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탑메뉴

전체메뉴

전체메뉴닫기


검색

상세정보

(1955~1962년 구동독 도시설계팀의) 함흥시와 흥남시의 도시계획 : 신동삼 증인의 도시계획 역사적 고찰

신동삼

상세정보
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1955~1962년 구동독 도시설계팀의) 함흥시와 흥남시의 도시계획 : 신동삼 증인의 도시계획 역사적 고찰 / 신동삼 지음
개인저자신동삼= 申東三, 1930-
발행사항서울 : 논형, 2019
형태사항279 p. : 삽화(주로천연색) ; 23 cm
ISBN9788963572338
서지주기참고문헌(p. 271-276)과 색인수록
분류기호711.4095193
언어한국어

소장정보

서비스 이용안내
  • 서가에 없는 자료서가에 없는 자료
  • SMS발송SMS발송
메세지가 없습니다
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1 1354888 711.409518 신225ㅎ 2관5층 일반도서 대출가능
서가에 없는 자료 SMS발송


서평 (0 건)

서평추가

서평추가
별점
별0점
  • 별5점
  • 별4.5점
  • 별4점
  • 별3.5점
  • 별3점
  • 별2.5점
  • 별2점
  • 별1.5점
  • 별1점
  • 별0.5점
  • 별0점
제목입력
본문입력

*주제와 무관한 내용의 서평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90세, 산 증인의 생생한 함흥시와 흥남시 도시재건 사업, 최초이자 마지막 이야기
6.25 한국전쟁으로 인한 남북 분단 시대에 그 무엇보다도 통일이 최대 민족적 과제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은 쌍방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화의 창구를 일방적으로 폐쇄했다가 교류했다 하는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고 있다. 불과 작년만 해도 남북은 서로 다시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실향민을 비롯한 우리 국민은 잠시 통일의 꿈이 당장이라도 이루어질 것 같은 꿈을 꾸게 하였다. 그러나 이내 다시 남북관계는 냉담해졌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어젠다는 “독립”이었듯이 분단시대 우리에게 최고의 어젠다는 “통일”이다.
이 책의 저자 신동삼은 우리의 어젠다인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다. 그는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태어나 1950년 흥남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북한의 인재발굴사업인 제1차 동유럽 국비유학생에 선발되었다. 유학 도중에 북한 함흥시와 흥남시 재건 사업의 통역관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다시 동독으로 돌아가 드레스덴 공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1959년에 서독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인천 출신인 제1차 파독 간호사와 만나 결혼을 하면서 이...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90세, 산 증인의 생생한 함흥시와 흥남시 도시재건 사업, 최초이자 마지막 이야기
6.25 한국전쟁으로 인한 남북 분단 시대에 그 무엇보다도 통일이 최대 민족적 과제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은 쌍방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화의 창구를 일방적으로 폐쇄했다가 교류했다 하는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고 있다. 불과 작년만 해도 남북은 서로 다시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실향민을 비롯한 우리 국민은 잠시 통일의 꿈이 당장이라도 이루어질 것 같은 꿈을 꾸게 하였다. 그러나 이내 다시 남북관계는 냉담해졌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어젠다는 “독립”이었듯이 분단시대 우리에게 최고의 어젠다는 “통일”이다.
이 책의 저자 신동삼은 우리의 어젠다인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다. 그는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태어나 1950년 흥남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북한의 인재발굴사업인 제1차 동유럽 국비유학생에 선발되었다. 유학 도중에 북한 함흥시와 흥남시 재건 사업의 통역관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다시 동독으로 돌아가 드레스덴 공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1959년에 서독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인천 출신인 제1차 파독 간호사와 만나 결혼을 하면서 이루지 못한 꿈에도 그리던 통일을 개인적으로나마 이룩했다고 생각한다. 작가 루이제 린저의 도움으로 북한을 2차례 방문하여 고향 땅을 밟고 가족을 만났다. 저자는 독일에서 건축가로 일하다가 정년퇴직하고 <구동독 함흥시 도시계획>에 관한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러면서 함흥시, 흥남시의 도시재건사업의 자료도 정리하였다. 현재 저자는 90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2013년과 2019년 서울에서 구동독 함흥시 도시설계 사업에 대한 강연과 특강을 하며 북한의 도시 재건사업에 대해 각 전문가와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최근에 ‘일본군 위안부’와 같이 과거 우리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생생한 증언, 기억과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느꼈다. 이 책은 북한의 함흥시와 흥남시의 도시재건 사업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생생한 사료로써 그 가치있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함흥시와 흥남시는 어떻게 복구되었는가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북한은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국토가 파괴되었다. 한국전쟁시 미국이 한반도 전체에 투하한 폭탄은 무려 635,000톤의 폭탄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태평양 전 지역에 투하한 503,000톤의 폭탄보다도 많은 양을 한반도에 투하하였다. 이는 우리나라보다도 북한 지역에 더 많은 양을 투하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로 인해 이 책의 배경이 된 함흥시는 95%가 파괴되었다.

