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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Naifeh, St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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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 스티븐 네이페,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 지음 ; 최준영 옮김
개인저자Naifeh, Steven, 1952-
Smith, Gregory White
최준영, 역
발행사항서울 : 민음사, 2016
형태사항964 p. : 삽화(일부천연색), 지도 ; 25 cm
원서명Van Gogh :the Life
ISBN9788937432439
일반주기 부록: 판 호흐의 치명상에 관한 기록
본서는 "Van Gogh : the Life. 2011."의 번역서임
주제명(개인명)Gogh, Vincent van,1853-1890. SLSH
Gogh, Vincent van,1853-1890 SLSH Psychology. --
일반주제명Artists --Netherlands --Biography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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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퓰리처상 수상 전기 작가 15 년 연구의 결실,
예술가 이전 한 인간의 정신적 지형도를 펼쳐 냄으로써
판 호흐의 방대한 작품 세계에 열쇠를 제공하는 놀라운 지침서

▶ “우리가 아는 판 호흐를 전면적으로 재고하게 만드는 완벽한 평전!” -《가디언 》
▶ “혁신적이면서도 권위 있는 판 호흐 전기!” -《뉴욕 타임스 》
▶ “낭만적이며 비극적인 판 호흐 신화를 전복한 철저한 보고서.” -《텔레그래프 》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밀밭」(1889)


강렬한 색채와 격정적 필치로 서정적 신비를 이룩한 전례 없는 화가 핀센트 판 호흐의 전기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가 2016년 1월 민음사에서 출간된다. 핀센트 판 호흐는 작품만큼이나 작가의 인생 또한 속속들이 알려져 있을 정도로 오늘날까지 강력한 대중적 사랑을 받는 몇 안 되는 예술가다. 이번 책에서’ 반 고흐’ 라는 귀에 익은 이름 대신’ 판 호흐’ 라는 다소 생경한 명칭을 선보이는 것은 여느 네덜란드 인.지명과 마찬가지로 Van Gogh 역시 네덜란드 표기법에 의거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보다 깊게는 열정과 광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퓰리처상 수상 전기 작가 15 년 연구의 결실,
예술가 이전 한 인간의 정신적 지형도를 펼쳐 냄으로써
판 호흐의 방대한 작품 세계에 열쇠를 제공하는 놀라운 지침서

▶ “우리가 아는 판 호흐를 전면적으로 재고하게 만드는 완벽한 평전!” -《가디언 》
▶ “혁신적이면서도 권위 있는 판 호흐 전기!” -《뉴욕 타임스 》
▶ “낭만적이며 비극적인 판 호흐 신화를 전복한 철저한 보고서.” -《텔레그래프 》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밀밭」(1889)


강렬한 색채와 격정적 필치로 서정적 신비를 이룩한 전례 없는 화가 핀센트 판 호흐의 전기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가 2016년 1월 민음사에서 출간된다. 핀센트 판 호흐는 작품만큼이나 작가의 인생 또한 속속들이 알려져 있을 정도로 오늘날까지 강력한 대중적 사랑을 받는 몇 안 되는 예술가다. 이번 책에서’ 반 고흐’ 라는 귀에 익은 이름 대신’ 판 호흐’ 라는 다소 생경한 명칭을 선보이는 것은 여느 네덜란드 인.지명과 마찬가지로 Van Gogh 역시 네덜란드 표기법에 의거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보다 깊게는 열정과 광기의 화신으로써 죽음까지 불사한 괴팍한 사내라는 판 호흐에 대한 우리의 일면적인 선입관을 연화(軟化)하여, 한 인간의 인생행로를 극진할 정도로 성실히 연구하고 다각도에서 조망함으로써 예술가의 진면목을 완전히 재정의하기에 이르는 원전의 혁신성을 보존하기 위한 편집상 판단이다.

