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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월지 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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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 오치 도시유키 지음 ; 서수지 옮김
개인저자월지 민지= 越智 敏之, 1962-
서수지, 역
발행사항고양 : 사람과나무사이, 2020
형태사항311 p. : 삽화 ; 22 cm
원서명魚で始まる世界史 :ニシンとタラとヨーロッパ
ISBN9791188635276
일반주기 본서는 "魚で始まる世界史 : ニシンとタラとヨーロッパ. 2014."의 번역서임
서지주기참고문헌: p. 309-311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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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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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물고기 청어와 ‘피시데이’가
더 큰 경제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사와 세계사를 바꾼 흥미롭고도 아이러니한 이야기


조금 생뚱맞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만일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일 그랬다면 인류가 번성하고 번영하기는커녕 생존하는 일 자체가 녹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 만일 그랬다면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이룩해낸 찬란한 문명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이렇게 말하고 나면 과장이 심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를 정독한 독자는 아마 99퍼센트 동의하게 되지 않을까).
‘몸길이 30센티미터 정도의 흔하디흔한 생선 청어의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 변화가 어떻게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유럽의 세력 판도를 드라마틱하게 바꿔놓을 수 있었을까?’ 이는『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 논지 중 하나다. 열심히 책을 정독하면서 위의 질문에 관한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의 주제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압축되어 나온다.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식량이자 도구로 중세 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물고기 청어와 ‘피시데이’가
더 큰 경제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사와 세계사를 바꾼 흥미롭고도 아이러니한 이야기


