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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

정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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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민화,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 정병모 지음
개인저자 정병모= 鄭炳模
발행사항파주: 돌베개, 2012
형태사항463 p.: 천연색삽화; 23 cm
총서명테마한국문화사;09
ISBN 9788971994771
9788971991374(세트)
일반주기 색인수록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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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한국인은 무슨 그림을 그리고, 또 즐겼을까
한국인의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미감의 비밀을 풀다

대중예술의 시대, 세계가 주목하는 우리의 그림
민화에 대한 전방위적 탐색과 종합적 접근!!

한국 민화에 대한 전방위적 탐색과 종합적 접근

한국의 민화는 풍속사적인 측면에서 주로 다루어지거나, 궁중회화(궁화)나 문인화(사인화)에는 미치지 못하는 회화 장르로 폄하되어왔다. 그동안 한국미술사 연구도 궁중회화와 문인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게 사실이며, 민화는 오랫동안 학계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민화,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테마한국문화사 9)의 저자 정병모는 문인화가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민화 같은 서민회화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현상을 편협한 엘리티즘이라고 지적하며, 한국 민화의 미술사적 위상을 올바르게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이 책은 민화의 개념과 역사, 민화의 장르 분류, 미학적 특징, 그림에 반영된 종교이념적 측면, 궁중회화ㆍ문인화ㆍ풍속화 등과의 영향관계, 동아시아 민화의 보편성과 특수성 등을 두루 천착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한국 민화를 종합적으로 조명할 수 있도록 집필되...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한국인은 무슨 그림을 그리고, 또 즐겼을까
한국인의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미감의 비밀을 풀다

대중예술의 시대, 세계가 주목하는 우리의 그림
민화에 대한 전방위적 탐색과 종합적 접근!!

한국 민화에 대한 전방위적 탐색과 종합적 접근

한국의 민화는 풍속사적인 측면에서 주로 다루어지거나, 궁중회화(궁화)나 문인화(사인화)에는 미치지 못하는 회화 장르로 폄하되어왔다. 그동안 한국미술사 연구도 궁중회화와 문인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게 사실이며, 민화는 오랫동안 학계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민화,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테마한국문화사 9)의 저자 정병모는 문인화가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민화 같은 서민회화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현상을 편협한 엘리티즘이라고 지적하며, 한국 민화의 미술사적 위상을 올바르게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이 책은 민화의 개념과 역사, 민화의 장르 분류, 미학적 특징, 그림에 반영된 종교이념적 측면, 궁중회화ㆍ문인화ㆍ풍속화 등과의 영향관계, 동아시아 민화의 보편성과 특수성 등을 두루 천착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한국 민화를 종합적으로 조명할 수 있도록 집필되었다. 대중의 관심은 높아지지만 그에 상응하는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고 학계가 외면하고 있던 민화에 주목하여, 국내의 자료는 물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민화 자료를 찾아 홀로 오랫동안 노력해온 국내 미술사학자의 노작이다.

한국인의 근원적 미감을 드러내는 그림, 민화
민화에는 공동체의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미감이 담겨 있다. 오랜 시간 공동체의 자연과 역사 속에서 무르익은 감성이다. 민화 작가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식 기저에 깔려 있는 근원적인 미감을 본능적으로 끄집어낸다. 가령 신라시대의 토우, 조선 전기의 분청사기와 판화, 감로탱도는 대중의 원초적인 미감을 엿볼 수 있는 전통예술이다. 그리고 조선 후기 역사의 수면 아래 지속적으로 잠재해왔던 서민의 욕망이 분출한 회화가 바로 근대의 민화다. 이 책의 저자 정병모는 궁중화원들이 그렸던 그림이나 문인화 전통이 한국인의 감성을 대표하기보다는 당대 동아시아의 문화적 중심이었던 중국의 미감에 가깝다고 하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한국인의 질박한 감성을 대표하는 회화는 다름아닌 민화라고 본다. 민화가 폄하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는 지금의 화가들이 궁중화원이나 문인화가의 그림을 계승하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그림인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민화의 현대적 재창조에 대해서는 218~221쪽).

‘민화’의 개념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조선시대에는 민화와 풍속화를 통틀어 ‘속화’(俗畵)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민화’(民畵)라는 명칭은 20세기 일본의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이것이 한국에 전해져 적용되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농민미술(peasant art)이, 미국에서는 민간미술(folk art)이 발흥하였고,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는 인간의 노동을 바탕으로 하는 서민미술을 예술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구의 민간미술은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시대정신의 산물로서 정치적 민주주의의 부상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민간미술 개념이 일본에 들어와 야나기 무네요시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는 속화라고 불리우던 민간의 그림을 ‘민화’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민주주의의 전개와 궤를 같이하는 서구의 민간미술이나 서민문화의 부흥과 관계된 동아시아 민화의 개념은 근대의 역사적 맥락에서 형성된 산물이다.

