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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

Weir, Al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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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엘리자베스 1세/ 앨리슨 위어 지음; 하연희 옮김
개인저자Weir, Alison
하연희, 역
발행사항서울: 루비박스, 2007
형태사항773 p.: 삽도; 22 cm
원서명(The) Life of Elizabeth I
ISBN 9788991124639
일반주기 본서는 "The life of Elizabeth I. c1998."의 번역서임
서지주기참고문헌 : p. [774-791]
주제명(개인명) Elizabeth I, Queen of England, 1533-1603
주제명(지명) Great Britain -- History --Elizabeth, 1558-1603
일반주제명 Queens -- Great Britain --Biography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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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대영제국을 이룬 여왕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왕으로 꼽힌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튜더 왕가의 두 번째 왕인 헨리 8세와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나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영국의 황금기를 이루어낸 엘리자베스는 45년의 통치 기간 동안 카리스마로 당시 영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무적함대의 격퇴와 정치·경제적 안정, 윌리엄 셰익스피어, 에드먼드 스펜서, 프랜시스 베이컨 등 수많은 문인·학자들의 활동으로 빛나게 발전한 영국 문화의 기반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있었다. 그녀는 사생아와 여성 군주라는 신분상의 한계를 극복하고 합리적인 외교관계의 유지와 처녀성을 강조한 이미지 관리로 여성의 권위와 왕의 위엄 및 국가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강력한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다.
정치인이나 지도자로서는 탁월해 최고의 왕이 됐지만 여자로서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이러한 엘리자베스의 드라마틱한 삶은 그동안 많은 책과 영화의 소재가 됐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업적을 집중적으로 그렸을 뿐 그의 여성으로서의 삶과 사랑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이에 반해 이 책은 여성이지만 결혼하지 않고...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대영제국을 이룬 여왕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왕으로 꼽힌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튜더 왕가의 두 번째 왕인 헨리 8세와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나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영국의 황금기를 이루어낸 엘리자베스는 45년의 통치 기간 동안 카리스마로 당시 영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무적함대의 격퇴와 정치·경제적 안정, 윌리엄 셰익스피어, 에드먼드 스펜서, 프랜시스 베이컨 등 수많은 문인·학자들의 활동으로 빛나게 발전한 영국 문화의 기반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있었다. 그녀는 사생아와 여성 군주라는 신분상의 한계를 극복하고 합리적인 외교관계의 유지와 처녀성을 강조한 이미지 관리로 여성의 권위와 왕의 위엄 및 국가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강력한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다.
정치인이나 지도자로서는 탁월해 최고의 왕이 됐지만 여자로서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이러한 엘리자베스의 드라마틱한 삶은 그동안 많은 책과 영화의 소재가 됐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업적을 집중적으로 그렸을 뿐 그의 여성으로서의 삶과 사랑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이에 반해 이 책은 여성이지만 결혼하지 않고 평생 처녀인 채 여왕과 여장부로만 살아가야 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인간적 고뇌, 사랑, 통치자로서의 모습 등을 총체적으로 다뤄 기존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다룬 책에 비해 더욱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느낌이다.

‘영국의 시오노 나나미,’ 앨리슨 위어가 10년간 연구하고 써낸 엘리자베스 1세의 삶
영국왕실, 특히 튜더왕조 전문 전기 작가이자 역사가인 앨리슨 위어는 이 책을 통해 엘리자베스 1세의 삶을 전작 <헨리 8세와 여인들>과 같이, 소설과 같은 유려한 문체로 광범위하게 펼쳐보인다. 10년간의 연구 결과인 만큼, 엘리자베스의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과 그녀 주위의 인물들과 벌어지는 사건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매우 자세하고 예리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지은이의 저작 활동(<헨리 8세와 여인들>, <장미 전쟁>, <탑 속의 왕자들> 등에 이어)의 정점에 이룬 작품으로 평가된다.
책은 단 몇 쪽의 프롤로그를 통해 메리 1세의 죽음과 엘리자베스가 25세에 왕위에 등극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정치, 외교적 상황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여성 작가의 시선으로 당시의 엘리자베스의 왕위 계승 문제와 가부장제 사회의 일면에 주목하고, 외교·종교적인 문제까지 통합적으로 살피고 있다.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거의 반세기 동안 영국을 다스리면서 남성 세계에서 최고의 권력을 행사했다. 그녀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유럽 최빈국은 르네상스 시대와 16세기 종교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와 혼돈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른바 ‘엘리자베스 시대’라 불리는 그녀의 통치기에 영국은 유럽의 변방에서 최강의 위치에 올라선다. 대신들은 여왕의 변덕, 급한 성질, 우유부단함을 개탄하면서도 그녀의 명민함, 지성, 웅변술, 매력을 찬양했다. 이 생생한 전기에서 작가는 여왕의 대내외적 갈등, 성(性)과 종교에 관한 태도를 엄정하게 검토하면서 엘리자베스 시대의 복잡다단한 정치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한편 튜더 왕조의 매력을 손에 잡힐 듯이 그려내고 있다.
스페인 무적함대의 격퇴는 영국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대사건이었으며, 그 사건의 중심에는 엘리자베스 1세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반역과 암살의 음모까지 잠재워버린 유연하면서도 냉엄한 카리스마로 유럽의 모든 제국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었다.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으로부터 사람들은 위대한 지식인들과 천재적 시인들, 현명한 정치인들을 기억하며, 해상의 모험과 영광스러운 대영제국의 시작을 연상한다. 엘리자베스 자신도 세 살 땐 ‘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어머니 앤 불린을 단두대형으로 잃고 사생아가 되었으며, 피의 메리(Bloody Mary) 시대인 스물두 살 땐 사형수로 런던탑에 갇히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에 왕위에 오른 후에도 남성이 지배하던 사회의 여성 최고 권력자로서 늘 반역의 표적이 되어왔다.