이에 북한 정부는 정부가 수립되자마자 파괴된 도시의 재건 사업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를 사회주의 국가들의 도움으로 해결하려고 하였다. 이에 북한 정부는 1953년 8월 5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전후 북한 재건을 위한 3단계 계획을 제시하였다. 1953년은 재건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1954년부터 1956년까지는 1950년 이전 수준으로 경제를 회복시키고, 1957년부터 1961년까지는 국가 전 분야의 사업화를 달성하려는 계획을 제시한 것이다.
동독 정부는 1955년 2월 17일에 북한 함흥시와 흥남시 도시재건사업에 도움을 주기 위한 정령을 발표하였다. 동독 정부는 1955년 4월 <동독함흥시와 흥남시 도시재건단(DGA)>을 파견하였다. 당시 함흥은 북한의 2대 도시였다. 인구수로만 보더라도, 당시 325.5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평양 다음으로 66.9만 명이 함흥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함흥과 흥남에는 질소비료공장, 화학공장 등 대단위 공단이 들어선 신흥도시였다.
동독정부는 독일 도시재건단을 파견하면서, 함흥시와 흥남시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도시건설의 모델 조성을 목적으로 1956년에서 1962년까지 매년 3,500만 루블을 지원하며, 도시재건의 작업 구역은 함흥시 중심지, 반룡산, 회상리, 삽오리, 함주의 5개 구역이며, 기반시설 건설은 도로건설팀, 상수도팀, 다리건설팀, 지하건설팀, 배수 및 관개시설 팀의 5개 팀을 파견하였다. 또한 함흥시 만세교 건설을 위한 정밀설계, 지상공사 작업반과 공동으로 교각의 건축구조를 건설하기 위한 토목공사 작업반을 두고, 주택건설 추진을 위한 지상공사 작업반과 주택건축을 위한 자재생산을 위한 건설운영팀으로 구성하여 파견하였다.

함흥시와 흥남시 도시재건사업의 도시계획가들은 서양 도시건축의 여러 이론들을 활용하여 사회주의 도시 건설을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는 네이버후드 유닛Neighbourhood Unit 설계기법의 기본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근린주거지역Wohnkomplex를 기본 최소 단위로, 북한에서는 소구역이라는 칭하며 응용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사회주의적 도시설계를 구성하여 함흥시와 흥남시 도시재건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또한 동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널리 퍼진 도시계획의 중요한 기본 패턴인 사회주의 도시계획의 16개 기본조항에 따라 도시재건을 실행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왜 북한의 도시재건사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함흥은 조선왕조의 발상지이자, 북한지역의 제2의 도시로써 위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 정부가 평양 다음으로 재건에 힘을 기울인 곳이다. 특정 도시 전체를 외국의 기술적 원조를 받아 재건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독특하여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사례이다. 함흥시의 재건을 통해 북한 정부 수립 후 동유럽과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현재 함흥시는 조선시대 유적(함흥읍성 등 유교적 도시경관, 함흥본궁 등)이 파괴되었지만, 일제강점기 시대의 경관, 동독에 의한 재건 유산, 북한 자체 개발에 의한 모습이 혼재되어 있는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어, 남북관계개선을 통한 교류 협력 시 이를 전략적 자원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
도시 연구 관점에서 함흥의 동독 원조에 의한 도시재건 경험은 북한의 도시 형성과 발전과정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다. 특히 북한의 타 도시의 경우에도 전쟁으로 인한 파괴 -> 사회주의 국가의 원조에 의한 재건 -> 북한 자체 사회주의 적 도시건설 -> 개혁개방 등을 위한 도시건설 및 과소투자로 인한 도시쇠퇴 등과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함흥시와 흥남시의 도시재건사업에 활용된 도시건설의 이론적인 배경이 우리나라 잠실지구의 개발과 같은 이론적 배경을 지니고 있어, 그 비교와 우리나라 도시 개발의 연구에도 많은 자료로써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의 최고 어젠다인 “통일”이후의 시대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북한 도시에 대한 관심과 연구, 그리고 여러 문화적, 역사적 단절에 따른 사항을 공유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함께 비치된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