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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철학사. 2, 아시아세계의 철학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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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세계철학사. 2, 아시아세계의 철학 / 이정우 지음
개인저자이정우= 李正雨, 1959-
발행사항서울 : 길, 2017
형태사항851 p. : 삽화 ; 24 cm
ISBN9788964451533 (v.2)
서지주기참고문헌(p. 833-840)과 색인수록
기금정보주기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출판콘텐츠 창작자금을 지원받아 제작되었음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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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지금까지 저술된 철학사들은 대개 세계철학사가 아니라 일정한 지역적 테두리를 전제한 철학사들이었다. 철학사의 대부분이 ‘서양 철학사’이거나 ‘중국 철학사’, ‘한국 철학사’, ‘일본 철학사’, ‘인도 철학사’ 등이었던 것이다. …‘세계철학사’라는 제목을 달고서 나온 저작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비서구 지역의 철학 전통을 서구 철학사의 한갓 전사(前史) 정도로 보았을 뿐이었다.

지난 2011년 철학자 이정우는 3부작으로 구상한 역작 『세계철학사』의 첫째 권 『세계철학사 1: 지중해세계의 철학』을 내놓았다. 당초 1년에 한 권씩 총 3년에 걸쳐 완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간 많은 독자들이 2권의 출간 소식을 기다려왔으나, 수차례 강의를 거치고 퇴고를 거듭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1권 이후 무려 7년 만에 둘째 권 『세계철학사 2: 아시아세계의 철학』을 펴내게 되었다. 그리고 더불어 1권 역시 전면 개정을 통해 내용을 다듬어 다시 내놓는다.
이 두 번째 책을 통해, 1권만으로는 채 다 가늠할 수 없었던 이정우 세계철학사의 너비와 깊이, 관점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철...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지금까지 저술된 철학사들은 대개 세계철학사가 아니라 일정한 지역적 테두리를 전제한 철학사들이었다. 철학사의 대부분이 ‘서양 철학사’이거나 ‘중국 철학사’, ‘한국 철학사’, ‘일본 철학사’, ‘인도 철학사’ 등이었던 것이다. …‘세계철학사’라는 제목을 달고서 나온 저작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비서구 지역의 철학 전통을 서구 철학사의 한갓 전사(前史) 정도로 보았을 뿐이었다.

지난 2011년 철학자 이정우는 3부작으로 구상한 역작 『세계철학사』의 첫째 권 『세계철학사 1: 지중해세계의 철학』을 내놓았다. 당초 1년에 한 권씩 총 3년에 걸쳐 완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간 많은 독자들이 2권의 출간 소식을 기다려왔으나, 수차례 강의를 거치고 퇴고를 거듭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1권 이후 무려 7년 만에 둘째 권 『세계철학사 2: 아시아세계의 철학』을 펴내게 되었다. 그리고 더불어 1권 역시 전면 개정을 통해 내용을 다듬어 다시 내놓는다.
이 두 번째 책을 통해, 1권만으로는 채 다 가늠할 수 없었던 이정우 세계철학사의 너비와 깊이, 관점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철학자가 쓴 최초의, “세계”철학사라는 이름에 걸맞은 진정한 의미의 철학사이다.

