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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사림과 <소학>

윤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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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조선 전기의 사림과 <소학> / 윤인숙 지음
개인저자윤인숙= 尹仁淑
발행사항고양 : 역사비평사, 2016
형태사항340 p. ; 23 cm
총서명역비한국학총서 ;35
ISBN9788976961365
서지주기참고문헌(p.320-[334]) 및 색인수록
수상주기교육부의 지원으로 대한민국학술원에서 선정한 2016년도 우수학술 도서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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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이 책은 16세기 기묘사화로 피화된 인물들이 왜 『소학』을 중시했는지, 그리고 『소학』은 왜 기묘사화 이후 금서로 인식될 만큼 커다란 사회적인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했다. 지금까지 연구는 ‘사림파’라는 추상적인 집단을 설정하여 훈구파와의 이분법적인 구도하에서 논의를 진행시켜왔다면, 이 책은 소학실천자들이 사승·동문수학·혼인 등 폭넓은 네트워크 속에서 관계를 확대시켜 나가면서 『소학』을 통해 어떤 정치·사회를 구상하길 원했고, 또 그것은 어떻게 적용·확대되었는지를 구명하고자 한다.”

‘소학실천자’, 그들이 꿈꾼 나라
『소학』에 담긴 주자의 국가·사회철학을 이 땅에 실현하고자 했던 ‘소학실천자들’
‘사림파 vs 훈구파’의 대립구도 속에 잊혀왔던 거대한 개혁정신의 핵심을 들여다본다


기존의 조선 전기사 연구는 훈구파 vs 사림파의 사회경제적 기반 차이를 드러내면서 그 갈등과 대립구도 속에서 이후 붕당정치로 나아가는 기틀이 잡혔다는 전제를 두고 역사를 파악했다. 반면 이 책 <조선 전기의 사림과 <소학>>의 저자 윤인숙은 ‘사림’을 특정한 경제적·지역적 기반을 지닌 배타적 세력의...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이 책은 16세기 기묘사화로 피화된 인물들이 왜 『소학』을 중시했는지, 그리고 『소학』은 왜 기묘사화 이후 금서로 인식될 만큼 커다란 사회적인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했다. 지금까지 연구는 ‘사림파’라는 추상적인 집단을 설정하여 훈구파와의 이분법적인 구도하에서 논의를 진행시켜왔다면, 이 책은 소학실천자들이 사승·동문수학·혼인 등 폭넓은 네트워크 속에서 관계를 확대시켜 나가면서 『소학』을 통해 어떤 정치·사회를 구상하길 원했고, 또 그것은 어떻게 적용·확대되었는지를 구명하고자 한다.”

‘소학실천자’, 그들이 꿈꾼 나라
『소학』에 담긴 주자의 국가·사회철학을 이 땅에 실현하고자 했던 ‘소학실천자들’
‘사림파 vs 훈구파’의 대립구도 속에 잊혀왔던 거대한 개혁정신의 핵심을 들여다본다


기존의 조선 전기사 연구는 훈구파 vs 사림파의 사회경제적 기반 차이를 드러내면서 그 갈등과 대립구도 속에서 이후 붕당정치로 나아가는 기틀이 잡혔다는 전제를 두고 역사를 파악했다. 반면 이 책 <조선 전기의 사림과 <소학>>의 저자 윤인숙은 ‘사림’을 특정한 경제적·지역적 기반을 지닌 배타적 세력의 명칭이 아닌 폭넓은 사상운동의 ‘트렌드’로 인식한다. 따라서 제1부에서는 ‘사림’의 정치관·가치관·인간관이 조선 유학의 도통(道統)을 잇는 김종직-김굉필-조광조 등 걸출한 유학자들을 구심으로 한 네트워크를 통해 어떻게 체현되고 확대되었는지 밝히면서 책을 시작한다. 이들은 특히 기존에 ‘어린 아이들이나 읽는’ 책으로 치부되었던 <소학>에서 주자의 핵심적인 정치철학을 발견하고, 스스로 ‘소학’이 제시하는 삶의 자세를 가다듬으며 ‘수신’ ‘제가’ 이후 ‘치국’ ‘평천하’를 하고자 했다. 제2부에서는 주자가 <소학>에 담아낸 유학적 가치관, 도덕관, 정치관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그것이 조선 전기의 ‘소학실천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 소개한다.
이 책이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특정한 경제적·지역적 기반을 지닌 배타적 세력으로서의 ‘사림파’가 아니라, “집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왕에게 충을 바치며”, “공부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옷차림과 자세를 경건하게 가다듬는” 가치관과 태도를 지닌 이들의 느슨한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친구관계, 사승관계, 혼인관계 등으로 서로 인연을 쌓고, 때로는 계모임을 통해 교류를 다졌다. 이 책 제3부에서는 그들이 <소학>을 사상적 공통기반으로 삼고 중앙정치 차원에서 수행한 개혁의 논리를 차근차근 분석하고 있다. 나아가 제4부에서는 중앙정치구조의 개혁에 머물지 않고 ‘만민의 교화’를 위하여 향약과 서원, 서당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주자학의 가치관과 도덕관을 전파했던 움직임이 포착된다. 결국 이들 ‘소학실천자’들의 개혁은 기묘사화 이후 좌절되었지만, <소학>과 거기 담긴 가치관은 조선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주류 유학으로 정립되어감을 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아는 진정한 ‘조선’의 탄생이었던 것이다.

