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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만당에서 하늘을 보다 : 1962년 울주 김홍섭 어르신 농사 일기

고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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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고개만당에서 하늘을 보다 : 1962년 울주 김홍섭 어르신 농사 일기 / 고광민 著
개인저자고광민= 高光敏, 1952-
발행사항제주 : 한그루, 2019
형태사항431 p. : 삽화 ; 22 cm
ISBN9788994474830
수상주기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도서, 2019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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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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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원초경제사회에서 자연과 더불어 삶을 꾸렸던 사람들의 기록을 찾아 그 생활사를 엮어온 민속학자 고광민 선생의 새 책이다. 이미 제주를 비롯해 여러 섬의 민속과 생활사를 기록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울주로 그 눈길을 돌렸다. 이 글은 울주 지역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한 어르신의 농사 일기를 풀어낸 것이다.
일기를 쓴 김홍섭 어르신은 울산시 울주군 하삼정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삶을 꾸렸었다. 그러나 2004년 대곡댐 건설로 인해 마을이 수몰되면서 대정마을로 삶터를 옮겼다. 어르신은 1955년부터 농사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지금도 이어오고 있다. 일기에는 농사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당시의 물가, 시장에서 거래되던 물건의 종류와 값, 경조사와 축의금의 변화, 마을의 살림 등 지역의 생활사가 담겨 있다. 또한 당시 쓰이던 지역의 고유한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고광민 선생은 울주대곡박물관에서 우연히 이 일기를 접한 후, 어르신을 찾아가 그간의 일기들을 보게 되었다. 그중에서 기록이 충실하고 오래된 것으로 1962년의 일기를 택해 그 내용을 풀이하고 해설을 덧붙여 생활사의 조각을 맞춰나가는 작업을 진행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록...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원초경제사회에서 자연과 더불어 삶을 꾸렸던 사람들의 기록을 찾아 그 생활사를 엮어온 민속학자 고광민 선생의 새 책이다. 이미 제주를 비롯해 여러 섬의 민속과 생활사를 기록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울주로 그 눈길을 돌렸다. 이 글은 울주 지역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한 어르신의 농사 일기를 풀어낸 것이다.
일기를 쓴 김홍섭 어르신은 울산시 울주군 하삼정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삶을 꾸렸었다. 그러나 2004년 대곡댐 건설로 인해 마을이 수몰되면서 대정마을로 삶터를 옮겼다. 어르신은 1955년부터 농사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지금도 이어오고 있다. 일기에는 농사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당시의 물가, 시장에서 거래되던 물건의 종류와 값, 경조사와 축의금의 변화, 마을의 살림 등 지역의 생활사가 담겨 있다. 또한 당시 쓰이던 지역의 고유한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고광민 선생은 울주대곡박물관에서 우연히 이 일기를 접한 후, 어르신을 찾아가 그간의 일기들을 보게 되었다. 그중에서 기록이 충실하고 오래된 것으로 1962년의 일기를 택해 그 내용을 풀이하고 해설을 덧붙여 생활사의 조각을 맞춰나가는 작업을 진행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록보다는 비망록 형식으로 쓰인 글이다 보니, 일기를 풀이하면서 어르신과 저자가 일일이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김홍섭 어르신 일기를 월별로 나눠 주석과 해설을 단 것이다. 일기에 등장하는 일부 생활도구는 화상 자료와 함께 해설문을 붙였다. 2부는 일기의 내용을 중심으로 김홍섭 어르신에게 가르침 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소론이다. 땔나무의 1년, 소의 일생, 논거름의 1년, 밭거름의 1년, 고개만당의 운명, 두레, 언양장에 나타난 바닷물고기의 추적, 콩쿨대회 이전 마을의 민속 등을 살폈다. 마지막으로 김홍섭 어르신 일기의 원본을 실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는 고개만당의 천봉답. 그 땅을 일구며 살던 사람들의 기록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비록 이 일기의 배경이 되었던 마을은 물속에 잠겼지만, 그곳의 생활사를 통해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볼 수 있다. 또한 격식을 갖춘 문서와 자료가 아니라 서민들의 삶에 밀착한 기록 속에서 찾은 귀중한 생활사 조각은 다른 지역의 생활사 연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서自序_김홍섭

