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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 서재필: 개화 독립운동가로 언론인으로 의사로

백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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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선구자) 서재필: 개화 독립운동가로 언론인으로 의사로/ 서재필기념회 엮음
개인저자 백학순= 白鶴淳
이택휘= 李澤徽
정진석= 鄭晉錫
이왕준= 李旺埈
단체저자명 서재필기념회
발행사항서울: 기파랑, 2011
형태사항229 p.: 삽화, 초상; 23 cm
ISBN 9788965239765
일반주기 공저자: 백학순, 이택휘, 정진석, 이왕준
주제명(개인명) 서재필= 徐載弼, 1864-1951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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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 서재필은 누구인가?

1864년 1월 7일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에서 태어난 송재(松齋) 서재필(徐載弼)은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의사로서 근대 한국 역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구한말에서 해방정국에 이르는 격동기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우리 민족에게 개화·독립·민주의 정신을 가르쳐주었다. 개항 이후 밀어닥친 내외의 위급상황에 맞서 갑신정변을 단행한 것을 비롯, <독립신문>을 창간하여 정부 비판과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서슴지 않고 파헤쳤다. 한국 언론계가 ‘신문의 날’로 정한 4월 7일은 바로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창간한 날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독립협회를 창설하였으며, 독립문과 독립관을 건립하는 등 자주·자강(自彊)의 개화 계몽운동을 했다.
3·1운동 후에는 상해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미국에서 필라델피아 한인회의, 한인 통신부 활동, 구미위원회 활동을 통한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또 독립운동으로 사업이 피폐되자 62세의 나이에 다시 의학을 공부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사가 되는 등 불굴의 삶을 살았다. 영문으로 글을 쓰고 나면 항상 맨 끝에 ‘Philip Jason, M...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 서재필은 누구인가?

1864년 1월 7일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에서 태어난 송재(松齋) 서재필(徐載弼)은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의사로서 근대 한국 역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구한말에서 해방정국에 이르는 격동기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우리 민족에게 개화·독립·민주의 정신을 가르쳐주었다. 개항 이후 밀어닥친 내외의 위급상황에 맞서 갑신정변을 단행한 것을 비롯, <독립신문>을 창간하여 정부 비판과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서슴지 않고 파헤쳤다. 한국 언론계가 ‘신문의 날’로 정한 4월 7일은 바로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창간한 날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독립협회를 창설하였으며, 독립문과 독립관을 건립하는 등 자주·자강(自彊)의 개화 계몽운동을 했다.
3·1운동 후에는 상해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미국에서 필라델피아 한인회의, 한인 통신부 활동, 구미위원회 활동을 통한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또 독립운동으로 사업이 피폐되자 62세의 나이에 다시 의학을 공부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사가 되는 등 불굴의 삶을 살았다. 영문으로 글을 쓰고 나면 항상 맨 끝에 ‘Philip Jason, M.D.'라고 자신의 이름과 직함을 적었음을 볼 때 의사로서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해방 후에는 미 군정청 고문관으로 귀국하여 민주 독립국가 수립에 진력하였다.
서재필은 1951년 1월 5일, 필라델피아 근교의 몽고메리 병원에서 87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서재필이 1897년 12월 11일자 <독립신문>에 쓴 사설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나라 흥망에 관계되는 일이면, 여간한 시비와 자기 목숨의 생사는 둘째가 되고, 나라만 위할 생각이 나서 남이 하기 어려운 일을 행하여 기꺼이 내 목숨껏 나라가 흥하고 백성이 편하도록 하는 것이 영웅 열사의 일이오, 세상에 낳던 장부의 사업이라.”

* 이 책은.....

재단법인 서재필기념회(이사장 安秉勳)는 올해 선생의 순국(殉國) 60년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그동안 기념회의 숙원사업이었던 ‘서재필 언론문화상’ 제정과 ‘올해의 민족 언론인 헌창’ 사업을 시작함과 동시에 『선구자 서재필』이란 책을 기획했다.
이 책은 서재필기념회의 임원인 4명의 집필자가 서재필의 생애를 분야별로 나누어 세밀하게 기록했다. 우선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서재필의 생애’를 개괄했다. 또 이택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前 서울교육대학 총장)는 ‘독립운동가’로서의 서재필, 정진석 한국신문협회 정책자문위원장(前 한국외국어대학 교수)은 ‘언론인’으로서의 서재필, 끝으로 이왕준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은 ‘의사’로서의 서재필을 각각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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