조금 생뚱맞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만일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일 그랬다면 인류가 번성하고 번영하기는커녕 생존하는 일 자체가 녹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 만일 그랬다면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이룩해낸 찬란한 문명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이렇게 말하고 나면 과장이 심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를 정독한 독자는 아마 99퍼센트 동의하게 되지 않을까).
‘몸길이 30센티미터 정도의 흔하디흔한 생선 청어의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 변화가 어떻게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유럽의 세력 판도를 드라마틱하게 바꿔놓을 수 있었을까?’ 이는『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 논지 중 하나다. 열심히 책을 정독하면서 위의 질문에 관한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의 주제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압축되어 나온다.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식량이자 도구로 중세 기독교가 사용한 물고기 청어가 오히려 더 큰 경제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사와 세계사를 송두리째 바꾼 흥미롭고도 아이러니한 이야기.” 벌써 흥미진진해지지 않나?
위의 논지 외에도 이 책에는 바이킹이 청어의 이동 경로에 발맞추어 유럽의 많은 국가를 침략하고 거대 제국을 건설한 이야기, 15세기 말 황금 섬 지팡구를 찾아 항해하던 존 캐벗이 실수로 도달한 섬에서 해수면이 불룩 솟아오를 정도로 거대한 대구 떼를 발견해 신항로 개척시대를 촉발한 이야기, 평범한 생선 대구가 미국 독립전쟁 자유정신의 상징이자 원동력이 된 이야기 등 흥미롭고도 통찰력 넘치는 내용으로 빼곡하다.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는 2018년 5월에 출간되어 65주 연속 교보문고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였던『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과 2019년 8월에 출간되어 교보문고 선정 ‘2019년을 빛낸 역사책 100권’ 1위를 차지했던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사의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1.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유럽의 세력 판도를 바꾸고
세계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중세 유럽의 기독교는 육류를 ‘뜨거운 고기’라 하여 엄격히 금지했다. 인간의 마음속에 성욕이 불같이 일어나게 하고 죄를 짓게 만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연장선에서 기독교는 사람들이 육류를 섭취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일 년 중 거의 절반이나 되는 기간을 ‘단식일’로 정해 엄격히 시행했다. 그러나 사람이 일 년의 절반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법. 단식일에도 적은 양이나마 뭔가를 반드시 먹어야 했는데, 그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생선’이었다. 생선은 ‘차가운 고기’라 하여 성욕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맥락에서 단식일에도 생선만은 먹는 것이 허용되었다. 한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식일에 단지 생선 먹는 일을 허용하는 정도를 넘어 ‘적극적으로 생선 먹는 날’로 변화해갔다. 그러더니 급기야 단식일이 ‘피시 데이’로 바뀌고 엄격히 시행되었다.
거의 모든 기독교 신자가 삼시세끼를 생선으로 해결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것도 일 년의 절반이나 되는 기간에 말이다. 이쯤 되면 종교적 관습에서 비롯된 생선 위주 음식문화가 당대 유럽사회를 전반적으로 어떻게 바꾸어놓았을지 충분히 짐작된다. 중세 기독교가 만든 ‘피시 데이’ 관습은 거대한 생선 수요를 창출했고 거대한 시장 형성으로 이어졌다. 거대한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어업이 발달했으며 어업 장려 운동도 일어났다. 복합적 경제 시스템이 구축되었고 그 시스템을 장악한 상인연합세력 한자동맹(Hanseatic League)과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 네덜란드가 등장했다. 이 모든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 ‘청어’와 ‘대구’가 있었다. 13~17세기에 이 물고기들은 유럽 국가들의 부의 원천이자 중요한 전략 자원이었으며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였다.
회유어인 청어는 오늘날에도 밝혀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이동 경로를 바꿀 때가 있다. 흥미롭게도 그 경로가 바뀔 때마다 도시와 국가의 운명이 달라졌다. 학자들에 따르면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바이킹이 고향을 버리고 브리튼섬을 침략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한다.
예기치 않은 청어의 이동 경로 변화는 13~17세기 유럽의 세력 판도를 뒤흔들어놓았다. 13세기 초반 무렵 발트해 연안의 도시 뤼베크(L?beck) 근해에서 어부들이 거대한 청어 떼를 발견했다. 곧이어 인근 도시 어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청어잡이에 나섰고 청어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청어 시장 규모가 급속히 커짐에 따라 발트해 연안 도시의 상인들이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동맹을 결성했다. 1241년의 뤼베크와 함부르크(Hamburg) 간 동맹 결성이 시초였는데 이는 유명한 한자동맹의 원류가 되었다. 한자동맹은 설원의 비탈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더니 얼마 후 수십 개의 도시가 참여하는 거대 조직이 되었다. 바야흐로 한자동맹은 유럽의 경제적 패권을 장악했으며 그 패권은 200년 가까이 이어졌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 한자동맹의 경제적 패권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결정적 원인은 청어 떼가 갑작스럽게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를 발트해에서 북해로 바꾼 데 있었다. 이 작지만 큰 변화 하나로 한자동맹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바통을 북해 연안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가 이어받았다. 이로써 그전까지 강대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며 존재감 1도 없던 나라 네덜란드가 족쇄를 벗어던지고 신흥 강국으로 떠올랐다(네덜란드가 청어를 중심으로 유럽 최대 어업 강국이 되고 더 나아가 17세기 헤게모니 국가로 발돋움하여 전 세계를 재패할 수 있었던 데에는 빌럼 벤켈소어라는 어부가 개발한 ‘소금에 절인 청어’가 큰 몫을 담당했다). 네덜란드는 이제 유럽은 물론이고 전 세계 해양을 지배하는 최초의 헤게모니 국가가 되었으며(이 책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헤게모니 국가’로 자리매김했는데 잉글랜드나 미국보다도 앞서 이룩한 쾌거였다”라고 한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등의 학자는 특정 중심국가의 생산 효율이 지나치게 높거나 그 국가의 생산물이 다른 중심국가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는 상태에 있는 국가를 ‘헤게모니 국가’라고 규정한다], 이 모든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 몸길이 30센티미터의 흔하디흔한 생선 ‘청어’가 있었던 셈이다.

