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탑메뉴

전체메뉴

전체메뉴닫기


검색

상세정보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미학

박노현

상세정보
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드라마, 시학을 만나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미학/ 박노현 지음
개인저자박노현
발행사항서울: 휴머니스트, 2009
형태사항383 p.: 삽도; 23 cm
ISBN 9788958623007
서지주기참고문헌 : p. 375-383
언어한국어

소장정보

서비스 이용안내
  • 찾지못한자료찾지못한자료
  • SMS발송SMS발송
메세지가 없습니다
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1 1109579 791.457 박215ㄷ 2관 5층 일반도서 대출중 2019-12-13
SMS발송
2 1109578 791.457 박215ㄷ 2관 5층 일반도서 대출가능
찾지못한자료 SMS발송


서평 (0 건)

서평추가

서평추가
별점
별0점
  • 별5점
  • 별4.5점
  • 별4점
  • 별3.5점
  • 별3점
  • 별2.5점
  • 별2점
  • 별1.5점
  • 별1점
  • 별0.5점
  • 별0점
제목입력
본문입력

*주제와 무관한 내용의 서평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국내 최초의 연구 성과, ‘텔레비전 드라마’의 미학을 만나다
―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의 개요


‘국민’, ‘명품’, ‘막장’ 등의 수식어로 전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우리의 텔레비전 드라마. 이제는 우리 사회의 문화를 대표하는 유력한 텍스트로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텔레비전 시청 시간이 하루 평균 3시간 이상이라는 통계에서 어림잡을 수 있듯이, 한국인은 여가를 텔레비전 시청으로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대중들의 여가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텔레비전 드라마’는 한낱 오락에 불과한 것인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일 뿐인가? 혹시 미학적·예술적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장 광범하고 보편적이고, 스토리텔링이 강한 장르인 ‘텔레비전 드라마’를 미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본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가 발간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텔레비전 드라마’의 미학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접목한 책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대중들이 널리 향유하고 있는 드라마의 친밀함을 바탕삼아, 사회문화적인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국내 최초의 연구 성과, ‘텔레비전 드라마’의 미학을 만나다
―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의 개요


