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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현대사 산책

안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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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북한 현대사 산책 / 안문석 지음
개인저자안문석, 1965-
발행사항서울 : 인물과사상사, 2016
형태사항5 v. : 삽화 ; 23 cm
ISBN9788959064236 (v.1)
9788959064243 (v.2)
9788959064250 (v.3)
9788959064267 (v.4)
9788959064274 (v.5)
9788959064229 (세트)
일반주기 색인수록
내용주기1. 해방과 김일성 체제 -- 2. 전쟁과 사회주의 건설 -- 3. 주체사상과 후계체제 -- 4. 김정일과 고난의 행군 -- 5. 김정은과 북핵위기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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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북한 현대사의 모든 것,
70여 년의 사건과 사실을 생생하게 읽는다!
“1945년 해방부터 2016년 제5차 핵실험까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을 한눈에 보다”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원수인가, 동포인가? 그런데 보수 정부 10년의 언행을 보면 북한을 원수로 보는 것 같다.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면 대화하겠다는 북한의 요구를 묵살하고 대결 국면으로 가더니, 북한이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로켓을 발사하자 개성공단마저 중단시켰다. 보수 정부는 대화하자고 말로는 했지만 대화를 위해 북한이 요구한 어느 것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놓고는 대화를 제의했는데 북한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북한이 각각의 정부를 세운 이후 제2공화국 11개월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제외하고 60여 년 동안은 그런 식으로 북한을 대해왔다.
어떻게 하면 북한이 발가벗은 채 손들고 나오게 만들 것인지,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하도록 할 것인지 골몰해왔다. 가진 것 없이 자존심만 남은 북한은 “굶을지언정 무릎 꿇진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러...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북한 현대사의 모든 것,
70여 년의 사건과 사실을 생생하게 읽는다!
“1945년 해방부터 2016년 제5차 핵실험까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을 한눈에 보다”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원수인가, 동포인가? 그런데 보수 정부 10년의 언행을 보면 북한을 원수로 보는 것 같다.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면 대화하겠다는 북한의 요구를 묵살하고 대결 국면으로 가더니, 북한이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로켓을 발사하자 개성공단마저 중단시켰다. 보수 정부는 대화하자고 말로는 했지만 대화를 위해 북한이 요구한 어느 것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놓고는 대화를 제의했는데 북한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북한이 각각의 정부를 세운 이후 제2공화국 11개월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제외하고 60여 년 동안은 그런 식으로 북한을 대해왔다.
어떻게 하면 북한이 발가벗은 채 손들고 나오게 만들 것인지,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하도록 할 것인지 골몰해왔다. 가진 것 없이 자존심만 남은 북한은 “굶을지언정 무릎 꿇진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러니 남북의 역사는 대결의 역사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그런 대결의 역사가 실제로 시작된 것은 정부 수립 훨씬 이전인 1945년이다. 해방의 해(年)에 벌써 대결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남북을 각각 점령한 미국과 소련이, 그 이후에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 확연히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이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당을 세워나가고,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면서 대결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1945년이 이후 한반도의 상황을 대부분 규정해버렸다.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안문석 교수가 원고지 5,500매 분량으로 북한 현대사를 전5권으로 집필했다. 국내 최초로 북한 현대사를 사건과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가장 객관적으로 집필한 것이다. 수많은 자료에서 사실(史實)을 찾아내서 기자의 눈과 학자의 눈으로 북한 현대사를 꿰뚫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조선통사』, 『조선전사』 등과 『김일성 선집』, 『김일성 저작 선집』, 『인민의 지도자』, 『김정일 위인상』 등 북한 자료의 진위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통찰력 있게 북한 현대사를 분석했다. 또한 남한의 학자들의 논문과 단행본, 조선인민군의 수기를 통해 균형 잡힌 시각과 안목으로 왜곡되고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잡기도 했다.

