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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 국가제의와 정치

채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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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한국 고대 국가제의와 정치 / 채미하 지음
개인저자채미하= 蔡美夏, 1967-
발행사항서울 : 혜안, 2018
형태사항450 p. ; 24 cm
ISBN9788984946002
서지주기참고문헌(p. 433-446)과 색인수록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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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건국신화와 국가제의를 통해 한국 고대사회의 실상을 바라보다!
오늘날 한국의 국가제사의 대상은 한민족의 시조(始祖)인 단군(檀君)이며, 개천절은 그 기념일이다. 그런데 단군을 국가제사의 대상으로 모신 것은 고려시대 몽골 침략을 겪고, 일연의 <삼국유사> 등의 정리과정을 거치면서부터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 삼국시대에 국가제사의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각 나라의 시조인 주몽(고구려), 온조(백제), 혁거세(신라)들과 그들의 어머니인 유화, 소서노, 선도산 신모가 그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각국의 왕권 및 정치변화와 불가분의 관련을 갖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채미하 박사는 그동안 종묘제를 비롯한 신라 국가제사와 한국 고대 오례(五禮)를 중점 연구하여 <신라 국가제사와 왕권>(2008) 및 <신라 오례와 왕권>(2015)을 출간하였다. 두 책을 기본 바탕으로 하여 한국 고대 국가제의와 정치와의 관련성을 밝힌 것이 이 책이다.

1장에서 한국 고대의 건국신화들은 초현실적, 초자연적인 내용을 전함과 동시에 국가의 창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포함하고 있음을 살폈다. 이런 건국신화를 재현한 것은 국가...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건국신화와 국가제의를 통해 한국 고대사회의 실상을 바라보다!
오늘날 한국의 국가제사의 대상은 한민족의 시조(始祖)인 단군(檀君)이며, 개천절은 그 기념일이다. 그런데 단군을 국가제사의 대상으로 모신 것은 고려시대 몽골 침략을 겪고, 일연의 <삼국유사> 등의 정리과정을 거치면서부터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 삼국시대에 국가제사의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각 나라의 시조인 주몽(고구려), 온조(백제), 혁거세(신라)들과 그들의 어머니인 유화, 소서노, 선도산 신모가 그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각국의 왕권 및 정치변화와 불가분의 관련을 갖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채미하 박사는 그동안 종묘제를 비롯한 신라 국가제사와 한국 고대 오례(五禮)를 중점 연구하여 <신라 국가제사와 왕권>(2008) 및 <신라 오례와 왕권>(2015)을 출간하였다. 두 책을 기본 바탕으로 하여 한국 고대 국가제의와 정치와의 관련성을 밝힌 것이 이 책이다.

1장에서 한국 고대의 건국신화들은 초현실적, 초자연적인 내용을 전함과 동시에 국가의 창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포함하고 있음을 살폈다. 이런 건국신화를 재현한 것은 국가제의(國家祭儀)로, 제사는 전근대 동아시아사회에서 정치의 필수요건으로 제시되었다. 지금껏 한국 고대 건국신화와 국가제의를 분석하면서 건국 시조와 비교해 볼 때 국조(國祖)의 어머니인 국모(國母), 신모(神母)는 부수적이었다. 국모, 신모는 건국 영웅을 낳고 그들을 기르며 새로운 국가를 건설 내지는 건설하기 위해 떠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거나 시조의 조력자로 나온다. 이와 같은 국모, 신모로는 고조선의 웅녀와 고구려의 유화(柳花), 백제의 소서노, 신라의 선도산 신모와 알영, 금관가야의 허왕후, 대가야의 정견모주들이 있다. 이들은 죽은 후 국가제의의 대상이 되었다.
고구려 건국신화나 국가제의에서 주몽의 어머니는 시기에 따라 각각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즉 고구려 건국신화에는 ‘시아’ ‘하백녀’ ‘하백녀 유화’로 등장하며 태후묘 제사에서는 ‘태후’로, 수신제에서는 ‘수신’으로, 부여신묘 제사에서는 ‘부여신’으로 각각 나타난다. 이것은 당시 정치·사회적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주몽의 어머니는 무명의 인격체, 무명의 신격체, 유명의 신격체로 시대에 따라 그 성격이 변화·발전하였다. 한편 신라의 건국신화는 각 성의 시조 전승을 근간으로 형성되어 있지만, 혁거세 신화에는 6촌장뿐만 아니라 알지·알영과 관련된 다른 시조전승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신라 건국신화의 복잡한 양상을 국가제의의 변화와 관련지어 이해하였다. 즉 신라 상고기 시조묘와 중고기 이후 신궁의 주신인 혁거세가 국가제의의 대상이 된 것은 건국신화에도 반영되어 있으며 중대 이후 혈연을 중시하는 오묘제가 성립되면서 혁거세에 대한 제사와 건국신화도 변화되어 갔다고 보았다.

