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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 : 기억과 건축이 빚어낸 불협화음의 문화사

전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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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 : 기억과 건축이 빚어낸 불협화음의 문화사 / 전진성 지음
개인저자전진성, 1966-
발행사항서울 : 천년의상상, 2015
형태사항783 p. : 삽화 ; 23 cm
기타표제아테네를 상상한 근대수도의 계보학을 탐사하다
ISBN9791185811086
서지주기참고문헌(p. 728-767)과 색인수록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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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기억과 망각의 예술이라 할 수 있는 건축과 도시계획은 그 본성상 기술적 사안이기에 앞서 담론적이다. 고대 아테네와 그 분신인 프로이센 고전주의에 대한 기억과 망각 속에서 베를린, 도쿄, 서울이 근대적 수도로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건축설계와 도시계획 그리고 도시민들의 반응 등을 망라하여 다루었다.”

1. 아테네를 상상한 도시, 베를린.도쿄.서울
―이 책이 말하다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은 하나로 엮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세 도시 베를린, 도쿄, 서울을 다룬다. 베를린과 도쿄는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이룩한 후발 제국의 수도라는 공통점을 지닌 데 반해, 도쿄와 서울은 오랜 역사적 인연을 지닌 동일문화권 안의 제국-식민지 관계였다.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서울과 베를린이 하나로 엮일 수 있는 것은 제국 일본의 수도였던 도쿄를 매개로 하나의 독특한 지리적 상상이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가히 종교적인 동경이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였던 베를린을 상상의 아테네로 만들었고 이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일본이 신흥제국의 수도 도쿄를 상상하는 모델이 되었...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기억과 망각의 예술이라 할 수 있는 건축과 도시계획은 그 본성상 기술적 사안이기에 앞서 담론적이다. 고대 아테네와 그 분신인 프로이센 고전주의에 대한 기억과 망각 속에서 베를린, 도쿄, 서울이 근대적 수도로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건축설계와 도시계획 그리고 도시민들의 반응 등을 망라하여 다루었다.”

1. 아테네를 상상한 도시, 베를린.도쿄.서울
―이 책이 말하다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은 하나로 엮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세 도시 베를린, 도쿄, 서울을 다룬다. 베를린과 도쿄는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이룩한 후발 제국의 수도라는 공통점을 지닌 데 반해, 도쿄와 서울은 오랜 역사적 인연을 지닌 동일문화권 안의 제국-식민지 관계였다.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서울과 베를린이 하나로 엮일 수 있는 것은 제국 일본의 수도였던 도쿄를 매개로 하나의 독특한 지리적 상상이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가히 종교적인 동경이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였던 베를린을 상상의 아테네로 만들었고 이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일본이 신흥제국의 수도 도쿄를 상상하는 모델이 되었으며, 종국에는 일제 식민지가 된 조선의 수위도시 경성에까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중앙청은 파르테논 신전과는 시대적으로나 장소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정치적·역사적 가치를 놓고 볼 때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그러나 원형의 ‘모방’이 아니라 ‘희화’라는 차원으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근대 일본이 자신의 국가적 정체성을 수립하는 데 있어 독일 프로이센의 모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제의 프로이센 수용은 단지 법제와 군제, 과학기술 영역만이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의 가장 뿌리 깊은 핵심에까지 걸쳐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근대 독일은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점에서는 극히 예외적 사례에 속한다. 수많은 나라로 갈려 있던 독일어권 지역에서 공통의 민족적 뿌리 찾기는 자연스러운 체험에 바탕을 둔 기억의 장소가 아닌 관념적으로 설정된 외딴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다름 아닌 고대 그리스! 근대 독일의 지식인들은 거리상으로나 시대적으로나 머나먼 그곳을 동경하며 상상 속의 동질성을 모색했다. 당시의 ‘그리스 열풍’을 주도했던 것은 독일 지역의 맹주로 급부상한 군사 강국 프로이센이었다. 이른바 프로이센 고전주의preußischer Klassizismus는 이러한 흐름의 문화예술적 결정판으로, 중부 유럽의 아테네로 자처하던 수도 베를린에서 활짝 꽃피웠다. 이는 동양의 베를린이 되고자 했던 일제의 수도 도쿄에 일부분이나마 제법 유사한 형태로 이식되었다. 도쿄를 상상의 아테네로 만들어가던 일제는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쇠잔한 식민지 조선의 심장부에 프로이센 고전주의의 제도적·정치적·공간적·미학적 원리를 이식했다. ― 본문 28~29쪽

