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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인간의 문제인가 신의 문제인가

Ehrman, Bart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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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고통, 인간의 문제인가 신의 문제인가 / 바트 어만 지음 ; 이화인 옮김
개인저자Ehrman, Bart D.
이화인, 역
발행사항서울 : 갈라파고스, 2016
형태사항381 p. ; 23 cm
원서명God's problem :how the Bible fails to answer our most important question--why we suffer
ISBN9791187038177
일반주기 색인수록
본서는 "God's problem : how the Bible fails to answer our most important question--why we suffer. c2008."의 번역서임
일반주제명Suffering --Biblical teaching
분류기호231.8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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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에피쿠로스의 오랜 질문은 아직도 해답을 얻지 못하였다. 신은 악을 없애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력하다. 능력은 있지만 그렇게 할 의지가 없는가? 그렇다면 그는 선하지 않다. 신이 능력도 있고 선한 의지도 있는가? 그렇다면 왜 이 세상에 악이 만연한가?
-본문 중에서


나는 더 이상 고통의 문제를 신앙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전능한 신이 있다면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많은 고통이 있는 것일까?

매일 아침마다 신문을 펴면 사건사고 하나 없는 날을 찾기 힘들다. 지진이나 태풍으로 인해 집이 무너져 내린 사람들, 화재로 인해 가진 것을 깡그리 잃은 사람들, 범죄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 우리 주변의 불행한 사건들과 함께 전 세계적인 기아, 가뭄, 전쟁, 대학살 등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고통들이 있다. 고통의 문제는 인류에게 항상 심각한 문제였다. 이 책의 저자 바트 어만에게도 고통의 문제는 그의 근간을 뒤흔들 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근본주의적 성격의 교회를 다니고 독실한 믿음을 가졌으며 그로 인해 성서를 열심히 연구했던 바트 어만은 이 고통의 문제 때문에 결국...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에피쿠로스의 오랜 질문은 아직도 해답을 얻지 못하였다. 신은 악을 없애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력하다. 능력은 있지만 그렇게 할 의지가 없는가? 그렇다면 그는 선하지 않다. 신이 능력도 있고 선한 의지도 있는가? 그렇다면 왜 이 세상에 악이 만연한가?
-본문 중에서


나는 더 이상 고통의 문제를 신앙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전능한 신이 있다면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많은 고통이 있는 것일까?

매일 아침마다 신문을 펴면 사건사고 하나 없는 날을 찾기 힘들다. 지진이나 태풍으로 인해 집이 무너져 내린 사람들, 화재로 인해 가진 것을 깡그리 잃은 사람들, 범죄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 우리 주변의 불행한 사건들과 함께 전 세계적인 기아, 가뭄, 전쟁, 대학살 등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고통들이 있다. 고통의 문제는 인류에게 항상 심각한 문제였다. 이 책의 저자 바트 어만에게도 고통의 문제는 그의 근간을 뒤흔들 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근본주의적 성격의 교회를 다니고 독실한 믿음을 가졌으며 그로 인해 성서를 열심히 연구했던 바트 어만은 이 고통의 문제 때문에 결국 신앙을 버리고 불가지론자가 되었다. 성서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하고 사랑 많은 하느님이 정말 있다면, 왜 이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고통이 존재하는가?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고통에 대한 해답을 찾아왔다. 성서는 고통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내놓는 책이다. 성서의 저자들은 각자의 시대적 상황과 배경, 그리고 자기만의 주관을 가지고 세상에 어째서 이토록 많은 고통이 발생하는지 설명하고 이해시키고자 했다. 바트 어만은 구약에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결정짓는 데 큰 역할을 한 성서가 고통에 대해 어떤 답변을 내놓는지 살펴본다.


