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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석 서유구 연구

조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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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풍석 서유구 연구 / 조창록 [외] 저 ; 실시학사 편
개인저자조창록= 曺蒼錄
김문식= 金文植, 1961-
염정섭= 廉定燮, 1964-
박권수, 1968-
김호= 金澔
김왕직= 金王稙
이민주= 李民周, 1962-
송지원= 宋芝媛, 1959-
문석윤
이봉규= 李俸珪
단체저자명실시학사
발행사항서울 : 사람의무늬 :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4-2015
형태사항2 v. : 삽화 ; 23 cm
총서명실시학사 실학연구총서 ;9-10
ISBN9791155500811 (v.1)
9791155501375 (v.2)
9788979869231 (세트)
일반주기 공저자: v.1 - 조창록, 김문식, 염정섭, 박권수, 김호, v.2 - 김왕직, 이민주, 송지원, 문석윤, 이봉규
연보: p. 395-404 (v.1)
부록: 풍석 연구논저 목록
서지주기참고문헌과 색인수록
주제명(개인명)서유구=徐有榘, 1764-1845 SLSH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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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풍석 서유구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실학사상의 계승 발전을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실시학사가 중점적으로 추진하여 발간하는 ‘실학연구총서’의 아홉 번째 책이다. 다섯 명의 연구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임원경제지』에 접근하여, 서유구의 학문적 지향과 특징을 분석하고 평가한다.

각 논문의 개요

조창록의 「풍석의 실학자적 위상과 임원경제」는 서유구의 학문적 연원을 소개하고 『임원경제지』의 성격을 정리한 것이다. 조창록은 서유구의 학문적 연원으로 조부 서명응(徐命膺)의 상수학과 부친 서호수(徐浩修) 및 백씨 서유본(徐有本)의 천문학과 수학을 꼽았고, 그와 교류한 문광도(文光道)와 김영(金泳), 어릴 때의 스승인 유금(柳琴)이 모두 수학자였음을 거론했다. 또한 서유구 집안의 인물들이 서광계(徐光啓)의 『농경전서(農政全書)』를 중시하고, 서유구는 서광계의 농학 지식뿐 아니라 농작물을 재배하고 농업 설비를 시험하며 말년까지 저작을 손질하던 행적을 본받았음을 주목했다.
조창록은 서유구가 농업을 비롯한 산업 전반에 학문적 관심을 가졌고 『임원경제지』는 이용후생을 집성한 기술서로 이해했다. 그는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풍석 서유구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실학사상의 계승 발전을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실시학사가 중점적으로 추진하여 발간하는 ‘실학연구총서’의 아홉 번째 책이다. 다섯 명의 연구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임원경제지』에 접근하여, 서유구의 학문적 지향과 특징을 분석하고 평가한다.

각 논문의 개요

조창록의 「풍석의 실학자적 위상과 임원경제」는 서유구의 학문적 연원을 소개하고 『임원경제지』의 성격을 정리한 것이다. 조창록은 서유구의 학문적 연원으로 조부 서명응(徐命膺)의 상수학과 부친 서호수(徐浩修) 및 백씨 서유본(徐有本)의 천문학과 수학을 꼽았고, 그와 교류한 문광도(文光道)와 김영(金泳), 어릴 때의 스승인 유금(柳琴)이 모두 수학자였음을 거론했다. 또한 서유구 집안의 인물들이 서광계(徐光啓)의 『농경전서(農政全書)』를 중시하고, 서유구는 서광계의 농학 지식뿐 아니라 농작물을 재배하고 농업 설비를 시험하며 말년까지 저작을 손질하던 행적을 본받았음을 주목했다.
조창록은 서유구가 농업을 비롯한 산업 전반에 학문적 관심을 가졌고 『임원경제지』는 이용후생을 집성한 기술서로 이해했다. 그는 18세기에 이뤄진 이용후생학의 성과가 19세기에는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는 단계로 들어갔고, 서유구는 학문의 지향점을 실용에 두고 사대부가 임원(林園)을 경영하며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임원경제지』에 수록한 것으로 보았다.