‘국민’, ‘명품’, ‘막장’ 등의 수식어로 전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우리의 텔레비전 드라마. 이제는 우리 사회의 문화를 대표하는 유력한 텍스트로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텔레비전 시청 시간이 하루 평균 3시간 이상이라는 통계에서 어림잡을 수 있듯이, 한국인은 여가를 텔레비전 시청으로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대중들의 여가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텔레비전 드라마’는 한낱 오락에 불과한 것인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일 뿐인가? 혹시 미학적·예술적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장 광범하고 보편적이고, 스토리텔링이 강한 장르인 ‘텔레비전 드라마’를 미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본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가 발간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텔레비전 드라마’의 미학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접목한 책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대중들이 널리 향유하고 있는 드라마의 친밀함을 바탕삼아, 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만 조망되었던 텔레비전 드라마를 ‘스토리텔링’과 ‘예술’의 관점으로 고찰하여 텔레비전 드라마에 대한 사유를 한 걸음 더 진전시킨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예술 영역에 포함될 만큼 미학적 가치를 지닌 것인가?
텔레비전 드라마는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와 드라마라는 장르가 결합하여 탄생한 예술이지만, ‘텔레비전 드라마가 예술의 공간에 포함될 만큼 미학적 가치를 지닌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고 끊임없는 견제와 경계를 통해 개조되어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연극이나 영화에 비해 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텔레비전 드라마는 오락이었지 예술은 아니었다.
하지만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의 저자 박노현은 이러한 폄하를 온당하지 않은 시각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정확하게 밝힌다. “설령 그것이 미적인 것 혹은 예술적인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를지언정 그에 대한 심도 깊은 사유가 더 이상 지체되어서는 곤란하다. 현대 사회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극예술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지닌 채 일상과 상상 혹은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뒤흔들며 배회하는 또 하나의 문제적 유령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미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없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대한 과거의 연구가 ‘미디어’를 강조한 채 이루어져 왔고, 현재는 예술 ‘장르’에 대한 관심으로 서서히 이동 중이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미학적·예술적 가능성에 대한 모색의 수준에서 머물고 있었을 뿐이다.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미학’은 가능한가?
하지만 ‘텔레비전 드라마의 미학’을 자신의 평생의 연구 테마로 삼고 있는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의 저자 박노현은 “텔레비전 드라마가 고대 사회의 연극으로부터 출발하여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가운데 가장 큰 수혜자인 영화에 이르는 면면한 극예술의 선분 위에 대등하게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또 이와는 별개로 연극 및 영화와 구별되는 독자적 극예술로서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 텔레비전 드라마에 고유한 미학적 패러다임의 설정은 반드 반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연극 및 영화와 함께하는 예술의 연속선상에서 어떠한 것을 공유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그것과 구별되는 어떠한 것을 독점하고 있는가의 식별을 통해 미학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텔레비전 드라마 미학을 절대의 ‘창조’라기보다는 상대의 ‘참조’로 간주한다. 그것은 연극,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무대와 스크린, 브라운관이라는 미디어를 괄호로 묶었을 때 공통분모로 남는 드라마적 본질에 대한 ‘참조’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이와 같은 드라마적 본질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생각해내는 데 가장 긴요한 텍스트 가운데 하나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제6장에서 꼽고 있는 드라마의 여섯 가지 형성 요소는 하나의 극적 텍스트를 구성하는 데 가장 핵심적 요소로서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여섯 가지 형성소란 플롯(plot), 인물(character), 사상(thought), 언어(diction), 음악(song), 스펙터클(spectacle) 등을 일컫는다. 이것은 다시 인간 행동의 모방이라는 관점에서 대상으로서의 플롯·인물·사상,수단으로서의 언어와 음악, 방식으로서의 스펙터클로 나뉜다. 요컨대 드라마란 인간과 세계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람, 사고(思考)를 언어와 음악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예술인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 미학이 참조할 드라마적 본질이란 바로 이러한 여섯 가지 형성소를 의미한다.
그 가운데 이 책에서는 텔레비전 드라마 미학과 관련하여 모방 대상으로서의 플롯, 인물, 사상과 수단으로서의 언어라는 네 가지 형성소를 우선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적으로 전혀 새로운 텔레비전 드라마 미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텔레비전 혹은 텔레비전 드라마에 대한 사유는 참조와 창조의 접점을 찾는 소박한 모색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플롯, 인물, 사상, 언어 등 전통 시학의 형성소를 현대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어떻게 참조하고 어떻게 창조하는지 읽어내는 과정이 될 것이다.
―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 본문 230~231쪽

이야기의 유목, 텔레비전 드라마의 스토리텔링
― 이 책의 특징 1


‘텔레비전 드라마’는 가장 광범하고 보편적이고, 스토리텔링이 강한 장르이다. ‘스토리텔링의 힘’에 대한 문화적 열풍은 문화 창조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와 댄스, 스포츠보다도 텔레비전 드라마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텔레비전 드라마가 한국인의 삶에 가장 보편적인 여가를 차지하고 있다. 과연 그 이유는 뭘까? 그리고 거기에 단순한 오락을 뛰어넘는 새로운 미적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여섯 편의 미니시리즈를 다룬다. 〈굿바이 솔로〉, 〈내 이름은 김삼순〉, 〈다모〉, 〈미안하다, 사랑한다〉, 〈연애시대〉, 〈하얀 거탑〉 등은 텔레비전 드라마의 상상력이 창조해낼 수 있는 극적 세계의 드넓음을 보여준다.

