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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김구

손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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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이승만과 김구/ 손세일 지음
개인저자손세일= 孫世一
발행사항서울: 조선뉴스프레스, 2015
형태사항7 v.: 삽도; 23 cm
ISBN9791155783641 (v.1)
9791155783672 (v.2)
9791155783702 (v.3)
9791155783719 (v.4)
9791155783726 (v.5)
9791155783733 (v.6)
9791155783740 (v.7)
9791155783634 (세트)
서지주기참고문헌 및 색인수록
서지적 각주 수록
내용주기v.1. 제1부 :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1875~1919(Ⅰ) -- v.2. 제1부 :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1875~1919(Ⅱ)-- v.3. 제2부 : 임시정부를 짊어지고 1919~1945(Ⅰ) -- v.4. 제2부 : 임시정부를 짊어지고 1919~1945(Ⅱ) -- v.5. 제2부 : 임시정부를 짊어지고 1919~1945(Ⅲ) -- v.6. 제3부 : 어떤 나라를 세울까 1945~1950(Ⅰ) -- v.7. 제3부 : 어떤 나라를 세울까 1945~1950(Ⅱ)
주제명(개인명)이승만=李承晩, -- 1875-1965. -- SLSH --
김구=金九 -- 1875-1949. -- SLSH --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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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1 1259220 951.62092 이58손 2015 v.1 2관6층 일반도서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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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259221 951.62092 이58손 2015 v.2 2관6층 일반도서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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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259222 951.62092 이58손 2015 v.3 2관6층 일반도서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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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259223 951.62092 이58손 2015 v.4 2관6층 일반도서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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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259224 951.62092 이58손 2015 v.5 2관6층 일반도서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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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259225 951.62092 이58손 2015 v.6 2관6층 일반도서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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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259226 951.62092 이58손 2015 v.7 2관6층 일반도서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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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대한민국은 어떻게 세워졌는가?

- 원로 언론인 손세일의 45년에 걸친 Life Work! 200자 원고지 2만 3000여매!
- 현대 한국정치사, 대한민국 건국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 이승만과 김구라는 두 산봉우리에 올라가 봐야 한국현대사가 보인다! 신화(神話)도 미화(美化)도 아닌, 대한민국의 두 국부(國父)의 초상

원로 언론인 손세일씨가 2001년 8월부터 12년 동안 111회에 걸쳐 《월간조선(月刊朝鮮)》에 연재 했던 《이승만과 김구》(전7권)가 드디어 완간됐다. 200자 원고지 2만 3000여장, 전 7권 각권 800면 내외의 대작이다. 하나의 역사적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연재한 것은 한국 잡지사상 초유의 일이다. 2013년 7월 연재를 마친 후에는 1년여 동안 《월간조선》에 연재했던 내용을 대폭적으로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거쳐 이번에 전 7권을 출판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미 1970년에 한 권으로 된 《이승만과 김구》를 출간한 바 있다. 이때로부터 기산하면 45년만에 책이 완간되어 나온 셈이다. 이 책은 출간 이후 ‘한국헌정사 연구의 선구적...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대한민국은 어떻게 세워졌는가?

- 원로 언론인 손세일의 45년에 걸친 Life Work! 200자 원고지 2만 3000여매!
- 현대 한국정치사, 대한민국 건국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 이승만과 김구라는 두 산봉우리에 올라가 봐야 한국현대사가 보인다! 신화(神話)도 미화(美化)도 아닌, 대한민국의 두 국부(國父)의 초상

