그런 다음 그곳의 현실이 자연스럽게 의식 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놀랍게도 짧은 기간에 아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생생한 경험이 넓혀주는 통찰은 안락의자에서 얻는 통찰보다 훨씬 강한 설득력을 지니는 법이다. 괴테가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이론은 회색이지만 생명의 황금나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쿠에르나바카에서는 일리히와 생활하고 토론하며 근대성에 관해 서로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함께 우정을 나눈다. 세네갈에서는 농부 활성화 프로그램을 조사하다가 시골 마을 길모퉁이에서 누군가 나무 벤치 위에 올라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 같은 밉살스러운 보조 장치 없이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강한 동질감을 느끼고 가르치는 데 큰 자신감을 얻기도 한다. 탄자니아의 우자마 마을 운동에서 전통과 신전통주의의 관계를 고찰하며, 멕시코 푸에블라의 촐룰라 피라미드를 보고는 그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신화와 그 신화를 만든 자들에 의해 지배당한 이들이 치러야 했던 엄청난 희생을 이야기하면서 성장의 신화와 혁명의 신화를 분석하고 그 신화들은 거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외에도 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칠레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글로벌 트레킹 사회학을 실천한다. 피터 버거의 여행기에서는 여행지의 풍경보다도 여행지에서 겪은 에피소드들이 풍부하게 소개되며, 그 경험들에 얽힌 사회학적 통찰을 엿볼 수 있다.

― 사회학이 지루하다?

어떤 사람이 의사한테서 아무래도 앞으로 일 년밖에 못 살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그 사람은 그 끔찍한 소식을 듣고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의사한테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가 말했단다.
“사회학자와 결혼해서 노스다코타〔미국 대평원의 북쪽에 있는 주〕로 가세요.”
“그럼 낫나요?”
“아니요, 일 년이 아주 길게 느껴질 겁니다.”

그토록 흥미진진한 사회학이 어쩌다 지루한 학문이 되어버린 것일까? 피터 버거는 최근 수십 년간 사회학이 두 가지 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한다. 정량적 방법에 적합한 현상이 아니면 연구하려 들지도 않거나 똑같은 구호만 외치는 이데올로기 선전이다. 이 두 가지 질병 탓에 사회학이 갈수록 따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피터 버거는 사회학자에 관한 농담을 하나 더 소개한다.

사회학자 : 제일 가까운 유곽을 찾아가는 데 백만 달러 기부금이 필요한 사람.

《사회학에의 초대》를 읽고 사회학을 전공하게 됐다는 독자들이 피터 버거에게 사회학이 이렇게 지루한 학문인 줄 몰랐다고 하소연(혹은 항의)할 때 피터 버거는 사회학이 꼭 지루한 건 아니라고 답해준다. 사회학은 인간과 인간이 모여 살며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학문이다. 지루할 틈이 있겠는가. 그래서 인간 세상의 거대한 파노라마에 변함없이 끌리는 사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 죽겠는 사람, 그래서 필요하다면 열쇠 구멍이라도 들여다보고 남의 편지라도 훔쳐보는 사람에게 매우 적합한 학문이라고 말한다.
피터 버거는 그런 이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대화 나누는 것을 즐겼다. 그것을 ‘커피하우스’라 일컬으며 학문을 수행하는 방법론으로 사용했다. 오스트리아 빈 발전 연구소에서도, 다양한 전통의 종교학자들을 모아 모임을 만들었을 때에도, 사회학 개념을 실제 정책 분야에 적용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에도, 학제 간 연구를 할 때에도, 책을 쓸 때에도, 커피하우스 방법론은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커피하우스는 세계 여러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한다. 이 ‘커피하우스’와, ‘사회학적 관광’은 세상을 지루하지 않게 설명하는 피터 버거의 사회학 방법론이다. 하지만 방법론보다 중요한 건 본인 스스로 지루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피터 버거가 만약 세계를 걷고 있지 않을 때라면, 커피하우스에서 이 세계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눌 때일 것이다.

― 피터 버거의 다작증이 낳은 책들의 연대기

꽤 오래전에 <여자가 사랑할 때The Pumpkin Eater>(1964)라는 영화가 있었다. 임신하고 있을 때만 행복을 느끼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그 여자는 일단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의 운명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나 역시 그 영화에 나오는 여자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책이었지만.