2장에서는 한국 고대 국제질서와 국내질서에 국가제의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선 국제질서와 관련해서 백제멸망 후인 666년 당(唐)의 봉선의례를 주목한다. 당은 7세기 중반 고구려 멸망의 계획을 수립하였지만, 취리산회맹을 통해 고구려의 봉선참여를 유도하였고, 고구려의 봉선의례 참여로 당은 고구려에 대한 무력도발을 철회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이것은 당이 봉선의례가 끝나는 시점에서 신라의 청병 요구에 주저하면서 반응을 보이지 않은 데서 알 수 있다.
국내질서와 국가제의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백제 ‘제천지(祭天地)’의 변화를 살폈다. 한성백제시기의 제천지는 사비백제시기에 ‘제천급오제지신(祭天及五帝之神)’으로 변화하였지만, 저자는 이미 웅진백제시기 말인 동성왕대 그것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한성시기 이래 계속되는 진씨와 해씨 등 구 귀족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 동성왕은 새로운 귀족세력과 타협‧공존하기 위해 왕실은 ‘천’에, 귀족은 ‘오제’에 각각 대응시켰다. 다음으로 옛 백제지역의 산천제사 중 사비지역의 산천은 대부분 통일 후 신라의 국가제사에서 배제되었지만, 군사적 요충지였던 가림성(현재 부여 성흥산성)은 신라 국가제사에 편제되었다. 그런데 가림성은 신문왕 6년 소부리주가 소부리군으로 격하된 이후부터 경덕왕 16년 사이에 철폐되었다. 이것은 부여의 삼산이 신라 국가제사에 편제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한편 신라의 명산대천제사에는 산천(山川)뿐만 아니라 북형산성․가림성․도서성 등 성(城)도 포함되었다. 성이 지니고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라가 옛 고구려․백제․신라 지역에 성(城)제사를 하나씩 편제한 것은 옛 고구려․백제 지역에 대한 정치적 포섭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신라 국가제사에 편제되어 있는 성 제사는 신라말 중국의 성황제사가 우리나라에 수용되어 이후 ‘성황당’으로 정착되던 하나의 배경이 될 수 있었다.

