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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 :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도태된다

강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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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 :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도태된다 / 강정만 지음
개인저자강정만= 姜正萬
발행사항서울 : 주류성, 2019
형태사항608 p. ; 23 cm
ISBN9788962463880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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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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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청나라 역대 황제 12명의 통치시대를 끝으로 근대 중국이 시작된다

누르하치가 건국한 후금을 포함하면, 청나라는 12대 황제, 296년을 지속했다. 청나라의 역대 황제들은 명나라 황제들에 비해 왕조를 망칠만큼 무능하거나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제왕의 교육을 충분히 받고 선정을 베풀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으며, 어떠한 허례허식도 배격하고 실무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럼에도 청나라가 망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
아편전쟁 이후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에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중국은 서구 열강에게 처절하게 유린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 3000년의 봉건 역사와 유가 문명의 약점이 서구 문명과 충돌하면서 여지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 백성은 피지배자로 자각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존재였다. 개인의 자각을 통한 인권의 가치를 인식하고 시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민주제도를 완성한 서양의 민주적 관계를 유가의 종속적 관계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다.
또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이 청나라의 발목을 잡았다. 청나라 황제들은 하늘 밖에 또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청나라 역대 황제 12명의 통치시대를 끝으로 근대 중국이 시작된다

누르하치가 건국한 후금을 포함하면, 청나라는 12대 황제, 296년을 지속했다. 청나라의 역대 황제들은 명나라 황제들에 비해 왕조를 망칠만큼 무능하거나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제왕의 교육을 충분히 받고 선정을 베풀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으며, 어떠한 허례허식도 배격하고 실무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럼에도 청나라가 망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
아편전쟁 이후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에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중국은 서구 열강에게 처절하게 유린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 3000년의 봉건 역사와 유가 문명의 약점이 서구 문명과 충돌하면서 여지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 백성은 피지배자로 자각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존재였다. 개인의 자각을 통한 인권의 가치를 인식하고 시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민주제도를 완성한 서양의 민주적 관계를 유가의 종속적 관계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다.
또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이 청나라의 발목을 잡았다. 청나라 황제들은 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있음을 알지 못했으며, 설사 알고 있었더라도 애써 외면했다. 청나라가
역사에서 사라진 것은 지도자들이 시대를 읽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대의 요구를 외면한
결과였다.

‘명나라 역대 황제 평전’에 이은 시리즈 2탄
고금을 막론하고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도태될 뿐이다


이 책은 역사 자료에 근거하여 청나라 황제 12명의 통치 시대에 어떤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봄으로써 역사의 교훈을 얻고자 한다. 과거에만 머물러있는 역사는 박물관의 먼지 쌓인 골동품에 불과하다.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음으로써 현재를 바로잡고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중국 역사는 우리 민족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미래에도 미국과 더불어 세계의 양대 패권 국가로 떠오른 중국을 상대로 생존권을 확보하고 번영을 구가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냉전 시대에는 미국 중심의 ‘줄서기’를 통해 중국이라는 변수를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었으나, 이념보다 경제 논리가 우선이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맹’이 허울뿐인 약속에 불과한 상황에서 중국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청나라는 여진족(만주족) 누르하치(1559∼1626)와 그의 후손들이 건국한 중국 최후의 봉건 왕조이다. 인구가 100만 명도 안 되는 소수 민족이 어떻게 1억이 넘는 한족 왕조,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의 주인이 되었을까. 더구나 명군은 수백만 대군과 조총, 서양에서 수입한 홍이포 등 첨단 무기로 무장한 반면에 청군은 팔기병 조직이 전부였던 상황에서, 청나라의승리는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최고지도자는 무능하고 황음무도한 생활에 젖어있으며 관리들은 부패하고 가렴주구를 일삼으며 지식인들은 실질을 숭상하지 않고 공리공담에 빠졌을 때, 국가가 아무리 인구가 많고 엄청난 생산량을 자랑하며 고도의 문명을 향유하고 있을지라도, 망국의 길로 접어든다. 명나라는 10대 황제 무종 주후조(1491∼1521)때부터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명나라가 패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황제들의 방탕한 생활과 관리들의 부정부패였다. 이와 반면에 청나라는 건국 초기에 국가의 행정을 군사 조직으로 운영함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했으며,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능력자만이 출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어떤 허례허식도 배격하고 실무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양국의 이러한 차이가 결국은 소국이 대국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전례를 남긴 것이다.

나름대로의 ‘시스템’을 갖추고 다른 왕조에 비해 청렴하고 성실한 지도자들이 국가를 경영했던 청나라는 어째서 더 오랜 시간 살아남지 못했던 것일까. 바야흐로 시대는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민주민본주의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청나라 황제들은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는커녕 오랫동안 지켜진 공고한 시스템을 믿고 안주했기 때문에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쓸쓸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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