2. 북아메리카에서 존 캐벗이 발견한 ‘대구 떼’가
신항로 개척시대의 역사를 바꾸다


베네치아 시민이었던 존 캐벗은 헨리 7세에게 특허를 얻어 브리스틀에서 서쪽을 향해 출항했다. 1496년 3월의 일이었다. 그가 다른 곳 아닌 브리스틀에서 출항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브리스틀에는 ‘하이브라질(Hy-brasil)’이라는 대륙이 있어 브리스틀 선원이 그곳에 도달했다는 전설이 세간에 퍼져 있었다. 그러나 존 캐벗은 그러한 브리스틀의 역사를 알고 영리하게 이용한 것일 뿐 그의 목적지는 ‘하이브라질’이 아니었다. 그럼 어디였을까? 서쪽으로 도는 아시아 항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에는 황금의 섬 ‘지팡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던 일본으로 가는 항로였다.
캐벗은 왜 ‘지팡구’에 가고 싶어 했을까? 당연히 황금을 비롯한 많은 보석과 향신료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제1차 항해는 실패로 끝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그는 제2차 항해에 나섰는데, 귀항 후 밀라노 공국 외교관 라이몬드 디 손치노(Raimondo di Soncino)에게 자신의 항해에 대해 들려주었다. 다음 인용문은 손치노가 존 캐벗과 그의 선원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보고하기 위해 밀라노 대공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다.

“존 캐벗은 원대한 야망을 품고 있습니다. 상륙한 지점에서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계속 항해해서 가다 보면 ‘지팡구’라는 섬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존 캐벗에 따르면 그 섬은 적도 지역에 있고 금?은 보석이 넘쳐나며 다양한 향신료의 원산지라고 합니다.”

존 캐벗은 목적지 ‘지팡구’에 도달했을까? 아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배가 도착한 곳은 북아메리카대륙 인근 어느 섬의 어느 항구였다. 항해 도중 일어난 실수로 항로가 바뀐 탓이었다. 그의 배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 상륙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뉴펀들랜드섬의 보나비스타(Bonavista) 항일 거로 추정하는 학자가 많다. 아무튼 당연하게도 그는 그토록 손에 넣고 싶어 했던 금?은 보석과 향신료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그에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뭔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해수면이 불룩 솟아오른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대구 떼’였다. 다음 인용문 역시 손치노가 밀라노 대공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그들은 그 바다에 물고기가 차고 넘친다고 말합니다. 물고기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그걸 잡기 위해 그물을 칠 필요도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물에 가라앉도록 돌을 매달아 내린 바구니로도 양껏 물고기를 건져 올릴 수 있을 정도니까요.…… 존 캐벗의 동료인 잉글랜드인들은 그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잉글랜드에 아이슬란드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대신 아이슬란드에서는 스톡피시라고 부르는 생선을 대량으로 들여올 수 있습니다.”

위 인용문의 물고기는 당연히 ‘대구’다. 존 캐벗이 이끄는 선박이 원래 가고자 했던 항로를 벗어나 실수로 다다른 뉴펀들랜드섬 연안에서 발견한 거대한 ‘대구 떼’가 이후 신항로 개척시대의 물줄기를 돌렸고 세계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3. 미국 독립혁명 당시 뉴잉글랜드의 매사추세츠주에서
대구가 ‘자유’의 상징이 된 까닭


현재 매사추세츠주 의회당에는 ‘대구 상’이 걸려 있어 본회의가 진행될 때마다 빠짐없이 지켜본다고 한다. 이 대구 상은 1895년 의회당 이전 시 예전에 걸려 있던 것을 정중히 국기로 감싼 다음 함대에 실어 수많은 사람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새로 지은 의회당에 옮겨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 대구상은 지역 일간지 ≪보스턴글로브(The Boston Globe)≫에 ‘성스러운 대구(Sacred Cod)’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고 세상에 알려졌다. 이것은 ‘3대 대구 상’으로 ‘1대 대구 상’은 1747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2대 대구 상’은 1775~1776년 독립전쟁 당시 잉글랜드군에 의해 의회당이 파괴될 때 소실되었다.
‘2대 대구상’은 독립전쟁 당시 상인이자 부동산 개발업자이며 ‘보스턴 차 사건’에 연루된 인물로 알려진 존 로(John Rowe)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설치되었다.

“차와 소금물이 섞이면 어떻게 될까? 누가 그걸 알겠는가?”
(Who knows how tea will mingle with sea water?)

이것은 존 로가 남긴 말로, 오늘날에도 미국인들 사이에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명대사다.
매사추세츠주 의회당에 몇 백 년 동안이나 대구 상이 걸리고 ‘성스러운 대구’라는 존경과 찬사가 담긴 별칭까지 얻게 된 이유는 뭘까? 그것은 첫째 잉글랜드를 떠나 북아메리카 서안에 도착한 초기 이민자들이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 번영을 이루기까지 대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둘째 대구는 신생국 아메리카가 잉글랜드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자유정신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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