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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문견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제주 르포

정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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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탐라문견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제주 르포/ 정운경 지음; 정민 옮김
개인저자 정운경= 鄭運經
정민= 鄭珉, 1960-, 역
발행사항서울: 휴머니스트, 2008
형태사항271 p.: 채색삽도, 지도; 22 cm
총서명18세기 지식
ISBN 9788958622215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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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18세기 지식총서를 기획하며

18세기 조선은 근대 이전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적 표지다. 다른 시대에 비해 풍부하고 다양한 소재들이 제공되고 있고, 그에 관한 연구나 저술도 풍성하다. 그런 만큼 학계나 일반인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영정조 시대, 실학시대, 문예부흥기로 불리는 이 시대가 이런 위상을 지니는 이유가 없지 않다. 세계사적 변혁의 시대인 18세기에 조선은 전통과 반전통, 구시대적인 것과 신시대적인 것, 보수와 진보의 대립적인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강력하게 분출되었다. 18세기 조선은 변화의 물결이 도도하게 휘몰아쳤던 열망의 무대였고, 다양한 조류 속에 전통과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역동적 힘이 솟구친 무대였다.
그 시대의 역동성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나지만, 지식인의 사유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새로운 관점, 새로운 지식이 그 이전 어느 시대보다 폭넓게 저술로 구체화되었다. 그리하여 전통적 지식의 내용과 틀에서 벗어난, 낯설고 이국적인 지식이 전통적인 것과 함께 학문의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조선에서 18세기는 세계를 보는 시각과 초점이 다양성을 드러낸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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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18세기 지식총서를 기획하며

18세기 조선은 근대 이전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적 표지다. 다른 시대에 비해 풍부하고 다양한 소재들이 제공되고 있고, 그에 관한 연구나 저술도 풍성하다. 그런 만큼 학계나 일반인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영정조 시대, 실학시대, 문예부흥기로 불리는 이 시대가 이런 위상을 지니는 이유가 없지 않다. 세계사적 변혁의 시대인 18세기에 조선은 전통과 반전통, 구시대적인 것과 신시대적인 것, 보수와 진보의 대립적인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강력하게 분출되었다. 18세기 조선은 변화의 물결이 도도하게 휘몰아쳤던 열망의 무대였고, 다양한 조류 속에 전통과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역동적 힘이 솟구친 무대였다.
그 시대의 역동성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나지만, 지식인의 사유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새로운 관점, 새로운 지식이 그 이전 어느 시대보다 폭넓게 저술로 구체화되었다. 그리하여 전통적 지식의 내용과 틀에서 벗어난, 낯설고 이국적인 지식이 전통적인 것과 함께 학문의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조선에서 18세기는 세계를 보는 시각과 초점이 다양성을 드러낸 시대였다.
이 지식총서는 18세기 조선의 지적 신선함을 잘 보여주는 문헌을 현대인과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18세기에도 일반에게 낯설었던 지식의 최전선에 있던 문헌들은 19세기 이후로부터 최근까지도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런 것들이 최근 학계에서 새로운 의의를 발산하며 발굴되고 재해석되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18세기에 속하는 자료가 많고, 일부는 19세기 전반기에 나오기도 하였다. 지식총서에 선보이는 책들은 대체로 특수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단행본이고, 각각의 단행본은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 이른바 소품서(小品書)에 속하는 책들이 많다. 그러나 그 책들의 주제는 참신하고 시각은 예민하다.
총서의 첫 번째 발간물은 이옥의 《연경(烟經)》과 정운경의 《탐라문견록(耽羅聞見錄)》이다. 앞의 책은 담배와 관련된 지식을 체계화하였고, 뒤의 책은 동아시아 세상을 체험한 제주도의 표류민과 관련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두 저작은 당시 조선 사회의 생생한 일상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관계맺음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당시에는 지식의 첨단에 놓인 주제를 다루었고, 그 이후 이를 계승한 저술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저술이다. 저작 자체도 관심권에서 벗어났다가 최근에야 발굴되었다.
앞으로도 음식과 기술, 꽃과 차, 저택 설계와 건축, 기생과 문방구와 같은 특정한 주제를 다룬 저작들을 총서의 명단에 올리고자 한다. 현대인의 지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선명하고도 특정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 판단한다. 선정된 문헌은 최근에 새로이 발굴되거나 주목을 받은 저작들로써 대개 한 번도 번역된 적이 없는 책이다.
이 총서를 통해 다른 시대를 초월한 우월한 시대로 18세기를 자리매김하려거나 이런 주제나 이런 저작을 18세기적 특징의 중심에 놓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대를 보는 시각이 어디 하나에 고정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를 큰 차원에서 읽는 거시적 관점도 필요하고, 취미나 기예, 각종 일상생활을 미시적으로 보는 관점도 필요하다. 이 총서는 후자의 입장에 서서 전자를 보완함으로써 18세기를 더 넒은 시각으로 이해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그 전후한 시대의 지적 사유에도 관심이 촉발되기를 기대한다.