이 책의 저자는 스티븐 네이페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로 『잭슨 폴락: 미국의 전설』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전기 전문 작가다. 이들이 공동 집필한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는 판 호흐 인생에 관한 가장 정밀하고 방대한 보고서인 동시에, 그를 둘러싼 낭만적 신화의 빈틈을 적나라하게 들춘 문제작으로, 권위성과 혁신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에는 그림이든 글이든 끊임없이 표현하지 않고서는 잠자코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었던 핀센트 판 호흐 본인의 방대한 기록(유화는 900점, 서간은 2천 통에 이른다.)뿐 아니라 그가 독서광으로서 읽어 치웠던 수많은 텍스트, 유년 시절부터 화랑 점원 시절까지 스크랩했던 그 시대 명화들의 목록 같은 문화적 레퍼런스에 더해 판 호흐 집안사람들과 친구 및 동료 등 주변인물들과의 정신적.물리적 교류까지 낱낱이 밝혀져 있다. 이렇게 직조된 판 호흐 구심점의 촘촘한 관계망은 단순히 불운한 예술가의 인생을 넘어, 한 예술가의 영감의 원천부터 그의 에너지가 흘러나가 영향을 미친 동시대 문화의 총체적 흐름까지 한눈에 조망할 단서가 된다.

또한 이번 한국판에서 표지로 삼은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밀밭」(1889)은 판 호흐의 말년 시절 그려진 작품으로, “내가 그린 것들 중 가장 탁월한 작품”이라고 본인이 언급할 만큼 흡족해했던 가장’ 판 호흐’다운 수작이다. 불길처럼 흔들리는 들, 타오르는 나무, 소용돌이치는 하늘은 판 호흐 격정의 삶을 대변하면서도, 색상들의 독특한 율동과 오묘한 조화로써 판 호흐 내면의 섬세한 감수성과 일순의 평온을 엿보게 한다.

1. 판 호흐와 그의 그림들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다. 나는 나의 그림과 같다.”

「자화상: 고갱에게 헌정」(1888)


1881년, 화가로서 초년 시절에 그는 벗에게 말했다. “대체로( 화가들 경우엔 좀 더 특별히) 작업만큼이나 그 작업을 행하는 사람에게 나는 많은 관심을 쏟는다네.” 핀센트에게 미술은 그 미술이 항상 동반했던 수많은 편지보다 그의 인생을 좀 더 진실하고 잘(“아주 깊숙이, 무한히 깊숙하게”) 드러내는 기록이었다. 그는 평온과 행복의 모든 파도, 고통과 절망의 모든 전율이 그림 속에서 길을 찾는다고 믿었다. 모든 상심은 애끓는 이미지 속에서 길을 찾고, 모든 그림은 자화상 속에서 길을 찾았다.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을 그리고 싶다. 그리고 내가 그리는 것을 느끼고 싶다.” (……) 누구도 그의 이야기를 모르고서는 그의 그림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핀센트 판 호흐는 선언했다. “나는 나의 그림과 같다.” -본문 61쪽

이 자화상은 단순히 인물의 계급이나 직업을 말하지 않는다. 짧게 깎은 머리칼과 날카로운 시선, 차가운 무채색 배경은 불안정하며 불균형한 작가의 심리 상태를 천연히 보여 준다. 이 자화상은 합류를 권하며 고갱에게 바친 것으로, 여기에는 호흐가 생각하는 극기에 가까운 미술가의 생활 방식은 물론, 동료를 간절히 소망하는 고독한 화가의 날선 긴장이 어려 있다. 이처럼 핀센트 판 호흐에게 있어 미술은 편지보다도 인생을 진실하고 깊숙이 드러내는 기록이다.

베스트팔렌 지역의 작은 마을 호흐에서 시작한 판 호흐 집안은 대대로 예술가와 성직자를 배출해 낸 명문가로, 부르주아적 가치를 숭상하는 가문이었다. 이러한 집안에서 고집스럽고 별난 행동으로 비난받으며, 부모와의 반목을 피할 수 없었던 핀센트 판 호흐는(아버지 도뤼스가 죽었을 때, 판 호흐의 누이는 “ 큰오빠가 아버지를 죽였어!” 라고 공공연히 소리쳤다.) 종교적 열망이 강함에도 설교자로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갈망했던 여성들에게는 번번이 거절당했다. 화가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이웃에게 조롱을 샀고, 동료에게는 외면받기 일쑤였다. 이렇듯 가혹했던 삶의 난류, 고독과 절망은 음악적이며 역동적인 미술을 탄생시켰다. 그가 방해나 간섭 받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자신을 위로해 주는 것은 그림뿐이었고, 위안을 넘어 자기 존재를 증명할 도구로써 미술에 투신했던 만큼 그의 작품 하나하나에는 인생의 질곡 면면이 담기게 된다.