2. 근대적 도시공간 서울의 탄생
― 이 책에서 듣다


서울·베를린·도쿄라는 근대수도의 계보학을 탐사하는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은 수도 서울의 식민지도시적 성격에 주목함으로써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전체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모더니티와 식민성의 모순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탄생한 대한민국은 그 태생적 모순을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문화민족주의의 논리와 냉전적 반공주의의 창검으로 불식하려 해왔다. 이 가운데 문화민족주의는 민족의 유기체적 통일성을 강조하는 독일적 정신세계에서 발원하여 반혁명적 부국강병을 모색하던 제국 일본의 사상적 본류를 형성한 것으로, ‘문화통치’의 전략적 온기 속에 식민지 조선에도 뿌리를 내렸다. 근대화를 실현할 민족의 주체적 역량을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문화민족주의가 식민지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뼈아픈 역설이다.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은 수도 서울의 현실을 넘어서려는 시도이다. ‘모던’하면서 ‘한국적’인 수도란 늘 공염불이었다. 조선총독부 청사가 그 근대적 외관 덕분에 오래도록 민주공화국의 심장부로 군림하다가 갑작스레 식민지 과거의 수치스러운 유산이라며 척결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이식된 근대문명이 반민족적 내지는 식민주의적 원죄를 지녔음을 알려준다. 물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존재한 적도 없었던 민족의 성소를 부활시키는 방안은 그저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의 성소로 부활한 경복궁은 한국인의 가슴에 사무친 추억의 장소도, 미래한국의 이정표도 아니며 기껏해야 낡은 문화민족주의를 고수하는 박제화된 공간일 뿐이다. 우리가 희망을 걸어야 할 곳은 오히려 치열한 현실의 한복판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주어진 담론적 질서에 길들여지는 동시에 그것을 은연중에 넘어선다. 베를린-도쿄-서울을 횡단해온 건축과 도시경관은 모더니티라는 특수한 담론 질서가 어떻게 보편적 진리로 관철되고 또 어떻게 물질적 현실과 유리되는지에 대한 증언이다.

일제강점기의 경성 도심부는 이미 1910년대 말이면 근대적 구조와 경관을 상당히 갖추지만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계획한 바대로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 무엇보다 1926년에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제 기능을 시작했고 그보다 한 해 전에는 경성의 전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남산 중턱에 조선신궁이 완공되었으며 경성의 가장 핵심적인 기간시설로 꼽을 수 있는 경성역이 그보다 며칠 앞서 현재의 서울역 자리에 문을 열었다. 광화문통에서 남대문통으로 이어지는 경성의 핵심축이 완성된 것이다.
경성역이 자리 잡은 일대는 조선시대에는 도성 밖이라 그다지 인구가 많지 않던 곳으로, 용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일본인 거주지가 본정 지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교통의 거점으로 떠올랐다. 이곳에는 1900년 경부선의 역사로 건립된 목조의 남대문정차장이 있었고 1925년 9월 경성역사가 준공되기 이전에 이미 명칭은 경성역으로 바뀐 상태였다. 경인선 개통과 함께 건립되기 시작한 철도역사는 여객보다는 화물 운송용이었고 철도 운영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시설만 갖추었던 관계로 인천역사, 남대문정차장, 용산역사 등 모두 규모가 작고 병영식의 조야한 형태에 머물렀다. (…) 철도역사가 옛 도시의 성문에 해당한다고 볼 때 조선시대 도성 한양의 관문이던 숭례문을 옆으로 밀쳐내고 등장한 경성역은 새로운 근대도시의 관문에 다름 아니었다. ― 본문 547~548쪽