3장에서는 한국 고대국가가 산천 제사를 국가제의에 편제한 목적은 각 지역에 대한 지배권 행사와 관련 있음을 살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첫머리에 나오는 신라 6촌 사회는 시조의 탄강지 내지는 그 지역의 산들을 신성시하였고 그곳에 제사지내면서 그들 공동체를 공고히 하였다. 그렇지만 신라가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들 산은 신라 국가제사에 편제되기도 하였다. 태종무열왕 이후 신라 중대왕실이 명산대천제사를 대․중․소사에 편제한 이유는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각 지역에서 행한 명산대천제사를 국가제사체계로 받아들여 정비하기 위함이었는데, 이것은 사해(바다) 제사와 사독(하천) 제사도 마찬가지였다. 신라의 사해(四海)는 동해 아등변(포항시 흥해), 남해 형변(부산 동래), 서해 미릉변(전북 군산), 북해 비례산(강원 삼척시)이며, 사독(四瀆)은 동독 토지하(흥해읍 곡강), 남독 황산하(낙동강), 서독 웅천하(금강), 북독 한산하(한강)을 가리킨다. 특히 신라 중대왕실은 유교의 산천규범에 따라 이 사해 제사와 사독 제사를 국가제사에 편제하여 새로운 지배질서를 꾀하려고 하였다.
백제 사비시기의 산천제사는 유교적 산천제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우선 산천에 대한 등급을 두었는데, 삼산과 오악은 대산천이었고 제산천은 소산천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각 지역의 산천은 지역의 진산(鎭山)으로, 이들 산천은 각 지역의 지배세력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백제 사비시기 유교적 산천 규범에 따라 산천제사를 정비한 것은 당시 백제 왕실이 각 지역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던 지역세력을 편제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또한 경주 남산은 신성(神聖)구역으로, 남산의 한 봉우리인 도당산은 지형상 구릉지대이며, 봉황대 전설과 도당산 전설이 전한다. 도당산에서 구릉 귀신을 진압하는 제사인 압구제를 지냈다.

보론에서는 고려·조선의 국가제사를 검토하였다. 우선 고구려 시조 ‘동명’에 대한 제사인 동명성제사는 고려시대 고구려 계승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는 동명성제사가 서경에 있었다든가, 고구려의 동맹제를 계승한 서경의 팔관회 등에서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고려말 고조선 계승의식이 대두되고 조선 세종대 동명이 단군과 함께 배향되면서 동명성제사의 기능은 약화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수신(水神)을 분봉(分封)하여 수신제사를 유교적 길례체계로 편입하려고도 하였다. 하지만 고려시대 수신제사는 불교․도교의례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은 수신제사는 조선시대 국가제사가 정비되면서 유교의례로 정리되어 갔다.
현재 서울의 북한산(삼각산)은 한국 고대부터 진산으로 신성시된 산으로, 백제의 부아악이었으며 삼국통일 이후에는 신라의 소사에 편제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국왕이 삼각산에 행차하기도 하였으며, 잡사에 편제되었다가 조선시대에 한양을 수호하는 진산으로, 사악(四嶽) 중 가장 높은 산악으로 자리매김하다가 이후 중악(中嶽)으로 편제되었다. 사악은 중악 북한산을 비롯, 남악 지리산, 서악 송악산, 북악 비백산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강릉 단오제의 주신(主神)은 김유신→ 승속이신(僧俗二神)→ 국사(國師)→ 승속이신으로 변천되어 나온다. 저자는 강릉 단오제의 주신 문제를 다루면서 신라말의 고승 범일이 강릉 단오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보았다. 범일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이전에는 대관산신사의 주신이었고 19세기말 갑오개혁 전후로 국사성황의 자리도 차지하였다.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국가의 대사(大事)는 제사와 군사에 있다’고 여겼다. 특히 제사는 식‧화(食‧貨)와 함께 가장 중시한 것 중 하나로, 통치자가 국가제의를 통해 사회구성원을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을 실현시키는 과정이었다. 근대에도 19세기말 대한제국 수립 때 고종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환구단을 통해 ‘황제국’임을 선포하고 그 위상을 보이고자 했다.
제사 중 특히 산천제는 한국 고대사회 공동체의 공고성을 뒷받침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국가제의였고, 그 유제는 지금도 명산에서 기우제나 시산제를 지내거나 기도를 하는 전통으로 이어져왔다.
이 책을 통해 한국 고대사회와 그 시대인들의 ‘예와 제사’에 대한 인식들이 보다 명확히 밝혀지고, 그것이 후대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한국인의 정체성’ 형성에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한 관심들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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