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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과 장부 : 경제 세계화 시대,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와 상업

이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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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조총과 장부 : 경제 세계화 시대,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와 상업 / 리보중 지음 ; 이화승 옮김
개인저자이백중= 李伯重
이화승= 李和承, 역
발행사항파주 : 글항아리, 2018
형태사항446 p. : 삽화(주로천연색), 지도 ; 22 cm
원서명火槍與賬簿 :早期经济全球化时代的中国与东亚世界
ISBN9788967355517
일반주기 색인수록
본서는 "火枪与账簿 : 早期经济全球化时代的中国与东亚世界. 2017."의 번역서임
수상주기제6회 파주북어워드 저작상, 2017년
주제명(지명)China --Foreign relations --East Asia
East Asia --Foreign relations --China
China --History --Ming dynasty, 1368-1644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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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글로벌 히스토리로 재조명한 동아시아의 16~17세기

‘조총’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과
‘장부’로 상징된 상인 무역의 발전이
어떻게 융합하여 동아시아 근대화에 영향을 미쳤는지 세밀하게 파헤치다!


이 책은 글로벌 히스토리의 시각으로 혼돈의 시공간인 16~17세기 동아시아를 들여다본다. 글로벌 히스토리는 최근 역사학계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연구 영역으로, 유럽중심주의와 자민족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탈국가적 관점, 지역적 관점, 인류적 관점을 지향하는 역사 서술 방식이다. 근대화와 세계화 과정에서 서양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기존의 학설에 이의를 제기하며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서양이 대항해 시대를 열며 식민지를 건설했고, 이를 기반으로 자본주의의 토대를 닦았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이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으로 대표되는 세계시스템론으로 구체화되는데, 서양 국가를 중심으로 비서양 국가가 주변이 되어 근대화 분업 체제를 구성했다고 본다.
글로벌 히스토리는 이런 세계시스템론에 대항하며 서양을 우위에 두고 비서양 국가를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위계를 해체한다. 저자 리보중은 이를 이론적 바탕...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글로벌 히스토리로 재조명한 동아시아의 16~17세기

‘조총’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과
‘장부’로 상징된 상인 무역의 발전이
어떻게 융합하여 동아시아 근대화에 영향을 미쳤는지 세밀하게 파헤치다!


이 책은 글로벌 히스토리의 시각으로 혼돈의 시공간인 16~17세기 동아시아를 들여다본다. 글로벌 히스토리는 최근 역사학계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연구 영역으로, 유럽중심주의와 자민족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탈국가적 관점, 지역적 관점, 인류적 관점을 지향하는 역사 서술 방식이다. 근대화와 세계화 과정에서 서양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기존의 학설에 이의를 제기하며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서양이 대항해 시대를 열며 식민지를 건설했고, 이를 기반으로 자본주의의 토대를 닦았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이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으로 대표되는 세계시스템론으로 구체화되는데, 서양 국가를 중심으로 비서양 국가가 주변이 되어 근대화 분업 체제를 구성했다고 본다.
글로벌 히스토리는 이런 세계시스템론에 대항하며 서양을 우위에 두고 비서양 국가를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위계를 해체한다. 저자 리보중은 이를 이론적 바탕으로 삼아 서구 열강의 피지배 지역으로 표상되어온 중국과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을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시키고, 이들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갔는지 세밀하게 조명한다. 특히 그간의 역사 연구가 서양과 중국의 양자관계에 집중했다면, 『조총과 장부』는 서양과 중국 사이의 중간지대에 주목한다. 이 중간지대에는 지리적으로 많은 국가가 포함된다. 이들은 단순히 서양과 중국을 중개한 것이 아니라 교류의 형식과 내용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저자 리보중은 아시아의 정체성을 독창적으로 구현한 공로를 인정받아 동아시아출판인회의가 주관하는 제6회 파주북어워드 저작상을 수상했다.

동아시아만의 특수한 국제 질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조공 시스템


국가별, 문명별 비교 접근법을 시도하는 글로벌 히스토리의 관점에 따라 저자는 중국과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공간 전체를 분석 단위로 삼고, 국가 간 교류와 그 영향에 주목한다. 기존 역사학계에서는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면서 서유럽의 확장에 의해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항해 시대 이전에도 동아시아 공간에는 조공 시스템이라는 특수한 국제 질서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각국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조공관계의 특수성은 이것이 폭력이나 이해관계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는 데서 나온다. 동아시아의 중심인 중국은 영토를 확장하려 하지 않았고, 조공을 하는 번속국으로부터 이익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버드대 교수 존 K. 페어뱅크는 “중국의 입장에서 이 무역은 제국으로서 상징을 과시하고 주변국을 적당히 순종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공 시스템은 다른 나라의 주권을 보장하면서 종주국과 번속국이 서로 이득을 얻는 일종의 호혜관계였다. 중국이 대외 확장을 꾀하지 않았던 것은 중국 영토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고, 확장할 만한 공간은 사막, 고산, 한랭한 황무지 등 척박하고 초목이 자라지 못하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농경 사회인 중국은 이런 땅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정복한다고 해도 오히려 막대한 유지 비용이 들었다. 중국은 대외 확장을 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천하’라고 지칭할 만큼 물자가 풍요롭고 동아시아에서의 위상이 높았다. 누군가 조공 규칙을 어긴다면 경고를 하기도 했으나 무력을 사용해 타국의 영토를 빼앗지는 않았다. 따라서 16세기 이전까지 중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에서 전쟁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화기로 무장한 신흥 세력의 등장으로
아노미 상태가 된 동아시아


