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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

김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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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 김산해 지음
개인저자김산해= 金山海
발행사항서울: 휴머니스트, 2007
형태사항381 p.: 천연색삽화; 22 cm
ISBN9788958622154
서지주기참고문헌: p. 354-372
분류기호935.01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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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1. 인류 최초의 사랑 이야기

‘수메르의 발견과 부활’은 19~20세기에 걸쳐 인류가 이루어낸 최대의 업적 중 하나이다. 19세기 중엽 무렵부터 가속화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 작업은 신화와 종교의 뿌리, 문명의 처음,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수메르’의 부활을 이루어냈다. 약 5000년 전, 지구상에 그 어떤 문명도 존재하지 않았던 선사시대에 수메르인들이 이룩한 위대하고도 찬란했던 초고대(超古代) 문명이 2000여 년 동안 인간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가 하나하나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 12월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를 발표하며 수메르의 신화 역사 문명을 새롭게 조명한 작가 김산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얼굴 없는 수메르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김산해가 인류 최초의 사랑 이야기 《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를 가지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는 거룩한 여신 ‘인안나’와 엔키의 진실한 아들 ‘두무지’가 벌이는 사랑, 죽음, 부활의 서사시이다. 최초의 삶과 숨결이 깃든 점토서판의 원문과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같은 수메르 연구자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1. 인류 최초의 사랑 이야기

‘수메르의 발견과 부활’은 19~20세기에 걸쳐 인류가 이루어낸 최대의 업적 중 하나이다. 19세기 중엽 무렵부터 가속화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 작업은 신화와 종교의 뿌리, 문명의 처음,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수메르’의 부활을 이루어냈다. 약 5000년 전, 지구상에 그 어떤 문명도 존재하지 않았던 선사시대에 수메르인들이 이룩한 위대하고도 찬란했던 초고대(超古代) 문명이 2000여 년 동안 인간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가 하나하나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 12월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를 발표하며 수메르의 신화 역사 문명을 새롭게 조명한 작가 김산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얼굴 없는 수메르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김산해가 인류 최초의 사랑 이야기 《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를 가지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는 거룩한 여신 ‘인안나’와 엔키의 진실한 아들 ‘두무지’가 벌이는 사랑, 죽음, 부활의 서사시이다. 최초의 삶과 숨결이 깃든 점토서판의 원문과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같은 수메르 연구자들이 해석한 내용을 작가 스스로 검토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특히 그리스와 히브리에 의지하던 ‘문명, 인간, 영혼’의 원형을 고스란히 드러낸 작품이어서 그 의미는 참으로 각별하다.

2. 인안나였다!

거룩한 여신이 있었다. 한때 그 여신은 인간의 의식 속에서 지워져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신화의 최상위 단계를 되찾았고, 신화의 출발점을 발견해냈다. 그곳에 위대한 여신이 있었다. 하늘과 땅의 여왕, 전쟁, 풍요, 다산(多産), 완전하고 다양한 여성성, 여성적인 삶의 원리, 여성들의 수호천사, 품위 있고 당당한 부인, 수많은 도시와 왕들의 수호신, 금성(金星) 등으로 상징화된 여신들의 본바탕에 자리를 잡고 있던 진정한 여신이 있었다.
인간은 여신의 세계를 부정해왔고, 여신의 존재감을 무시해왔다. 슬픈 일이었다. 더불어, 여성은 가혹하게 취급당했고, 비참하게 천대받았다. 잔인한 세월이었다. 신화는 퇴보 일로에 있었다. 그렇지만 남신들보다 더 신령스러웠고, 남신들보다 더 용감했으며, 남신들보다 더 강력했던 인안나가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인안나를 다시 품에 안으면서, 신화는 역행을 멈추었고, 진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인안나는 신성한 권능을 갖고 있었고, 삼라만상의 총체적인 질서를 잡고 있었으며, 지혜의 정수를 누리고 있었다. 인간의 창조주이며 구세주였던 엔키로부터 넘겨받은 권위와 권능이었고, ‘신물(神物)’이었다. 그랬음에도 여신은 하늘과 땅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저승으로 내려갔다. 더 큰 운명결정권을 손에 쥐기 위해 현실의 권세와 욕망을 버리고 저승으로 내려갔다. 여신은 저승에서 죽었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신이 되었다.

3. 두무지였다!

