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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이름으로: 종교 폭력의 진화적 기원

Teehan, 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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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신의 이름으로: 종교 폭력의 진화적 기원/ 존 티한 지음 ; 박희태 옮김
개인저자Teehan, John
박희태, 역
발행사항서울: 이음, 2011
형태사항485 p.; 22 cm
원서명 In the name of God
ISBN 9788993166293
일반주기 본서는 "In the name of God : the evolutionary origins of religious ethics and violence. c2010."의 번역서임
서지주기 참고문헌(p. 449-470)과 색인수록
일반주제명 Religious ethics
Violence -- Religious aspects
Psychology, Religious
Evolutionary psychology
Cognitive psychology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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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선을 추구하는 종교가 왜 폭력과 갈등을 부르는가
"모든 성읍에서 남자, 여자, 아이 구별하지 않고 전멸시켰다."(신명기 3:6)
"나 이외의 다른 신은 두지 마라.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어떻게 신이 인간처럼 질투를 할 수 있을까? 신은 인간의 감정을 초월해야 하지 않는가? 저자 존 티한은 신이 왜 인간의 감정을 가지는지, 그러한 신을 믿는 종교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진화심리학을 통해 설명한다. 그리고 이를 탐구하다 보면 십자군 전쟁이나 종교재판, 9·11 테러 등의 종교 폭력이 발생한 원인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종교 폭력에 대해 종교를 악용한 것이라고 말하며 폭력을 저지른 개인의 잘못으로 돌린다. 하지만 저자는 종교의 본성을 탐구하다 보면 종교 도덕과 종교 폭력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모습을 지닌 신의 등장

우선 신이 어떻게 인간의 감정을 지니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자연물을 숭상하는 애니미즘에서 점차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모습을 지닌 신을 섬기게 되는 종교의 발달과정을 보면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선을 추구하는 종교가 왜 폭력과 갈등을 부르는가
"모든 성읍에서 남자, 여자, 아이 구별하지 않고 전멸시켰다."(신명기 3:6)
"나 이외의 다른 신은 두지 마라.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어떻게 신이 인간처럼 질투를 할 수 있을까? 신은 인간의 감정을 초월해야 하지 않는가? 저자 존 티한은 신이 왜 인간의 감정을 가지는지, 그러한 신을 믿는 종교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진화심리학을 통해 설명한다. 그리고 이를 탐구하다 보면 십자군 전쟁이나 종교재판, 9·11 테러 등의 종교 폭력이 발생한 원인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종교 폭력에 대해 종교를 악용한 것이라고 말하며 폭력을 저지른 개인의 잘못으로 돌린다. 하지만 저자는 종교의 본성을 탐구하다 보면 종교 도덕과 종교 폭력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모습을 지닌 신의 등장

우선 신이 어떻게 인간의 감정을 지니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자연물을 숭상하는 애니미즘에서 점차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모습을 지닌 신을 섬기게 되는 종교의 발달과정을 보면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협하는 모든 현상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하고자 한 인간의 절박함이 보인다.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존재에게서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생존과 번식이 목표인 인간에게 자신의 자원을 가장 잘 빼앗을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었다. 이 때문에 홍수나 전쟁에서의 패배를 모두 인간의 잘못에 대한 신의 분노로 해석하고 그 분노를 풀기 위해 제물을 바쳤다. 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재앙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개개인에게 피할 수 없는 불행이 닥쳐도 나와 비슷한 마음을 지닌 신이 나에게 분노했거나 나의 잘못을 벌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할 때 무력감을 피할 수 있었다. 아주 미미한 자극에도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 나와 상관 있는,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어떤 위협적인 존재가 한 일이라고 해석할 때에야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문제에 대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인간은 전능자이자 인간의 모습을 한 인격신이 주변에 항상 있다고 상상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종교는 인간의 진화를 위한 문화적 제도이다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이 진화가 성공적이려면 주변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친구로 만들어야 했다. 협력의 범위가 친족에서부터 국가의 구성원들로까지 확장된 것은 인간 진화의 필연적인 발달 단계였다. 저자는 이 단계들을 심도 있게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종교가 협력의 관계를 자발적으로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사 표현으로부터 나왔다고 말한다.

