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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태양, 해바라기 : 걸작의 탄생과 컬렉션의 여정

Bailey, 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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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반 고흐의 태양, 해바라기 : 걸작의 탄생과 컬렉션의 여정 / 마틴 베일리 지음 ; 박찬원 옮김
개인저자Bailey, Martin
박찬원, 역
발행사항파주 : 아트북스, 2016
형태사항320 p. : 천연색삽화 ; 25 cm
원서명Sunflowers are mine :the story of Van Gogh's masterpiece
ISBN9788961962605
일반주기 본서는 "The sunflowers are mine : the story of Van Gogh's masterpiece. 2013."의 번역서임
서지주기참고문헌(p. 302-306)과 색인수록
주제명(개인명)Gogh, Vincent van,1853-1890. Sunflowers
Gogh, Vincent van,1853-1890 Criticism and interpretation --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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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나는 해바라기다!”
해바라기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가 남긴 해바라기 일곱 점은 어떻게 되었을까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책은 많다. 국내에 소개된 반 고흐 관련 서적만 검색해보아도 수십 종에 이르고 전문가 혹은 애호가가 아니라면 어떤 책이 필요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책 선택이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반 고흐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반 고흐의 태양, 해바라기』.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놀라움’ 그 자체다. 그 누구도 이 책의 지은이처럼 반 고흐를 연구하고 특정 작품을 깊이 있게 파고든 적이 없는 탓이다. 특히 반 고흐 사후, 1, 2차 세계대전 등 험난한 역사 속에서 작품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팔려나가 현재 우리들 곁으로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 험난한 여정과 궤적을 반 고흐 전문가 마틴 베일리가 수년에 걸쳐 연구하고 새로 찾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1980년대부터 반 고흐 연구를 시작해 집중적으로 글을 써온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우리들에게 다시금 반 고흐라는 예술가의 진면목을 조망하고, 특정 작품이 겪는 실로 놀라운 모험을 추적하면서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나는 해바라기다!”
해바라기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가 남긴 해바라기 일곱 점은 어떻게 되었을까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책은 많다. 국내에 소개된 반 고흐 관련 서적만 검색해보아도 수십 종에 이르고 전문가 혹은 애호가가 아니라면 어떤 책이 필요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책 선택이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반 고흐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반 고흐의 태양, 해바라기』.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놀라움’ 그 자체다. 그 누구도 이 책의 지은이처럼 반 고흐를 연구하고 특정 작품을 깊이 있게 파고든 적이 없는 탓이다. 특히 반 고흐 사후, 1, 2차 세계대전 등 험난한 역사 속에서 작품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팔려나가 현재 우리들 곁으로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 험난한 여정과 궤적을 반 고흐 전문가 마틴 베일리가 수년에 걸쳐 연구하고 새로 찾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1980년대부터 반 고흐 연구를 시작해 집중적으로 글을 써온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우리들에게 다시금 반 고흐라는 예술가의 진면목을 조망하고, 특정 작품이 겪는 실로 놀라운 모험을 추적하면서 반 고흐에 대해 우리가 더 알아야 할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 연작을 새롭게 조망한 역작

모네라는 이름에서 수련을 떠올리듯 반 고흐라는 이름에서 우리는 쉽게 해바라기를 떠올린다. 반 고흐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들은 물론, 그저 자신의 귀를 훼손한 광기 어린 예술가라는 교과서적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조차도, 그의 해바라기 그림은 잔상처럼 뇌리에 남아 있다. 언제 어디서 처음 보았는지, 자신이 어떻게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알고 있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가운데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커다란 황금빛 해바라기 송이들을 마주하는 순간 그 뒤에 숨은 ‘화가’를 즉시 알아보는 것이다. 마치 고갱이 그린 반 고흐의 초상화 제목처럼 ‘해바라기 화가’는 그렇게 태양과도 같은 열정을 품고 여전히 그림 속에 살고 있다.