탐라문견록, 18세기 한 인문주의자의 제주 르포

동아시아 세상을 체험한 제주도의 표류민과 관련한 사실을 기록한 책이 《탐라문견록(耽羅聞見錄)》이다. 당시 조선 사회의 생생한 일상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관계맺음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당시에는 지식의 첨단에 놓인 주제를 다루었고, 그 이후 이를 계승한 저술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저술이다. 저작 자체도 관심권에서 벗어났다가 최근에야 발굴되었다. 18세기 지식인의 새로운 지식 경영과 편집 매뉴얼을 공부하는 일에 몰두해온 정민 선생이‘정운경’과 탐라문견록(耽羅聞見錄)》이라는 낯선 이름과 책을 번역한 것이다. 그는 이 책을 18세기의 지식 경영과 편집 매뉴얼 흐름의 첫 물코를 연 더 앞선 시기부터 시작되었음을 증언해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 시기 지식인들의 고양된 지적 욕구와 편집 역량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저자 정운경은 왜 탐라문견록을 썼을까!

1731년 9월, 정운경(鄭運經, 1699~1753)은 제주 목사로 부임하는 아버지 정필녕(鄭必寧, 1677~1753)을 따라 제주도로 건너온다. 그는 이곳에 머물며 딱히 할 일이 없었으므로 이 낯설고 물선 땅의 문화와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여 기록으로 남길 작정을 했다.
막상 제주에 와서 보니 그곳 백성 가운데 뜻밖에 일본과 대만은 물론, 멀리 베트남까지 떠내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바다 밖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이참에 바깥세상의 소식이 궁금해진 그는 표류민으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을 차례차례 만났다.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참으로 신기하고 흥미진진했다. 정운경은 그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또 섬을 일주하고 한라산을 등반했다. 여행에 앞서 이전에 제주를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기록들을 꼼꼼히 읽고 주제별로 편집하여 제주의 인문지리적 특징들을 정리했다. 그들이 빠뜨린 내용과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사실들은 자신의 기록으로 따로 남겼다. 그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제주도에 와서 처음 본 감귤은 생각보다 종류도 많고 생김새와 맛도 다 달랐다. 그는 이것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이전의 기록들을 점검하며, 자신의 체험을 기록한 것을 모아서 《탐라문견록》이라는 책으로 엮었다.

바다 밖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정운경의 표류 기록 가운데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다. 제1화 1687년 조천관 주민 고상영의 안남국 표류기는 이 기록 외에도 두 건의 서로 다른 표류기가 남아 있다. 가장 앞선 기록은 제주 목사였던 이익태(李益泰, 1633~1704)가 자신의 제주 재임 시의 일을 기록한 《지영록(知瀛錄)》에 실린 〈김대황표해일록(金大璜漂海日錄)〉이다. 이 책에는 고상영 등 표류민을 태워 온 중국 상인 진건과 주한원 등을 심문한 문답까지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어, 함께 읽어보면 표류의 전말과 구조의 경과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대만이나 유구, 안남 등지의 낯선 풍속과 일본인들의 생활상 등 표류민들의 다양한 해외 체험은 당시 독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다. 바다 밖에 자신들이 생각지 못할 만큼 드넓은 또 다른 세계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스스로를 우물 안 개구리처럼 답답하게 여기는 인식들이 싹텄다. 18세기 총서의 기획자들이 정운경의 《탐라문견록》에 특별히 주목한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었다.
특히 표류민들이 예외 없이 제주도 사람임을 숨기려고 애쓰는 장면이 반복해서 보인다. 이는 1612년에 제주로 표착해온 유구국 태자가 탄 상선을 제주 목사 이기빈(李基賓)과 판관 문희현(文希賢) 등이 습격하여 재물을 빼앗고 그들을 죽인 사건의 여파 때문이었다. 이후 제주도민 사이에서는 외국에 표류하여 제주도민임이 밝혀지면 지난날 사건 때문에 무조건 죽인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 유구국 태자 살해 사건과 앞서 본 고상영 표류 사건의 후속 처리, 그리고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제주에 표류하여 13년 넘게 억류되어 있다가 탈출하여 국제 문제로 비화되었던 사건 등에서 보인 조선 정부의 대응 태도를 보면, 당시 조선이 얼마나 국제관례에 무지하고, 해외 정보에 어두웠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전체 내용 가운데는 일본 쪽으로 표류한 경우가 9건으로 가장 많다. 조선 표류민에 대한 일본인의 처우는 우호적이었다. 이들은 이전에도 많은 표류민들을 보아왔으므로 후속 처리 과정도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 보통 송환까지는 5~6개월가량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또 막부가 정한 규칙에 따라 매일 일정량의 식량이 제공되었다. 그들은 임진왜란 당시 끌려간 조선인의 후예들을 통사(通事)로 고용해 이들과의 의사소통을 돕게 했다.