북한 현대사 70여 년을 탁월한 안목으로 꿰뚫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1권 : 해방과 김일성 체제 (1945~1949년)
북한의 1940년대는 김일성의 역사라 해도 좋을 만큼 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는 민주기지론을 제기하고, 북한을 사회주의화한 뒤 남한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정부 수립 이후 국토완정론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1945년을 깊이 보면 아쉬움이 많다. 소련이 태평양전쟁에 뒤늦게 참전해 북한에 들어오게 된 것이 답답하고, 미군 대령 2명이 한반도 위에 그은 선 하나로 분단이 되었다는 것도 원통하다. 패전국 독일이 분단된 것처럼 패전국 일본이 분할 점령되었어야 했는데, 한반도가 나뉘었다는 것도 분한 일이다. 하지만 1940년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점은 남북한의 핵심 인물들이 통일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단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좌우 합작을 이루고 통일임시정부를 마련하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여운형과 김구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먹을 것이 많은 데로 몰리는 것이 정치의 생리 아닌가. 이들 곁엔 먹을 것이 많지 않았다. 결국 둘 다 권총을 맞고 한국 현대사의 뒤안길로 처연히 사라져갔다. 하긴 이들보다 먼저 간 이가 있었다. 현준혁이다. 누구보다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그도 민족주의자 조만식과 협력하다가 총을 맞았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2권 : 전쟁과 사회주의 건설 (1950~1959년)
북한의 1950년대는 전쟁, 김일성 권력 공고화, 숙청, 종파투쟁, 독자성 추구의 역사였다. 하지만 민족의 단일성과 동질성이라는 측량하기 어려운 가치를 잃었고, 북한 사회의 다양성이라는 어느 것에 못지않은 가치도 상실했다. 1953년 휴전은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이승만은 반대하고, 김일성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협정에 서명했다. 한반도 통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네바 정치 회담은 당시 세계를 지휘하던 인물들이 모두 모였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그렇게 굳어진 정전 체제가 지금도 한반도를 규정하고 있다. 한편 김일성 세력의 중공업 우선 정책에 대해 연안파와 소련파 가운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일성 개인숭배에 대해서도 반감을 품은 세력들도 있었다. 북한의 1950년대 후반은 김일성 세력이 이들 반대파에 대한 제거 과정의 시기이기도 했다. 1961년 제4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세력이 승리를 선언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3권 : 주체사상과 후계체제 (1960~1979년)
북한의 1960∼1970년대는 전제정치 체제와 세습 체제를 완성하는 시기였다. 1960년대에는 김일성 유일사상 체계와 김일성 유일지도 체계를 세웠고, 1970년대 중반에는 김일성이 주장하는 여러 혁명 이론과 대중지도 방법 등이 보태져 ‘김일성주의’가 되었다. 김일성 유일체제 형성 과정은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었다. 유일체제를 만들어가면서 김정일 후계체제를 구축해갔다. 그래서 김정일은 김일성 유일체제 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버지를 세우는 것은 곧 자신을 세우는 것이었다. 갑산파를 비롯한 유일체제 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을 주도한 것도 김정일이었다. 김일성 개인숭배 작업을 지휘한 것도 김정일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에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와 수교를 확대하면서 비동맹 외교에 적극성을 보였다. 하지만 깊이와 폭에서 한계가 많았다. 북한의 관심은 북한식의 사회주의 체제를 세우는 데에만 있었다. 그것이 북한의 현실이었다. 그 핵심에는 물론 김일성이 있었다. 김일성 주변에는 가산제 국가 체제하에서 권력과 부를 분여받은 항일빨치산 세력들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김일성 유일체제가 바람직했고, 김정일의 권력 승계도 나쁘지 않았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4권 : 김정일과 고난의 행군 (1980~1999년)
북한의 1980∼1990년대는 권력 이양기이면서 체제 위기의 시기였다. 1980년 김정일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후계자로 확정되어 군권과 국가기관을 장악했다. 김일성의 권력은 김정일로 서서히 옮아갔다. 김정일은 국가기관을 중심으로 권력을 이어받으면서 1983년에는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지도부와 대면 교류도 시작했다. 1990년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출되고, 1991년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올라 군권을 장악했다. 1990년대의 북한 경제는 훨씬 어려워졌다. 1990년대 중반에는 특히 식량난이 극심했다. 배급 체계는 붕괴되고 주민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장마당으로, 산으로, 심지어는 중국으로 가야 했다. 굶어죽는 사람도 많았다. 북한 당국은 ‘고난의 행군’을 외치며 주민들의 희생과 악전고투를 요구했지만, 당국의 장악력은 떨어지고 사회 이완 현상은 점점 심해졌다. 서구와 중국의 지원으로 위기를 겨우 넘길 수 있었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5권 : 김정은과 북핵 위기 (2000~2016년)
북한의 2000∼2010년대는 변화의 시기였다. 실리사회주의를 추구하거나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에 진전도 있었다.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은둔의 세계에서 탈출했다. 그 자신도 그렇게 말했다.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일을 은둔에서 벗어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합의도 이끌어냈다. 남과 북이 이야기하는 통일 방안이 유사한 점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 방향에서 통일 논의를 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남북이, 그것도 남북의 정상이 통일 방안을 놓고 진지하게 논의한 것은 처음이고, 합의도 처음이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 이후 세 차례의 핵실험은 한반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고 남북 관계를 경색시켰다. 2016년 북한은 ‘자강력 제일주의’를 부쩍 강조했다. 자신의 능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생산 현장에서 이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1960년대의 자력갱생과 같은 모토다. 자력갱생은 주민의 노력 동원에 이용되었고, 외부와의 교류를 방해했다. ‘자강력 제일주의’도 같은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했다.