이것이 진정한 세계철학사
반쪽짜리 사유를 넘어 보편성을 바라보다


한국 철학자가 쓴 최초의 세계철학사.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할 터인데, 사실은 진정한 의미의 세계철학사 자체가 한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사가 나왔지만 서양 철학사, 중국 철학사, 한국 철학사, 인도 철학사처럼 특정 지역, 언어권을 다룬 철학사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세계철학사’라는 이름을 단 대표적인 저작들(한스 요아힘 슈퇴리히의 저작, 소비에트과학아카데미연구소의 저작)조차 실질적으로는 서구의 철학사에 머문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이 󰡔세계철학사󰡕 3부작에서 이정우는 서구 편향적인 철학사를 지양하면서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놓고서 보다 보편적인 시각으로 철학사를 보려 했다. 바로 이 점,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놓고 보다 보편적인 시각으로”가 여태껏 우리가 진짜 세계철학사를 갖지 못했던 이유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서구/서양의 철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동북아 한자문명권의 유교와 도교, 그리고 인도에서 유래해 동아시아로 퍼진 불교를 두루 꿰뚫고 그것을 지중해세계의 사상과 비교해 가면서 철학사를 꿰어 쓴다는 것은 아시아의 철학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아시아에서도 역시 그런 시도가 없었다. 그 어려운 일을 이정우가 해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따고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땄으니 서양 철학 전문가인 것이야 당연한데, 아시아 철학까지 섭렵했다. 부친이 한학자였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한문을 배웠고 한학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익혔던 덕분. 그러나 보기 드문 학문적 편력만으로 이런 역작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문이란 지식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 아니다. 아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앎을 가지고 인간과 삶을 바라보며 더 나은 관점을 제시하는 것, 이정우가 세계철학사를 쓰고자 함은 바로 이러한 학문적 태도의 발로이다.
이정우가 세계철학사를 쓰고자 한 데에는, 단순히 철학의 역사를 정리해보고자 하는 동기만이 아니라, “비서구를 전근대로 보는” 편견을 타개하고 허울 좋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 진정한 보편성을 찾고자 하는 의욕이 작용했다.(이정우는 이런 편견이 근본적으로 ‘근대성=모더니티’가 이룩한 성과에의 도취를 근대 이전으로 추후적으로 투사한 데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본 저작이 앞으로 보여줄 것인바, 전근대에 관련한 이런 배치는 허구에 가깝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세계철학사』 3부작과 더불어 “우리 철학자의 손으로 쓴 최초의 세계철학사”를 가지게 되었을 뿐 아니라, 특정 문명과 언어권에 갇혀 있던 반쪽 사유만을 배태했던 기존의 철학사를 극복하고 “객관성과 보편성에 한발 더 가까이 간 진정한 세계철학사”를 만나게 되었다.

유라시아 대륙이 낳은 철학적 전통의 양대 산맥
지중해세계 철학과 아시아세계 철학의 비교


철학적 사유의 요람이었던 유라시아 대륙은 불모의 땅인 북방과 정주문명들이 나란히 늘어선 남방 그리고 유목적 삶이 펼쳐진 중앙으로 구성된다. 차가운 북방에서는 추위에 견딜 수 있는 생명체들의 삶이 펼쳐졌고, 그 반대편 남쪽에서는 동서에 걸쳐 동아시아, 인도, 오리엔트, 유럽으로 이어지는 위대한 문명들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인 중앙아시아에서는 각종 형태의 유목적 삶이 비-역사적 역사를 수놓았다. 세계철학사의 흐름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공간적으로 이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

유라시아 대륙 아래쪽으로 빙 둘러 있는 정주문명들 중 동북아, 인도, 이슬람, 서구는 철학적 담론을 양산해낸 대표적인 문명들이다. 오늘날 이슬람은 지리학상 ‘서남아시아’ 또는 ‘중동’으로 분류되며, 그 문명도 ‘아시아 문명’의 일부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동북아・인도・이슬람 모두를 “동양”으로 묶어 부르고, 이슬람 철학 전통도 “동양 철학”의 일부로서 다루는 것은 적어도 철학사적으로는 적절치 않다. 정치경제적 맥락이 아닌 철학사적 맥락에서 이슬람 사상은 어디까지나 유대-기독교 사상의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아울러 정치경제적으로도 오리엔트 지역은 늘 서방과 착잡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래서 “지중해세계의 철학”이라는 부제를 단 이 세계철학사의 1권에서 이미 이슬람 철학을 함께 다룬 바 있다.
이제 “아시아세계의 철학”을 다루는 2권에서는 동북아와 인도의 철학을 살펴본다. 인도 자체의 맥락을 놓고 볼 때, 인도 철학은 인도-유럽어라는 언어적 측면에서나, 논리학・인식론의 발달 같은 사유의 양태에서나, 또 페르시아 지역과의 본래적 친연성, 알렉산드로스의 원정 이래 지중해세계와 가졌던 역사적 연관성에서나 오히려 지중해세계의 철학에 더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철학사적 전개 과정을 볼 때 그리고 고중세에 초점을 맞추는 한에서, 결과적으로 인도 철학—핵심적으로는 불교—은 동아시아로 전파되어 이 세계의 일부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서양 철학사는 개념과 구도가 일정 부분 형성되어 있는 데 비해, 동양 철학사 또는 아시아 철학사는 개념과 구도는 물론이고,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권이 다른 동남아시아와 인도는 접어둔다 쳐도, 한문을 공통언어로 하는 동북아 삼국의 철학사조차 개념과 구도를 갖추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정우는 세계철학사 안에서 아시아세계의 철학의 자리를 제대로 잡아주고자 한다.