이를테면 아를 시절 동지애로 가득 차 아를의 ‘노란 집’에서 고갱을 기다리던 시절 그렸던 「해바라기」에는 판 호흐의 일방향적인 애정과 강렬한 꿈이, 프로방스 생레미에서 요양하던 시절 그린 「사이프러스나무」(1889)의 구불거리는 녹색 곡선에는 번민과 희망이 뒤얽힌 혼란한 심경이 담겨 있다. 말년 작품 「오베르 교회」(1890)의 청색과 백색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암시하듯 투명할 정도로 창백하고,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 가로가 두 배 긴 캔버스 연작은 고향 브라반트의 지평선에 대한 지극한 향수를 보여 준다. 화가 인생의 분기점마다 그려진 주요 작품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눈부신 등가물을 통해 삶을 자연스럽게 추적하게 돕는다.

2. 판 호흐와 그의 예술가들
“밀레의 작품에는 영혼이 담겨 있다.”

「씨 뿌리는 사람」(1888)
「수확하는 농부가 있는 밀밭」(1889)


워낙 다작했던 그였지만 유독 여러 번 그린 주제가 몇 작품 있다. 그중 하나가’ 씨 뿌리는 사람’이다. 이는 전 시대 미술처럼 단지 숭고한 노동이나 소박한 농촌의 가치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핀센트 판 호흐에게 파종은 기술적으로 뛰어나지 못한 재능에도 아랑곳 않고 쉴 새 없이 붓을 놀려 습작에 습작을 거듭하던 본인의 끈덕진 노력을 상징하는 행위다.(“습작을 만드는 건 파종과 같다. 그리고 완성작을 그리는 건 수확과 같지.” “인생은 파종일 뿐이며, 이곳에서 추수는 없다는 걸 점점 더 분명히 깨닫기 시작한다.”) 수확 역시 자신의 예술을 누군가 이해해 주고 자기 존재까지도 포용해 줄 장래에 대한 강렬한 희구를 보여 준다. 이번 생에는 파종을, 수확은 생 이후로 미뤄질지도 모르겠다던 판 호흐의 냉정한 전망은 예언처럼 적중했다.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은 이렇듯 초년 시절부터 그의 캔버스를 차지했다.(밀레의 작품에 영혼이 있다고 믿은 판 호흐는 밀레가 그린 농민의 검소한 외모에서 오히려 영적 풍요와 지고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이 밖에도 예술의 창작자이기 전에 예술의 가장 적극적인 수용자이며 수혜자였던 판 호흐를 사로잡았던 이미지는 수효를 헤아리기 힘들다. 이를테면 아리 스헤퍼르의 「돌아온 탕아」에 그려진 방랑하는 문제아의 이미지가 그렇다. 고향집에서 아버지의 환대를 받는 따뜻한 풍경에 대한 언급은 그의 자전적인 에세이 『인생 스케치』에는 물론, 몇 차례 기회가 주어진 설교 무대에서도 결코 빠지지 않았다.

「화가 어머니의 초상」(1888)

독서광이기도 했던 판 호흐를 사로잡은 첫 번째 문학은 안데르센의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다. 제 자식을 불행한 삶에 노출시키기보다 죽게 내버려 둔 다정한 어머니의 비극을 가슴에 품은 그는 일생에 걸쳐 모성에 대한 갈망과 결핍을 끊임없이 표출했다.

판 호흐는 늘 자신이 속한 시대보다 이전 시대들이 순수하며 낫다고 생각했기에 역사와 소설에 빠져 지냈다. 힘들지만 숭고했던 시절의 미덕을 그리워했고 무딘 감각의 오늘날을 애통하게 여겼던 것이다. 디킨스나 셰익스피어, 모파상과 졸라에 심취했고, 밀레나 스헤퍼르, 렘브란트의 복제화를 일일이 수집했던 일화들을 보면 전무후무한 화가라 평가되는 판 호흐의 예술적 기민성과 독창적인 상상력이 배움의 열망으로 굶주린 지성과 그 욕구로 흡수해 나간 풍부한 문화적 아카이브에 기반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3. 판 호흐와 그의 모델들
“모네가 풍경화에서 이룬 바를 인물화에서 이루겠다.”