본인은 경주 김씨로, 울주군 두서면 서하리 대정마을(옛날 경주군 외남면에 속해 있던 곳)에 살고 있는 김홍섭이란 사람입니다. 1932년생으로 자손이 귀한 한 농가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 속에 성장하였습니다. 공부하기를 좋아했으나 가정형편상 진학을 못 하고 오직 독학으로 학구열을 달랬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만 18세의 나이로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터에 나가 총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만 4년 3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는 가정을 일으켜 세워야겠다는 일념으로 농사일에 전심전력 노력했지요.
그때부터 농사일지를 쓰기 시작하여 영농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일기를 씀으로써 하루를 반성해 보고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여 계속 쓴 것이 어언 64년이란 세월이 지났네요. 내용을 살펴보면 생활사의 일부와 물가 변동, 농산물 가격, 경조사 축의금의 변화 등 시대의 변천과 추억의 기록들이지요.
본래 일기를 써서 남에게 보인다든가 세상에 알린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울산대곡박물관을 찾은 목포대학 도서문화연구원의 연구원 고광민(高光敏) 선생님이 대곡박물관에서 나의 60여 년간의 일기장 소문을 듣고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일기장 일부를 사진으로 담아갔는데, 각고의 노력 끝에 이 책의 초고 편집본이 완성되어 받아보니 선생님의 노력이 감명 깊게 느껴집니다.
이 책을 통하여 지난 세월 우리 울주 지방의 농경 생활 문화의 일부나마 후세에 보전된다는 자긍심에 매우 만족하며 고 선생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울주군 두서면 서하리 대정마을에서 김홍섭 씀

서문序文_고광민

한반도의 땅은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다. 그 분계선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다. 원초 경제사회 때, 백두대간을 기점으로 동(東)과 서(西)의 삶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이러한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백두대간 동쪽 여행을 떠나게 만들었다. 2016년 9월에는 여행 준비를 하였다. 그 당시 울산대곡박물관에서는 《울산 역사 속의 제주민-두무악·해녀 울산에 오다》라는 이름으로 기획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2009년 울산대곡박물관 개관 기념으로 전시하였던 《나의 살던 고향은…》에는 울주 김홍섭 어르신의 일기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캡션은 “1955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농사 일기를 써서 보관하고 있다.”였다.
특별기획 실무를 맡은 박미연 선생은 《나의 살던 고향은…》에서 김홍섭 어르신과 일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김홍섭 어르신은 4년 4개월의 군복무기간을 마치고 24살 때인 1955년 12월에 제대했다. 휴전 이후에도 일정 병력을 유지하느라 제대가 보류되어 복무기간이 길었다.
고향에 돌아와 농사에 전념했다. 25살에 농촌지도소의 농촌자원지도자가 되었다. 농업과 관련된 각종 교육을 받고, 마을 사람들에게 다시 그 내용을 교육하는 일이었다. 20여 년간 이 일을 계속했고, ‘농학박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집안이 어려워서 초등학교만 졸업했지만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수산대학을 다니던 이웃 마을 손수일에게서 영어와 수학을 배웠다. 한문은 혼자서 《통신강의록》이란 책을 보면서 공부했다. 농사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24살 때부터 농사일지를 꾸준히 썼다. 45살이 되면서 농촌자원지도자를 그만두고 농사일에만 전념하였다. 슬하에 2남 4녀가 있고 모두 결혼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67쪽.