이런 특수한 관계를 바탕으로 번속국은 중국의 보호를 받으며 독립적인 내정을 유지하고, 조공과 답례품을 주고받았다. 조공 시스템이 운영되는 동아시아는 평화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15세기 이후 새로운 강자들이 등장하면서 중국의 지위는 도전받기 시작했고, 이전까지의 국제 질서는 유명무실해졌다. 이 강자들에는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구 열강뿐만 아니라 안남, 미얀마, 시암, 말레이시아 등지의 신흥 세력이 포함된다. 특히 동북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여진의 세력이 강성해지며 중국에 대한 위협에 가세했다. 이들 세력의 바탕에는 선진 화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은 유럽에서 전해온 조총과 화약 기술을 동아시아에 전했다. 일본과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지에서는 각자의 상황에 맞게 화기를 개량하고 현지화했다. 시암과 미얀마 등지에서는 적극적으로 서양의 화기를 구매하고 제조 장인을 불러들이는 등 군사력 제고에 힘쓰기 시작한다.
서양의 강대국과 함께 이들 신흥 세력이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충돌이 일어났고, 이는 크고 작은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지역의 강자로 부상한 국가가 상대적으로 강력한 무력을 갖추면서 동아시아의 전쟁은 더욱 격렬해지고 규모 또한 커졌다. 자연스럽게 전쟁 비용이 많이 들게 되었고, 전쟁을 수행하는 데 경제적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그리고 항시 전쟁에 대비하면서 모든 국가 구성원이 군사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할 것을 요구받았다. 이는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상황으로, 동아시아 공간에서도 근대적 군대와 근대화된 군사력이 필요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왼손에는 장부, 오른손에는 조총’을 들고
경제 세계화 시대를 열다


한편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국제 무역을 행하던 상인 집단은 선진 화기를 등에 업고 세력과 규모를 키워갔다. 유럽의 자본주의가 팽창하던 경제 세계화 시기, 네덜란드 동인도 주식회사는 ‘왼손에는 장부,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세계를 누볐다. 이들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아시아에 광대한 식민지와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선진 화기와 기술이 동아시아에 전해졌다. ‘조총’은 군사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유형의 폭력을, ‘장부’는 국경을 초월하는 상업적 이익 추구를 대표한다. 즉, 국제 무역과 폭력이 융합해 동아시아에서의 근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간혹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문화가 전파되기도 했는데, 상인들의 무역을 통해 전해진 이슬람교가 대표적이다. 무슬림 상인들은 국제 무역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필리핀 등지의 국가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면서 선진 화기 기술을 습득하기도 했다. 또한 서유럽 상인들은 이윤 추구의 논리에 따라 국적을 불문하고 화기 기술을 전했다. 미얀마, 시암 등은 이를 받아들여 그들의 군사력을 강화시켰고, 이는 남전불교의 부흥에 기여했다. 15세기 이래 동아시아 문화권이 재정돈되는 과정에서 상인들의 역할은 매우 크고 중요했다.
명나라 후기, 동아시아 해역을 장악한 인물로 정지룡 집단이 있다. 이들은 해적이기도 하고 상인이기도 한 해상 무장 집단으로, 약탈만 자행한 것이 아니라 무역을 통해 이윤을 추구했다. 네덜란드 동인도 주식회사의 기록에 따르면, 1639년 나가사키를 오가던 정씨 집단의 선박이 수십 척에 이르렀다고 한다. 정씨 집단은 점차 몸집을 키워나갔고, 국가적인 군사 부대에 준하는 군사력을 겸비하게 된다. 네덜란드의 화총 부대는 자신들이 발명한 배창사격법을 사용하면서 승승장구했지만, 정지룡의 부대에는 소용이 없었다. 중국은 200년 전부터 배창사격법을 사용해왔고, 군사 개혁을 통해 병사들의 훈련 방식이 개선되면서 대항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근대 초기의 국제 무역에서 상업과 군사가 결합된 해적/해상은 매우 정상적인 범주의 존재였다.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지 못하는 낡은 군대
명나라의 쇠퇴로 이어지다


