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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촉오 삼국사 : 중세 봉건시대의 개막, 184-280

하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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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위촉오 삼국사 : 중세 봉건시대의 개막, 184-280 / 허쯔취안 지음 ; 최고호 옮김
개인저자하자전= 何兹全, 1911-2011
최고호= 崔高浩, 1975-, 역
발행사항서울 : 모노그래프, 2019
형태사항808 p. : 삽화(일부천연색), 도판 ; 23 cm
총서명역사모노그래프 ;4
원서명三国史
기타표제한자표제: 魏蜀吳 三國史
ISBN9788998309046
일반주기 후한 말 주요 사건 연표: p. 710-727
본서는 "三国史. 2011."의 번역서임
서지주기참고문헌(p. 728-730)과 색인수록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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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중국 역사학계의 원로이자 위진남북조사의 대가가 쓴 필생의 역작!
사마천의 문장과 사마광의 사관으로 써내려간 박력의 역사서!!
이중톈 등 현대의 모든 삼국시대 연구자가 인용하는 삼국시대사의 바이블!!!


삼국시대를 전공한 역사학자가 서술한 위·촉·오 삼국의 역사
소설 『삼국지』의 영향으로 꽤 많은 한국의 독자들은 『삼국지』에 관한 나름의 지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독자들의 수요에 맞춰 그간 국내의 여러 아마추어 『삼국지』 애호가들이 나름대로 『삼국지』를 해석한 저작을 꽤 많이 출간했고, 일본과 중국 학자의 저술도 상당히 번역·소개되었다. 그러나 이런 국내 저술 대부분은 아마추어의 설익은 도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국내에 소개된 중국·일본 학자들의 저술 역시 삼국시대를 전문적으로 전공하지 않은 학자들이 쓴 일반적인 개설서이거나 중문학 전공자들이 소설 『삼국지』의 지식을 바탕으로 서술한 통속용 대중서인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위진남북조사의 권위자인 지은이가 삼국봉건론(또는 위진봉건론)이라는 나름의 시각을 바탕으로 일관되게 삼국의 역사를 저술한 삼국시대사 저작이다. 위진남북조사 전체가 아닌,...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중국 역사학계의 원로이자 위진남북조사의 대가가 쓴 필생의 역작!
사마천의 문장과 사마광의 사관으로 써내려간 박력의 역사서!!
이중톈 등 현대의 모든 삼국시대 연구자가 인용하는 삼국시대사의 바이블!!!