주희가 <소학>에서 정립한 주요 관점들
―‘소학실천자’들이 꿈꾼 정치는 무엇이었나


주희가 <소학>에서 구축한 주요 관점은 네 가지이다. 첫째, 군주·사 보편론이다. 주희는 <소학>에서 한·당대에 정립된 경전들과 달리 신분차별을 선정하지 않았다. 효의 실천방법은 천자부터 일반서민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었다. 둘째, 가·국가 부동론이다. 주희는 <소학>에서 부모와 군주에 대한 자식과 신하의 태도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곧 공과 사의 엄격한 구분을 의미하며, 이런 구분을 통해 그는 국가의 공적 영역에서 공공선을 추구하고자 했다. 셋째, 군주수신론이다. 주희는 군주를 도덕적 완성을 이루어야 할 존재로 여겼다. 넷째, 가·향·국의 설정이다. 주희는 <소학>에서 가에 해당하는 효와 향에 해당하는 경, 그리고 국가에 해당하는 충으로 이어지는 논리를 설정했다. 이는 공적 영역을 확보하고 그 경계를 분명히 구분 짓고자 하는 구상이었다. 또한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대학>과 달리 <소학>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접근이 용이하며 현실에 실현 가능한 체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소학>의 이념은 소학실천자들의 개혁론에도 반영되었다. 첫째, 가·국가 부동론은 내수사 혁파로 연결되었다. 내수사는 군주의 사적인 재산을 관리하기 위한 관부이며, 그 운영은 국가재정과 무관한 궁중 사수를 위한 것이었다. 국가의 공적인 위치에 존재했던 군주가 사적인 재산을 소유 관리하는 내수사와 같은 기구를 둔 것은 공·사 구분론에 맞지 않았다. 둘째, 군주수신론은 군자·소인 분별로 연결되었다. 이를 분별할 자는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인 군주였다. 군주의 분별은 끊임없는 학문적 연단을 통해 능력과 소양을 갖추는 것인데, 그 방법은 수신이었다. 소학실천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이념을 현실에 적용하고 확고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현량과 실시를 추진했다. 현량과는 개인과 개인의 네트워크 연결과 가변적이고 개방적인 계모임의 구성원들을 중앙정치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제도적 실행이었다. 소학실천자들은 중앙 정치개혁과 함께 지방사회에서 향약을 실시했다. 향약의 실시는 중앙의 관리부터 지방의 사족과 일반 민·노비까지 아우르는 주자학적 도덕질서의 재편을 의미했고, 이는 자발적으로 아래에서부터 실시되었던 중국과 달리 중앙에 의해 하향적으로 실시되었다. 이런 일방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사회는 향약의 규율에 의해 자율적인 움직임을 가지는 이중적인 모습도 나타냈다. 결국 중종대 향약은 국가의 틀 속에서 주자학적 도덕질서로 향을 재편하고자 하는 의도였지만, 이것은 향으로 하여금 국가와 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게 만들어 향의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그러나 기묘사화의 발생으로 현량과와 향약은 폐지되었고, <소학>은 금서로 인식되었다. <소학>의 금서 인식은 <소학>이 현실의 정치 운영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반증이었다. 향약의 실시로 지방사회에 퍼지기 시작한 <소학> 이념은 민까지도 주자학적 도덕 질서에 재편될 수 있게 했다. 주해서와 언해본 작성은 <소학> 이념이 점차 사회화와 대중화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언해본의 보급이 <소학> 교육 확산의 의미를 담지하고 있다면, 서원은 실질적으로 교육에 의한 <소학> 이념의 확산을 주도했다. 지방교육의 확대에서 서원이 한축을 형성했다면, 또 다른 한축은 서당이 담당했다. 서원은 16세기 중엽부터 건립되기 시작하여 17·18세기에 수가 크게 증가했고, 서당은 17·18세기에 그 수가 급증했다. 이는 그만큼 지방사회에서 <소학> 이념, 더 나아가서 주자학적 이념이 확산되고 있었음을 뜻한다고 생각된다. 이로써 <소학>은 처음에 소학실천자들이나 읽던 책에서 점차 중앙 사대부, 재지사족, 더 나아가 일반 평민까지 독서층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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