2016년 10월 9일부터 1개월 동안 백두대간 동쪽 지역 주유(周遊) 일정이 시작되었다. 10월 12일, 울주군 두서면 서하리에서 김홍섭 어르신을 만났다. 일기 일부를 카메라에 담았다. 김홍섭 어르신의 원래 고향은 울주군 두동면 하삼정리였다. 2005년 대곡댐이 준공되면서 하삼정리를 비롯한 이웃 마을 상삼정마을, 방리마을, 양수정마을, 구석골마을 180여 가호가 수몰되는 바람에 김홍섭 어르신은 지금의 두서면 서하리로 옮겨 살고 있었다.
김홍섭 어르신의 일기는 다른 사람에게 내용을 전할 목적이 아니었다. 일기는 자신의 기억을 돕기 위하여 짤막하게 글로 남긴 비망록이나 다름없었다. 몇 개를 예로 든다.
1962년 음력 1월 24일 오전, 김홍섭 어르신은 인보시장(仁甫市場)으로 갔다. 인보시장은 울주군 두서면 소재지 인보리에서 3일과 8일에 서는 오일장이다. 인보시장에서 땔나무와 백미를 팔았던 내용의 기록이다.

◎소갑 5束 賣[每束~140 = 700 收]
◎白米 2升(360환式 = 720환 收)

