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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정치

Massumi, B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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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정동정치 / 브라이언 마수미 지음 ; 조성훈 옮김
개인저자Massumi, Brian, 1956-
조성훈, 1968-, 역
발행사항서울 : 갈무리, 2018
형태사항384 p. ; 21 cm
총서명디알로고스 총서 ;5
원서명Politics of affect
ISBN9788961951821
일반주기 색인수록
본서는 "Politics of affect. 2015."의 번역서임
일반주제명Affect (Psychology)
Political psychology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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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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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브라이언 마수미와 정동(affect)
『정동정치』는 『가상계』, 『가상과 사건』의 저자 브라이언 마수미가 그동안 교류해 왔던 비평가, 작가, 예술가, 활동가들과 토론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인터뷰라는 형식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가 써왔던 다른 책들보다는 덜 사변적이며, 정동과 잠재성을 실천적 관점에서 논의한다. 마수미에 따르면 정동정치는 두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하나는 권력이 미시적이고 정동화되고 있다는 점이며, 따라서 다른 하나는 정체성이나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정치는 그러한 미시적 권력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마수미가 출발점으로 삼은 정동은 스피노자로부터 가져온 개념이다. 정동이란 신체의 질적 변이이며, 그 변이들 속에서 나타나는 양태들의 관계가 마수미의 정동정치가 주목하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윤리학을 정동적 관계들의 위상학으로 규정한 것과 평행하여, 마수미는 정동정치의 의미가 세력과 계급의 정치가 아니라 정동적 관계를 토대로 하는 관계의 정치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총체적이고 단일한 문법이나 진부한 습관으로 이루어진 규약들에서 벗어나, 긴장과 갈등과 불일치를 공존하게 하면서, 사건들로부터 나오는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브라이언 마수미와 정동(affect)
『정동정치』는 『가상계』, 『가상과 사건』의 저자 브라이언 마수미가 그동안 교류해 왔던 비평가, 작가, 예술가, 활동가들과 토론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인터뷰라는 형식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가 써왔던 다른 책들보다는 덜 사변적이며, 정동과 잠재성을 실천적 관점에서 논의한다. 마수미에 따르면 정동정치는 두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하나는 권력이 미시적이고 정동화되고 있다는 점이며, 따라서 다른 하나는 정체성이나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정치는 그러한 미시적 권력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마수미가 출발점으로 삼은 정동은 스피노자로부터 가져온 개념이다. 정동이란 신체의 질적 변이이며, 그 변이들 속에서 나타나는 양태들의 관계가 마수미의 정동정치가 주목하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윤리학을 정동적 관계들의 위상학으로 규정한 것과 평행하여, 마수미는 정동정치의 의미가 세력과 계급의 정치가 아니라 정동적 관계를 토대로 하는 관계의 정치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총체적이고 단일한 문법이나 진부한 습관으로 이루어진 규약들에서 벗어나, 긴장과 갈등과 불일치를 공존하게 하면서, 사건들로부터 나오는 그러한 긴장을 다수의 방식으로 유지하고 강렬화하고, 상황에 따라 그 해법을 새로 설정하는 것에 열려 있는 유연함과 다양한 전략들을 필요로 한다.

현대 세계와 정동

최근 몇 년 사이 “정동”(affect) 개념이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를 읽는 주요한 키워드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의 경우 북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정동 이론가들의 글을 엮은 『정동 이론』(갈무리)의 한국어판이 2015년 12월에 번역,?출간되었고, 2016년 초에는 일본 와세다 대학 이토 마모루 교수의 『정동의 힘』(갈무리)의 한국어판이 번역,?출간되었다. 브라이언 마수미는 1995년 논문 「정동의 자율성」(The Autonomy of Affect)을 발표하였는데, 『정동 이론』의 저자들에 따르면 이 책은 “정동 이론에 대한 호기심을 다시 불붙인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라고 한다.(『정동 이론』 22~23쪽 참조) 그 밖에도 여러 학술서적, 대중서적, 논문과 기사들에서 “정동”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다른 한편, 정동 이론이 소개된 후 국내외에서 이 개념과 이 개념을 도구로 이론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대해서 정동은 개인적이고 비정치적인 개념이라는 비판, 파시즘과 연관되어 있다는 비판, 개인적 친밀성 문제에 불과하다는 비판 등 여러 관점에서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 책은 이런 비판과 오해에 답하면서 독자들에게 정동 개념이란 어떤 지형 속에 위치한 개념인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안내서이다.

정동에 대한 오해 1 : 정동은 감정과 같은 것이 아닌가요?