련은 왜 김일성을 선택했는가?

김일성이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된 데에는 소련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 제25군 군사위원 레베데프는 소련군 극동군 소속 고위 장성들이 대일전 이후 제88특별정찰여단에 있던 김일성을 조선의 주요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삼아 입북시켰다고 증언했다. 소련군 연해주군관구 사령부 군사위원 스티코프에게서 김일성을 평양에 들여보낼 테니 그에게 주택과 자동차를 지급하라는 지시도 받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스티코프가 김일성 지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스티코프가 극동경비국 사령관을 할 당시 김일성이 있던 제88특별정찰여단이 극동경비국 소속이었다. 당시 이 여단의 책임자는 중국인 저우바오중이었다. 그는 김일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스티코프는 그를 통해 김일성의 항일투쟁 등에 대한 정보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이 여단 내 한인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김일성을 알게 된 스티코프가 그의 지원자가 되었다.

사회 개혁과 북조선노동당 창당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출범하자 김일성 세력은 토지와 산업시설의 소유, 노동제도, 남녀평등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개혁했다. 토지개혁은 ‘모든 토지는 농민들에게’라는 모토로 시작되었고, ‘북조선 노동자 및 사무원에 대한 노동법령’을 공포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분명히 정리했다. ‘북조선의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을 시행해서 정치, 경제, 문화,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남녀가 평등한 권리를 갖도록 했다. 그리고 민족반역자, 즉 친일파의 토지는 작은 것이라도 모두 몰수해 친일파를 청산했다.
북조선공산당은 조선신민당과 합당 작업을 본격화해 북조선노동당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북조선노동당은 민주적인 자주독립국가의 건설, 일본인·민족반역자·지주의 토지 무상몰수과 무상분배, 일본인·민족반역자 소유의 공장·광산·철도 등 주요시설 국유화, 8시간 노동제, 남녀 동일 임금제, 남녀평등 선거제 등을 제시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성립 이후 추진해오던 민주개혁의 내용을 당의 강령에 포함해 그 시행을 재차 강조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김일성은 1948년 9월 9일 10시 모란봉극장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 앞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을 공식 선포했다. 이때 김일성은 8개 정부정강을 발표했다. 첫째, 국토완정과 민족통일의 선결 요건이 되는 미소 양국 군대의 철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둘째, 조선 인민의 이익을 배반하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적극 협력한 친일파와 민족 반역자들을 처벌한다. 셋째, 토지개혁과 산업국유화, 노동법, 남녀평등법 등 민주개혁을 더욱 공고화할 것이다. 넷째, 경제의 식민지 예속성을 청산하고 조선 인민의 복리를 향상시키기 위해 자주적 민족경제를 건설할 것이다. 다섯째, 교육과 문화와 보건 분야의 발전을 위해 힘을 쓸 것이다. 여섯째, 인민정권기관을 더욱 발전시킬 것이다. 일곱째, 여러 자유애호국가와 친선 관계를 맺도록 노력할 것이다. 여덟째, 외래 침략 세력에서 국토를 보위하고 민주개혁의 성과를 보호하기 위해 인민군대를 강화할 것이다.

김일성은 왜 남침을 계획했는가?


1949년 3월 3일 모스크바에 도착한 김일성 일행은 스탈린에게 남침 계획을 밝히면서 소련의 지원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미국의 개입을 우려해 전쟁을 반대했다. 군사적으로도 미국은 비대칭 전력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중국의 마오쩌둥도 전쟁을 반대했다. 중국은 타이완 해방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스티코프도 김일성의 남침에 반대 의견을 보냈다. 첫째, 남북한의 군사력이 비슷하다. 둘째, 미국의 개입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기에 군사적·정치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그 대신 그동안 해오던 남한 내 빨치산투쟁을 강화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했다. 김일성이 1949년 초부터 모스크바와 베이징에 남침 의사를 적극 개진했지만, 스탈린이나 마오쩌둥도 쉽게 동의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정부를 세우면서 국토완정을 내세운 김일성은 군사적으로 남한을 공격·점령하는 방안을 치밀하게 준비해나갔다. 소련과 중국을 다시 설득하고 모든 준비도 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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