우리를 들끓게 한 여섯 편의 미니시리즈를 ‘세밀하게 읽다’
이 책은 여섯 편의 미니시리즈에 대한 ‘세밀한 읽기’를 통해 텔레비전 드라마의 미학이 어떻게 발생하는
가를 찾고 있다. 그것은 드라마의 형성 요소 가운데 플롯, 인물, 사상, 언어가 여섯 편의 텍스트에 구현되는 양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텔레비전 드라마, 특히 미니시리즈는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가 드라마라는 장르와 접속하면서 빚어내는 예술성과 대중성의 실체를 확인시킨다. 그것은 결코 예술성을 도외시하거나 대중성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잘 만든 텔레비전 드라마는 예술성과 대중성의 결합을 통해 연극과 영화에 못지않은 고유의 미감을 창출한다.
‘드라마’가 ‘시학’을 만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사실’이다. 드라마에 대한 문학적 사유가 기록의 역사 속으로 편입된 것은 기원전 5세기 무렵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한 《시학》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와 시학의 만남에 있어서 텔레비전이라는 현대의 미디어가 틈입하게 되는 순간 사정은 달라진다. 시학과 마주하는 드라마가 기실 텔레비전을 포괄하거나 텔레비전이 괄호 처져 있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순간 그것은 사실의 차원을 떠나 하나의 불경한 ‘사건’으로 증폭되고 마는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미학’이라는 부제(副題)는 불온하기 그지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이 땅에선 텔레비전드라마 ‘따위’에 감히 ‘미학’이라는 단어를 나란히 사용하는 것 자체가 금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것이 엄정한 ‘학문’의 장에서라면 정독(精讀)과 경청(傾聽)의 필요조차 소멸되어 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텔레비전이라는 위험한 매체에 드라마와 같은 유구한 예술이 결합된 것부터가 미적 타락 정도로 여겨지는 듯하다. 하지만 고매한 학문적 품위를 잠시 유보하고 세상을 바라보면 무언가 미심쩍다.
사람들은 매일같이 텔레비전 드라마를 본다. ‘틀면 나오니까’ 또는 ‘할 게 없으니까’ 보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텔레비전은 물론 휴대전화, PMP, 인터넷, VOD를 통해서 드라마를 본다. 심지어는 외국에서 방영되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그 즉시 보기 위해 번역을 하고 자막을 제작하는 자발적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도 한다.
덧붙여 말하면 사람들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광적으로’ 본다. 도대체 무엇인가? 미적으로 타락한 텔레비전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 미적으로 타락한 압도적 다수의 정체는. ― 〈지은이의 말〉에서

일상과 일탈의 경계에서 유동하는 텔레비전 드라마
― 이 책의 특징 2


텔레비전은 현대인의 일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매체이다. 200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텔레비전 시청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 29분, 주중 시청 시간 3시간 4분, 주말은 4시간 32분이다. 평균적인 수치이긴하지만 일반적인 하루의 노동 시간을 상정하여 생각해볼 때 여가의 대부분을 텔레비전 시청으로 보내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리모컨 하나만으로 손쉽게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텔레비전의 화면이 허용하는 상상의공간으로 진입한다. 그 순간 리모컨은 제의를 위한 도구가 되고, 시청자는 자신에게 덧씌워진 일상의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텔레비전의 영상이 제공하는 각양각색의 상황과 맥락 속에서 새로운 페르소나를 받아들인다. 때로는 뉴스를 통해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참사를 직접 목도하며 공포와 전율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인생을 엿보며―재벌이 되고, 범죄자가 되고, 현실속의 자신과 너무나도 닮은 자신을 재현하기도 하면서―기쁨과 슬픔이 점철된 삶을 체험한다. 텔레비전은더 이상 사람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바보상자에 머물지 않는다.

텔레비전 드라마 미학은 어떠한 패러다임 속에서 존재하는 예술인가?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는 이 질문을 던지면서 텔레비전 드라마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그것은텔레비전 드라마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의에서 출발하여 소통 구조와 장르 구성의 특징을 살피는 것이고,텔레비전 드라마 고유의 미학적 키워드가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일종의 입론이다. 이를 통해 텔레비전 드라마가 예술의 영역에서 연극 및 영화와 같은 자리를 점유하고 있음과 동시에 일상과 예술, 현실과 상상의 삼투(渗透)를 특징으로 하는 경계에 존재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장르 구분을 위한 범주 설정은 그것의 패러다임을 파악하는 데 매우 긴요한 문제이다. 지금까지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장르라는 용어가 무색할 정도로 텍스트를 가름하는 유사와 차이의 변별적 자질이 실종된 채 주로 방송사와 제작사에 의한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명명법이 통용되어왔다. 그것은 텔레비전드라마가 진지한 미적 탐색의 대상에서 배제되어왔던 지난 역사의 음영(陰影)인 셈이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텔레비전 드라마의 장르를 시간과 공간 분할의 기획이라는 맥락에서 다루었다. 그것은 하나의 텔레비전 드라마를 텍스트의 시간과 공간에 의거한 두 개의 축으로 분할하는 장르 구분법이다. 텍스트의 시간에 따른 장르 구분은 텍스트가 차지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단막극, 미니시리즈,연속극으로 나누고 다시 그것이 독자에게 전달되는 시간에 따라 일일/주간(주중·주말)과 오전/오후 등으로 나누는 것이다. 공간에 따른 장르 구분 역시 재현적 공간과 정서적 공간의 두 갈래로 나뉜다.