“화가는 그가 그린 꽃 뒤에 숨어 있어도 사람들이 그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_폴 고갱

『반 고흐의 태양, 해바라기』는 총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우며 희대의 걸작이라 불리는 ‘해바라기 정물화 연작’을 탄생시킨 반 고흐 생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시대의 불운을 온몸으로 부딪히고 종국에는 미술사에서 전무후무한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한 예술가가 남긴 걸작이 누구의 손에 의해 어떤 경로로 지금의 장소에 가게 되었는지 그 자취를 주도면밀하게 추적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책에서는 반 고흐의 명작 가운데 해바라기 정물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놀랍게도 반 고흐는 자연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그림에 크든 작든 해바라기를 빠짐없이 등장시켰다.
그가 고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자네가 나쁜 선택을 했다고 생각지 않네. 자냉에게는 모란이 있고, 쿠스트에게는 접시꽃이 있듯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해바라기를 택했으니까”라고 말한 것처럼, 반 고흐는 어느 예술가보다 앞서 이 태양처럼 빛나는 노란 꽃을 선택하고, 집착적으로 그렸으며, 자신을 상징하는 꽃으로 취했다.
1, 2부로 구성되어 있는 책은 다시 열다섯 개의 챕터로 나뉜다. 이는 해바라기 정물화 연작 중에서도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꼽히는 노란 배경에 만개한 해바라기를 그린 「해바라기 열다섯 송이」의 송이 수와 같다. 이러한 구성 역시 수십 년간 오직 반 고흐만을 연구한 지은이의 치밀한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마치 아주 작은 씨앗에 불과했던 것이 마침내 커다란 노란 꽃을 피우듯, 지은이는 반 고흐 내면에 작은 자리를 차지했던 해바라기가 어떻게 예술가를 상징하는 꽃으로 자라게 되었는지, 새로 찾은 자료와 오랜 연구 결과를 촘촘히 쌓아올려 반 고흐의 삶과 작품을 유기적으로 연결 짓고 있다.

이야기는 어느 송년파티에서 만난 참석자가 들려준 하나의 ‘단서’로 시작한다. 파티에서 만난 손님은 자신의 친구들이 센 강변에 위치한 고서점에서 반 고흐에 관한 헌책 한 권을 구입했고, 책 속에 끼워진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친애하는 나의 친구 고갱”으로 시작하는 그 편지에는 분명하게 “빈센트”라는 서명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나 분명했다. 몇 년 후 그것은 1906년 폴 고갱 전기에 수록된 편지의 일부임이 밝혀졌다. 반 고흐의 삶과 작품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가 이루어졌음에도 더 알아갈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영화 같은 전개를 시작으로 지은이는 반 고흐 전문가답게 화가가 지나온 발자취를 뒤따라가며 새로운 자료를 찾고 연구를 거듭해나간다. 그 결과, 책에는 우리가 그동안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깊게 생각하지 않은 수많은 단서들을 바탕으로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작품이 씨줄날줄처럼 엮여 한 인간의 내면과 열정을 상징하는 과정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해바라기에 미친 반 고흐, 그에게 미친 한 작가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미치게 했나


책에는 실로 놀라운 단서가 빼곡하다. 이러한 자료들은 단순히 추측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공들여 찾은 연구의 결과물이다. 그중 해바라기 정물화 연작에 사용된 꽃병과 반 고흐가 귀를 훼손한 사건의 전말, 반 고흐에게 캔버스를 팔았다는 어느 노부인과의 만남, 그리고 1914년과 1939년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참혹한 전쟁 속에서 폐기 처분될 뻔 한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아 지금의 소장처에서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람객을 맞이하는 걸작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과정 등, 반 고흐의 삶과 작품 속에 녹아든 흥미로운 이야기가 쉼 없이 쏟아져 나온다.