3. 기억과 건축이 빚어낸 불협화음의 문화사
― 이 책에서 보다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은 한 나라의 수도를 창조하는 데 있어 특정한 지리적 상상과 결부된 기억행위가 주요하게 작용한다. 저자 전진성은 이 점을 주로 건축적·도시계획적 재현을 통해 규명하고 있다. 건축과 도시계획은 공학적 기술이기에 앞서 하나의 담론이자 정치적 테크놀로지이다. 흔히 ‘중앙청’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옛 조선총독부 청사는 베를린의 심장부를 수놓았던 건축가 프리드리히 싱켈의 장엄하고 강직한 건축기풍을 고스란히 투영했다. 싱켈이 상상했던 아테네가 국왕과 신민이 일체화되는 프로이센식 권위주의 국가의 이상을 내포했던 만큼, 그러한 과도한 상상력이 식민지 조선에까지 여파를 남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륙을 뛰어넘어 얽혀진 근대 수도의 계보학은 도시 간의 관계사나 영향사를 넘어 건축적 재현을 포함하는, 도시에 대한 담론의 형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문화사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은 상상의 아테네라는 담론의 기저에 놓여 있던 보다 근본적인 담론을 문제 삼는다. 이른바 ‘모더니티’ 내지는 ‘근대’라는 이름으로 포괄되는 가공할 담론은 유럽의 변방국이던 프로이센 왕국과 극동의 메이지 일본, 그리고 이후 식민지 조선 모두에게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동시에 그것을 억누를 반혁명의 논리마저 제공했다. 그것은 위기이자 기회였다. 상상의 아테네는 권위주의 국가 프로이센을 ‘모던’하게 치장하는 역할을 수행했으며 일제의 식민지에서는 무조건적으로 타당한 ‘근대문명’의 모습으로 관철됨으로써 식민지 피지배자들의 거부 의사를 원천 봉쇄하고 이들의 의식마저 식민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로 상상의 아테네는 양풍 건축의 눈부신 경관 위에 흐릿하게 투영된 현실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모던한 도시의 환등상이 식민지의 비참한 현실을 호도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모더니티의 민낯을 우리는 식민성이라 부른다.

현대의 도시는 확실히 역사와의 갈등에 시달리는 바, 그 독특한 재현의 양상을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노라Pierre Nora는 “기억의 터lieux de memoire”라는 광의적 개념에 담았다. 그것은 ‘역사’와는 대척점을 이루는 것으로, 기억을 보존하거나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기억의 부재를 환기시키는 공간을 가리킨다. 과거의 생생한 기억을 담고 있던 “기억의 환경들milieux de memoire”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더는 누구도 거주하지 않는 집”인 “기억의 터”는 국가적 기념시설이나 관광지로 단장하거나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등 오로지 인위적 연출을 통해서만 존립이 가능하다. 역사의 부침 속에서 본래적 ‘기억의 환경’을 상실한 서울과 같은 도시들은 자신의 혼란스러운 기억을 인위적으로 선별·편집하여 유서 깊은 민족적 ‘기억의 터’를 창조한다. 역사의 소진이 부득불 값비싼 대용물을 낳은 것이다.
사라진 중앙청과 복원되고 있는 경복궁은 모두 그러한 ‘기억의 터’로 볼 수 있다. 과거 식민지 시절을 경험한 도시는 서구의 도시들보다 더욱 인위적이고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강한 기억의 터를 생산하기 마련이다. 서구 대도시들의 경우 기억의 환경이 서서히 와해되면서 기억의 터에 의해 비교적 조심스럽게 대체되는 과정을 밟는 반면, 포스트식민지도시는 식민지 시절의 기억의 환경을 의도적으로 파괴한다. 왜냐하면 치욕적인 과거와의 불편한 관계가 기억의 극단적 단절을 초래하여 이를 극복하려면 더욱 극단적인 방법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포스트 식민지도시 서울의 공간은 맥락을 결여한 전통과 국적불명인 현대의 비대칭적 병립 그리고 양자를 매개할 근대기 유산의 실종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바 시민들의 균열된 기억이 비교적 잘 다듬어진 유적과 초고층 마천루의 뒤편에 함몰된 지층처럼 남는다. 외형적 활기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구조적으로 비어 있다. ― 본문 50~51쪽

4. 저자 인터뷰

2015년 7월 13일 4시경 책의 마감이 한창일 즈음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의 저자 전진성 선생을 인터뷰했다. 3,000매 정도의 분량의 책을 집필하느라 10년이라는 시간을 이 책에 담아낸 저자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정리 ― 천년의상상 편집자|선완규

▶ 전진성 선생님, 애쓰셨습니다. 2005년부터 2015년 7월까지 이번 작품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0여 년을 이 한 권의 책에 집중하셨죠. 옆에서 지켜본 저 역시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내 선생님께, 그리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문화사 서술을 담은 소중한 책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10여 년 만에 두터운 문화사 책을 출간하는 감회가 남다를 터인데요?