「아를 여인: 책을 보는 지누 부인」(1888 혹은 1889) 「비애」(1882)


고갱의 데생을 바탕으로 채색한 이 작품을 호흐 본인은 물론 고갱도 몹시 마음에 들어 했다. “엄밀히 당신의 데생에 의거한 아를 여인의 초상이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쁩니다. 우리들이 함께했던 나날을 매듭짓는 상징으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좋은 여자를 얻을 수 없다면 나쁜 여자를 택하겠다. 홀로 있는 것보다는 나쁜 매춘부와라도 있는 게 나아.”라고 동생 테오에게 편지했던 핀센트 판 호흐는 사랑했던 애인 신 호르닉을 주제로 「비애」라는 뛰어난 소묘를 남겼다. “헐벗고, 쇠스랑에 찍힌 짐승”으로 묘사된 가련한 여성은 치유될 수 없는 상처, 녹록지 않은 삶의 고통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 밖에도 “가장 뛰어난 모델”이라고 여겼던 지극히 가난하고 병든 노인 자위델란트, 그 시대의 침울하고도 적적한 표정을 대변하는 듯한 초로의 의사 가셰의 초상은 적확한 형태보다는 심정적 분위기를 포착하는 데 뛰어났던 판 호흐의 기재(奇才)를 보여 줄 뿐 아니라 주변적 삶을 영위하는 소외자들을 향한 화가의 열렬하고도 지속적인 애정과 동일시의 본능을 드러낸다.

4. 판 호흐와 그의 죽음
“환상은 사라지고 숭고함이 남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1890)
「나무뿌리」(1890)


우리에게 흔히 호흐의 마지막 그림으로 알려져 있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마지막 해에 그려졌을 뿐, 마지막 작품은 아니다. 검은 까마귀 떼가 조성하는 음산하며 불길한 정조와 마지막 해에 그려졌다는 사실로 인해 죽음을 암시하는 듯 생각되는 그림이지만, 사실 판 호흐는 어렸을 때부터 여러 종류의 새를 좋아해 즐겨 숲 속을 헤치며 다녔고, 특히 까마귀는 길조로 생각할 정도였다. 이 그림 이후 핀센트 판 호흐는 일곱여 점의 그림을 더 그렸는데, 현재 암스테르담 미술관에서 추정하기로는 미완성작인 「나무뿌리」가 맨 마지막 작품이다. 직선적으로 표현된 가지가 굽어 꺾여 있는 모습은 마치 인간의 근육과 골격을 상징하듯 묘한 생동을 느끼게 한다. 단순히 마지막 그림에 대한 오해 말고도, 핀센트 판 호흐의 비극적인 죽음에 관한 정설에 잠들어 있던 여러 모순을 이 책의 저자들은 차근차근 들추어낸다.

“자살하고 싶었던 거요?” 핀센트는 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요, 그런 것 같소.” 경찰은 자살이 범죄임을 환기했다. 나라와 신 모두에 대한 범죄라는 것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상한 열의로 자기 혼자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했다. “ 아무도 고발하지 마세요. 내가 나를 죽이고 싶었던 겁니다.” (……) 핀센트 판 호흐는 대개 자살을 극력 반대했다. 자살은 사악하고 끔찍하며, 남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하는 짓이고, 삶의 아름다움과 예술의 숭고함에 대한 범죄라고 말했다. 자살이란 “불성실한 자의 행위” 라고 말한 밀레의 유명한 금언을 인용하며 “ 내가 그런 성향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정말로 생각지 않는다.” 라 주장했었다. 본문 920~921쪽