▶ 해바라기 연작, 광기의 서막인가, 예술혼의 표현인가
반 고흐가 처음으로 해바라기를 그린 것은 1886년 여름, 몽마르트르에서다. 동생 테오와 함께 지내기 위해 파리에 도착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몽마르트르 꼭대기 바로 아래, 그들이 살던 곳에서 불과 몇 분만 걸으면 산기슭에 흩어져 핀 꽃들 사이로 채소를 재배하는 시민농장이 있었고, 그 뒤로는 당시 유흥시설로 활용되던 풍차가 자리했다. 많은 화가들이 17세기 초에 세워진 풍차와 그곳을 찾던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 그림을 그린 반면, 반 고흐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주변의 전원 풍경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남긴 파리 풍경화 중 하나인 「블뤼트 팽 풍차」는 제목 그대로 풍차가 그림의 중심을 이룬다. 하지만 반 고흐는 구성에 흥미로움을 더하는 장치로 해바라기를 사용해 처음으로 자신의 그림에 그 노란 꽃을 등장하게 했다. 이후 반 고흐는 모란, 장미, 해바라기 등 다양한 꽃을 소재로 정물화를 그렸고, 그때까지만 해도 해바라기를 특별히 중요하게 여겼다는 징후는 없었다. 그러나 이듬해, 새로이 해바라기가 몽마르트르 기슭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태양을 닮은 노란 꽃은 재빨리 반 고흐 내면으로 파고들어 그 중심에 서게 되고, 「드브레 정원의 해바라기」 「해바라기가 있는 헛간」 「해바라기가 있는 시민농장」, 네 가지 버전의 ‘해바라기 정물화 연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화가의 캔버스에 흔적을 남긴다.

세계 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처음 해바라기를 그리기 시작한 화가는 1888년 머리 위를 내리쬐는 찬란한 빛을 좇아 프랑스 남부 아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따뜻한 남부의 빛을 닮은 ‘노란집’에 아틀리에를 만들고, 고갱을 기다리며 우리가 그토록 찬탄해마지 않는 해바라기 정물화 연작을 완성한다.
반 고흐의 편지를 면밀히 검토하면 이 정물화 연작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재구성할 수 있다. 놀라운 일 중 하나는 그가 이 그림 네 점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완성했다는 점이다. 반 고흐가 아를에서 쓴 편지 대부분은 날짜가 쓰이지 않았지만, 그가 해바라기 연작을 최초로 언급한 편지가 8월 18일에 쓴 것이고 마지막은 8월 27일에 쓰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 간주되어왔다. 이를 통해 그가 해바라기 그림을 그리는 데 열흘이라는 시간이 걸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반 고흐 서간의 새로운 판본은 이 두 편지가 쓰인 날짜를 8월 21일과 26일로 바로 잡았다. 그렇다면 그림을 완성하는 데 단 엿새가 걸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해바라기 그림들이 과거 알려졌던 것보다 두 배는 빨리 그려졌음을 의미한다. 반 고흐는 분명 해바라기 그림을 언급한 첫 번째 편지를 쓰기 전날부터 그림을 시작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8월 20일 월요일에 시작해서 26일 일요일에 마쳤음을 뜻한다.

그 한 주 동안 그림을 그리면서 반 고흐는 자신의 작품이 미술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상상이나 했을까? 생전에 파리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던 테오의 인맥으로도 작품들을 판매하지 못한 그로서는 이 그림의 영향을 아마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 고흐의 그림은 그가 사망한 후 매우 빠르게 인정받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아를의 정물화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상징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 작품들은 곧 후기인상주의의 절정이자 표현주의에 대한 주된 영감으로 받아들여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고 사랑받는 예술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노란 도기 항아리, 알고 보니 합성?
미술사가들은 지금껏 반 고흐의 해바라기 정물화 연작에 쓰인 ‘소박한 항아리’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발품을 팔아 프로방스에 위치한 골동품 상점에서 반 고흐가 사용한 것과 비슷한 19세기 항아리를 눈으로 확인하고 들어보는 수고를 대신해준 지은이 덕분에 우리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 연작이 어떻게 그려졌는지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사실 하나를 알 수 있다.
이 투박한 테라코타 항아리는 프랑스 남부에서 음식 저장용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이 저장용 항아리에는 대개 손잡이가 두 개 있지만 반 고흐는 손잡이가 없는 일반적이지 않은 종류를 택했다. “항아리를 손에 든 순간 나는 이 항아리에 절대로 해바라기 다발을 똑바로 세울 수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활짝 핀 해바라기 몇 송이면 모를까 주둥이까지 물을 가득 채워도 항아리는 한 다발의 꽃을 지탱할 만큼 무게가 나가지 않았다”라는 지은이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박한 노란 도기 항아리에 노란색 배경의 그림에서처럼 해바라기 열다섯 송이를 꽂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상당히 넓은 주둥이 또한 꽃이 절대로 똑바로 설 수 없음을 뜻했다. 여기서 우리는 반 고흐가 이 항아리에 해바라기를 꽂고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대신 화가는 두 가지 요소를 그의 머릿속에서 하나로 합친 것이 틀림없다. 즉, 꽃은 더 실용적인 꽃병에 꽂고 그 위에 빈 항아리의 이미지를 덧입힌 것이다.
그렇다면 반 고흐는 왜 이러한 시도를 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구성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19세기 예술가들은 꽃 정물화를 그릴 때 주로 우아한 꽃병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반 고흐는 소박한 용기를 고르는 편이었고, 늘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서 더 친밀감을 느꼈다. 그러니 음식 저장용으로 사용되던 이 소박한 항아리가 반 고흐의 눈에 띈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노란 항아리는 반 고흐의 성향에 부합할 뿐 아니라 구성상의 균형감을 살려주는 요소였다.