탐라문견록에 대한 ‘18세기 지식인’들의 리뷰

《탐라문견록》은 당대에 어떤 반응과 평가를 받았을까? 이 책과 관련한 언급을 남긴 사람은 이익(李瀷), 박지원(朴趾源), 서유구(徐有?)와 황윤석(黃胤錫), 그리고 유만주(兪晩柱), 이규경(李圭景) 등이다. 모두 18~19세기의 쟁쟁한 문인이요 학자들이다. 이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이 책이 당시 얼마나 주목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탐라문견록》을 가장 먼저 인용하고 소개한 지식인은 이익이다. 이익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이 책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그 내용은 일본에 표류해 간 조선인에게 일본 통사(通事)가 한 말이다. 조선 사람들은 큰 주발에 놋수저로 밥을 다져서 배불리 먹으니, 사람들이 탐욕이 많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또 외관(外官)이 3년에 한 번씩 교체되므로 한번 임지에 가면 재산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백성의 고혈을 짜므로 민생이 도탄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익은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참으로 귀 기울일 만한 언급이라고 동감을 표시했다.
《탐라문견록》은 또 18세기에 유행한 각종 총서류 저작의 목록에도 예외 없이 올라 있다. 박지원은 1787년을 전후하여 우리나라 여러 문헌 가운데 중외(中外)의 교섭과 관련된 사실을 모아 편집하는 《삼한총서(三韓叢書)》를 기획했다. 책으로 만든 것만도 20~30권 가량 되었다. 《삼한총서》는 현재 서목만 178건이 전해진다. 다른 책은 해당 부분만 발췌하여 초록하는 형태였는데 반해, 《탐라문견록》은 전편을 다 수록했다. 뿐만 아니라 박지원은 정조의 어명으로 역시 대만에 표류했던 제주 백성의 표류기를 정리한 〈서이방익사(書李邦翼事)〉를 작성하면서 이 책을 참고했음을 밝혔다.
서유구는 《소화총서(小華叢書)》를 기획했는데, 〈소화총서변증설〉에서 정운경의 《탐라문견지》, 《탐라귤보(耽羅橘譜)》를 인용했다. 황윤석은 《이재난고(?齋亂藁)》에서 《탐라문견록》을 읽고서, 표류기 중 고상영의 안남국 표류기와 윤도성의 대만 표류기 및 〈제주귤보〉를 베껴 적었다. 유만주의 《흠영(欽英)》에도 《탐라문견록》을 구해 읽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이들은 모두 《탐라문견록》 속에 실린 표류기에 흥미를 보였다. 〈귤보〉도 그 자료의 특이함 때문에 여러 총서에 그 이름을 올렸다. 모든 이들이 유독 표류 관련 기록에 주목한 것은 당시 매우 빈번하게 발생한 해양 표류 사고에 관한 최초의 본격적인 기록이라는 점이 작용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이들 기록 속에 담겨 있는 여러 외국의 풍물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관한 흥미진진한 보고 때문이었다.
국가 간 외교 접촉이 극히 제한적이던 18~19세기 당시, 표류는 민간에서 외국 문화를 체험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해양 활동의 증가와 어업 및 교역의 활성화로 나라마다 빈번한 표류 상황이 발생했다. 표류민의 구조와 송환 과정에서 나라 간에는 외교적 접촉 채널이 가동되고, 여기에 무역활동이 부수되면서 표류민 문제는 이 시기 동아시아 국가 간 교류에 매우 예민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최근 들어 각국의 표류 관련 기록을 통해 동아시아의 문화 교류를 살피는 작업이 부쩍 활발해진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부의 《표해록》 등 개별적인 표해 기록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하지만 실제 발생한 표류의 빈도에 비교해본다면 그 기록은 영성하다 못해 빈약하기 짝이 없다. 반면 일본에 표류한 조선 표류민 관련 기록은 일본 쪽에 엄청난 양의 공식 기록들이 남아 있다. 일본의 경우 이케우치 사토시(池內敏) 교수의 정리에 따르면 18세기 100년 동안만 보더라도 공식 기록으로 남은 것만 409건이 있고, 표류민의 숫자도 수천 명에 달한다. 그런데도 표류에서 송환까지의 구체적인 경과나 과정에 대한 기록은 공문서 외에는 별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런데 정운경의 《탐라문견록》에는 일본을 비롯하여 유구국(琉球國)과 안남국, 대만 등지로 표류한 14인의 표류 기록과 그들의 견문 및 송환 과정 등이 한자리에 모여 있어서 18세기 당시의 표류사 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새롭게 편집된 제주 이야기와 귤 이야기