본래 해상지역이나 동남아시아 등지는 중국에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조총과 장부’로 상징되는 변화가 일어나면서 명조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대륙으로는 유목 민족이 기동성을 바탕으로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여러 지역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바다에서는 항해 기술과 지리학이 발전하면서 정지룡 집단 등 해상 세력과 식민지 개척을 목표로 한 서구 열강이 중국을 위협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정권이 수립되면서 명조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위협에 대응할 명나라의 군사력은 형편없었다. 병사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고, 훈련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이들을 지휘할 군관 역시 선발 과정에서부터 세습 및 비리가 만연했다. 군인의 사회적 지위는 낮았고, 탈영병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왜구는 중국인들을 포로로 삼아 왜구의 선봉장에 세우기도 했고, 이들은 일본인보다도 더욱 악랄하게 수탈에 나섰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파견된 명군은 조선인들을 못살게 굴어 “왜구가 해를 끼친 것은 얼레빗이지만 명군이 끼친 해는 참빗과 같다”며 원성을 샀다.
척계광과 손승종, 서광계 등의 지식인들이 풍전등화 같은 명나라의 운명을 직감하고 군사 개혁을 통해 부국강병을 꿈꿨다. 이 시기 수많은 병서가 출간되고, 중국 각지에서는 신식 군대를 창설해서 주변국의 침입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훈련된 신식 군대의 수는 명군의 규모에 비해 극소수였고, 선진 화기의 보급률도 떨어졌다. 선진 화기를 갖추더라도 사용법을 익히려면 병사들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훈련 방식을 개선하는 등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지만 명군은 이를 수용하지 못했다. 결국 군사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고, 명나라는 쇠퇴의 길을 걷는다. 군사 개혁의 성과는 아이러니하게도 명나라의 근심거리였던 후금 세력, 즉 청나라가 부분적으로나마 이어받게 된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동아시아와 중국의 근대화 역사를 통해 들여다본 세계화의 명암


명대 후기 중국이 직면했던 위기를 우연의 산물이라거나 명조의 패착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중국뿐만 아니라 17세기에는 많은 국가가 중국과 같은 길을 걸었다. 글로벌 히스토리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는 ‘17세기의 위기The General Crisis of the Seventeenth Century’의 일환이다. 그간 학계에서는 ‘17세기의 위기’에 관해 논할 때 유럽의 사례에 집중해왔다. 당시 유럽에서는 정치, 경제, 종교, 외교 등에서 모순이 폭발했고, 정치 혁명, 귀족의 반란, 민족 봉기, 종교 충돌, 농민 폭동 등 위기를 겪고 있었다. 각 나라의 상황이 달랐기에 위기가 드러나는 방식과 해결하는 과정, 각각의 내용, 성격, 결과가 모두 달랐다. ‘17세기의 위기’ 이후 네덜란드, 영국 등 몇몇 국가는 개혁에 성공하고 사회운동은 긍정적 성과를 냈다. 반면, 포르투갈, 스페인 등의 국가들은 순조롭게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쇠락했고, 결국 국제 경쟁에서도 낙오했다.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로 ‘17세기의 위기’ 파동이 이어졌다. 경제 세계화가 신속하게 진전되면서 조공 시스템과 같은 동아시아 세계의 기존 질서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세계 여느 지역처럼 동아시아도 무법천지가 되었고, 약육강식이라는 밀림의 법칙이 국제 규범이 되었다. 세계 최대 백은 생산지로서 번영을 구가하던 일본도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고, ‘간에이 대기근(1642)’이 발생했다. 동銅 생산량이 증대하고, 막부가 적극적으로 민생을 구하려는 정책을 펼치면서 일본은 ‘17세기의 위기’에서 탈출하게 된다.
한편 명대 중국은 ‘17세기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자로 전락했다.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명나라가 쇄국 정책을 실시했고, 스스로 사다리를 넘어트려 이민족의 폭력 앞에 왕조를 바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명조의 뒤를 이은 청조는 심각한 경제 상황을 극복하고 사회 모순을 완화시켜 위기를 극복함으로써 18세기에 다시 한번 번영을 구가했다. 하지만 청조 역시 내적 모순과 세계화라는 외적 변화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 결과 근대 경제 성장에 필요한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19세기의 단초를 심어놓았다. 중국 근대화의 역사를 돌아보면, 명나라를 시작으로 역사의 기로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선택으로 인해 ‘경로 의존성’이 생겼고, 중국은 200년 후에야 새로운 국제 환경 속에서 비로소 근대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이 책은 명대 후기 중국의 민낯과 동아시아 지역을 조명함으로써 근대화와 세계화의 과정을 되짚어보는 역사서이자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중국인 학자의 비망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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