▶ 자해 사건 전말을 푸는 비밀의 열쇠,「양파가 있는 정물화」
지금까지 반 고흐가 귀를 훼손한 계기를 두고 정신질환 때문이라느니, 고갱과의 관계 악화 탓이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반 고흐가 테오의 약혼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자해 사건이 일어난 후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러나 반 고흐가 남긴 정물화 한 점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지은이는 이 정물화 속에서 반 고흐가 귀를 훼손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언급한 그림은 반 고흐가 귀를 훼손한 후 그린「양파가 있는 정물화」이다. 그림에는 몇 가지 물건들이 묘사되어 있다. 그림 속 물건들은 고갱과의 연관성을 의미함과 동시에, 자해의 계기를 고백하는 상징적인 요소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림 오른쪽 하단에 위치한 봉투다. 지은이는 오랫동안 그 봉투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2010년 런던의 로열아카데미에 이 작품이 대여되었을 때 면밀히 살펴볼 기회를 얻는다. 놀랍게도 봉투에는 정말 비밀이 담겨 있었다. 봉투에 찍힌 세 개의 소인은 편지가 1888년 12월 23일 동생에게서 받은 것임을 보여준다. 반 고흐가 자신의 귓불을 자르던 바로 그날이다. 그렇다면 편지에 무슨 내용이 있었던 걸까? 좀 더 조사를 한 결과 편지에는 테오의 약혼을 알리는 소식이 있었음을 밝혀냈다. 반 고흐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이상 동생의 지원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했고, 그 같은 두려움은 몇 시간 후 자해를 촉발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양파가 있는 정물화」는 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직접적으로 언급된 일이 없다. 테오에게 보내는 그림 탁송물에도 들어가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반 고흐가 의도적으로 테오가 그 그림을 보지 못하도록 했음을 암시한다. 짐작컨대 테오가 그림을 보았더라면 봉투와 그것이 암시하는 바를 즉시 알아차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 「까마귀 나는 밀밭」은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다?
해바라기에 대한 반 고흐의 집착을 보여주는 가슴 아픈 예가 최근에 밝혀졌다. 그는 세상을 떠나던 바로 그날에도 풍경화에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까마귀 나는 밀밭」이 그의 마지막 그림이라 여겨졌다. 그러한 인식의 주된 이유는 그림에 ‘곧 다가올 불길함’이 암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던 그 시기에 반 고흐는 미완성 그림 두 점, 「나무뿌리」와 「오베르의 농촌 풍경」을 작업하고 있었다.
「오베르의 농촌 풍경」이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믿는 이유는 이 그림이 1891년 앵데팡당에 전시되었을 당시, 제목이 「마을(마지막 스케치)」이었기 때문이다. 이 제목은 요하나 또는 그녀의 오빠 안드리스가 붙였을 것이다. 상징적으로 이 그림은 반 고흐 사망 이후 파리에서 열린 그의 첫 일반 공개 전시 카탈로그 목록 중 가장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풍경화는 한 줄로 늘어선 초가집들과 그 너머 밀밭을 보여준다. 이 그림 전경의 해바라기 네 그루는 아마도 여인숙으로 돌아온 뒤 구성에 깊이와 색감을 더하기 위해 화가가 나중에 그려넣었을 것이다. 이 해바라기들은 4년 전에 그린 몽마르트르 풍경의 해바라기들을 떠올리게 한다. 안타깝게도 반 고흐는 해바라기가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계절에 배에 총상을 입고 고단하지만 뜨거웠던 생을 마감한다.