‘소갑’은 땔나무 솔가지다. 소갑 5단[束]을 1단에 140환씩 해서 팔아 700환을 받았다[收]는 것이다. 그리고 백미(白米)를 1되에 360환씩[式] 해서 2되[升]를 팔아 720환을 받았다[收]는 것이다. 쌀을 가지고 시장에 팔러 가는 일을 ‘쌀 내러 간다’고도 하였다.
1962년 음력 1월 13일 식전, 김홍섭 어르신은 일기에 “精米[나락 6斗 叺 3叺 卽 20.1 - 1.8 = 18.3]”라고 기록하였다. 6말[斗]들이 가마니[叺] 3개의 나락을 정미(精米)하였다는 것이다. 나락뒤주의 20섬 1말 중에서, 오늘 6말들이 3가마니, 즉 1섬 8말을 정미하였으니, 지금 나락뒤주에는 18섬 3말이 남았다는 것이다.
1962년 음력 9월 24일 식전, 김홍섭 어르신은 일기에 “밥먹는도가리 마자 비고 고물콩, 배밑콩 꺾음.”이라고 기록하였다. 김홍섭 어르신은 논배미를 ‘도가리’라고 하였다. ‘밥먹는도가리’는 김홍섭 어르신 소유 ‘새논’에 있는 논배미 이름이다. ‘고물콩’과 ‘배밑콩’은 무슨 콩일까. 김홍섭 어르신은 ‘고물콩’은 떡고물을 만들 때 쓰는 콩이고, ‘배밑콩’은 밥에 섞는 콩이라고 했다. 또한 못자리를 ‘못강’, 수수를 ‘수끼’, 논두렁을 ‘논두룸’이라고 하였다. 한반도 백두대간 동쪽에서 오랫동안 전승되다가 지금은 잃어버린 말들이다. 김홍섭 어르신의 일기는 백두대간 동쪽 원초 경제사회 생활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열쇠라 하겠다. 더욱이 한국의 문화는 철저하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 도시인 서울이 위치한 백두대간 서쪽에 쏠림으로써 절름발이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훌륭한 자료이다.
김홍섭 어르신 일기를 모두 들여다보는 것은 역부족이다. 그중에 기록이 충실하고 오래된 내용으로 1962년 1년 동안의 일기 내용만 집중적으로 들여다보았다. 2017년 1월 13일부터 2017년 3월 25일까지, 72일 동안은 거의 매일 하루에 1~2시간씩 김홍섭 어르신은 나의 선생님이 되고 나는 김홍섭 어르신의 학생이 되어 일기를 공부하였다. 그리고 그 이외 기간에도 띄엄띄엄 가르침을 받았다. 공부가 끝날 때마다 그 내용을 A4용지에 차곡차곡 적어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고개만당에서 하늘을 보다》라는 이름의 원고를 집필하였다. 이 책 《고개만당에서 하늘을 보다》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장은 〈울주 김홍섭 어르신 일기의 주석과 해설〉이다.
울주 김홍섭 어르신 일기의 주석과 해설을 붙이기 위하여 일기의 내용을 타이핑하였다. 송정희 선생(사단법인 한국아동국악교육협회 제주지부장)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김홍섭 어르신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주석과 해설을 붙였다. 일기 속에서 김홍섭 어르신의 거동(擧動)의 내용마다 ‘*’를 표시하였다. 김홍섭 어르신께서 스스로 일부 거동 내용을 ‘◎, ○, ※’로 표시한 경우에는 그대로 따랐다. 띄어쓰기의 원칙대로 따르려고 하였다. 일기 속의 약자(略字)는 정자(正字)로 고쳐 썼다. 예를 들면 ‘円’을 ‘圓’으로 고쳐 썼다. 그리고 일기에 등장하는 일부의 생활도구는 화상(사진과 그림) 자료와 함께 해설문을 붙였다.
2장은 〈울주 김홍섭 어르신 일기의 소론〉이다.
일기의 내용을 중심으로 김홍섭 어르신에게 가르침 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몇 개의 소론(小論)을 만들었다. 소론의 내용은 필자가 백두대간 동쪽 주유(周遊) 결과를 집필한 《동의 생활사》라는 글에 일부 중복되는 것도 있다.
‘땔나무의 1년’에서는 김홍섭 어르신의 일기 속에서 1962년 1년 동안 땔나무에 관한 내용을 추적하여 보았다. 원초 경제사회 때의 땔나무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땔나무는 채취시기에 따라 ‘겨울나무’와 ‘여름나무’로 구분했고, 겨울나무와 여름나무의 땔나무 종류도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소의 일생’에서는 김홍섭 어르신의 일기 속에서 소의 1년, 소의 소작 등을 들여다보았다. 원초 경제사회 때 ‘천석꾼도 소가 반쪽’이라는 말이 전승되었듯이, 일소 한 마리를 소유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논거름의 1년’에서는 김홍섭 어르신의 일기 속에서 논거름은 언제 어떻게 마련하였으며, 언제 어떤 방법으로 거름을 주었는지를 들여다보았다.
‘밭거름의 1년’에서는 김홍섭 어르신의 일기 속에서 밭거름의 종류와 목적에 대해서 들여다보았다.
김홍섭 어르신은 빗물에 의해서만 벼를 생산하는 논을 ‘천봉답(天奉畓)’이라고 하였다. ‘고개만당’은 천봉답이다. 김홍섭 어르신의 일기 속에서 ‘고개만당의 운명’을 추적하였다. 천봉답의 논농사는 고생이 많았다. 천봉답의 농민은 왜 밭농사를 짓지 않고 논농사를 고집하였을까. 숙명적으로 천봉답이 될 수밖에 없는 배경을 들여다보았다.
논농사를 짓기 위하여 일정한 마을 단위로 공동 조직을 만드는 경우가 있었는데, 울주 지역에서는 이를 ‘두레’라고 하였다. 김홍섭 어르신의 일기 속에서 ‘두레’의 속내를 추적하여보았다.
1962년 음력 1월 13일(양력 2월 17일), 김홍섭 어르신은 어머니 제사상(祭祀床)에 올릴 물고기를 사려고 언양 오일장으로 갔다. 언양장에서 여러 가지 물고기를 사서 어머니 제사상에 올렸다. ‘언양장에 나타난 바닷물고기 추적’에서는 울산 지역 갯마을을 찾아다니면서 바닷물고기의 출처를 찾아내고, 그 어법(漁法) 등을 들여다보았다.
1962년 음력 정월 보름날 김홍섭 어르신 마을에서는 콩쿨대회가 벌어졌다. 이때 김홍섭 어르신은 300환을 희사(喜捨)하였다. ‘콩쿨대회 이전’에서 콩쿨대회 이전에 전승되었던 이 마을의 민속행사를 들여다보았다.
마지막으로 〈울주 김홍섭 어르신 일기의 원본〉을 실었다.
김홍섭 어르신의 일기 중에서 1962년도 부분을 원본 그대로 소개한다. 김홍섭 어르신 일기는 울산박물관에 기증 약속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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