김문식의 「풍석의 수원유수 시 활동 양상」은 서유구가 1836년부터 2년간 수원유수로 근무할 때 작성한 『화영일록(華營日錄)』에 나타난 활동을 검토한 것이다. 이 시기는 서유구가 『임원경제지』의 초고를 작성한 이후 수정을 하던 때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유구는 수원유수로 있으면서 규장각 제학을 겸했기 때문에 규장각 제학으로서의 활동과 수원유수로서의 활동을 동시에 보여 주었다. 서유구 집안은 정조가 규장각을 설립할 때 조부 서명응이 중요한 역할을 한 이후 대대로 규장각과 인연이 있었고, 서유구도 정조 대 이후 규장각의 관직을 두루 역임했던 인물이었다. 서유구는 순조가 사망하고 헌종이 즉위하던 시기에 규장각 제학으로 있으면서 순조와 익종의 어제(御製)를 편찬하고, 왕실의 주요 의례에 참석하였으며, 헌종의 경연(經筵)에 나가는 등 고위 관리로서의 활동을 계속했다.
수원유수로서의 활동은 화령전(華寧殿)과 현륭원(顯隆園)의 관리, 인사 관리, 민생 관리로 구분되며, 그중에서도 민생 관리는 『임원경제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를 보면 19세기 전반 수원부의 형편은 농사가 계절별 강수량에 큰 영향을 받고, 정조 대에 축조된 수리(水利) 시설은 손상된 곳이 많았으며, 매년 흉년이 들 것을 걱정하고 해일 피해를 입은 기민(饑民)들을 구제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이에 수원유수 서유구는 자신이 관할하는 지역의 농업을 장려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김문식은 이를 근거로 『임원경제지』에 수록된 농사와 수리 시설에 대한 방대한 지식에는 개인 차원의 가정(家政) 경영과 함께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에게 혜택을 주려는 국가 경영자로서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

염정섭의 「풍석의 농법 변통론과 농정 개혁론」은 『행포지(杏蒲志)』와 『의상경계책(擬上經界策)』, 『임원경제지』의 「본리지(本利志)」에 나타나는 농법 변통론과 농정 개혁론을 정리한 것이다. 염정섭은 서유구가 농법 변통론으로 수전(水田)에서 이앙법을 실시하고 시비(施肥)를 강조하며, 한전(旱田)에서 조과(趙過)가 고안한 대전법을 재해석한 풍석대전법(楓石代田法)을 제시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서유구는 요긴한 수리 기술을 정리하고 보급하며, 조선의 각 지역에서 선호하던 도종(稻種)을 정리하여 조선 농법의 고유한 측면을 강화하면서 중국의 우량한 품종을 도입하여 시험한 것으로 보았다.
염정섭은 서유구가 농정 개혁론으로 결부법(結負法)의 폐단을 지적하고 경무법(頃畝法)을 보급하며, 방전법(方田法)을 사용하여 전국적인 양전(量田)을 시행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서유구는 한전을 수전으로 바꾸는 번답(反沓)을 금지하고, 둔전(屯田)을 확산시키며 북방 지역을 점차 개발하려는 구상을 가졌다고 보았다. 염정섭은 특히 서유구의 둔전 설치론을 주목하여 농법의 변통을 통해 지력(地力)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국가재정을 보충하려는 개혁론으로 보았다.

