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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가 판단케 하라 : 조선실록의 수정과 개수

오항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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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후대가 판단케 하라 : 조선실록의 수정과 개수 / 오항녕 지음
개인저자오항녕= 吳恒寧, 1961-
발행사항고양 : 역사비평사, 2018
형태사항502 p. ; 23 cm
ISBN9788976962966
서지주기참고문헌(p. 492-493)과 색인수록
기금정보주기이 저서는 200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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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사실과 해석의 충돌, 역사와 기억의 갈등
조선실록의 수정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처럼 어떤 사회나 국가·민족이든 역사를 둘러싼 당사자들과 치열한 기억-전쟁을 치른다. 그것이 갈등에서 비롯되었을 경우 그 기억-전쟁의 강도와 양상은 치열해지기 마련이다. 국가 간에도 일어나지만 한 국가의 사회 내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기억을 둘러싼 투쟁과 갈등을 다룬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첫째, 흔히 사화(史禍)라고 불리는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정치 행위로, 대표적인 사건이 김일손의 사초에 실린 김종직의 「조의제문」 때문에 벌어진 무오사화이다. 연산군 때 벌어진 무오사화의 결과 ‘사림의 씨가 말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이들이 귀양 가거나 죽임을 당했다. 둘째, 역사 자체를 다시 쓰는 기억(기록)의 수정 행위로, 특히 이는 실록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조선시대 실록은 믿을 수 있는 기록이라는 의미로 ‘신사(信史)’라는 용어와 같이 쓰였다. 그런데 인조반정 뒤, 이미 편찬된 『선조실록』을 수정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그뿐만이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사실과 해석의 충돌, 역사와 기억의 갈등
조선실록의 수정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처럼 어떤 사회나 국가·민족이든 역사를 둘러싼 당사자들과 치열한 기억-전쟁을 치른다. 그것이 갈등에서 비롯되었을 경우 그 기억-전쟁의 강도와 양상은 치열해지기 마련이다. 국가 간에도 일어나지만 한 국가의 사회 내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기억을 둘러싼 투쟁과 갈등을 다룬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첫째, 흔히 사화(史禍)라고 불리는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정치 행위로, 대표적인 사건이 김일손의 사초에 실린 김종직의 「조의제문」 때문에 벌어진 무오사화이다. 연산군 때 벌어진 무오사화의 결과 ‘사림의 씨가 말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이들이 귀양 가거나 죽임을 당했다. 둘째, 역사 자체를 다시 쓰는 기억(기록)의 수정 행위로, 특히 이는 실록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조선시대 실록은 믿을 수 있는 기록이라는 의미로 ‘신사(信史)’라는 용어와 같이 쓰였다. 그런데 인조반정 뒤, 이미 편찬된 『선조실록』을 수정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선 후기에 세 차례의 실록 수정이 더 일어났다. 『현종실록』, 『숙종실록』, 『경종실록』의 수정이다. 실록은 어떤 배경 속에서 누가 무슨 이유로 수정했을까?
역사 기록으로 인해 벌어진 ‘사화’와 ‘실록 수정’의 이중주는 조선시대의 정치와 역사의 특징을 이해하는 주요한 통로이다.