내부집단과 외부집단을 구분하는 종교의 배타적 본성

그런데 이 협력 관계는 무한정 확장될 수 없었다. 인간의 감정을 지닌, 질투하는 하느님을 모시는 유일신교는 끊임없이 외부집단인 이방민족을 살해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을 보면 신은 살상을 명하고 전쟁을 부추기며 적을 몰살시키는 존재였다. 저자는 유대교의 십계명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이 종교의 계율이 보편적인 도덕 계율이 아니라 내부집단의 결속을 확인하고 외부집단을 구분한다고 밝힌다. 예를 들어 두 번째 계명을 살펴보자.(166~173쪽) 우상숭배를 금지하면서 이웃 민족들과의 구분선을 긋는다. 만약 우상을 숭배하거나 다른 신을 섬기고, 하느님을 싫어하면, 아비의 죄를 후손 삼 대에까지 갚아야 한다고 명한다. 질투라는 감정을 즉시 나타내어 어떠한 보복행위도 불사하겠다고 말하는 전지전능한 신을 염두한다면 그가 가르쳐준 계명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 보편주의의 한계

그렇다면 혹자는 기독교가 이스라엘 민족만을 대상으로 한 유대교를 극복하고 전 세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 또한 새로운 내부집단을 만들었을 뿐 내부집단과 외부집단으로 구분하기를 멈춘 것이 아니다. 기독교가 유대교인만이 지킬 수 있는 복잡하고 무의미한 관습들을 없애기는 했으나, 기독교인임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 이방인은 유대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제거되기에 마땅한 대상이다. 누구나 기독교 공동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내쳐진다. 그러나 과연 기독교에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의 선악을 판단할 권리가 있는가.

테러리스트와 부시 대통령의 닮은 꼴

저자는 철저한 분석 끝에 5장에 이르러 9/11 테러 이후 테러리스트와 부시 대통령의 언사들에서도 내부집단과 외부집단을 선의 세력과 악의 세력으로 구분하며 그 근거를 유일신에게서 구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구약과 신약, 그리고 꾸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논리가 이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들이 정치?경제 권력의 다툼에 표면적으로 신의 이름을 내세웠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종교를 너무 무력하게 만드는 처사이다.

"종파나 계급, 인종에 제한을 받지 않는" 휴머니즘적 종교

진화된 도덕 심리에 따라 발달한 유일신 종교는 내부집단/외부집단 구분하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많은 대량살상을 눈 꿈쩍하지도 않고 해치울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야훼가 노아의 방주 사건 때 노아의 일가친족 외에는 모두 몰살시켰듯이 말이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처럼 종교는 망상이며 이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진화과정을 부정하는 것이다. 아직도 종교는 인류의 진화에 따라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문화제도이자, 태곳적 우리의 마음에 근거한 버릴 수 없는 정서이다. 수천 년 동안 발전해왔고 수많은 모순을 해결하면서 성장해온 종교는 진화적 관점에서 보자면 대규모 사회집단을 가능케 한 성공적인 도덕 체계로 특권을 부여해줘도 될 정도다. 이제는 종교와 신에 대한 선정적인 비판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종교로 인한 문제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저자는 진화적 분석이 종교적 도덕에 부여하는 신성화를 제거하면서 기존의 종교 전통으로부터 인간 공통의 믿음을 형성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마치 예수가 기존의 유대교 전통을 활용하면서 혁신을 일으켰던 것과 같다. 종교에 대한 진화적 각성과 도덕 전통에 대한 자기 비판을 통해 실용적인 믿음을 형성시킬 수 있는 종교만이 오늘날의 세계를 도덕적 연대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 기나긴 여정을 향한 첫 발걸음이다.