엔키의 진실한 아들이 있었다. 사랑스런 젊은이가 있었다. 목자(牧者) 두무지였다. 그는 인안나의 남편이었지만 저승의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그녀 대신 저승으로 잡혀갔다. 그리고 매년 죽었고, 매년 부활했다. 한 남신만이 존재하는 적막한 유일신전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아울러 그 신에 대한 두려움도, 성전(聖戰)도, 인간의 아름답고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압박도, 마녀사냥도, 여신에 대한 경멸이나 무시도, 여성에 대한 차별도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4. 사랑은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수메르 도시에서는 ‘신성한 결합’을 기리는 혼례 의식이 있었다. 이것은 차츰 ‘아키티’라는 신년 축제로 자리를 잡아 국가적인 행사로 거행되었다. 도시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전 곁에 세워진 ‘우-니르’가 있었다. 성탑(聖塔)이었고, 지구라트였다. 축제가 열렸고, 수메르의 여사제와 왕은 지구라트 꼭대기로 올라가 신방을 차렸다. 여사제는 동정녀(童貞女)로 인안나의 대역이었고, 왕은 두무지의 대역이었다.
두 신은 서로를 갈망했다. 그래서 사랑했고, 결혼했다. 매년 열리는 ‘아키티’ 축제에서, 둘은 죽음에서 부활하여 신랑과 신부로 다시 만났다. 혼례식이 성대하게 치러지면, 사람들은 두 신의 운명에 따라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축제는 성스러운 제의(祭儀)가 되었고, 수메르의 온 땅은 신들의 축복과 은혜로 충만했다. 그렇게 새해가 시작되었고, 삶은 이어졌다.
약 4000여 년 전, 수메르는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신년 축제는 그 후로도 150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수메르의 계승자들은 셈족이었다. 그들은 ‘인안나’와 ‘두무지’를 ‘이쉬타르’와 ‘탐무즈’라는 셈어 신명(神名)으로 바꾸거나, 더 나아가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교체하여 제전(祭典)에 올렸다. 그때의 축제 이름은 수메르어 ‘아키티’가 아니라 셈어 ‘아키투’였다.
2500년 전 무렵, 이란 남부에서 발흥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가 바빌론에 무혈로 입성하자, 신바빌로니아 제국은 멸망했다. 그리고 3500년 동안 행해졌던 신년 축제는 멈추었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수메르 만신전(萬神殿)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전역, 이집트와 그리스를 포함한 지중해 주변의 문명권, 페르시아 만과 아라비아 해를 건너 저 멀리 인더스 강 유역까지 달려가 있었다. 수메르와 수메르의 후임자 악카드, 그들의 후임자였던 고(古)바빌로니아와 고(古)앗씨리아, 그리고 다시 최후대의 바빌로니아와 앗씨리아 제국에 의해서였다.
실상, 축제는 멈추지 않았다. 성스러운 제의는 계속되었다. 인안나와 두무지의 신성(神性)은 합쳐졌다. 거기에다 지혜의 신왕(神王) 엔키와 태양의 신 우투의 신성까지 더해져서 연방으로 혼용되었다. 신들은 죽었다가 삼 일 만에 부활하여, 이집트의 오시리스가 되었고, 페르시아의 미트라가 되었고, 그리스의 디오니소스가 되었고, 소아시아의 아티스가 되었고, 시리아의 아도니스가 되었고, 로마의 바쿠스가 되었다.
그리고 약 1700년 전, 태양신 미트라를 섬기고 있던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유대인 예수를 새로운 태양신으로 옹립하여 그리스도교의 실질적인 창시자가 되었다. 곧이어 로마교회는 수메르의 신년 축제와 제의로부터 시작된 고대 태양신들의 탄생을 축하하는 제전을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와 부활절로 바꾸어놓았다.
그로부터 만신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은 한 남신의 천국으로 변했고, 유일신의 지배지가 되고 말았다. 여신들은 힘을 잃고 명맥을 유지하기도 힘겨웠다. 그들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고, 여성의 삶은 빛을 잃었으며, 똑똑한 여성은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다.

5. 저자와 함께 한 7일간의 수메르 신화 인터뷰

김산해는 우여곡절 끝에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를 발표한 뒤 무척 힘들어했다. 자신이 계획한 수메르 책 집필이 한국의 사회문화적 상황과는 너무 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방황 끝에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아 ‘인안나’를 복원하는 일을 새롭게 시작했다. 인안나와 두무지의 죽음과 부활에 집중하기 위해서, 아쉽지만 〈인안나와 에비흐〉, 〈인안나와 슈-칼레-투다〉, 〈인안나와 비루루〉, 〈인안나와 안〉, 〈에레쉬키갈라와 네르갈의 사랑〉, 그리고 〈인안나 찬미가〉 등을 모두 버렸지만, 《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의 스토리 전개를 위해 다시 집어든 것으로, 〈인안나의 저승 여행〉, 〈인안나와 엔키〉, 〈엔릴과 닌릴〉, 〈두무지의 꿈〉, 〈두무지와 엔킴두〉를 비롯해서 인안나와 두무지의 사랑과 결혼에 관한 여러 단편의 점토판 문서들, 그리고 엔키와 엔릴에 연관된 많은 점토판 문서들, 거기에다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의 내용 일부를 포함시키는 작업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작가를 휘감고 있었다. 해설을 써놓고 나니, 독자들이 읽기에는 너무 딱딱했고,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순간 등장한 사람은 이 책의 편집자였다. 《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의 편집자와 나눈 7일 동안의 인터뷰로 물꼬를 만들어냈다. 책의 1부 〈최초의 사랑-인안나와 두무지의 사랑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끼어들 수 없었던 너무나도 중요하고 다양한 논제들과 그 설명이 가능했졌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해설은 2부 〈수메르 신화의 비밀-김산해 선생과 함께 한 7일간의 인터뷰〉가 되었다. 그 7일간의 인터뷰 속에 수메르 신화의 비밀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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