거의 대부분의 사조들이 그리스 철학에 뿌리 두고 있는 지중해세계의 철학에 비해, 아시아세계의 철학은 다질적(多質的)이다. 우선 이 세계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인도 철학과 동북아 철학의 두 축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지중해세계의 철학도 동방과 서방이라는 두 축에 입각해 전개되었지만, 아시아세계에서의 이질성이 더 크다. 동북아세계의 경우 한자문명권을 이루었음에도, 지리적인 장벽 등 여러 이유로 지중해세계에 비해 그 통일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철학사의 서술에서도 대체적으로 인도・중국・한국・일본이 따로 논의되어왔을 뿐, 아직도 ‘아시아 철학’의 개념은 물론이고 ‘동아시아 철학사’, ‘동북아 철학사’ 같은 개념들 자체가 정확히 서 있지 않다. 서구 철학사가 비교적 일정한 틀을 갖추고서 내려온 것과 대조적이다. 여기에서 나는 인도와 동아시아를 포괄하는 ‘아시아세계의 철학’에 대한 역사적 서술을 시도할 것이다. 이번의 시도로써 ‘아시아 철학’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고, 나아가 ‘세계철학사’의 개념이 새롭게 정초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한 그의 전략은 아시아세계의 철학을 지중해세계의 그것과 계속 비교해가며 논하는 것이다. 지중해세계의 철학을 다루는 1권에서도 간간이 볼 수 있었지만, 이번 2권에서 비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2권은 일종의 ‘비교철학’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개별적인 비교 연구가 아니라 지중해세계의 철학과 아시아세계의 철학을 전체적으로 비교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물론 아시아세계 내 여러 철학 전통들 사이의 비교도 포함하지만, 그보다는 아시아세계의 철학 전체를 지중해세계의 철학과 비교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철학의 출발점과 동북아철학의 출발점, 그리고 인도 철학의 출발점이 제각기 달랐고 이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리스에서 철학이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형이상학적 탐구에 매진하는 데서 시작했다면, 동북아 지역에서는 난세를 극복하고 치세로 가려는 정치적 탐구, 즉 정치철학에서 철학이 출발했다. 한편 인도에서는 철학이 종교적 갈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다음과 같은 서로 다른 태도를 낳았다. 지중해세계의 철학이 현상세계의 실재성을 부정했다면, 아시아세계, 특히 동북아세계의 철학은 실재성을 긍정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동시에 이 두 철학적 사유의 흐름이 각 단계들에서 서로 동조(同調)하면서 철학사를 이루어왔다고 본다.

[지중해세계와 아시아세계 모두] BC 6세기를 전후해서 사유에 눈뜬 많은 선구자들, 최초의 철학자들이 이후 모든 사상들의 뿌리가 될 다채로운 사상들을 쏟아냈다. ‘제자백가’라는 개념이 이를 상징하며, 이 점은 인도 철학이나 그리스 철학에도 해당된다. 이런 과정은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공자 같은 성인들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나가르주나, 바수반두, 노자, 장자, 맹자, 순자를 비롯한 위대한 철학자들을 낳았다.
수백 년간 지속된 이와 같은 과정은 최초의 철학자들이 행했던 사유 실험들로부터 점차 학파적 활동으로 이행하고, 급기야는 교파, 정치 세력 등으로 변질되기에 이른다. 이윽고 거대한 제국들(로마 제국, 페르시아 제국, 마우리아 제국, 한 제국 등)이 등장하면서, 고대의 사유 실험들 중 어떤 특정한 사조가 삶의 정답으로서, “정통”으로서 채택된다. 이로써 철학은 종교화 또는 정치화하며, 철학사에서의 “중세”는 이렇게 교조화한 사상들—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로 특징지어진다.