저자 인터뷰

미국 온라인 잡지 <필로소피 컴퍼스Philosophy Compass>에 실린 인터뷰 중 일부분으로
이 잡지의 편집장 리엄 쿠퍼Liam Cooper가 진행했습니다.

왜 <신의 이름으로>를 쓰셨습니까?
나는 늘 도덕 연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뿐만 아니라 왜 우리의 삶에 가치라는 것을 부여해야 하고, 어떻게 도덕 전통이 발전해왔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왔지요. 이 때문에 도덕심리학, 특히 진화심리학을 연구했습니다. 오늘날의 도덕을 이해하고 싶다면, 도덕적 행동이 나타나게 된 기원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전히 논란거리이긴 하지만 그 기원에 대한 진화적 연구는 우리의 도덕적 본성을 통찰하게 하는 풍부한 원천입니다. 요즘 이러한 통찰을 뒷받침하는 경험적인 작업들이 증가 추세에 있지요. 도덕적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나는 도덕의 발전에 내재된 진화적인 전략들을 탐구하면서, 이것들이 종교적 도덕, 특히 유대-기독교의 도덕에서 사용된 전략과 얼마나 비슷한지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진화적인 관점을 이용하여 이들 전통을 보다 가까이 보고자 했습니다. 만약 우리의 도덕적 마음이 진화해왔고 그 마음이 성서와 같은 종교적인 문헌들을 형성했다면, 우리는 성서에서 진화된 심리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히브리 성서나 신약 성서에 나타난 도덕 전통들이 진화된 도덕적 심리의 표현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관심은 종교 폭력입니다. 우리는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만행이 실제로는 종교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듣습니다. 즉, 종교적 폭력은 종교를 오용한 것이고 도덕적이고 평화적인 신앙이 변질된 것이라는 말이죠. 저는 이 주장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도덕은 집단과 관련이 있습니다. 도덕은 자기가 어느 집단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자기 집단을 향한 증여나 이타적 행동을 촉진합니다. 즉 도덕은 외부집단을 향해서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끼친다 해도 같은 방식일 수 없습니다. 내부집단과 외부집단 간 구분은 무자비한 사람들이 어떤 이를 "타자"라고 여길 때 보이는 행위의 중대한 원인입니다. 만약 종교적인 도덕이 우리의 진화된 도덕감의 표현이라면, 내부집단과 외부집단 간 구분이 종교에서도 잘 나타날 것입니다. 또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이 종교로부터 탈선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종교 내부에서 강조하는 도덕적 논리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무엇이고, 그게 왜 중요합니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주장은 종교적 도덕이 사람들이 공유하는 도덕적?종교적 심리에서 만들어졌으며, 진화적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종교 전통들 간의 차이는 여러 종교들을 생기게 한 역사적?문화적 조건들이 낳은 진화적 심리에 기인합니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성서를 살펴보면 이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서의 많은 부분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신이 한 일이라기보다 우리의 진화적 심리가 작동해서 나온 표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종교 도덕들은 안정적인 집단에서 함께 평화롭게 살기 위해, 각각의 사람들을 처리할 수 있는 규정을 세우려고 투쟁하는 인간 문화의 다양한 기록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종교에 의해서 만들어진 도덕적 주장들은 그 위상이 바뀝니다. 모든 종교적 도덕들이 우리의 진화적 심리의 표현이라면, 어떤 종교도 특권이나 궁극적인 권위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종교도 "신의 의지"가 더 옳다고 표현할 수 없습니다. 물론 종교들은 과거, 특히 문화적·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 생존을 성공적으로 입증해왔습니다. 그러나 특정 종교의 가르침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려면 그 가르침이 안정되고 정의로운 집단을 지속적으로 꾸려가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의 입장을 방어해야 하는 사람의 방법이지 성서나 꾸란의 어떤 구절들을 내세운다고 해서 방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접근이 우리에게는 폭력과 증오를 발생시키는 종교의 잠재성에 대해 경고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 폭력은 종교의 본질적 측면입니다. 이는 종교가 폭력적인 단체라는 뜻은 아닙니다. 종교는 윤리적이고 정당한 것을 다루게 하는 깊이 있는 헌신을 낳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현재 상황이 종교의 이면을 끌어낼 시점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는 그 중심에 놓인 심리의 작용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의 정서적 본성과 도덕적 직관들에 아주 철저하게 휘감겨 있습니다.