예, 오랜 시간이 걸려 완성한 책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해 완성했다기보다는 이 정도 선에서 작업을 중단하고 마무리한 책입니다. 제 전공영역이 독일 근현대 지성사인데, 이 책은 분야별로도 건축사와 도시사, 정치·사회사를 넘나들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적으로도 유럽과 동아시아, 심지어 인도와 북아프리카까지 다루었으니 주제넘은 욕심을 부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욕은 실은 주변부 지역의 서양사 연구자라는 자기정체성에 대한 번민의 산물입니다. 중심부 세계의 지식을 소개하는데 그치는 소매상 신세로 전락하지 않겠다고 나름 배에 힘을 주고 소리를 질러본 것입니다. 이에 대해 과유불급이라는 비판은 달게 받겠습니다.

▶ 책 전체의 원고량이 3,000매 가량 되는데요.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어디였고, 저자 전진성의 사유의 흔적이 가장 많이 드러난 장은 어디였습니까?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독일과 일본 사상 간의 은밀한 내연관계였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핵심적 인물 중 브루노 타우트와 이토 주타가 있는데, 앞사람은 독일 건축가로 일본 고건축을 ‘모던’하다고 보았던 반면에, 뒷사람은 일본 건축사가로 일본 고건축이 고전 그리스 건축과 상동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독일 모더니즘 건축과 일본 고건축, 그리고 고전 그리스 건축이 기묘한 원환을 이루고 있는 거죠. 저의 가설은 이러한 아전인수적 순환론이야말로 식민주의적 지배의 논리라는 겁니다. 이토 주타가 경복궁 앞을 조선총독부 청사 부지로 선정했던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독일적 풍모의 모던한 일본제국이 낡은 아시아를 역사의 뒤안길로 내모는 것이죠.

▶ 책 이야기로 들어가 보죠.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떤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건축과 도시계획을 그저 물리적 혹은 예술적 공간이 아니라 일종의 담론적 형성체로 취급한 도시문화사 서술입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시된 것은 특정한 기억과 그것의 공간적 재현 간의 불협화음인데요. 예컨대 고대 그리스를 자신들 맘대로 기억한 근대 독일인들은 수도 베를린의 경관에 그 상상적 기억을 표현해내고자 부심했지만, 그것은 근대 도시의 현실과 합치되기 힘들었으며 도시민들에 의해 그때그때마다 색다르게 수용되었지요. 구미열강 중 프로이센 모델을 택했던 제국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신수도 도쿄는 한때나마 베를린의 경관을 이식하려 했으나 현실의 도쿄는 자본의 논리에 잠식당했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수위도시 경성도 리틀 도쿄가 되기는커녕 식민지도시 특유의 차별적인 이중도시 체제를 끝내 벗어날 수 없었지요. 담론 형성체로서의 베를린, 도쿄, 서울은 늘 상상과 현실 간에 괴리를 빚었고 그 괴리는 새로운 담론의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결국 도시의 정체성이란 늘 변하게 마련이며 동일한 건축물도 최초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기억의 장소로 변모된다는 점이 이 책의 기본적 주장입니다.

▶ 수많은 시간을 자료와 고투하고, 그것을 논문으로 발표하면서 여러 차례 국내외 역사학자 등가 토론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점과 어려웠던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 과정을 좀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 책에는 그동안 여러 학회에 발표한 논문들이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주제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각 부분이 독립적인 논문 주제가 될 수 있었고 그때마다 해당 분야 학자들의 비판과 질정을 받았습니다. 저의 원래 전공 주제를 확대시켜 학제 간의 토론을 해 본 것은 연구자로서 참으로 흥미진진한 일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사학사(역사학의 역사) 차원에서만 다루던 역사주의를 타영역으로 확대시켜 건축사 분야의 전문가들과 토론해보거나 독일 모더니즘 건축에 대해 일본의 독일사 연구자들과 토론해본 것은 제게는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킨 동시에 제 능력으로는 넘기 힘든 괴리를 실감하는 체험이기도 했으니까요. 이 책의 집필은 한국연구재단 문화융복합단의 인문저술 지원을 받던 도중에 중간보고가 각 분야 전문가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 지원 중단을 통보받는 시련까지 겪었는데, 명색이 학제 간 연구를 장려한다는 기관이 학제 간의 장벽을 철폐하는데 무관심하다는 점에 심히 놀라고 분노했었습니다.