오베르에 있는 핀센트와 테오의 무덤

화가의 극적인 자살설은 핀센트의 전설에 논리나 증거로 뿌리 뽑을 수 없는 씨앗으로 심겼다. 마치 베토벤의 청각 장애나 모딜리아니의 동사(凍死)처럼 판 호흐의 자살은(폭발적인 대중적 관심이 일어나기 불과 얼마 전에 벌어졌기에) 그의 작품에 비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후광을 드리웠다. 1890년 7월 27일에 벌어진 사건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들조차 이 가설의 매력에 굴복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이 가설에서 여러 모순을 발견했다. 우선 “가서 의사를 불러 주게. ……들판에서 스스로 상처를 입혔네. ……거기서 권총으로 나를 쐈어.”라는 핀센트 판 호흐의 말은 자살 기도를 뜻할 수도 있으나 부주의한 사고에도 부합하는 진술이다. 제 가슴을 쏠 작정이었다면, 총에 맞은 위치가 너무도 부정확하다. 총은 너무도 낮게 쥐어졌고, 작은 총알은 가슴팍과 먼 배 아래쪽을 파고들었다. 총알은 관통하지 않았고, 이후 부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작정하고 저지른 자살 행위처럼 각도가 똑바르고 계획적이지 않고 우연히 일어난 총격인 양 이상하다.” 이에 주민들의 증언과 지인의 인터뷰 기록을 상세하게 연구한 결과 저자들은 대안적인 가설을 세운다.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 총은 총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필요하지도 않은 핀센트가 가져간 게 아니라 르네 세크레탕이 가져간 듯하다. 르네는 어디든 거의 항상 그 38구경 권총을 지니고 다녔기 때문이다. (……) 르네는 핀센트를 성나게 할 의도로 괴롭힌 전력이 있었다. 핀센트는 난폭하게 감정을 터뜨린 과거가 있었다. 알코올의 영향이 미칠 때면 특히 더 심했다. 일단 르네의 배낭에서 총이 나오자, 고의적이든 우연이든 거친 서부에 대한 환상을 품은 부주의한 10대와 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술 취한 화가, 그리고 오작동하기 일쑤인 낡은 권총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다친 핀센트는 움직이는 게 가능해지자마자 가져왔던 화구를 남겨 둔 채 비틀거리며 큰길로 나와 라보 여관으로 향한 게 틀림없다. (……) 세크레탕 형제는 겁에 질렸을 것이다. 그들이 핀센트를 도우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 권총과 핀센트의 모든 소지품을 챙길 시간과 침착성은 있었던 게 분명하고, 이윽고 그들은 황급히 밀려드는 어둠 속으로 서둘러 가 버렸다. 본문 946~947쪽

이러한 재구성은 총격 사건이 일어난 날 이후로 판 호흐 신화를 지배해 왔던 자살에 대한 전통적인 해설의 많은 기형적인 조각들을 맞춰 준다. 판 호흐 삶과 예술을 둘러싼 무리하면서도 강력하게 매혹적인 가설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온 저자들이 판 호흐의 치명상에 대한 의견을 세세하게 적어 내려간 이 부록은 과감한 추측을 절제하면서도 철저한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견지에 이른 것으로서, 연구자적 초심을 보여 주는 백미다.

이 책의 마지막 장 제목(“환상은 사라지고 숭고함이 남다.”)처럼 비록 환상과 신화를 제거한 다고 해도, 후광이 사라진 인간 판 호흐의 실체 앞에서 숙연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행복하고 일반적인 가정을 꾸리지는 못했지만 매춘부 신 호르닉에게는 번듯하고 다정한 가장이었고, 대형 교회 강단 위의 설교자는 되지 못했지만 수천 장의 그림으로 그가 전한 삶의 진실의 메시지는 누구의 것보다 설득력 있으며, 당대 동료와 대중에게는 받지 못한 지극한 사랑과 후원을 일생일대의 동반자 테오에게서 오롯이 전해 받았다. 이 책에는 화재(畵材)의 완성보다도, 인간적 성숙의 과정이 점진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1000쪽에 가까운 이 거창한 평전의 주인공은 괴팍한 천재 화가이기 전에 정에 굶주린 연약하고도 인간적인 영혼이다. 핀센트 판 호흐가 걸은 길은 쉽지 않았지만, 위험보다는 평안을 희구하여 감행했던 모험임은 분명하다.(“위험의 핵심에 안전이 있는 법이지.”라는 것이 핀센트 판 호흐의 좌우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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