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탑메뉴

전체메뉴

전체메뉴닫기


검색

상세정보

사는 즐거움: 절집공부를 통해 여섯 가지 즐거움을 배우다

보경

상세정보
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사는 즐거움: 절집공부를 통해 여섯 가지 즐거움을 배우다/ 보경 지음
개인저자보경
발행사항서울: 뜰, 2009
형태사항[262] p.; 22 cm
ISBN 9788901099712
언어한국어

소장정보

서비스 이용안내
  • 찾지못한자료찾지못한자료
  • SMS발송SMS발송
메세지가 없습니다
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1 1093288 294.302 보14ㅅ 2관3층 일반도서 대출가능
찾지못한자료 SMS발송
2 1093287 294.302 보14ㅅ 2관3층 일반도서 대출가능
찾지못한자료 SMS발송


서평 (0 건)

서평추가

서평추가
별점
별0점
  • 별5점
  • 별4.5점
  • 별4점
  • 별3.5점
  • 별3점
  • 별2.5점
  • 별2점
  • 별1.5점
  • 별1점
  • 별0.5점
  • 별0점
제목입력
본문입력

*주제와 무관한 내용의 서평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승보사찰 송광사 서울분원인 법련사 주지, 보경스님의 첫 산문집

도심 포교당인 송광사 서울분원 법련사에서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법보신문' 칼럼을 통해 심층을 깊이 뚫고 들어가는 강한 글을 선보인 보경스님이 그동안 대중매체에 기고한 글과 신도들을 상대로 했던 법문,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써온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냈다.
저자는 인생의 즐거움을 여섯 가지로 나누어 이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풀어 설명하고 있다. 매사 부정적으로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은 균형을 잃은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평상의 도를 깨달아,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삶은 이다지도 자주 균형이 깨지고, 마음을 비우기가 힘이 드는 것일까?

어느 날 한 괴물을 혼내기 위해 시바신이 벼락을 때려 배고픈 아귀를 내려 보냈다. 벼락을 따라 내려온 아귀는 주변에 있던 괴물을 잡아먹으려 했다. 이때 괴물은 시바신에게 엎드려 굶주린 아귀가 자신을 잡아먹지 못하도록 자비를 내려달라고 빌었다. 자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이에게는 반드시 은혜를 내리는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승보사찰 송광사 서울분원인 법련사 주지, 보경스님의 첫 산문집

도심 포교당인 송광사 서울분원 법련사에서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법보신문' 칼럼을 통해 심층을 깊이 뚫고 들어가는 강한 글을 선보인 보경스님이 그동안 대중매체에 기고한 글과 신도들을 상대로 했던 법문,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써온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냈다.
저자는 인생의 즐거움을 여섯 가지로 나누어 이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풀어 설명하고 있다. 매사 부정적으로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은 균형을 잃은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평상의 도를 깨달아,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삶은 이다지도 자주 균형이 깨지고, 마음을 비우기가 힘이 드는 것일까?

어느 날 한 괴물을 혼내기 위해 시바신이 벼락을 때려 배고픈 아귀를 내려 보냈다. 벼락을 따라 내려온 아귀는 주변에 있던 괴물을 잡아먹으려 했다. 이때 괴물은 시바신에게 엎드려 굶주린 아귀가 자신을 잡아먹지 못하도록 자비를 내려달라고 빌었다. 자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이에게는 반드시 은혜를 내리는 시바신은 굶주린 아귀에게 정 배가 고프면 너 자신을 먹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귀는 자신의 발끝부터 먹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결국 얼굴만 남게 되었을 때, 시바신이 그 얼굴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내 너를 ‘키르티무카, 영광의 얼굴’이라고 이름 하리라. 또한 누구든 너를 예배하지 않고는 나에게 올 자격이 없노라.”(23-25쪽)

그나마 입이 있는 까닭에 얼굴만 남은 것일 뿐, 살기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이라도 먹어치우는 생명의 처절함을 아는가 묻는다. 삶의 치열함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저자의 눈에는 도처에 보이는 것이 영광의 얼굴인 것이다.


“비어 있는 방을 보지 말고 방 안 가득한 햇살을 보라”
싱거운 듯 담박하게, 보경스님이 보내는 열정과 긍정의 인생찬가!


행복은 햇빛 가득한 빈 방과 같고 즐거움은 비움에서 나온다고 했다. 물건이 가득 찬 방은 메아리가 없지만 비어 있을수록 더 크게 소리가 울리고 더 많은 햇살이 든다. 장자莊子는 이를 ‘낙출허樂出虛’라고 표현했다. 곧 마음을 비우면 즐겁다는 것이다.
저자는 세상을 즐거운 마음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인 삼업三業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얘기한다. 세상을 내 의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업의 힘에 이끌려 살아가는 것을 ‘종살이’ 인생이라고 일갈하는 저자는 업의 본질을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본다. 일상에서 꼭 필요한 만큼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이상으로 많이 가지려 하는 데에서 탐욕이 생기며, 부족하다고 느끼는 내면의 갈증이 커지면서 밖으로 질투와 분노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모든 불이 다 들어온 교차로의 신호등처럼 마음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만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평화롭고 유쾌한 마음은 사라지고 마”(139-140쪽)는 것이다.