원로 언론인 손세일씨가 2001년 8월부터 12년 동안 111회에 걸쳐 《월간조선(月刊朝鮮)》에 연재 했던 《이승만과 김구》(전7권)가 드디어 완간됐다. 200자 원고지 2만 3000여장, 전 7권 각권 800면 내외의 대작이다. 하나의 역사적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연재한 것은 한국 잡지사상 초유의 일이다. 2013년 7월 연재를 마친 후에는 1년여 동안 《월간조선》에 연재했던 내용을 대폭적으로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거쳐 이번에 전 7권을 출판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미 1970년에 한 권으로 된 《이승만과 김구》를 출간한 바 있다. 이때로부터 기산하면 45년만에 책이 완간되어 나온 셈이다. 이 책은 출간 이후 ‘한국헌정사 연구의 선구적 성과’(노재봉 전 국무총리), ‘한국 최초의 정치전기학 저서’(김학준 전 《동아일보》 회장)라는 평가를 받았다. 《월간조선》에 연재할 때에는 ‘우리나라 전기문학의 큰 업적’(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으로 평가 받았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에서 나온 방대한 기초자료를 두루 섭렵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신화(神話)와 미화(美化)를 넘어서는 지적 정직함이다. 이승만이나 김구, 둘 중 한 사람만을 경애(敬愛)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들도 여러 군데 나오지만, 저자는 이러한 ‘불편한 진실’에 개의치 않는다.
저자는 두 사람의 네 가지 키 워드로 ▲ 애국심 ▲ 반일감정 ▲ 반공주의 ▲ 기독교 사상을 꼽으면서 “이승만과 김구는 이 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근대적 국민국가를 창건한 대표적인 두 정치지도자이다. 그런 뜻에서 ‘한 나라에 국부(國父)는 한 사람뿐이며 우리나라의 국부는 이승만’이라면서 자신이 국부로 불리기를 단호히 거부한 김구의 겸양에도 불구하고 이승만과 김구는 대한민국의 두 국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이승만과 김구라는 한국현대사의 양대 거인을 중심으로 구한말에서 대한민국 건국에 이르는 시기에 있었던 크고 작은 역사적 사실들을 꼼꼼히 기술하고 있다. 단순히 이승만과 김구라는 두 사람의 비교평전이라는 차원을 넘어, 두 사람을 중심에 놓은 한국현대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현대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절제되고 정확한 문장,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 쓰려는 노력 등도 돋보인다. 방대한 분량이지만,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한국현대사, 특히 대한민국 건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제1부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제1, 2권)
1부에서는 이승만과 김구 두 사람의 출생에서부터, 두 사람이 구한말의 격동기를 거쳐 3.1운동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두 사람이 지도자로 성장해 가는 이 기간은 정치학에서 말하는 정치사회화(Political Socialization) 과정에 해당한다.
이 기간 동안 이승만은 과거를 보려다가가 실패를 거듭하던 끝에 과거제가 폐지되면서 좌절한다. 이후 배재학당에 입학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독립협회에서 활동을 하다가, 고종 폐위음모에 연루되어 25살~30살까지의 5년7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한다. 이 기간 동안 이승만은 일반사회에서라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만큼 많은 학문습득과 저술활동을 하고 신문논설을 쓴다. 이후 러일전쟁 후 민영환의 밀사로 미국에 파견되었다가 프린스턴대학 등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지만, 105인 사건의 여파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와이에 자리잡는다.
같은 시기에 김구는 동학란에 가담했다가 좌절한 후 한때 안중근 의사의 부친 안태훈에게 의탁한다. 이후 치하포 나루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는다’며 일본인 쓰치다를 살해해 1년 10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하다 탈옥한다. 이후 전국을 방랑하다가 애국계몽운동에 투신했으나, 경술국치 후 105인 사건으로 다시 4년 반 동안 감옥생활을 한다. 첫 번째 감옥생활에서 개화파로 변신한 김구는 두 번째 감옥생활을 거치면서는 불굴의 저항적 민족주의자로 거듭난다.

제2부 ‘임시정부를 짊어지고’(제 3, 4, 5권)