▶ 이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 책을 이용하는 게 좋겠습니까?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것이 저자로서는 가장 권하는 바이지만, 분량이 꽤 많기에 아마도 일반 독자로서는 인내하기 힘들 겁니다. 이 책은 앞의 프롤로그 부분이 까다로운 것이 사실이니 일단 제쳐두고 1장부터 읽어나가거나 에필로그를 먼저 읽고 나중에 프롤로그를 읽는 것도 방법입니다. 아니면 목차를 보고 관심이 가는 부분만 찾아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각 장과 각 절은 상호 연관되어있으면서도 독립적이기에 원하는 내용만 취해갈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경우에도 이 책 군데군데에 앞부분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을 표기해놓았으니 책의 내용 속으로 깊이 진입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겁니다.

▶ 이 책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 것 같습니까? 저자, 주제, 메시지 등

무엇보다도 전혀 무관해 보이는 도시와 인물, 이슈들 간의 상호 연관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제가 나름대로 주력한 점입니다. 그저 박물학적인 지식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마치 독일인들이 고대 그리스를, 일본인들이 프로이센을 상상했듯이 독자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상력은 어떠한 장벽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치 불변의 진리인 마냥 간주하고 있는 소위 ‘근대’라는 관념도 일종의 ‘환(등)상’으로 뛰어넘을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이 책에 환등상이란 용어를 굳이 도입한 것은 바로 이러한 취지에서입니다. 이미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용어이지만 저는 이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 단순히 허위의식이라는 측면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그림자라는 측면을 부각시키고자했습니다. 즉 한국인들이 ‘모던’한 도시의 환등상에 빠져든 것은 그저 식민주의적 논리에 현혹된 것이기보다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구의 표현이었다는 겁니다. 오랜 뿌리를 가진 이 갈망이 ‘근대’라는 길로 유도된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단순히 근대가 좋은 건가 나쁜 건가하는 논의는 무의미한 것일 테고, 오히려 그 환등상에 흐릿하게 투영되어있는 현실의 갈망을 읽어내는 것이 의미있는 겁니다. 도시민들이란 무자비한 권력에 휘둘린 선한 양들도, 그렇다고 저항하는 주체도 아닌 그 중간의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로, 이들이 살아가는 도시는 상상과 현실이 뒤범벅되어 늘 변화의 도상에 놓여있는 곳입니다. 이 책은 베를린은 이렇다, 서울은 이렇다는 편견을 넘어 우리가 사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해 도시민들, 독자들이 함께 고민해보는 장을 만들고자하는 합니다.

▶ 이 책의 특징 중 하나가 “서양사(독일), 일본사, 한국사의 횡단적인 역사 연구”라 할 수 있고, 또한 “얽힌 역사”고 할 수 있는데요. 독자들에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는지요?

