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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역대 황제 평전 :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는 발전할 수 없다

강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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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당나라 역대 황제 평전 :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는 발전할 수 없다 / 강정만 지음
개인저자강정만= 姜正萬
발행사항서울 : 주류성출판사, 2020
형태사항508 p. ; 23 cm
ISBN9788962464207
분류기호951.0170922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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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당나라 역대 황제 20명의 통치시대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이해하면 세상살이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당나라는 중국의 역대 왕조들 가운데 가장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운 왕조이다. 중국의 고대문명은 당나라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나라 때 사법, 행정, 군사, 경제, 교육, 외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완성되고 발전한 제도는 훗날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역대 왕조들의 통치 체제에 모범이 되었다.
이 책은 당나라 역사를 황제 중심으로 기술했다. 물론 민중도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봉건 왕조시대에는 민중은 황제에 의하여 운명이 결정되었다. 성군을 만나면 편안하게 살 수 있었고 폭군을 만나면 도탄에 빠져 신음했다.
역사는 과거의 자료이자 현재의 반성이며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국가나 개인 모두 역사의 축선에서 움직인다. 오늘의 ‘나’는 과거에 내가 한 일에 의해 결정된다. 역사를 통해 교훈을얻지 못하는 자는 발전할 수 없다.
당나라 역사는 봉건왕조의 흥망성쇠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표본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적지 않은 교훈을 준...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당나라 역대 황제 20명의 통치시대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이해하면 세상살이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당나라는 중국의 역대 왕조들 가운데 가장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운 왕조이다. 중국의 고대문명은 당나라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나라 때 사법, 행정, 군사, 경제, 교육, 외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완성되고 발전한 제도는 훗날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역대 왕조들의 통치 체제에 모범이 되었다.
이 책은 당나라 역사를 황제 중심으로 기술했다. 물론 민중도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봉건 왕조시대에는 민중은 황제에 의하여 운명이 결정되었다. 성군을 만나면 편안하게 살 수 있었고 폭군을 만나면 도탄에 빠져 신음했다.
역사는 과거의 자료이자 현재의 반성이며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국가나 개인 모두 역사의 축선에서 움직인다. 오늘의 ‘나’는 과거에 내가 한 일에 의해 결정된다. 역사를 통해 교훈을얻지 못하는 자는 발전할 수 없다.
당나라 역사는 봉건왕조의 흥망성쇠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표본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적지 않은 교훈을 준다.

‘명나라, 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에 이은 시리즈 3탄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는 발전할 수 없다


이 책은 역사 자료에 근거하여 당나라(618~907) 황제 20명의 통치 시대에 어떤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봄으로써 역사의 교훈을 얻고자 한다. 과거에만 머물러있는 역사는 박물관의 먼지 쌓인 골동품에 불과하다.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음으로써 현재를 바로잡고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당나라는 중국의 역대 왕조들 가운데 가장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운 왕조이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은 수많은 외국사절과 상인들로 북적거린 당대 최고의 국제도시였다. 당나라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황하문명권에 속한 봉건왕조의 요체를 파악하는 데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당나라는 또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의 국가체제의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백제와 고구려가 망하고 신라가 3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당나라가 한반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사는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전개되었다. 역사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중국만큼 한국에 큰 영향을 끼친 국가는 없다.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나라 역사를 황제 중심으로 기술했다. 물론 민중도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봉건 왕조시대에는 민중은 황제에 의하여 운명이 결정되었다. 황제 중심의 당나라 역사를 통해 당나라의 특징과 역사적 의의를 몇 가지로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당고조와 당태종은 수나라 말기 천하 대란의 와중에서 수많은 인재들을 포섭하고 지역 패권자들을 포용하여 당나라를 건국했다. 이는 제국의 창업에 인재 제일주의와 포용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주었다.
둘째, ‘정관의 치’와 ‘개원성세’라는 전대미문의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황제 개인의 뛰어난 자질에서 나왔을 뿐만 아니라, 황제가 언로를 열어주어 올곧은 신하가 황제의 실정(失政)을 거리낌 없이 비판하고 백성을 위한 정책을 마음껏 펼 수 있게 한 것에서 나왔다. 이는 국가를 부국강병으로 발전시키는 데 황권(皇權)과 신권(臣權)의 조화와 더불어 언론 자유가 대단히 중요함을 의미한다.
셋째, 당나라는 토번, 회흘, 신라, 일본, 서역의 여러 국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다. 당나라의 개방정책은 동서문명을 융합하게 하여 중국문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는 개방국가는 번영하고 폐쇄국가는 망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넷째,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자황제 무측천이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무주(武周)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여자도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으며 아울러 남녀평등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음을 입증했다. 유가사상에 비해 남녀차별이 없는 종교, 불교가 무측천 시대에 크게 번영을 구가한 것도 당나라의 시대적 특징이었다.
다섯째, 당나라는 안사의 난 이후에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이때부터 황제와 조정 중심의 중앙권력이 약화되고 지방의 절도사들이 당나라를 분할 통치했다. 절도사들은 군권을 장악하고 황제의 권위에 도전했으며 자기가 다스리는 지방에서 사실상 왕으로 군림했다. 그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춘추전국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합종연횡을 반복했다. 이는 대국 중국이 언제나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불안한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태종 이세민과 같은 카리스마를 가진 통치자가 나타났을 때 중국은 통합되었고, 당희종 이현과 같은 무능하고 어리석은 군주가 통치할 때 중국은 분열되었다.
여섯째, 당나라는 안사의 난 이후부터 환관(내시)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제는 환관을 통해 절도사들을 통제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환관에 의해 통제를 당했다. 성기능을 상실한 환관들의 권력욕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은 조종하기 쉬운 인물을 꼭두각시 황제로 추대하고 당나라 천하를 마음대로 주물렀다. 환관의 발호를 막으려고 시도했던 황제는 피살되기 일쑤였으며, 환관이 시키는 대로 처신한 황제는 겨우 구차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물론 당나라 이전에도 환관들이 황제를 능멸하고 조정의 정치를 좌지우지한 적이 적지 않았으나 당나라 때 더욱 심각했다. 그 후 명나라 때에도 환관의 세상이 된 적이 있었다. 이는 중국 역사의 일정 부분이 환관의 역사였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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