걷고 이야기 나누지 않을 때의 그는 걷고 이야기하며 깨달은 사회학적 통찰을 글로 썼다. 그는 “작가 슬럼프 같은 건 몰랐다”. 이 책은 피터 버거의 자서전임과 동시에 그가 쓴 책들의 연대기다. 초기작에 속하는《사회학에의 초대》의 제목과 부제의 숨은 뜻을 밝힌다거나 필명으로 발표했던 소설의 후일담을 들려주기도 한다. 안톤 제이더벨트와 함께 쓴《의심에 대한 옹호》, 출간 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자본주의 혁명》, 새뮤얼 헌팅턴과 공동 편집한《진화하는 세계화》, 한국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세계 각국에 번역된《성스러운 천개》,《천사들의 소문》,《희생의 피라미드》,《이단의 시대》, 그리고 일리히와 함께 쓰려다 무산된 후 아내 브리짓 켈너와 처남 한스프리트 켈너와 함께 쓴《고향을 잃은 사람들》, 토마스 루크만과 함께 쓴《현실의 사회적 구성》, 브리짓 켈너와 함께 쓴《가족 전쟁》, 그의 사회학적 철학(혹은 삶의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이 담긴《웃음의 구원성》까지 이 밖에도 수많은 그의 저작들이 연대별로 소개되고 있다. 그 저작들에 얽힌 다양한 사건과 사람은 물론 저작 하나하나에 녹아 있는 그의 사회사상 또한 빠질 수 없다.

― 종교와 정치, 그리고 건강한 의심

신정통주의 신학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자유 루터주의자로 규정했다. 달리 말해 나는 이제 그 어떤 설명도 광적으로 믿지 않게 된 것이다. 내가 계속 고수한 정통파적 신념이라면 사회과학을 소명으로 보는 베버의 입장뿐이었다.

최근 필 주커먼의《신 없는 사회》가 출간되면서 피터 버거가 인용되고 있다. ‘종교적 열정으로 들끓는 시대’, ‘인간에게는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가 있으며, 종교가 바로 그 욕구를 다룬다’ 등의 이를테면 ‘신 많은 사회’에 대한 그의 주장이 논박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터 버거는 신들이 결핍된 세계, 즉 세속화 이론을 먼저 주장한 바 있었다. 후에 신들이 과잉된 세계, 즉 다원화 이론으로 옮겨 가게 되는데, 그렇다고 다원화 이론 이후에 신 많은 사회만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세계의 어느 지역(특히 유럽)은 다른 곳(미국 같은)보다 종교적이지 않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이미 수행한 바 있었다. 그가 수행한 사회학 연구는 언제나 ‘신’이 아니라 ‘인간’에 초점이 있었다. (실수로, 사제가 아니라 사회학자가 된 이후로는 말이다.)

사회학은 분석해서 폭로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급진적이지만, 현실 함축이라는 차원에서는 보수적이라는 원칙을 계속해서 믿고 있다……사회학이란, 사실상 사회 질서에 대한 ‘불안정한 비전’에 이르는 것이다. 바로 그래서 사회학은 모든 제도가 깨지기 쉽다는 것을, 그리고 제도가 급격히 해체되면 독재나 무질서라는 이중의 위험에 봉착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사회는 인간이 만든 세계이므로 우연적이며 유동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학자로서 피터 버거는 본능적으로, 진보나 보수파 양측에서 모두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선택이라고 비난하는 “중도적인 입장(급진적 변화와 완고한 보존 사이의 중간)”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자칭) ‘미제의 앞잡이’로서 제네바에서 열리는 발전권 회의에 참석하기도 하고, 금연 대회에서 담배 회사들의 고문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발전권 회의에서는 ‘착한 경찰’ 역을 하려다 ‘나쁜 경찰’을 요구하는 미국으로 인해 그 시도가 실패한다. 비흡연자이면서도 금연 운동을 비판한 것은 금연 운동이 가정하고 있는 것이 타당한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금연 운동은 사회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회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운동을 처음부터 추적하고 지켜보니 운동 세력은 흡연을 몰아내기를 원하고 관료들은 규제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들 간의 이해관계가 결합돼 과학의 정치적 이용과 요용이 난무하고 그 (과학적이지 않은) 과학을 근거로 대중에게 두려움을 심어 넣고 흡연자나 담배 회사를 악마화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고 비난받아도 언제나 건강한 의심을 견지하면서 상대주의와 근본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해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론에서 오류가 발견됐을 때는 이론의 철회도 주저하지 않았다. “사회학자가 되면 좋은 점은 자신의 이론이 물 밖으로 내던져져도” 재밌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다채로운 인간 세상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리라.

내가 네다섯 살 무렵 생일이었는지 크리스마스였는지, 아무튼 아주 정교한 장난감 전기 기차를 선물로 받았단다. 모형 풍경 사이로 여러 개의 철로와 터널이 설치돼 있고 거기로 기차가 통과하는 그런 장난감이었다. 부모님 말씀이, 나는 이 장난감의 놀라운 기술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고 했다. 심지어는 스위치도 켜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는 기차에 탄 상상 속의 승객들과 얘기를 나누더란다.
그때 이후로 나는 내내 그런 대화를 나눠왔다고 할 수 있으리라. 후회하지 않는다. 아주 재미있었다. 아직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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