‘얽힌 역사’는 아직 역사학계에서도 충분히 정착되지 않고 하나의 아이디어로만 논의되고 있는 개념입니다. 그 근본 취지는 인위적으로 설정된 장벽을 뛰어넘어 사고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절대시해온 민족사라는 단위는 사실은 ‘상상’의 산물로, 그 상상을 가능케한 시간과 공간의 특수한 맥락을 상대화하고 다른 시공간의 가능성을 상상해냄으로써 비로소 넘어설 수 있습니다. 물론 민족사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저 ‘세계사’로 범위를 확장하는 차원으로는 부족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민족사의 연장일 뿐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민족사의 경계가 끊임없이 재설정되고 다른 민족사들과 ‘얽혀지는’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 효과적일 겁니다. 과연 어디까지가 독일사이고 일본사이고 한국사일까요? 예컨대 식민지도시 경성에 무수하게 지어진 양풍 건축물들은 한국사의 범위에 속할까요, 아니면 일본사에 속할까요? 고대 그리스에 대한 독일인들의 상상을 빌려온 일본인들의 근대 문화는 과연 어느 나라 역사에 속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범위가 넓으니 그저 ‘세계사’에 속한다고 보아야할까요? 만주국 수도 신경에 대한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유진오의 감탄과 좌절은 대체 어느 역사로 귀속시켜야할까요? ‘얽힌 역사’의 ‘얽힘’이란 단순히 제 민족들이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주고받음의 단위와 방식이 늘 가변적이라는 겁니다. 어떤 것도 고정된 것은 없습니다. 독일화된 그리스 문화와 식민지도시 경성의 총독부 청사 간의 관계는 마치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와 같습니다. 양자 사이에는 유럽 제국의 본토와 아시아 제국의 식민지 공간 간의 격차가 가로놓여있습니다. 한쪽은 거칠 것 없는 자기과시의 표현이었던데 반해, 다른 쪽은 그 분신(근대 일본의 문화)의 왜곡된 분신이라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한쪽이 현재에도 막강한 권위를 누리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한쪽은 수치스런 유산으로 철거되었던 것이죠. ‘얽힘’은 결코 상호호혜적인 쌍방관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일방적인 영향력 행사만도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의 독특한 함수관계에 따라 문화는 늘 새롭게 얽히고 새롭게 탄생합니다.

▶ 서양사와 동아시아사, 일본사, 한국사 등을 횡단하고 있는데요. 공부와 연구, 집필, 출간 과정에서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듯합니다.

무엇보다 부족한 일본어 실력이 작업의 진척을 가로막았습니다. 특히 19세기 일본 문헌은 혼자서는 전혀 감당할 수 없어 주변 전공자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행히도 이와쿠라 사절단의 [미구회람실기]나 [경성부사] 등 이 책에서 다루는 주요한 일본 문헌들 일부가 최근에 번역되어서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언어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전문성이 부족한 한국사 분야를 집필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경성 도시사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 많은 연구가 있기에 최소한 창피는 안 당해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문헌들을 탐독했습니다. 출간 이후에 과연 각 분야 전문가들이 어떠한 평을 내놓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 이 책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저자로서 독자들과 꼭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의 하나가 고대 그리스에 대한 저 자신의 동경입니다. 청소년기에 방황을 많이 했던 제게는 어머니가 사주셨던 [인간 세계사](타임-라이프 북스)라는 총천연색 칼라 화보집의 고전 그리스 편이 엄청난 상상의 무대를 제공했었습니다. 물론 지금 학자로서 생각해보면, 저의 ‘상상’은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무턱대고 서양중심주의에 빠져든 것임에 분명하지만, 어쨌든 저의 상상력은 처음 베를린의 중심가로 운터덴린덴을 접했을 때 되살아났고 아직까지도 사그라들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책에서 독일화된 그리스는 이후 식민주의적 도용과 결부되어 매우 비판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내심 한편으로는 저의 부질없는 개인적 환상을 독일인들의 상상력에 투영하여 펼쳐 보이고 싶었습니다. 역사가는 외적인 사실 뒤에 숨어 마치 수줍은 듯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옳다는 것이 제 평소의 생각입니다. 물론 독일인들의 그리스관은 지극히 보수주의적이었고 그러한 이데올로기에 저는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역사서술은 이데올로기 비판을 넘어 문학의 경지로 가야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물론 이 소망이 제대로 성취되었는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깁니다.

▶ ‘기억과 건축이 빚어낸 불협화음의 문화사’라는 타이틀이 매력적인데, 이 문장을 책과 연결하여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건축은 특정한 기억을 담은 일종의 ‘담론 형성체’로 볼 수 있지만 건축이 여타 담론들과 구별되는 점은 그것이 특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들어선 물리적 실체라는 겁니다. 그것은 ‘물질적’ 실천의 결과인 만큼 애초의 담론과는 늘 괴리를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 괴리야말로 도시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으로, 이것에 주목함으로써 도시의 속성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도시는 늘 운동하는 복합체입니다. 하나의 건축물이 시대적 변천에 따라 전혀 색다른 의미로 읽혀지게 되는 것은 그것을 하나의 절대적인 의미로 고착시키는 민족사적 해석이나 기술이나 양식의 측면만을 강조하는 건축사적 전문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차원입니다.

▶ 전진성 선생님! 그 동안의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뛰어난 연구 성과를 담은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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