삼국시대를 전공한 역사학자가 서술한 위·촉·오 삼국의 역사
소설 『삼국지』의 영향으로 꽤 많은 한국의 독자들은 『삼국지』에 관한 나름의 지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독자들의 수요에 맞춰 그간 국내의 여러 아마추어 『삼국지』 애호가들이 나름대로 『삼국지』를 해석한 저작을 꽤 많이 출간했고, 일본과 중국 학자의 저술도 상당히 번역·소개되었다. 그러나 이런 국내 저술 대부분은 아마추어의 설익은 도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국내에 소개된 중국·일본 학자들의 저술 역시 삼국시대를 전문적으로 전공하지 않은 학자들이 쓴 일반적인 개설서이거나 중문학 전공자들이 소설 『삼국지』의 지식을 바탕으로 서술한 통속용 대중서인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위진남북조사의 권위자인 지은이가 삼국봉건론(또는 위진봉건론)이라는 나름의 시각을 바탕으로 일관되게 삼국의 역사를 저술한 삼국시대사 저작이다. 위진남북조사 전체가 아닌, 100년 남짓한 삼국시대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전문적인 모노그래프를 저술한 역사학자는 중국에서도 극히 드물다. 특히 이 책은 후한의 분열과 삼국의 정립 및 통일 과정 등 정치사·전쟁사적 측면 이외에도, 당시의 경제상황과 토지제도, 당시 지식인의 철학과 사상, 당시에 꽃피운 문학작품, 이민족 문제 등 사회사·경제사·문화사·사상사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삼국시대에 대한 전반적이고 포괄적인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삼국봉건론: 중세 봉건사회의 개막
위진남북조사의 권위자인 지은이가 삼국봉건론을 처음 주창한 것은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1950년대부터였다. 그는 도시 중심의 교환경제가 삼국시대부터 농촌의 자연경제로 후퇴하고, 자유민이 몰락하여 의부민(依附民)으로 변화했으며, 토지 겸병 위주의 전쟁이 인구 쟁탈 전쟁으로 바뀌는 등의 여러 가지 현상을 들며 삼국시대의 정립이 중세 봉건사회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고 주장한다. 당시 중국의 역사학계에서는 범문란(范文瀾)의 서주봉건설과 곽말약(郭沫若)의 전국봉건설이 마오쩌둥의 비호를 받아 중국은 서주시대, 늦어도 전국시대에 이미 봉건제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처럼 기존의 통설이 봉건시대의 시작을 굉장히 이른 시기로 잡은 것에 반해, 이 책의 지은이 허쯔취안은 삼국봉건설을 처음 주창함으로써 다른 학자들보다 봉건시대의 시작을 비교적 늦은 시대로 잡고 있다. 이 일로 그는 1960년대 중반에 벌어진 문화대혁명 기간에 마오쩌둥이 지지한 학설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간첩’이자 ‘반동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하방(下放)의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학설을 수정하지 않았으며, 이후 1994년에 출간된 이 책의 중국어판에서 자신의 주요 학설인 삼국봉건설을 거듭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학설은 후한 말기를 중국 중세의 시작으로 설정한 바 있는 일본 교토학파의 나이토 코난(內䕨湖南, 1866∼1934)이나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 1901∼1995) 등의 견해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데, 이는 어쩌면 그가 일찍이 일본과 미국에 유학하여 일본과 구미 역사학계의 주요 쟁점과 흐름을 흡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위·촉·오 삼국의 역사를 생생한 1차 사료만으로 구성하여 서술
최근 1∼20년 사이에 ‘강의’ 형식으로 『삼국지』에 관한 해설서가 많이 번역·출간되었다. 입말로 된 구어체를 구사한 이런 유형의 역사해설서는 대중에게 당시의 역사를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작자의 주관적인 해석을 거쳐 사료의 문장을 풀어서 전달한 부분이 많아 독자들이 작자의 주관적 견해와 사료상의 문헌 내용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런 유의 해설서들은 한문으로 작성된 당시의 1차 사료를 오늘날의 현대 중국어·일본어 문장으로 재구성한 것들이고, 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여 중역(重譯)의 느낌이 매우 강하다. 또한, 일부 해설서는 번역자나 편집자가 1차 사료의 원문을 직접 참조하지 않고 현대어를 재번역함으로써 독자들이 사료 문장의 신뢰를 의심하는 일도 벌어지고, 이 과정에서 오역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 허쯔취안은 생생하고 알기 쉬운 문장을 추구하고, 문장의 가독성과 흡인력에 신경을 쓰면서도 철저하게 1차 사료에 입각해 “1차 사료의 역사기록을 그대로 인용했다. 그는 그 이유를 고대인이 쓴 역사도 매우 생동감 넘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독자들은 1차 사료를 직접 번역한 이 책을 통해 위·촉·오 시대 당시의 모습을 더욱 핍진(逼眞)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연구자나 애호가들을 위해 사료의 출처와 원문을 모두 수록하고 있다.

철저한 고증과 분석, 풍부한 전투 지도, 사료의 비판적 수용
이 책에서 지은이는 삼국시대 당시의 지명을 철저히 고증하고 있다. 단순히 당시의 어떤 지역이 현재의 어느 곳에 해당한다는 식으로 기존의 학설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곳곳에서 기존에 알려진 통설에 이의를 제기하며 지명에 대한 세밀한 고증을 제시한다. 한국어 번역본은 지은이의 지명 고증에 근거하여 주요한 전투 장면을 그린 지도를 수록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노력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은이는 철저하게 1차 사료만으로 이 책을 서술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당시 사료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10만 대군과 맞서 싸운 조조군의 병력이 1만 명 정도였다는 여러 사료의 기술을 부인하고 있고, 동오의 손권이 유비에게 형주를 빌려줬다는 ‘형주차용설’에 대해 다분히 동오 측이 유포하여 그들의 입장이 반영된 견해라고 일축하고 있으며, 조조가 마초와 격돌 과정에서 위수를 건넌 일을 묘사한 사료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시하는 등 책의 곳곳에서 당시의 사료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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