사실은 왜곡하지 않되, 관점과 해석의 차이만 있을 뿐!
사론에 나타난 상반된 인물평


실록은 국가 최고의 기록이자 절대 권력자조차 볼 수 없었던 기록이었다. 조선 초기에 실록 편찬 원칙이 확립되고, 사초 보호 규정이 마련되었으며, 사초 실명제를 엄격히 하고, 사초를 누설했을 경우 엄한 처벌이 내려졌음을 감안할 때, 조선 후기에 벌어진 네 차례의 실록 수정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대사 기록이라는 실록의 내재적 긴장성과 학파(정파)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편찬했다는 사실은 언제든 갈등을 유발할 여지를 안고 있었다. 조선 후기의 네 차례 실록 수정, 그것은 『선조실록』·『현종실록』·『숙종실록』·『경종실록』의 수정과 개수였다. 현재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 『현종실록』과 『현종개수실록』, 『숙종실록』과 『숙종실록보궐정오』, 『경종실록』과 『경종수정실록』이 남아 있어 원본과 수정본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
광해군대 편찬된 『선조실록』을 인조대 들어와 수정한 일은 조선시대 실록 편찬사에서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흔히, 인조반정으로 광해군대의 대북 정권을 몰아내고 서인이 정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그 반정 세력에 의해 실록이 수정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정치 세력의 ‘의도’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록의 수정이 제기된 이유는 무엇보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손실된 사초가 실록의 무결성을 해쳤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조선을 휩쓸고 간 전란은 비단 사람의 목숨만 앗아가지 않았다. 전란의 병화는 실록을 보관해두는 사고까지 태워버려 전주사고본 실록만 온전할 수 있었다.
대제학 이식은 ‘나라는 멸망할 수 있어도 역사는 없어지게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국가재정이 부족한 상태이지만 실천 가능한 방법을 제시하며, 마침내 인조의 허락을 얻어 『선조실록』의 수정 책임을 맡았다. 수정 작업은 사실의 보완과 사론의 수정이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선조수정실록』에서는 『선조실록』의 원래 기사를 비판할 때 ‘실록을 살펴보건대(按實錄)’라는 말을 두어 대조하는 방식을 취한 경우가 보인다.

한준겸을 경상도 관찰사로 삼았다.
사신은 논한다. …… 한준겸은 겉으로는 관대하고 후덕한 듯하나 안으로는 실로 음험하여 몇몇 군소배와 결탁하여 심복을 삼고 왜적과의 화의에 찬성하고 사류를 배척하였으니, 나라를 그르친 죄가 역시 유성룡 다음이다.
―『선조실록』, 32년 2월 16일.

한준겸을 경상도 관찰사로 삼았다.
『선조실록』을 상고하면 “한준겸은 겉으로는 관대하고 후덕한 듯하나 안으로는 실로 음험하여 몇몇 군소배와 결탁하여 심복을 삼고 왜적과의 화의에 찬성하고 사류를 배척하였으니, 나라를 그르친 죄가 역시 유성룡 다음이다.” 하였다. 한준겸은 매우 침착하고 도량이 있어 세상에서 모두 위인이라고 칭하였는데, 이제 음험하다고 지목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한준겸이 오랫동안 외직에 나가 있었고 조정에 있었던 기간이 적었으니 ‘군소배와 심복을 맺어 왜적과의 화의를 돕고 사류를 배척했다’고 한 것은 너무나 모함해 얽은 것이다. 『선조실록』 중 이처럼 상반되는 말이 매우 많으니, 어찌 말할 것이 있겠는가.
―『선조수정실록』, 32년 2월 1일.

이식은 『선조실록』이 광해군대 이이첨 편을 든 몇몇 인물들에 대해서는 거짓을 좋게 꾸몄고 명신과 훌륭한 재상 및 학자에 대해서는 추악하게 매도했다며 인물평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라 왜곡하여 치켜세운 인물, 근거 없이 깎아내린 인물을 재평가했다.
사론의 수정과 함께 사실 보완의 측면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 수군 활동, 이순신 관련 기록 등을 추가하고 보완했다.

원본과 수정본을 모두 남겨
후대로 하여금 판단케 하다


확실히 실록의 수정은 정치 세력의 변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 정치적 사안을 해석하는 평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실록의 수정을 정치 세력의 ‘의지와 욕망’으로 환원해버리는 것을 경계한다.
저자는 연원일별로 원본과 수정본 실록 기사를 모두 검토하면서, 조선 후기 실록의 수정과 개수가 서로 대립적인 정치 세력이 사론을 통해 사실을 보완하거나 사건의 진상을 다르게 주장했더라도 사실을 지어내는 경우는 없었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요컨대 서로의 사상과 가치를 관철하기 위해 이해관계를 다투고, 그로부터 정국이 갈등으로 치달을지라도 넘지 않았다는 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정치권력의 우위를 앞세워 역사가 사회에서 가져야 할 기능과 역할,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원칙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실록을 수정·개수한 뒤에도 원본 실록을 폐기하지 않고 남겨둠으로써 ‘주묵사(朱墨史)’의 원칙을 수정의 모범으로 세웠다는 데서 나타났다. 그리하여 수정의 정당성을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판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제 확인해보자!
이 책에는 원본 실록과 수정본 실록의 기사가 사건, 인물평, 정책 등에 대해 어떻게 서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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