▶ 반 고흐 사후, 해바라기 그림의 드라마틱한 행방!
“나는 항상 어디론가, 어느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행자 같다”라고 말한 반 고흐의 말 때문일까. 평생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닌 예술가의 삶처럼 그의 그림 역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모험을 겪는다.
반 고흐는 생전에 자신의 그림을 팔지 못했지만, 사후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아방가르드 수집가들이 그의 그림을 열정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한다. 한 때 노란집 고갱의 침실에 걸려 있던 「해바라기 열네 송이」와 「해바라기 열다섯 송이」는 각각 뮌헨과 런던의 갤러리로 갔고, 다른 작품들[「해바라기 세 송이」 「해바라기 여섯 송이」 「해바라기 열네 송이」(서명 있는 카피) 「해바라기 열다섯 송이」(서명 있는 카피)와 (서명 없는 카피). 반 고흐는 아를에서 총 네 점의 해바라기 정물화를 완성했고, 그 후 카피 작품을 세 점 더 그렸다]은 로잔, 아시야, 필라델피아, 암스테르담, 도쿄로 갔다.
뮌헨으로 간 그림은 나치에 의해 팔릴 뻔 한 것을 아슬아슬하게 모면하고 알프스의 동화 같은 성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넘기고 살아남는다. 레이크 디스트릭트 성에 피난처를 구했던 런던의 그림은 나중에 한 보존전문가가 치즈 강판과 가정용 다리미를 이용해 복원한다(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로잔으로 간 「해바라기 세 송이」는 신비에 싸인 채 줄곧 개인 소장품으로 남아 있어 볼 수가 없다.
「해바라기 여섯 송이」는 1920년 일본 오사카 인근 아시야의 부유한 목화 무역업자 야마모토 코야타에게 간다. 그러나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지던 날, 아시야 역시 또 다른 공격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미국 폭격기가 1,500개 이상의 재래식 폭탄을 아시야로 떨어뜨린 것이다. 도시는 빠른 속도로 화염에 휩싸였고, 사나운 불길은 야마모토의 집과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로 인해 그림은 영원히 소실되고 만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해바라기 여섯 송이」는 더 이상 실물을 볼 수 없지만, 1921년 시라카바 문학 운동에서 컬러 인쇄본을 출간해 그 대담한 색채와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인쇄본은 현존하는 최고의 이미지로 남아 있으며, 이 책에서 최초로 소개하고 있다.
도쿄로 간 「해바라기 열다섯 송이」(서명 없는 카피)는 1987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이 되었고, 지금은 도쿄의 한 고층 빌딩 꼭대기 층에 걸려 있다. 암스테르담에 남은 「해바라기 열다섯 송이」(서명 있는 카피)는 유일하게 반 고흐 가족에게 남은 것으로 지금은 반고흐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책 말미에는 해바라기 정물화 연작 일곱 점의 이미지와 현 소장처, 그리고 반 고흐 사후 그림의 소장자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 원작의 색채와 질감이 살아 있는 작품 이미지들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눈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돋보이는 최고 품질의 작품 이미지이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그 어떤 반 고흐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도판은 예술가가 그림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와 기법을 보다 명확하게 살펴보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비단 책 속에 실린 작품 이미지는 단순한 감상을 뛰어넘어 지은이가 발견한 그림 속 단서를 공유하는 하나의 장치로서도 기능한다. 더욱이 책에는 해바라기 정물화에 쓰인 것과 유사한 항아리 사진을 비롯하여, 반 고흐 사후 컬렉터들이 그림을 어떤 액자에 넣고, 어떻게 보관했는지, 전쟁 당시 피란을 떠난 성의 모습 등도 실려 있다. 또한 테오의 아들 빈센트 빌럼의 집 안에 가득 들어찬 큰아버지의 그림과 거실 풍경, 그리고 반고흐미술관에 그림을 기증할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 반 고흐 가족이 그 그림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책에 실린 매우 희귀한 초기 사진들을 포함한 새로운 연구 결과를 통해 우리는 아를의 해바라기 정물화들이 어떻게 반 고흐를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는지 그 궤적을 따라가는 일이 가능해졌고, 일곱 점의 해바라기 들려주는 서로 다른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해바라기는 화가의 것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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