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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노트

김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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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혁명노트 / 김규항
개인저자김규항, 1962-
발행사항서울 : 알마, 2020
형태사항253 p. ; 19 cm
ISBN9791159922862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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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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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회의해야 할 건 혁명이 아니라,
고정관념 말고는 혁명에 대한
아무런 견해도 갖고 있지 않은
우리일 것이다.”

간결한 문체와 통찰력 있는 문장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김규항,
그가 《예수전》 이후 11년 만에 써내려간 혁명노트

혁명노트는 다음 질문으로 시작한다.
‘자본주의는 과연 계급사회인가?’

사회 시스템을 관통하는 혁명의 설계도

김규항은 글의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드문 사회문화 비평가다. 그동안 이른바 빨간 책에 저자로 여러 번 이름을 올려왔지만 《혁명노트》가 《예수전》 이후 11년 만에 선보이는 그의 두 번째 저작이다.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로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교육·인물·시사 할 것 없이, 세상의 모든 구조를 분석하며 혁명노트를 써 내려간다. 《혁명노트》는 개인적 층위에서 영성의 혁명을 넘어, 개인들의 총합을 떠받치는 근본적인 사회 시스템을 관통한다. 김규항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언제 끝날지 모를 ‘전망 없는 세계’는 자본주의가 보이는 일시적 병증이 아니라 그 본래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국지적이거나 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회의해야 할 건 혁명이 아니라,
고정관념 말고는 혁명에 대한
아무런 견해도 갖고 있지 않은
우리일 것이다.”

간결한 문체와 통찰력 있는 문장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김규항,
그가 《예수전》 이후 11년 만에 써내려간 혁명노트

혁명노트는 다음 질문으로 시작한다.
‘자본주의는 과연 계급사회인가?’

사회 시스템을 관통하는 혁명의 설계도

김규항은 글의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드문 사회문화 비평가다. 그동안 이른바 빨간 책에 저자로 여러 번 이름을 올려왔지만 《혁명노트》가 《예수전》 이후 11년 만에 선보이는 그의 두 번째 저작이다.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로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교육·인물·시사 할 것 없이, 세상의 모든 구조를 분석하며 혁명노트를 써 내려간다. 《혁명노트》는 개인적 층위에서 영성의 혁명을 넘어, 개인들의 총합을 떠받치는 근본적인 사회 시스템을 관통한다. 김규항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언제 끝날지 모를 ‘전망 없는 세계’는 자본주의가 보이는 일시적 병증이 아니라 그 본래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국지적이거나 시의적인 관점을 넘어 자본주의의 본질과 구조를 직시하고, 자본주의 극복에 관한 나름의 견해를 마련하는 일이 긴요하다”고 말한다.
《혁명노트》는 우리가 무시하거나 부정해왔던 엄연한 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인류 역사는 계급의 역사다. 인류는 계급이 만들어질 조건이 되는 한, 마치 본능의 발현인 듯 어김없이, 계급사회를 이루며 살아왔다. 계급을 철폐한 사회라 주장된 20세기 현실사회주의 사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이어 우리가 까맣게 잊고 사는 최초의 질문들, 근본적 질문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예컨대 다들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를 맞아 …’라 말할 때,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질문하라고 말한다. 집이나 부동산이 사적 소유물이어야 하는가? 거대 독점자본(재벌, 대기업)은 공유되는 게 모두에게 좋지 않은가? 자본주의하에서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는가?… 《혁명노트》를 읽는 동안 독자는 잃어버린 질문들이 재개되고 새로운 질문들이 꼬리를 무는 걸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변화는 ‘질문의 재개’로 시작한다.”

혁명은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자 이행이다

《혁명노트》는 마르크스의 통찰들, 특히 모두가 폄하해온 ‘물신성’ 개념을 가지고 오늘 자본주의사회의 구조를 꿰뚫는다. 오늘 드러난 자본주의의 말기적 징후들이 태생부터 내재된 본질임을 훤히 비춰 보여준다. 자유주의가 극을 향해 치달을수록 ‘물신성’ 또한 자유주의에 기생하며 몸집을 불릴 수밖에 없고, 그래서 개인의 윤리의식만으로는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는 어느 누구도, 심지어 이른바 ‘급진적 좌파’까지도 물신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까닭에, 독자 스스로는 안으로부터의 혁명만이 자기해방과 자유의 도정으로 들어설 수 있는 유일한 실천이라는, 불편하지만 선명한 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혁명노트》는 마냥 불편하기만 한 책은 아니다. 그것은 문장들 속에 여전히 희망의 빛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이제 《혁명노트》는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을 극복할 것인가를 탐구하면서 모두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살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향한다. 혁명은 새로운 사회의 건설construction이자 이행transition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는 사적 소유와 공유를 기반으로 하며, 지금의 모든 가치가 뒤집힌 세상이다. 거기엔 누구도 남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계급’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혁명노트》는 “인민은 자신을 해방하는 역사의 주인이자 노예의 삶으로 밀어 넣는 역사의 주인”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자유롭지 않다면 굶거나 매 맞지 않고도 혁명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인민을 응원한다. 고대 그리스어 ‘메타노이아Metanoia’에 빗대, 예수가 하느님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것을 언명했듯 새로운 사회를 위해 합당한 투쟁과 연대를 하라고 일깨운다.