제주에 관한 네 편의 글은 다른 어떤 저술보다 제주도에 대한 체계적이고 정돈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영해기문〉은 이전의 저술에서 제주도 관련 정보를 갈래별로 나누어 재편집함으로써, 읽는 이들이 꼭 필요한 정보만 간추려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 더하여 가는 곳마다 자신이 관찰한 내용을 상세히 덧붙이고, 앞선 기록에서 빠진 부분을 보충했다. 기행문 형식으로 소화할 수 없는 내용은 〈해산잡지〉에서 비망록 형식을 빌려 보완하는 친절함도 잊지 않았다.
그간 제주 관련 기행문 자료들은 대부분 소개되어 연구되었는데, 유독 정운경의 《탐라문견록》에 실린 내용만은 한 번도 세상에 알려진 적이 없다. 금번 자료의 발굴과 번역 소개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한 연구도 더 심도 있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귤보〉는 제주도에서 재배되던 15가지 품종의 감귤을 소개한 내용으로 그 자료적 가치와 의의가 매우 크다. 정운경은 〈귤보〉의 서문에서 우리나라에서 나는 과일의 품종이 매우 많지만 귤은 오직 제주에서 생산되는데, 공물로 바치기에도 부족해서 사대부들이 몹시 진귀하게 여긴다고 썼다. 그 이름도 이루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상중하 3품으로 나누어 그 색깔과 맛을 적어둔다고 했다. 말하자면 〈귤보〉는 정운경이 기획한 《탐라문견록》의 부록에 해당하는 글이다.
그가 〈귤보〉를 완성한 것은 1732년 윤 5월 하순의 일이다. 상품에는 유감(乳柑).대귤(大橘).동정귤(洞庭橘).당유자(唐柚子).청귤(靑橘)을 꼽았고, 중품에는 당금귤(唐金橘).감자(柑子).소귤(小橘).왜귤(倭橘).금귤(金橘)을 꼽았다. 하품에는 등자귤(橙子橘).석금귤(石金橘).산귤(山橘).유자(柚子).지각(枳殼) 등이 있다. 이렇듯 당시 제주에서 재배되던 15종에 달하는 귤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긴 것은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기록으로 말미암아 제주도 감귤 재배의 역사는 더욱 구체적인 실체를 갖게 되는 셈이다. 앞 시기 임제의 〈귤유보〉와 뒤 시기 조정철의 〈귤유품제〉를 포함, 그밖에 《탐라지》에 보이는 시기별 귤원(橘園)의 운영 실태 등을 망라하여 제주 감귤 재배사를 정리하는 일도 가능해질 듯하다.

탐라문견록의 자료적 가치

18세기에 우연히 아버지의 부임길을 따라 제주에 머물렀던 한 잊힌 지식인이 작심하고 정리한 《탐라문견록》은 여러 방면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문헌이다. 표류사나 한일교류사의 측면에서 소중한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제주 문화사 연구나 감귤 재배사 연구에도 금쪽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제 까맣게 잊혔던 우리 문화사의 소중한 한 자료를 먼지 털어 세상에 선뵈며 나름의 감회가 없지 않다. 자료의 번역 소개를 계기로 이 책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책의 제목을 《바다 밖의 넓은 세상》으로 단 것은, 표류 관련 기록이 이 책에서 가장 비중 있는 자료일 뿐 아니라, 이 책의 저자 정운경이 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싶은 화두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는 그때 조선이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의 독선과 아집에 빠져 있는 느낌이다. 정보의 발 빠른 공유와 확산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미래의 비전을 획득하는 것은 우리의 책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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