민화는 서민화가가 그린 그림이다!
궁중회화로 그려진 일월오봉도 같은 그림이 민화 전시회에 출품되는 일이 종종 있다. 물론 궁중회화를 민화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재창조한 사례가 있지만, 궁중회화의 작가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궁중회화를 민화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 당대 최고의 궁중화원이 그린 궁중장식화가 민화로 소개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민화에 대한 개념이 여전히 정립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혼선이 일어나는 까닭은, 야나기 무네요시 이래로 민화를 무명성(無名性)의 그림으로 정의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궁중화원들이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린 그림이 많을 뿐 아니라 궁중회화와 민화의 조형세계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무명성이라는 조건으로 민화를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저자 정병모는 무명성이라는 야나기 무네요시가 수용한 서구적 개념보다는 ‘서민화가가 서민을 위해 그린 그림’이라는 민화 개념을 제시한다. 어떠한 유파나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서민화가가 그린,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그림이 민화의 개념에 가장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민화의 개념을 이해할 때, 궁중회화와 문인화 같은 엘리트 미술을 패러디하고 자유자재한 조형과 색감을 창조한 민화의 세계에 온전하게 접근할 수 있다. 이 책은 모호하게 쓰이던 민화의 개념을 분명하게 정리하고자 했다.

궁중회화와 문인화를 창조적으로 모방하고 패러디하다
궁중회화ㆍ문인화ㆍ민화는 작가의 직업이나 신분에 의해 구분되지만, 주제나 화풍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민화는 화려한 채색과 길상의 의미가 강한 궁중회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문인화의 표현 방식과 그림 주제를 모방하고 받아들였다. 궁중회화ㆍ문인화의 주제와 기법을 활용하지만, 서민들의 취향과 정서를 반영하고 독특한 조형세계와 해학적인 해석을 통해 개성적인 예술을 창조했다.
장르를 자유롭게 조합하는 것도 민화의 특징이다. 그림에 하나의 주제만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주제를 한 폭에 동시에 그리기도 한다. 가령 산수화의 하위장르인 소상팔경도와 금강산도가 한 화폭에 그려지는 기발하고 엉뚱한 발상이 민화에서는 천연덕스럽게 실현된다. 이는 엄격한 장르의 규칙이 지켜져야 하는 궁중회화나 문인화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민화만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 자유, 포용성이라고 할 만하다.

한국 민화의 역사적 기원과 전개
-종교적 염원에서 출발하여, 해학과 풍자로 대중의 정서와 욕망을 분출하다

민화가 원초적 감성의 표출이라면, 넓은 의미에서 한국 민화의 역사적 시원은 울주 대곡리 암각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좁은 의미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처용문배(處容門排)를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의 미적 욕망은 길상과 벽사라는 기복사상에서 기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 집 대문에 붙이는 문배가 세화(歲畵)로 발전하고, 세화는 민화로 확산되었다. 세시풍속 측면에서는 문배가 민화의 시작이고, 그 문배 가운데 처용문배가 첫머리에 놓인다. 저자는 19세기~20세기 초반에 집중적으로 그려진 근대의 민화만이 아니라, 민중의 근원적인 미감이 드러난 벽화와 그림으로까지 민화의 외연을 넓혀 놓는다.

조선 후기의 민화 표현 가운데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분청사기에 그려진 그림들이다.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분청사기의 용과 호랑이의 그림이 근엄하고 권위적인 모양으로 그려진 데 비해, 민간에서 제작된 분청사기의 용과 호랑이의 이미지는 해학적이고 때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통치자 또는 권력을 상징하는 용과 호랑이를 어째서 이토록 희화했는지 선뜻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저자는 이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뒤 민중이 나타내고 있는 지배계층의 권력에 대한 조롱과 피로감으로 읽는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민화는 더욱 성행한다. 이는 신분질서와 경제구조의 변화와 맞물리는 현상으로, 서민의 기층문화가 전면에 등장하는 현실과 관련되어 있다. 경제적 능력을 갖춘 서민들이 그들의 미적 취향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민화를 의욕적으로 발주함으로써, 민화의 생산과 유통은 활황을 이룬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은 민화가 가장 많이 제작된 시기다. 저자는, 조선왕조의 몰락과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위기의식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 밝을뿐더러 강렬한 욕망의 분출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원초적인 본성과 기복적인 믿음에 의지하여 정서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심성 기제가 발동한 결과로 해석한다. 저자는 한국 근대사의 전개와 민화 창작 간의 아이러니한 국면을 대중의 정서적 방어기제로써 이해하고 진단한다.