2부에서는 두 사람이 3.1운동의 결과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함께 참여하여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직업적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는 26년 동안의 정치행태와 두 사람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처했던 국제정치 및 독립운동자 사회의 상황을 정밀하게 살핀다. 상황변화에 대한 임시정부의 대응은 다섯 차례에 걸친 개헌으로 나타났는데, 저자는 그 개헌의 과정과 문제점을 자세히 분석했다. 대표적인 것이 1925년에 있었던 임시대통령의 탄핵과 면직을 둘러싼 ‘정변’과 개헌이었다.
이승만은 이 시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추대되지만, 위임통치론 주장 등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다가 결국 1925년 탄핵된다. 독립운동 시기 이승만의 독립운동 방략은 흔히 ‘외교독립론’으로 일컬어지는데, 그 정점은 1933년 제네바회의 참석이었다. 이승만은 1933년1월부터 8월까지 만주사변문제를 다루는 제네바의 국제연맹 회의에 가서 여러 나라의 대표들을 만나고, 《만주의 한국인》이라는 팸플릿을 저술하여 배포하고, 방송과 신문을 통하여 선전활동을 벌인다. 이승만은 제네바 여행에서 평생의 반려자가 된 프란체스카 도너를 만났다. 이후 하와이에서 교육 및 경제사업에 힘쓰지만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Japan Inside Out》을 출간하고, 태평양전쟁 기간 중에는 단파방송을 통해 해방이 머지않았음을 고국의 동포들에게 알리면서 오랜 망각에서 벗어나 다시 ‘민족의 지도자’로 떠오른다.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미 정보기관 OSS 및 미 군부와 접촉해 냅코 작전 등 비밀공작을 추진한다.
‘문지기’ 역할을 자처하면서 경무국장으로 임시정부 활동을 시작한 김구는 이후 독립운동가 사회의 알력으로 여러 번 좌초의 위기에 처할 때에도 임시정부를 굳건하게 옹호한다. 김구는 1932년1월과 4월에 잇달아 있었던 이봉창(李奉昌) 의거와 윤봉길(尹奉吉) 의거를 계기로 임시정부의 실질적인 영도자로 떠오른다. 김구는 장개석(蔣介石)과 회담하고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여 한국청년들을 훈련했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충칭에 이르기까지 중국대륙을 표랑하면서 임시정부를 지켜냈고, 독립운동세력 내 좌우합작, 광복군의 통수권을 둘러싼 중국 국민당 정부와 갈등 등을 이겨내면서 결국 해방을 맞는다.

제3부 ‘어떤 나라를 세울까’(제 6, 7권)

3부에서는 1945년 10월과 11월에 국민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귀국한 두 사람이 냉전체제라는 새로운 국제정치질서의 전개 속에서 통일독립정부 수립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두고 어떻게 고뇌하고 행동했는가를 기술한다. 저자는 “동유럽제국의 붕괴 이후에 열람이 가능해진 구소련정부문서를 비롯하여 《슈티코프일기》 등 여러 가지 기초자료를 이용하여 정확한 사실 규명에 노력했다”고 말한다. 특히 1946년 10월 폭동, 1948년 4~5월의 남북협상이 철저하게 소련의 지원과 설계 아래 이루어진 것임을 밝힌 대목이 눈길을 끈다. 해방 직후 이승만은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한 좌익세력으로부터도 주석으로 추대받는 등 좌우파를 막론한 민족지도자로 인정받는다. 이승만 자신도 공산주의에서 취할 점을 강조하는 등 한때 좌익세력까지도 포용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신탁통치반대 투쟁 등을 거치는 동안 공산주의를 콜레라에 비유하면서 결별을 선언한다. 이후 정읍발언, 좌우합작을 추진하는 하지 군정 장관과의 갈등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1947년의 도미(渡美)외교 등을 통해 대한민국 건국으로 가는 길을 연다. 그리고 마침내 독립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
정읍발언 이후 일관되게 38선 이남에서만이라도 독립정부를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이승만과는 달리, 김구는 이 기간 동안 일관되지 모습을 보인다. 해방에서 1947년 말에 이르는 대부분의 시기 동안 김구는 이승만과 협력하면서 반공주의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한다. 이는 일제시대 독립운동 기간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유엔이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를 결의한 후, 김구는 이에 대한 찬성과 반대 사이를 오고가다가 결국 남북협상에 참여하고 만다. ‘국가’를 중시한 이승만과는 달리 그는 ‘민족’을 중시했던 것이다. 저자는 “김구가 1948년4월의 남북협상의 결과에 크게 실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국가적인 불행이었다”면서, 1948년7월11일에 경교장을 방문한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의장인 유어만(劉馭萬) 중국공사와의 긴 대화록을 소개했다. 그것은 이 시기의 남북관계에 대한 김구의 인식을 솔직히 말해주는 문서이다. 결국 1949년 김구는 안두희의 총에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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