박권수의 「풍석의 자연과학 저술의 특징」은 『임원경제지』에 수록된 천문학.기상학.수학.풍수지리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고 그 특징을 밝힌 것이다. 박권수는 「위선지(魏鮮志)」에 있는 천문과 기상, 「본리지(本利志)」에 나오는 역산(曆算)이 서양에서 전래된 정보를 이용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서유구가 이를 저술한 목적은 천문과 자연 현상을 통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고 계절별로 농가에서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것과 같이 임원에서 생활하는 유자(儒者)에게 필요한 지식을 얻는 데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또한 「유예지(遊藝志)」의 산법(算法)은 청에서 전래된 『수리정온(數理精.)』을 참고했지만 전통적인 상수학적 관념이 반영되어 있으며, 「상택지(相宅志)」의 풍수지리도 전통적 풍수지리와 술수적 관념을 가지고 실용적 지식을 정리한 것으로 보았다.
박권수는 『임원경제지』에 과학적 지식과 술수학적 지식이 공존하며, 서유구는 술수학과 상수학의 이론 자체를 연구하지 않고 실제에 필요한 지식을 집대성한 것으로 보았다. 박권수는 서유구의 지식이 서명응과 서호수로부터 이어지는 가학의 전통에서 발전되었으며, 『임원경제지』는 실용성과 전문성을 아우르는 백과사전류의 책으로 파악했다.

김호의 「풍석의 의학론」은 『임원경제지』 「인제지(仁濟志)」에 나타나는 이용후생의 면모를 중국 외과 기술의 수용과 조선 후기 경험방의 수집이라는 측면에서 정리한 것이다. 김호는 서유구가 의학을 「보양지」와 「인제지」로 구분하여 체계화하고, 중국 의서(醫書)의 백미라 할 『경악전서(景岳全書)』와 『의종금감(醫宗金鑑)』을 적극 수용하고 조선의 경험방 서적도 최대한 수집하여 정리한 것으로 보았다. 특히 「인제지」에서는 청 건륭제의 명령으로 오겸(吳謙)이 편찬한 『의종금감』을 널리 인용하면서 자신의 분류체계로 재정리하여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했으며, 서양의 의학과 약물 제조 기술에도 관심으로 가진 것으로 보았다. 서유구는 조선의 경험방도 널리 수집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재분류했으며, 그 대상은 『산림경제』와 『증보산림경제』를 비롯하여 『광제비급』, 『김씨경험방』, 『규합사의』, 『해동경험방』을 망라하였다.
김호는 서유구가 정조의 의도를 제대로 실현한 측면이 있다고 보았다. 정조는 『동의보감(東醫寶鑑)』이 나온 이후에 나타난 중국 의서를 보완하고 조선 후기의 경험방을 보충한 새 의서를 편찬할 계획을 세웠고 강명길(康
命吉)의 『제중신편(濟衆新編)』은 그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서유구는 명과 청, 일본의 서적까지 활용하고 조선의 의방을 빠짐없이 수집하여 「인제지」를 편찬함으로써 정조의 의도를 완수했다는 것이다. 김호는 서유구가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최대한 수집하여 활용하려 했지만 지식의 양이 많아질수록 활용은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실학연구총서를 펴내며... 지금 여기, 실학의 의미를 되묻다

최근 학계 일각에서 ‘실학’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의심과 회의의 시각이 거센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는 ‘근대’에 대한 반성에 수반하여, 실학이 단지 근대 국가를 지향하던 시기에 지식인들의 한시적 관심 위에 구성된 허구적 가상물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구체적인 연구의 심화에 따라, 실학자들의 경학 혹은 자연학 상의 학술적 성취에 대해 회의적 견해가 표명되기도 한다. 이러한 의심과 회의의 시각 앞에서 연구자들은 다시 한 번 실학 연구에서 실학의 ‘태도’와 실학의 ‘방법’을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즉 실학자들이 취하였던 개혁적이고 실천적인 태도와 관심, 개방적 실용주의의 관점, 그리고 실사구시의 정신 등이 그것이다. 그것은 곧 실학에서 근대학문으로 이어지는 우리 학문의 역사를 주체적으로 구성해내는 길이 될 것이다. 실학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결국 실학에 대한 더욱 견고하고 풍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자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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