많은 사람들이 정동을 감정과 같은 것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마수미는 “감정은 정동의 아주 부분적인 표현일 뿐”이라고 말한다.
▶ 감정은 정동의 아주 부분적인 표현입니다. 감정은 단지 기억들 중에서 제한된 선택만을 이끌어낼 뿐입니다. 예컨대 특정한 반성이나 경향성을 활성화할 뿐이죠. ‘경험하기의 경험하기’가 가지는 모든 깊이와 폭을 그 누구의 감정 상태도 포괄할 수 없습니다 ― 우리의 경험은 시종일관 그 스스로 이중화됩니다. 의식적인 사유 역시 이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거나 특정한 사유를 생각할 때,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올 수 있었던 다른 모든 기억, 습관, 경향들은 어디로 가버렸겠습니까? 또한 정동하기와 정동되기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몸의 능력들은 어디로 가버렸겠습니까? 어떠한 지점이 주어지든 그 모든 능력들이 실제로 표현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완전히 부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다음 단계에서 틀림없이 새로운 다른 선택이 나올 테니까요. 그들은 여전히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가상적으로 ― 즉 잠재태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전체로서의 정동은 잠재태들의 가상적 공존이라 할 수 있습니다.(『정동정치』, 26쪽~27쪽)

정동에 대한 오해 2 : 정동정치학은 본질적으로 파시스트적이지 않나요?

마수미는 “정동정치학”이 파시스트적이라는 오해는 정동을 원초적인 자극-반응 체계라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지적하면서, 정동을 인과 구조와는 다른 ‘기폭작용’과 연결지음으로써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다.
▶ 정동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정동을 원초적인 자극-반응 체계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대신에 저는 그것을 ‘기폭작용’(priming)과 연결시킵니다. 기폭은 자극-반응이라고 하는 선형적인 인-과 구조가 아닙니다. 조율과 연관이 있습니다. 조율은 간섭하고 공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선형적입니다. 자극-반응은 제한된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반사운동이 되어, 조정 능력, 변주 능력, 미래의 힘을 상실하여, 세상에 대해 조금도 놀라지 않는 습관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반복의 힘만큼이나 작용인이 거의 될 뻔했던 권태로운 습관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인과관계 안에서 ‘흡사’(quasi)를 놓아버렸습니다. 또한 정동정치를 파시스트로 비판할 때, 거기에는 비의식적 과정을 사유의 부재로 본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비의식적 과정은 사유의 탄생이라는 들뢰즈와 가따리의 말을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배아적 사유로서, 다가오는 행위 속에서 존재의 역량을 표현하는 시간의 강요에 의해 움직입니다.(『정동정치』, 108쪽~109쪽)

정동에 대한 오해 3 : 정동은 개인적인 문제 아닌가요? 어떻게 “정동정치”를 말할 수 있나요?

마수미는 정동은 항상 관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정동은 언제나 정치적이라고 답한다.
▶ 정동하고 정동되기’의 공식은 또한 원-정치적이다. 그 정의 안에는 관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동하고 정동되기는 세계로 열리는 것이며, 세계 안에서 적극적[능동적]이 되는 것이며, 세계의 귀환 활동을 견디는 것이다. 이 개방성 또한 기본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것은 변화의 선봉이다. 형성-중-인-사물들이 변형을 시작하는 것은 이 개방성을 통해서이다. 마주침들 속에서, 다시 말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언제나 정동하고 정동된다. 정동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며,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정동정치』, 13쪽)

“철학은 살아 있는 실천일 수 있다.”(Philosophy Can Be a Living Practice.)

마수미와 <감각실험실>(SenseLab) : 예술, 정치, 철학의 교차점에서
브라이언 마수미의 작업을 설명할 때 그와 (이 책의 대담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 에린 매닝을 비롯한 예술가, 활동가, 연구자들이 함께 꾸려가고 있는 캐나다의 <감각실험실>(SenseLab)을 빼놓을 수 없다. 브라이언 마수미와 에린 매닝이 2014년 9월에 한 Tedx 강연에서 에린 매닝은 2004년에 <감각실험실>을 처음 만들 때 “도래할 정치를 다시 상상하기 위해서, 예술과 철학의 교차점에서 공동체와 대학의 구성원들이 만날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감각실험실>을 ‘행위-중인-사유’를 창안하는 실험실로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브라이언 마수미는 “저는 항상 철학이 실험적 실천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라고 덧붙인다.
이 책 『정동정치』에서도 마수미는 <감각실험실>의 활동에 대해 여러 곳에서 설명한다. <감각실험실>은 “예술과 학문 제도”(119쪽)가 서로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마수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학문 측에서 예술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정교한 언어표현을 추구하는 경향이나 성향입니다. 예술 쪽에서는 어떤 대상이나 체계나 상호작용에 철저하게 언어를 초과하는, 적어도 언어의 표준화된 외연이나 지시적 사용을 초과하는 강렬도를 투자합니다. 우리는 그 두 경향을 결합하고 싶었습니다 : 개념들을 정교한 언어 표현으로 가져오기, 그리고 지각과 경험을 강렬화하기.”(119쪽) <감각실험실>에서 마수미와 동료들은 예술과 철학, 정치를 넘나들고 뒤섞는 다양한 종류의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정동정치를 실험한다. 이 책 『정동정치』의 곳곳에 소개된 <감각실험실>의 활동 내용은 예술, 정치, 철학의 다양한 혼합을 모색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많은 영감을 줄 것이다. (<감각실험실>의 활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http://senselab.ca/wp2/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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