사실 ‘난세’를 ‘치세’로 바꾸는 데 일생을 바친 동북아의 철학자들과 인생의 ‘고(苦)’를 넘어 ‘해탈’을 찾은 인도의 철학자들 그리고 ‘허무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퓌지스’, ‘아르케’를 탐구한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그 출발점에서부터 크게 달랐다고 해야 하리라. 이런 근본적인 차이점 외에도, 고중세 철학의 갈래들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우리는 거기에서 적지 않은 크고 작은 차이들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멀리 떨어져서 철학의 역사를 회고해볼 때, 처음으로 사유에 눈뜬 최초의 철학자들이 각종 실험을 펼치던 고대, 그중 일정한 대안들이 ‘채택’되어 ‘~교’의 형태를 띠게 되는 “중세”, 새롭게 등장한 근대성이 전-지구적 보편성의 지평을 획득해간 근대, 근대성에 대한 비판・해체와 새로운 탈-근대적 실험들이 쏟아지고 있는 현대라는 일반적 도식은 우리로 하여금 철학사의 밀림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나침판의 역할을 해주리라고 본다.

아시아세계의 哲學 그리고 지중해세계의 philosophia
사람의 마음을 탐구


책을 마무리하면서 이정우는 아시아와 지중해의 철학의 차이는 양 문명의 정치 및 종교의 성격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고 말한다. 결정적인 것은 그리스(와 공화정 로마)가 고대 세계에서는 유일하게 민주정을 실시한 데에 비해, 아시아세계의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왕조’의 형태를 띠었다는 점이다.

이 점이 양 철학 전통의 성격을 결정적으로 좌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이 민주정이 특히 활발하게 전개된 아테네와 로마에서 만개했고, 인도와 동북아의 철학은 상고 시대의 강고한 권력이 와해된 공간들에서 만개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그러나 다시 아시아세계의 인도와 동북아는 다른 정치적 맥락을 띠었다. 인도의 철학자들이 정치의 세계와 거리를 둔, 어떤 면에서는 카스트제도에 의해 지배된 인도 사회 바깥에서 활동했다면, 동북아의 철학자들은 정치의 심장부에서 ‘문사-관료’들로서 활동해야 했다. 이런 정치적 환경에서 그리스-로마 철학과 인도 철학 그리고 동북아 철학은 서로 다른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아울러 종교와의 연관성 또한 본질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리스에서 유래한 철학 전통은 본래 다신교의 환경에서 성립했고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공기를 호흡했다. 그러나 향후 지중해세계는 ‘일신교’의 문명을 구축하게 되며, 철학자들은 그 그늘 아래에서 ‘신과 세계와 인간’이라는 구도에 입각해 사유하게 된다. 반면 인도와 동북아에서는 다신교가 일반적인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해서 볼 때, 고중세 시대에 지중해세계에서건 아시아세계에서건 철학이 활짝 피어날 수 있었던 때는 강고한 정치적-종교적 권력으로 자유로워졌을 때임을, 또한 정치적 권세이든 종교적 권세이든 권세를 얻은 철학은 철학 자체로서는 반드시 퇴락함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이정우는 말한다.

동북아 철학자들의 특장은 기의 흐름에 발맞추어 가면서 현실의 생성을 사유한 점에 있다. 그들에게 어떤 집요함이 있었다면 그것은 차라리 윤리적-정치적 맥락에서의 높은 도덕성과 실천성에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중해세계 철학자들의 사유가 객관적이고 엄정한 탐구를 통해 어떤 궁극의 점을 찾았던 것에 비해, 동북아세계 철학자들의 그것은 인간적이고 역사적인 지혜를 통해서 끝없이 이어져가는 어떤 길을 찾았다. 때문에 지중해세계 철학의 기초는 ‘존재’의 탐구에 있었고, (불교를 포함한) 동북아세계 철학의 기초는 ‘사람의 마음’의 탐구에 있었던 것이다. ●「맺는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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