재현적 공간이란 텍스트가 취하고 있는 질료로서의 물리적 공간을 일컫고, 심상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서적 공간이란 텍스트가 천착하고 있는 화소를 중심에 두었다.
연극, 영화와 다른 텔레비전 드라마의 개성은 크기와 길이에서 도드라진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크기와 길이에 따라 단막극, 미니시리즈, 연속극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텔레비전 드라마의 크기와 길이는 단순한 물리적 단위가 아니다. 그것은 연극, 영화와 구별되는 텔레비전 드라마 고유의 심미적 단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연속물로서의 미니시리즈와 연속극의 크기와 길이는 텍스트의 생산과 소비에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 본문 366~367쪽

근대 100년의 ‘영상 서사의 역사’를 만나다
― 이 책의 특징 3


텔레비전 속에 있는 드라마.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휴대전화에도, PMP에도, 컴퓨터에도 있는 그것. 특히나 서둘러 귀가해서 보아야 하는 그것. 심지어 기막힌 승부를 보여준 스포츠에서도 종종 고개를 들이미는 그것. 지난한 삶의 구석구석에서 일상의 틈새를 비집고 나와 기쁨이나 슬픔의 격정과 마주하는 순간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것. 드라마란 무엇인가?
‘드라마(Drama)’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는가?
근대 사회의 도래는 그것이 보여준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예술 전반에서도 커다란 변화
를 요구했다. 과학기술의 혁명적 발전의 영향으로 영화가 탄생했다. 영화는 문학과 연극이 축적해온 이야기의 전통에 기대는 한편, 화면의 배치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편집’이라는 그 자신의 장르 언어를 창조해감으로써 수천 년을 지탱해온 드라마의 근본 개념을 뒤흔들었던 것이다.
한국 근대 문학 100여 년의 역사에서 드라마는 시나 소설에 비해 언제나 변방의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시
와 소설은 문자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장르였던 반면, 드라마는 전대까지만 해도 구술 중심의 문화였다. 서양과 달리 한국 문학의 지형에서 유독 드라마가 시나 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한 장르로 부지(扶持)해 올 수밖에 없었던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근대 문학의 성립 과정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대략 100여 년의 역사에 근접하고 있다. 드라마는 우리나라의 문학사와 문화사에서 다층적 의미를 지녀왔다. 근대적 문화, 예술의 100년사를 관통하면서 드라마는 적지 않은 개념 분화를 겪어왔다. 이 책은 근대 초기 ‘드라마’의 유입 과정, 그리고 서구의 근대에서 구성된 100년의 예술사를 ‘텔레비전드라마’의 관점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데,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지니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문화적·문학적 의미를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는 것이다.
언어와 신체라는 형성소를 근간으로 하여 문학과 연극의 통섭(通涉)을 통해 비로소 온전한 하나의 예술 장르로 완성되는 드라마에 ‘과학기술’이라는 새로운 형성소가 틈입(闖入)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벤야민식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기술 복제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것이었다.
기술 복제 시대의 적자(嫡子)이자 문학과 연극 등 선행 장르의 세포 분열을 통한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자신의 독자적 영역을 빠르게 획정(劃定)해나갔다. 1911년 이탈리아평론가 리치오토 카누도가 영화를 ‘제7의 예술’이라고 선언하며 당당히 예술의 한 장르로 규정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카메라를 비롯한 제반 기술적 토대 위에 문학(희곡)에서는 언어를, 연극에서는 신체를 차용하면서도 문학이나 연극과는 또 다른 영역에서 자신만의 장르론을 구축했던 것이다.
실제로 예술사에서 영화의 역사는 이제 갓 100년을 넘긴 셈이지만 희곡와 시나리오/연극과 영화라는 용어의 대쌍(對雙)이 발산하는 안정감과 익숙함이 보여주듯이 영화는 문학과 연극에 대해 때로는 인접한 장르로, 때로는 대척한 장르로 관계를 맺으며 비교적 선명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왔다고 할 수 있다. 덧붙여 설명하면 대략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영화라는 신생 장르는 선행 장르인 문학, 연극과 긴밀한 친연성을 유지하는 한편, 예술의 장(場) 내부에서 고유한 형성 원리를 지닌 독립 예술로 자리 잡았다. 또한 학문 분과에서도영화학(filmologie)이라는 독자적 자기 영역을 확보했다. ―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 본문 24~25쪽
이전 다음

함께 비치된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