“스님, 탐욕에 가득 차 있는 사람과 탐욕을 버린 사람은 어떻게 다릅니까?”
“탐욕에 차 있는 사람은 집착하고 탐욕을 버린 사람은 집착하지 않습니다.”
……
“스님, 나는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탐욕에 차 있는 사람이나 탐욕을 버린 사람이나 다 같이 굳은 음식이든 부드러운 음식이든 맛좋은 것을 바라고 맛없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임금님, 탐욕에 차 있는 사람은 맛좋은 음식을 즐기고 그 맛에 집착하지만, 탐욕을 버린 사람은 맛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149-150쪽)

“전쟁터의 코끼리가 자기를 맞힌 화살을 참아내는 것처럼,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이 비난하고 해치는 것을 참으리라”(228쪽)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탐욕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내는 일은 쉽지 않다. 어찌 보면 세상 사는 법과는 정반대의 길로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즐거움이 거듭되는 것은 대부분 고행의 결실이라고 한다. 고행은 절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원학적으로는 ‘훈련’의 뜻도 있다고 한다. 행복은 난데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훈련되는 하나의 존재방식이라는 것이다. 인내하지 못하고서 얻어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불교가 가진 가장 큰 힘을 괴로움을 외면하거나 무작정 신에게 의지함으로써 적당히 괴로움과 타협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그 괴로움을 소멸시켜버릴 때까지 괴로움의 문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점을 꼽았다. 괴로움을 소멸시키기 위해 바라보게 하고 집중하게 하고 수행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행복해지기 위한 훈련인 것이다.


일생 만 권 독서의 꿈을 안고 1년 200권 이상의 책을 읽다!
불교를 통해 바라보는 일상과 인문학, 그리고 수행자의 따스한 시선


“여기 물건이 하나 있다. 사람에게 각각 하나씩 있는 것이다. 그런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이름도 없다. …… 말하거나 묵묵히 있거나, 움직이거나 고요한 일상 가득 분명한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잘 쓰면 통하지 않음이 없다. 이것을 잘못 쓰면 하는 것마다 막힌다. 이것을 마음이라고들 하는데, 정작 우리는 이 마음의 주인 노릇은 못하고 산다.”(14-15쪽) 이렇듯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은 때론 순한 양이 되고, 때론 거친 야생마가 되어 우리 삶을 휘저어 놓는다. 그러나 저자는 태평하다. 굳이 내 마음대로 부리려 하지 않고 우선 거친 야생마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맡겨두라 한다. 그가 믿는 생각은 “지가 날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이다.
이 책은 이렇게 팽팽하게 뇌의 한 줄을 잡고 있던 마음을 어느 순간 툭 하고 풀려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청화스님이 추천사에서도 얘기했듯이 저자의 글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경각심을 갖게 하고,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런 글쓰기는 치열한 공부의 힘이기도 하다. 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일생 만 권 독서’의 꿈을 안고 1년 200권 이상의 책을 읽어내는 저자의 치열함이 그 본바탕을 이루고 있다. 시뿐만 아니라 동양고전에서 서양철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관심이 깊은 스님은 불서佛書의 인문학적 해석을 평생의 일로 삼고 있다.
좋은 책은 보고 또 보고, 밑줄까지 그어가면서 철저하게 읽는다. 좋은 구절을 옮겨 적은 두툼한 노트를 보면 그의 독서량을 가늠할 수 있다. 이런 엄청난 독서에서 뿜어져 나오는 해박한 지식은 책 곳곳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씨줄과 날줄처럼 불교경전에서 인문학, 동양고전을 한 줄로 엮어내는 그의 글은 그 의미를 각각에 두지 않고 하나의 진실로 꿰뚫는 힘이 보인다. 또 하나, 저자의 글의 토대는 절집공부이지만 그를 통해 바라보는 것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김지하 시인과 곽재구 시인을 좋아하며, 그들의 책을 모두 사서 읽는 열혈 독자인 그는 법회 중에 눈발이라도 날리면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를 눈 감고 대중에게 암송해 보이는 맑은 감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저자의 이런 감성은 화단 가득 피어난 꽃을 바라보면서도 화분에 깔아놓은 이끼에 시선을 더 자주 두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위를 향해 오르려 하지 않고 밑바닥에서 극단적 단순함으로 3억 5천만 년을 살았다는 이끼의 삶의 방식을 그는 결코 일차원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단순함에 눈뜨고, 꽃을 옮기니 나비까지 따라오더라는 말로 행복 위에 기적을 기대한다.
이전 다음
이전 다음

함께 비치된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