어떻게 이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저의 지속된 관심사는 무엇이 인간에게 좋은 삶을 구성하는가라는 인류의 번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사회 구성원 모두를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거죠. 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세속적인 관점을 발전시켜왔지만, 그간의 인류 역사와 오늘날의 세계에서 종교는 그 지침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사회 정의에 대한 논의에서 개인에게 종교가 있든 없든 종교의 역할과 인간 행동을 형성하는 종교의 권한을 고려할 때, 종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종교적 세계관으로 신속하게 복귀하는 현상은 흥미롭습니다. 이성 비평, 역사 연구, 과학 발전이 이루어진 시대에도 종교는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왜일까요? 믿는 사람들은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부족하고 시대에 뒤쳐진 신앙을 고수하는 사람들이라는 의견은 인구학적 조망과도 맞지 않고 이제까지의 일들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종교와 인간 본성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지요. 이 관계에 대한 이해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와 종교 둘 다를 설명합니다. 이것은 종교적 세계관이 옳지 않다고 하더라도, 인류 번영에 대한 연구에 분명히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이 책의 독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기대합니까?
저는 종교가 도덕적 권위의 근원이고 공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에 관해 비판적 논쟁이 벌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오늘날 종교에 대한 공적 논의는 종교적이거나 반종교적인 양극단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논의하는 것은 생산적이지도 않고, 지적인 측면에서 종교의 관념들을 극단적으로 단순화 시켜놓고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즉, 종교를 믿음과 관습의 매우 복잡하고 골치 아픈 부분들로 여기고, 마치 모든 것이 설명되는 양 그것들을 다룹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극단주의에 대한 대응은 그리 나아지지 못했습니다. 극단을 거부하는 입장이더라도 종교가 일반적인 현상이며 유해하지 않다고 보고, 단순히 신앙의 문제로 처리해 종교 간 차이를 묵살해버립니다. 이것 또한 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를 차단하는 단순한 관점입니다. 곧 어떤 종교에서 말하는 것을 비판한다면, 마치 극단주의의 편에 선 것 같고 무례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종교를 향해 보다 진지한 자세를 취하고, 신자들로부터 보다 진지한 대답을 기대하고 요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판적인 질문은 무례한 것이 아니지요. 공공의 토론에서 종교더러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신앙을 침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민주적인 사회의 작동 방식입니다. 민주주의는 공공의 장에서 의견을 갖는 모든 개인과 그들 개개의 전통과 세계관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견에도 특권적인 위치를 부여하거나 비판으로부터 특별히 면제해주지 않지요. 우리는 민주주의 방식을 존중하면서 종교의 복잡성과 중요성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공공 토론에 종교적 신앙을 참여시킬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저의 가장 큰 기대는 제 책이 이 목표에 기여했으면 하는 것이고, 책에서 이에 대해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독자들을 염두하셨습니까?
저는 두 부류의 독자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우선 학자들, 종교학·철학·인지과학 등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읽고, 이 모든 분야에서 가장 최신의 연구에 뒷받침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이 학문적인 것 너머의 논점도 다루기 때문에 학술서의 성격을 넘어서길 원합니다. 이 책에 포함된 논제들은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극단적인 것을 피해 종교에 대해 이성적으로 비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도덕성과 종교 폭력은 우리의 믿음이 무엇이든 간에 분명 우리 모두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일반 독자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불필요한 전문용어는 최대한 피하면서 비전문가들도 접근하기 쉽게 진화론과 인지심리학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의견들을 가능한 명확히 하기 위해서 많은 예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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