왜 ‘처녀여왕’인가? - 여성으로써의 삶
한편 이 책의 특징은 당시 유럽을 뒤흔들었던 한 권력자의 모습을 조망하는데 머물지 않는다는데 있다. 지은이의 관심은 무엇보다도 전기이다. 특히 한 여성으로써의 삶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물론 그녀의 삶이라는 것이 여왕의 삶이기에 정치 외교적 상황 등과 연관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지은이는 엘리자베스가 알았고, 그녀를 보필했으며, 그녀를 사랑했던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놓치지 않는다.
그녀는 왜 결혼하지 않았는가?
그 첫 번째 이유로 많은 심리학자들은 그녀의 아버지인 헨리 8세가 어머니 앤 불린를 역모죄로 몰아 참수형시킨 사실에 심리적인 충격을 받아 결혼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을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그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둘째, 엘리자베스는 결혼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프랑스의 샤를 9세, 스웨덴 황태자 에리크, 스페인왕 펠리페 2세, 신성로마황제의 셋째 아들 카를 대공 등이 그녀와 결혼하길 원했지만, 엘리자베스는 여왕의 혼인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있었다. 외국 군주와 혼인하게 되면 영국이 상대국의 도구로 이용되며, 국내 귀족과 혼인하면 귀족들의 파벌싸움을 격화시킬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이런 상황을 오히려 역이용했다. 가령 강대국인 에스파냐와 프랑스가 손을 잡으면 영국에게 불리한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구혼에 관심을 보였다가 멀리하고, 다시 관심을 보임으로써 상대와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이 서로 동맹 맺는 것을 방해했다. 그래서 어떤 혼담의 경우는 10년간 끌기도 했다.
셋째, 많은 남성들이 그녀를 사랑했지만 자신의 절대 권력을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녀 자신도 ‘나는 유일한 여주인(mistress)일뿐, 내게 남주인(master)는 필요없다’고 말한 바 있다. 여왕이라는 직책은 그녀에게 ‘직업’이었으며, 그 직업에 ‘남자’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남편과 직업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은 현대 여성들도 공감할 수 있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튜더 왕조 시대에 왕좌라는 것은 국가와 국민에 대해 절대 권력을 의미했다. 그러나 동시에 남편은 아내에게 절대 권력자였다. 여왕은 잉글랜드의 절대 권력자였지만, 남편에게는 종속물이 된다. 엘리자베스의 언니 메리 1세는 스페인의 필리페 2세와 결혼했지만, 그와 같은 전통적인 개념 때문에 비극적인 결혼생활을 해야 했다. 엘리자베스는 그러한 복잡한 관계에 얽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지은이는 여성으로써의 여왕의 모습을 들춰 보여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여왕에게는 3천벌의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드레스가 있었다는 사실, 수 백점의 초상화가 남아있지만 그 대부분이 엘리자베스가 30대의 모습으로 그려졌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 그녀는 아버지 헨리 8세와 어머니 앤 불린을 닮아 항상 열정적인 사랑에 탐닉했으며, 취미생활로 고대 라틴어 서적을 번역하는 지적인 여성이었으며, 사냥과 춤과 음악에 상당한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고 있다.
결국 ‘나는 이미 결혼했다. 나의 남편은 잉글랜드이다.’고 말했던 엘리자베스에게도 죽음은 찾아왔다. 그녀의 신하들은 '페하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의사를 불러야 합니다.'라고 요청했으나, 여왕은 '무엇 무엇을 해야만 한다고 하는 것은 군주에게 쓰는 말이 아니다.'라며 담담히 죽음을 맞이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절대군주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위엄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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