고통은 신의 징벌인가
고통은 인간의 잘못에 대한 신의 벌이라는 구약의 관점

권선징악 사상이 없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는다. 이러한 권선징악 사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가졌던 생각이다. 구약의 저자들 또한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선하게 살면 신이 보상하고 악하게 살면 신이 벌을 내린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고통은 신의 징벌이었다. 아모스서에서는 가난한 자를 압제하고 사회적 불의가 넘쳐나자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뭄, 기근, 병충해, 전염병을 내리고 아시리아에 의해 북이스라엘 왕국을 파괴하게끔 했다고 말한다. 호세아서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신을 섬기고 하느님에게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하느님이 그들에게 굶주림과 전쟁에서의 패배, 남유다 왕국의 멸망이라는 결과를 안겼다고 말한다. 하느님은 전능하고 선한 존재지만 사람들이 그의 법을 어기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을 내려 사람들을 다시금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려 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권선징악 사상은 계속해서 발전하여 여호수아, 판관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와 같이 유대민족의 700년 역사를 담은 역사서에도 나타난다. 짤막짤막한 글로 이루어졌지만 사람들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는 시편과 잠언 역시 복과 화에 대해 동일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선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서는 불의한 사람들 때문에 선한 사람들이 해를 입을 수 있지만 신이 그 불의한 자들을 벌한다고 말한다. 또한 선한 사람의 고통을 통해 더 큰 선이 오기도 한다고 말한다. 창세기에서 요셉이 다른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로 팔려가 종살이를 했지만, 이후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이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이주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혹은 고통은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도 말한다. 욥기에서 하느님은 욥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 가진 재산을 모두 불사르고 자녀들을 죽이며 욥을 병들게 한다. 하지만 받을 만큼의 고통을 받으면 신은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는 것이 구약 저자들의 생각이다.


그리스도교의 핵심, 천국-지옥 교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했나?
악의 세력이 세상을 장악하여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신약의 관점

하지만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악한 사람들이 더 잘 산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왜 신이 착한 사람을 돌보지 않고 나쁜 사람을 벌주지 않는지에 대해 성서 저자들은 많은 고민을 했다. 그 변화는 신약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의 통치를 받았으며 고유한 문화를 인정받지 못했고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구약의 관점대로라면 받을 벌과 고통을 다 받았음에도 좋은 시절은 오지 않았다. 그러자 성서 저자들은 고통을 받는 이유가 하느님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장악한 악의 세력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지금은 악의 세력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언젠가 종말이 올 것이며, 그 날 신이 심판을 내려 악의 세력과 그에 부역하며 살아가던 악한 자들을 일시에 몰아내고 고통받던 선한 사람들에게 보상을 내릴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러한 종말론적 시각을 갖고 있던 대표적인 인물이 예수다.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워졌으니 회개하라고 외쳤다. 다니엘서와 요한묵시록 역시 종말이 가까워졌으며 곧 신의 심판이 시작될 것이라 믿었다. 신약의 종말론자들은 자신들의 세대에 심판이 올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종말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고통받는 자들은 언제 구제를 받는다는 말인가? 이에 그리스도교의 핵심인 천국과 지옥의 교리가 탄생한다. 심판은 살아있을 때 받는 것이 아니라 죽고 나서 받는다는 것이다. 예수와 하느님을 믿고 선하게 산 사람들은 사후 세계의 심판에서 천국의 문에 들 것이고, 그렇지 않았던 악한 자들은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진다. 이러한 논리는 구약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다. 죽은 자는 모두 스올이라는 곳에 가서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된다는 생각은 고통이라는 문제에 답하는 과정 속에서 천국과 지옥이라는 관념으로 변화했다.


과연 고통에 해답이 있을까?
이 세상의 고통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바트 어만은 구약과 신약의 고통에 대한 중심 생각을 해답으로 여기지 않는다. 고통이 죄에 대한 벌로써 신이 내린 것이라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수만 명의 사람들, 각종 자연재해로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죄를 지어서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로 신음하고 있는 어린 아기들은 신앙을 시험 받고 있는 것인가? 다른 누군가의 불행이 더 큰 선을 가져온다면 그것은 정말 좋은 일일까? 신이 고통을 내린다는 말은 하느님은 선하다는 명제에 어긋난다. 언젠가 하느님이 나타나 우리가 겪는 고통을 일거에 해소하고 상 줄 사람은 상 주고 벌 줄 사람은 벌 줄 것이라는 종말론적 관점에도 바트 어만은 동의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고통에 대한 책임을 뒤로 미뤄버린다. 언젠가 절대자가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신화적인 생각이며 현재의 과학적 세계관에는 맞지 않는다. 또한 고통에 대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고통에는 해답이 없는 것일까? 바트 어만은 고통에 대한 해답을 전도서에서 찾는다. 전도서는 인생은 짧으며 착한 사람이 화를 입고 악한 사람이 잘되는 등 삶에서 철학적 의미를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선한 자든 악한 자든 결국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을 비관적으로 살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이다. 바트 어만은 이러한 전도서의 생각에 동의하며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다 좋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 우리에게 고난이 닥치며 어떤 목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우리의 인생을 가능한 한 즐겁게 사는 것이다. 그것이 고통에 대한 우리 인간의 대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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