《혁명노트》, 통찰의 순간들

《혁명노트》는 오늘 자본주의사회가 풀지 못해 얽히고설킨 채 안고 살아가는 몇 가지 난제들을 넘어서며 통찰의 순간을 보여준다. ‘북유럽은 어떻게 북유럽이 되었는가’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설명하면서 혁명이 시대착오라는 견해에 대해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한 아집이라 규정하는 대목이 그렇다. “블루컬러 노동과 절대빈곤이 노동자계급을 대변하는 시대의 혁명과 오늘 혁명은 달라야 한다. 그러나 혁명의 기색이 없는 사회엔 개혁도 없다는 점은 자본주의하에선 언제나 같다”는 것이다. 최근 좌파 포퓰리즘 역시 반복하고 있는 기존의 혁명론을 비판하는 대목도 그렇다. 인민을 선동과 동원, 집단화의 대상으로 보는 건 착오이며 인민의 자기해방이 핵심이라는 것.
포스트모더니즘과 한국 지식인 사회, 그리고 일부 지식인의 유희로서 ‘21세기 공산주의’에 대한 지적도 돋보인다.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고도 자본주의와 본격화한 물신세계의 충격 앞에 해체되고 포섭되는 서구 좌파 지식인들을 역사적 맥락에서 고찰하면서, “지적 파산은 아직 회복된 적 없고 결국 최근 ‘86 문제’에서 보듯 ‘윤리‘나 ‘세대’ 차원의 논의에 머문다”고 적시한다. 이밖에도 문화산업이 예술을 대체한 상황에서 한류에 대한 분별이 긴요하다는 것, 대기업 정규직 노동과 비정규 문제에서 노동귀족은 윤리 타락이 아닌 ‘노동자의 또 다른 계급 속성’일 뿐이라는 것, 노동자계급의 고전적 형상에 집착할 때 프레카리아트를 ‘진정한 노동자계급’이라 하지만 그것은 ‘좌파 좌선 운동’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라는 것, 기본 소득이 물신성 강화에 힘을 실어주는 우파의 아이디어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끝나지 않는 잔향, 혁명의 소리

《혁명노트》는 10개의 장으로 구분된 119개의 짤막한 글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119개의 간결한 글들은 다시 해설 혹은 출처를 밝힌 글들을 거느린다. 나란히 배치된 주서사와 보조서사(해설 또는 주 형식)를 함께 읽는 것이 좋지만, 119개의 조각들을 순서 없이 읽어도 나름의 논지를 파악할 수 있는 열린 구조를 가진다.
인류의 처음부터 미래, 지구의 끝에서 끝을 아우르며 통합적이며 거대하게 전개되는 동시에 그 벼려진 펜끝은 거시적인 그림을 구성하는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하나하나 들추어 그 장면들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최초의 질문을 들춰낸다. 독자는 그 질문들을 통해 아무 문제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자신의 삶 곳곳에서 균열을 보게 된다. 얼버무리고 넘어갔거나 혼동해 용인했던 지점을 손금처럼 들여다본다. 책에서 혁명은 이미 도래한 ‘새로운 사회’의 조각들로 선취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누군가 ‘새로운 사회가 정말 가능한가’ 물을 때, ‘투쟁하는 자유인’은 먼저 물을 수 있게 된다. ‘내 안에 새로운 사회가 있는가?’ 그렇게 너와 나를 넘어선 혁명의 소리는 이미 도래한 새로운 사회를 알린다. “텍스트의 내용과 형체가 차차 사라지면서 결국 그 공간의 고유한 공진주파수만 남게 된다. 본디 공간의 역할은 소리를 울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공간의 소리를 듣게 된다. 소리와 공간의 위계가 없어지고 공연자와 관객의 경계도 없어진다. 이윽고 소리는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모두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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