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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화유산 청동기 비밀을 풀다 : 다뉴세문경, 비파형 동검, 신라범종 재현기

이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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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한국의 문화유산 청동기 비밀을 풀다: 다뉴세문경, 비파형 동검, 신라범종 재현기/ 이완규 지음
개인저자이완규
발행사항서울: 하우넥스트, 2014
형태사항248 p.: 천연색삽화; 26 cm
ISBN9791185405032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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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이완규의 청동기 문화 재현기(再現記)
찬란한 한국의 청동기문화의 유물들-
다뉴세문경,
비파형 동검,
신라 범종의 비밀을 풀다

장인 이완규, 왜 공구(工具) 놓고 펜을 들었나


장인은 서럽다. 훌륭한 기술이 있어도 학식이 얕은 까닭에 자신의 기술을 제대로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였다. 설령 글을 안다고 해도 “네깐 놈이 뭘 아느냐”며 학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런 탓에 우리민족의 정수라고 일컫는 수많은 문화재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하고, 후손에게도 기술이 제대로 전승되지 않았다.
장인 이완규(경기도 무형문화재, 주성장)는 청동 주물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기술자다. 그는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금동향로를 처음으로 재현해 내었고, 2005년에는 순금 162㎏으로 함평황금박쥐 조형물을 만들었다.
2007년 한국의 7대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국보 제 141호인 다뉴세문경을 재현해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다뉴세문경은 지름 21.2㎝에 삼각형과 사각형, 동심원을 활용한 1만3000개가 넘는 정교하고 섬세한 선이 0.3㎜ 간격으로 그려져 있어 현대의 슈...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이완규의 청동기 문화 재현기(再現記)
찬란한 한국의 청동기문화의 유물들-
다뉴세문경,
비파형 동검,
신라 범종의 비밀을 풀다

장인 이완규, 왜 공구(工具) 놓고 펜을 들었나


장인은 서럽다. 훌륭한 기술이 있어도 학식이 얕은 까닭에 자신의 기술을 제대로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였다. 설령 글을 안다고 해도 “네깐 놈이 뭘 아느냐”며 학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런 탓에 우리민족의 정수라고 일컫는 수많은 문화재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하고, 후손에게도 기술이 제대로 전승되지 않았다.
장인 이완규(경기도 무형문화재, 주성장)는 청동 주물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기술자다. 그는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금동향로를 처음으로 재현해 내었고, 2005년에는 순금 162㎏으로 함평황금박쥐 조형물을 만들었다.
2007년 한국의 7대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국보 제 141호인 다뉴세문경을 재현해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다뉴세문경은 지름 21.2㎝에 삼각형과 사각형, 동심원을 활용한 1만3000개가 넘는 정교하고 섬세한 선이 0.3㎜ 간격으로 그려져 있어 현대의 슈퍼컴퓨터로도 재현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장인 이완규는 갖은 노력 끝에 다뉴세문경을 옛 방식대로 재현해 냈지만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여전히 다뉴세문경은 ‘만들 수 없는 신비한 거울’로 기록하고 있다. 장인이 무시당하는 것은 예나지금이나 똑같다.
그래서 장인 이완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옛 장인들은 글을 몰라 자신의 빛나는 기술을 후손에게 전해주지 못하였다”며 “이런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 나는 공구(工具)대신 펜을 들었다”고 말하였다.
장인 이완규가 선조의 빛나는 유물을 재현해 낸 비밀은 ‘대화’였다. 그는 유물을 보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당시 장인은 어떻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옛 장인과 같은 생각으로 만들어 보면서 유물을 재현해 내었다.
또한 장인 이완규는 청동 유물을 재현해 내면서 일반인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부셔버렸다. 돌에 쇳물을 부으면 가스가 빠져나오지 못해 폭발한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장인은 활석에 조각을 한 뒤 다뉴세문경과 청동검을 만들어내었다. 그간 학자들은 다뉴세문경을 흙 거푸집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청동 주물을 해보지 않은 학자들로서는 이완규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일인 것이다.
필자는 학자들의 오류에 대해서도 매섭게 지적하고 있다. 그는 “학자들이 만들어보지 않고서 생긴 모양이나 재질 등을 보고서 일방적으로 이름을 짓고, 용도를 단정해 버린다”며 “그러면서 제작 과정도 추정해 버리면서 역사에 오류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내가 재현한 간두령(竿頭鈴) 등 이형청동기들은 분명 병장기들인데, 학자들은 이를 제사의식에 사용한 제기(祭器)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간두령을 나무 양쪽에 꽂으면 훌륭한 무기인 봉(棒)이 된다”고 말하였다.
장인 이완규는 청동 유물을 재현하면서 우리 민족이 당시 최고의 청동 문화를 창조해 내었다고 확신한다. 청동 유물은 채광 기술과 합금 기술, 주조기술, 문양 조각 등 어느 것 하나라도 빠지거나 모자라면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청동 유물 제작은 최고의 하이테크였고,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을 막을 수 있는 유물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특히 이완규는 비파형 동검(조선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필자가 1992년 심양박물관 초청으로 중국에 갔을 때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의 무기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였다고 한다. 그는 첨단 무기인 비파형 동검 출토지가 고조선 지배 지역이 되며, 중국이 우리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을 아무리 시도한다고 해도 충분히 막나 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는 심양박물관 학예연구사의 말 속에 답이 있다고 확신한다.
학예연구사는 당시 필자에게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비파형 동검을 중국검이 아닌 ‘조선검’이라고 설명하였다고 한다. “첫째 합금 성분이 달라요. 중국 청동기는 주석이 7~10% 함유되어 있지만 조선 것은 20% 이상 됩니다. 둘째 주조기법도 다릅니다. 중국은 칼을 만들 경우 손잡이도 주물을 같이 붓는데, 조선 것은 칼날과 손잡이를 따로 만들어 조립합니다. 셋째 크기와 문양도 다릅니다. 중국 칼과 창은 조선 것보다 크며 모양도 다릅니다.”
장인 이완규는 “중국 학자가 솔직히 이를 실토할 진데 왜 우리나라 학자들은 제대로 연구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학자들의 분발을 촉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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