민화, 종교와 밀월관계를 맺다-민화로 재현된 종교이념, 종교화에 반영된 민화 표현
이 책은 민화와 종교의 관계를 살피고, 종교의 범주에는 무교까지 포괄하여 다루고 있다. 조선시대의 민화는 유교ㆍ불교ㆍ무교와 교호하고 습합하며, 대중의 욕구와 창작의 목적에 부응하였다. 유교이념으로 체제를 통제하였던 조선 사회에서 민화 유교문자도는 유교의 덕목을 알리는 방법이 될 수 있었다. 또한 통치계층의 이데올로기에 동일시하고자 하는 체제지향적인 서민의 현실 욕구를 충족시킬 수도 있었다. 책거리(책가도) 역시 애초에는 학문에 대한 열정을 나타내는 그림이었다가, 채소ㆍ꽃ㆍ과일ㆍ기물 등을 그려 넣으면서 차츰 길상화로 변모해간다. 유교이념을 재현하는 민화에서조차도 기복을 추구했던 조선 민화의 현실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사찰의 불화에 민화 표현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불화가 민화의 소재를 수용했다는 차원을 넘어 당시 화단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단서이자, 막연하게 추정했던 민화의 유행 시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조선 후기 불교계는 후원자인 서민들의 취향에 부응하고 선교의 활로를 개척하고자 민화를 적극 받아들인 것이다.

저자는 민화의 범주에 무화(巫畵)를 포함시킬 것을 제안한다. 무화는 민간에서 제작된, 서민화가가 서민의 종교적 열망을 그린 그림이라는 점에서 민화의 개념에 부합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민화의 기원이 기복신앙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오랜 세월 축적되어온 민간의 미의식의 모태가 되는 무화는 민화의 이해를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다.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무화의 보존이 시급한 이유이다.

가장 한국적인 그리고 국제적인-동아시아 민화의 보편성과 특수성
동아시아(중국ㆍ일본ㆍ베트남)의 민화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점은 이 책의 또다른 성과이다. 한국의 민화는 한자문화권의 네트워크 안에서 형성된 그림이기에, 동아시아의 민화를 조망함으로써 우리 민화가 지닌 보편성과 특수성을 분명히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민화는 새해에 길상, 벽사의 목적으로 그린 문배와 문신(門神)으로부터 기원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중국의 연화(年畵), 한국의 세화, 베트남의 테트(tet)가 말해주듯이, 동아시아의 민화는 민간신앙의 기복의 염원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시작했다. 동아시아 민화의조형적 유사성을 통해 영향관계를 추론할 수 있는 대표적인 민화 장르로 문자화를 들 수 있다. 중국과 조선의 문자화의 도상적 특징을 비교해보면, 중국 무호의 문자화가 조선 제주도의 문자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상해를 통한 중국 남방 민간연화와의 교류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과 베트남의 문자화 역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
중국 무호 문자도와 제주도 문자도(388쪽 도판) 문자의 윤곽 안에 비백서에서 변형된 물결무늬를 넣는 방식에서 서로의 연관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일본의 채색판화인 우키요에(야나기 무네요시는 무명성의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여 민화에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이 책의 저자 정병모는 서민화가가 서민을 위해 그린 그림이라는 점에서 민화에 포함시켰다)의 경우 조선통신사를 통해 조선에 들어와, 신윤복 등이 즐겨 그린 기생을 소재로 한 그림이나 미인도 등의 조형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의 민화와 풍속화, 에도시대의 우키요에는 근대 전환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유행한 서민미술이다.

베트남의 민화와 조선의 민화는 서로 직접 교류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두 나라가 문자화, 감모여재도, 화조화, 호랑이 그림, 백동자도, 삼국지연의도 등 유사한 주제의 민화를 제작했다는 점은 양국 민화의 친연성을 가늠케 한다.
동아시아의 민화를 두루 살펴보면, 우리 민화가 한국적인 특색이 강한 그림이면서 동시에 국제적인 성격이 뚜렷한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민화는 가장 대중적이고 한국적인 그림이면서, 동아시아 문화의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는 국제 미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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