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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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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 오동진 글
개인저자오동진
발행사항서울 : 썰물과밀물, 2020
형태사항360 p. ; 23 cm
총서명오동진의 인문극장 ;2
ISBN9791188485062
분류기호791.4375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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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당대의 영화 평론가 오동진이 최근에 쓴 평론을 모았다. <택시 운전사>, <미안해요, 리키>, <남산의 부장들>, <바이스> 등 정치적 욕망이 다분한 영화에서부터 <내 사랑>, <인생 후르츠> 같은 대자연의 법칙을 설파한 영화,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엘르>, <튤립 피버> 같은 노골적 사랑을 대변하는 영화까지 74편을 담았다. 이처럼 오동진 평론가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듯 모든 분야의 영화를 조명하고 있고, 글쓰기 또한 달필이라는 듯이 능수능란한 놀림으로 단맛과 쓴맛을 흩뿌린다.

오동진 평론은 쉽게 직진한다는 게 특징이다. 전문적인 단어로 독자를 현혹하지 않으며,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두셋을 불러오지 않으며, 설명을 보완하기 위해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깔끔하고 담백한데, 그는 영화를 너무 고매와 현학의 영역으로 올려놓으면 도로(徒勞), 곧 헛된 노력이 된다고 말한다. 평론이란 대중과 호흡하는 글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인 셈이다. 그의 말처럼 중심만 툭툭 건드리는 글은 순식간에 읽히는데, 비전문가를 위한 전문가의...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당대의 영화 평론가 오동진이 최근에 쓴 평론을 모았다. <택시 운전사>, <미안해요, 리키>, <남산의 부장들>, <바이스> 등 정치적 욕망이 다분한 영화에서부터 <내 사랑>, <인생 후르츠> 같은 대자연의 법칙을 설파한 영화,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엘르>, <튤립 피버> 같은 노골적 사랑을 대변하는 영화까지 74편을 담았다. 이처럼 오동진 평론가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듯 모든 분야의 영화를 조명하고 있고, 글쓰기 또한 달필이라는 듯이 능수능란한 놀림으로 단맛과 쓴맛을 흩뿌린다.

오동진 평론은 쉽게 직진한다는 게 특징이다. 전문적인 단어로 독자를 현혹하지 않으며,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두셋을 불러오지 않으며, 설명을 보완하기 위해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깔끔하고 담백한데, 그는 영화를 너무 고매와 현학의 영역으로 올려놓으면 도로(徒勞), 곧 헛된 노력이 된다고 말한다. 평론이란 대중과 호흡하는 글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인 셈이다. 그의 말처럼 중심만 툭툭 건드리는 글은 순식간에 읽히는데, 비전문가를 위한 전문가의 평론이란 바로 이런 글을 말한다.

오동진 평론은 한마디로 콘텍스트 비평이다. 그는 텍스트보다 하필이면 왜, 지금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느냐는 점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용보다는 그 영화를 만든 의도를 분석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로, 영화에 나타난 현상만으로는 감독의 역설과 은유를 읽어낼 수 없다는 뜻이다. 영화란 시대와 개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분야라서 단순히 보는 차원을 넘어야 하고, 완전히 빠지지 않는다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관객은 영화가 수수께끼처럼 흩뿌려 놓은 조각을 하나씩 맞춰야 하고, 역사와 시대에 영화를 넣어 재단해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책은 관객을 그런 길로 안내하는 평론집으로, 이제 영화에 어른거리던 어두운 그림자는 걷힐 것이다.

따라서 <기생충> 같은 영화도 그의 예리함을 피해 가지 못한다. 하층 계급에 의한 사회 전복을 그린 영화가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 사회에서 왜 이렇게까지 열광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하는데, 극단적 양극화 현상을 보란 듯이 고발하고 있는 영화를 자본주의적 투자, 제작, 마케팅을 통해 대중 한가운데로 착지시켰다는 점은 모순이라고 말한다. 이런 영화를 만듦으로써 제작자는 혁명으로 돈을 벌고, 관객은 영화를 통해 계급적 분노를 해소하며 대리 만족을 느끼는데, 결국 이로 인해 사회 개혁의 에너지가 순치된다고 비판한다.

오동진 평론의 또 다른 특징은 에둘러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듯이 영화의 핵심을 찾아서는 그 함의를 파헤친다. 이곳저곳을 들쑤시기보다는 영화가 하려는 얘기에 힘을 집중적으로 쏟아붓고, 현시대와 관통하는 부분을 들춰서는 곧장 결론을 내 버린다. 게다가 그의 평론은 구체적이라 모호한 부분이 없다. 독자의 편리함을 위해선지 상당히 친절하게 접근하는데,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역사와 세계관을 추출해 내서는 현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힌다. 그러고는 영화 한 편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지 증명하고, 결론으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제시한다.
오동진의 멋들어진 이 평론집으로 말미암아 영화와 관객은 더욱 친밀해질 것이고,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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